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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32화 (131/407)

세이버 수술 (3)

최기석은 윤기환과 대화를 마치고 박진경에게 검사 결과를 알려 주었다.

그녀의 반응 또한 윤기환과 다르지 않았다.

"서…… 선생님. 혹시 제가 암인 건가요?"

"암은 아닙니다. 세포는 음성이고 자궁세포가 우연히 혈액을 타고 폐 밑에 자리 잡았을 뿐입니다. 일단 흉부외과에 입원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후에는 다른 과와 상의해서 약물치료를 하거나 수술을 받게 되실 겁니다."

"죽을병은 아닌 거죠?"

"너무 염려 마세요. 환자분의 병은 희귀질환이지만 응급질환은 아닙니다."

최기석은 박진경을 다독이며 격려를 사용했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진료를 마치고 호흡기내과 병동을 찾았다.

늦은 시간이라서 최미순은 곤히 잠에 빠졌다. 보호자는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최기석은 최미순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정설화에게 들었던 엘리타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흐음…….'

상태는 비응급, 경과는 보통이지만 꺼림칙한 마음을 지우기 힘들었다.

투약 초반이라서 부작용이 없는 것일 수도 있기에.

더군다나 방금 경험한 것처럼 히포크라테스의 눈이 만능은 아니다.

만약 만능이라면 진단력이 10을 찍어야 하지 않는가.

[페인킬러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환자의 육체적 고통이 70퍼센트 경감합니다.]

최미순에게 스킬을 쓰고 흉부외과로 복귀했다.

복도를 걷는데 맞은편에서 박용일과 서지훈이 다가왔다.

흉부외과 폐암 수술의 에이스와 천재 소리를 듣던 레지 1년 차의 조합이 신선했다.

그것도 일과가 한참 끝난 후에 만남이라니…….

"안녕하세요, 교수님."

"기석이구나. 100일 당직 서느라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여쭤 보고 싶은 게 있는데 잠깐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지훈이는 그만 가 봐라."

"네, 교수님. 기석아, 수고해."

서지훈이 최기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병동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두 사람이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방금 진료한 환자를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최기석이 환자의 차트를 모니터에 띄웠고 박용일이 유심히 차트를 살폈다.

이마의 주름이 점점 깊어졌다.

"희귀 케이스인데? 나도 이런 환자는 처음이야."

박용일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놀랍구나, 놀라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환자 이야기가 아니라 네 이야기야."

박진경의 증상은 객혈뿐이었고 엑스레이와 피 검사를 비롯한 기본 검사는 전부 정상이다.

일반적인 의사라면 경과 관찰과 간단한 약 처방을 지시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기석은 폐 CT와 PCNB 검사 오더를 내렸다.

마치 이 희귀병을 알고 있다는 듯이.

"예전에 송 교수님이 보내 주신 논문에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그걸 운 좋게 떠올려서……."

박용일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최기석이 재빨리 해명했다.

"하여간 잘했다. 사실 이런 환자를 잡아낼 정도면 외과가 아니라 내과에 있어도 괜찮은 수준인데……."

"……."

"흠흠. 어쨌거나 이 환자는 나한테 돌려 줬으면 좋겠다."

"네? 바쁘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환자는 극도로 희귀한 케이스야. 이번 달 한국폐협회에 발표 자료로 쓰면 딱이지."

박용일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환자 가로챈다고 생각하지는 말고. 발표 논문에는 공동 저자로 너를 넣어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흔쾌히 대답했다.

박용일은 정치력이 낮으며 정직한 타입이다.

이런 쪽으로 뒤통수를 칠 인간이 아니다.

굳이 경계를 할 인물을 꼽자면 조지환, 장혁필, 민주혁 정도랄까.

"아. 교수님.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이번에 나온 폐암 치료제 엘리타에 관한 겁니다만…… 그 약 안전한가요?"

"임상 시험 무사히 끝내고 식약처 승인도 바로 이뤄진 걸로 알고 있지. 안 그래도 내과에 있는 동기한테 물어보니까 대체로 쓸 만하다는 평이 많았어."

"혹시 나중에라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모든 신약에 해당 되는 이야기지. 엘리타만의 문제는 아니란다."

"알겠습니다."

대화가 끝나고 박용일이 회의실을 떠났다.

최기석은 그 자리에 앉아서 검색 사이트를 살폈다.

키워드는 엘리타 부작용이다.

* * *

타다다닥.

최기석은 엘리베이터를 힐끔 응시한 후 번개처럼 계단을 내려갔다.

발걸음이 유난히 빨랐다.

그는 어느새 수술실이 있는 3층을 지나서 1층에 도착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그리운 얼굴이 보였다.

"교수님!"

최기석의 외침에 송명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뛰어왔어요? 그럴 필요는 없는데."

"그럴 필요 있습니다."

최기석이 벅찬 마음에 송명진을 꼭 끌어안았고 송명진은 그런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두 사람의 느닷없는 포옹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진정됐으면 이제 앉아요."

"네."

최기석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송명진은 어제 이틀간의 휴가를 얻었고 제자인 그를 보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간만에 본 스승은 혈색이 좋았고 얼굴에 제법 살이 붙었다.

의진대 흉부외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최 선생이 반가워해 주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요?"

"거의 반년 만에 뵙는 거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죠."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송명진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최 선생은 괜찮아요? 100일 당직에 세이버 팀 생활까지 하면 못 버틸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제가 원래 체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거든요."

"그럼 다행이지만……."

"교수님은 메이죠 생활 어떠세요?"

"나야 잘 지내고 있어요. 오히려 그쪽에서 너무 융숭한 대접을 해서 불편할 정도예요."

"교수님은 충분히 그런 대접을 받으실 분입니다."

최기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송명진은 세계적인 흉부외과 써전이다.

그의 실수라면 보금자리로 의진대 흉부외과를 택한 것뿐이었다.

지이이이잉.

진동벨이 울렸다.

송명진이 먼저 와서 그의 커피까지 주문을 한 모양이다.

최기석은 커피를 가져와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동시에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스승을 살폈다.

건강상에 문제는 없었지만 대신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대박이네.'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송명진의 외과적 처치 레벨이 9단계로 올랐다.

8.5였던 과거에 비해 0.5가 더 오른 셈, 이제 최고 레벨인 10단계도 목전이다.

"표정이 왜 그래요?"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최기석은 멋쩍은 표정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건 그렇고 영어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어요?"

"네. 하루도 빠짐없이 합니다."

"잠깐 영어로 대화해 볼까요?"

"자신 있습니다."

최기석은 송명진의 돌발적인 제안을 승낙했다.

이후 두 사람은 10분가량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송명진이 흉부외과에서의 일상을 묻고 최기석이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외국어 학습 능력 2배 상승.

외국어 회화능력 2배 상승.

최기석은 이 두 가지 젬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대화를 마쳤다.

"하하하하……."

송명진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교수님. 갑자기 왜?"

"어이가 없잖아요.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송명진은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쳤다.

그는 최기석이 어떤 식으로 하루를 보내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우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논문을 읽고 소 심장으로 집도 연습을 한다. 레지던트로서 해야 할 기본 임무를 처리하며 수술 스크럽을 선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곰 인형 봉합을 하며 세이버 수술 보조역까지 맡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이 100일 당직기간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리 유창하게 회화를 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만하면 당장 넘어와도 상관없겠는데요?"

"과찬이십니다. 교수님에 비하면 전 아직 멀었습니다."

"아마 올 가을 전에 최 선생을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여름부터 USMLE(미국의사시험) 준비해서 패스하고 메이죠에서 생활하면 돼요."

"혹시 동양인이라 차별 받으시는 건 없나요?"

"초반에는 텃세에 많이 시달렸죠. 하지만 메이죠는 의진대와 조금 다른 점이 있어요."

"다른 점이요?"

"메이죠에서는 인맥이 아니라 실력 있는 흉부외과의가 살아남는다는 겁니다."

송명진의 말이 최기석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세계 최고의 병원에서 실력을 뽐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그럼 슬슬 올라가 볼까요?"

송명진이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라가신다니……."

"장 교수에게 못 들었어요? 세이버 팀 수술 내가 도와주기로 했는데."

"아……."

최기석은 뒤늦게 깨달았다.

장혁필이 초청한 명사가 바로 스승이라는 것을.

"바쁘니까 빨리 갑시다."

"네!"

두 사람은 곧바로 흉부외과 병동을 찾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복도 맞은편에서 조지환이 다가오고 있었다.

"……."

"……."

송명진과 조지환이 서로를 확인한 순간 복도에 싸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 둘을 지켜보는 최기석이 다 조마조마할 정도다.

이윽고 세 사람이 적당히 거리를 두고 걸음을 멈췄다.

"해외에서 잘나가는 송 교수님이 의진대에는 웬일이십니까?"

"장 교수를 도와주러 왔어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조지환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메이죠에서 들리는 명성이 거품은 아니겠죠? 그래서 의진대에 돌아오려고 작업을 한다던가……."

"사람 속 긁는 건 여전하군요."

송명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세상 모든 의사가 다 조 과장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지, 패거리를 만들고 뒷조작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수님이야말로 순진한 건 여전하시군요."

조지환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세이버 수술을 도와주러 오셨다니 환영입니다. 여유가 있다면 참관까지 하고 가시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조지환이 먼저 인사하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제야 팽팽한 분위기가 조금씩 풀렸다.

"최 선생도 항상 기억해 둬요. 의사의 본분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가자 세이버 팀 인원이 전원 모여 있었다.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어차피 최 선생을 보러 올 거였고 장 교수하고도 할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장혁필의 인사에 송명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노트북에 USB를 꽂은 후 스크린 앞에 섰다.

"아는 얼굴도 있고 모르는 얼굴도 있군요. 저는 예전에 의진대 흉부외과 부교수를 맡았고 현재는 메이죠 병원 흉부외과 과장으로 있는 송명진입니다. 반갑습니다."

짝. 짝. 짝.

팀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우와. 이제야 뵙는구나.'

김태식은 송명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송명진은 오래 전부터 그의 롤 모델이었다.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흉부외과의.

송명진의 발자취는 전무후무하다.

"내일 세이버 수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세이버 수술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

"첫째는 케이스가 흔하지 않으며 둘째는 수술 과정이 복잡해서 심장 수술의 종합 세트와 같기 때문이죠."

송명진이 포인터기를 누르자 스크린에 화면이 떠올랐다.

"정확히 2주일 전 메이죠에서 세이버 수술을 했습니다. 이 케이스를 분석하면 여러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군요."

"환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장혁필이 평소답지 않게 급히 질문을 던졌다.

"환자는…… 수술 중 사망했어요."

송명진의 대답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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