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31화 (130/407)

세이버 수술 (2)

지이이잉.

수술실 문이 열리고 스태프들이 나왔다.

"죄송한데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최기석은 동료들과의 휴식을 뒤로하고 빠르게 걸었다.

세이버 팀 회의 시간이 벌써 10분이 지났다.

스케줄을 아는 팀원들이 이해해 주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회의에 참석하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심장 클리닉에서 했던 장혁필의 말을 고민해 봤다.

장혁필은 팀원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세이버 수술을 수요일에 하겠다고 결정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독단적인 행동이었다.

"최 선생님도 늦었어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공심폐기사 유병세를 만났다.

"스크럽이 방금 끝나서요. 유 기사님도 볼일을 보느라 늦으셨나 봐요?"

"뭐, 그런 셈이죠."

두 사람은 같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드디어 세이버 수술 날짜가 잡혔네요. 긴장되시죠?"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죠."

"저야 평소대로 심폐기만 돌리면 그만인데 써전들은 그게 아니니까 참……."

"그게 외과의의 숙명이죠."

최기석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수술에 대한 부담감을 이겨 내지 못하면 써전을 할 수 없다.

장혁필이 사자의 심장을 강조한 이유도 그 때문이고 말이다.

유병세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회의실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자리에 앉아."

"네!"

최기석이 자리에 앉자 장혁필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다들 놀랐을 겁니다. 세이버 수술이 갑자기 결정돼서요. 독단적으로 처리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아침에 본 환자 상태가 썩 좋지 못했어요."

"……."

"그래서 연습을 없애고 빨리 수술하자고 판단했죠. 원래는 여러 분에게 먼저 알릴 생각이었는데, 과장님이 절 쪼느라 어쩔 수 없었네요."

장혁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세이버 팀의 정식 미팅을 시작합니다. 김 선생."

"네!"

장혁필이 자리로 들어가고 김태식이 스크린 앞에 섰다.

포인터를 누르자 발표 화면이 떠올랐다.

"환자의 이름은 문민경. 나이는 42세, 최근 몇 년 간 심부전증으로 본원 순환기내과 외래에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통증이 악화되어 외래를 통해 입원했습니다."

김태식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을 이었다.

"정밀검사 결과 진단명은 만성 심부전증, 좌심실류, 좌전하행동맥 협착입니다."

"그럼 세이버 수술과 CABG(관상동맥 우회술)를 같이 해야 하는 거죠?"

"맞습니다."

최기석의 질문에 김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과정을 설명하기에 앞서 가볍게 병리를 설명하겠습니다."

세이버 수술은 좌심실류를 제거하기 위해 시행된다.

여기서 좌심실류란 심근경색이나 심부전증 등으로 손상을 받은 좌심실의 일부가 딱딱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럴 경우 좌심실의 운동성이 떨어지고 주변 조직이 두꺼워진다.

좌심실류의 부작용으로 크게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심장판막의 폐쇄부전, 심실 내의 혈전 형성, 허혈성 심장병이다.

"이어서 수술 과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좌심실 내에 형성된 혈전을 모두 제거하고 CABG를 펼칩니다. 이후 진행되는 것이 세이버 수술로……."

김태식은 준비한 자료로 세이버 수술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마취의와 인공심폐기사까지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김태식과 장혁필이 다시 자리를 바꾸었다.

"혹시 세이버 수술 케이스 경험한 사람 있어요?"

장혁필의 질문에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강 선생도 없어요?"

"네. 송 교수님이 노우드 수술하는 건 본 적이 있는데 세이버 수술은 못 봤어요."

강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세이버 케이스를 접한 적은 없습니다. 자주 만날 수 있는 케이스는 아니니까요."

"그럼 더더욱 수술 결정이 성급하셨던 것 아닐까요?"

"100퍼센트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최기석의 질문에 장혁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수술의 모든 원리는 같아. 잘라 내고 꿰매고 이어 붙이는 것, 이 세 가지뿐이야. 세이버 수술이라고 해서 이 원리는 벗어나는 건 아니지."

"……."

"자. 그럼 지금부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봅시다. 우선 다른 병원에서 실시한 세이버 케이스를 분석하겠어요."

장혁필의 주도로 케이스 스터디가 이어졌다.

세이버 수술 케이스는 총 4례.

그중 생존자와 사망자가 각각 두 명이다.

사망자의 경우 테이블 데스가 2례.

수술 후 합병증으로 사망한 경우가 1례,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간 케이스가 1례다.

분석이 끝난 후 팀원 간 역할 분담이 시작됐다.

써전의 개인기를 중시하는 장혁필은 최기석에게도 꽤 많은 부분을 할당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입니다. 내일은 특별히 초청한 명사에게 교육을 받은 후 프레시 카데바로 세이버 수술을 연습할 겁니다."

"명사요?"

"기대해도 좋아요."

김태식의 질문에 장혁필이 웃으며 답했다.

오늘 회의 중 처음으로 보이는 미소, 남몰래 준비한 것이 있는 걸까.

* * *

그날 저녁.

최기석은 할 일을 마치고 아지트를 찾았다. 정설화가 먼저 도착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일찍 왔네?"

"자기가 보고 싶었거든."

그는 너스레를 떨며 다가 온 정설화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와 포옹을 나누다가 소파에 몸을 기댔다.

"휴우……."

저절로 한숨이 터졌다.

갑작스레 이틀 뒤로 잡힌 세이버 수술, 수술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왜 그래? 무슨 걱정 있어?"

"수요일에 세이버 수술하기로 했거든."

"오히려 잘된 거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막상 수술 생각하니까 머리가 지끈 거리네."

"넌 세이버 수술이 아니라 그보다 더 어려운 수술도 할 수 있어. 날 믿어."

"고마워."

정설화의 응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순환기내과는 별 일 없고?"

"딱히 없어."

"동료랑 선배들이 견제하는 건 어때?"

"그거야 여전하지. 근데 요즘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일일이 신경 쓰면 나만 피곤하니까."

"잘했어. 나중에 실력으로 찍어 누르면 되니까."

"응."

정설화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까 신경 쓰이는 게 한 가지 있기는 한데……."

"뭔데?"

"혹시 엘리타 알아?"

"아무렴 그 정도는 알지."

최기석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엘리타는 일주 전에 출시된 폐암 치료제다. 첫 국산 글로벌 신약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으며 약 효능이 뛰어나 기적의 치료제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근데 엘리타는 왜?"

"폐암 환자들에게 엘리타를 쓰는데 꺼림칙한 게 있어서……. 몇몇 환자들한테 피부발적이 생겼거든. 엘리타 때문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면역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그 정도면 의심할 만한 것 같은데?"

"그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지? 그래서 내일은 교수님한테 엘리타 부작용에 대해 여쭤 보려고."

"아 참. 혹시 엘리타가 어르신한테도 들어가?"

"응. 이번 주부터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어."

정설화의 대답에 최기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최미순에게 엘리타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꺼림칙했다.

그녀의 치료가 내과 일이라고 너무 손을 놓으면 안 될 듯싶었다.

지이이잉.

가운에 넣어둔 콜폰이 떨었다.

번호를 확인하니 응급실 콜이다.

"난 그만 가 볼게."

"응. 오늘도 고생해."

정설화가 쪽하고 볼에 입을 맞췄고 최기석은 서둘러 응급실을 찾았다.

"선생님. 이 환자분입니다."

응급실 인턴이 침상에 걸터앉은 환자를 가리켰다.

"죄송합니다. 순환기내과에 전화했는데 당직 선생님이 전화를 안 받아서……."

"괜찮아. 자주 불러도 상관없어."

최기석이 인턴을 다독였다.

응급실 콜을 받으면 환자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거기에 처치라도 있으면 체력을 회복할 수 있어서 꿩 먹고 알 먹기다.

검사 결과를 훑고서 환자를 마주 보았다.

환자의 이름은 박진경, 나이는 27세로 젊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가슴이 너무 아파요. 기침할 때마다 피가 나오고요. 콜록. 콜록."

마침 박진경이 입을 가리고 기침했는데 손을 떼자 피가 묻었다.

최기석은 포셉으로 알콜솜을 꺼내서 그녀의 손바닥을 닦아 주었다.

"증상은 언제부터 나타났죠?"

"한 5개월 정도 지난 것 같아요. 근데 선생님. 이상하게 생리할 때만 이래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청진기로 환자의 폐음을 확인했다.

폐음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폐포 호흡음이고 다른 하나는 기관지 호흡음이다. 박진경의 경우 두 가지 다 이상이 없었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포음이나 쌕쌕거림이 있는지 살폈다.

이번에도 이상 무.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체력: 6/10

주 증상: 흉통 / 객혈

아픈 부위: 폐

진단명: ???

현재 상태: 비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없음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진단명이 뜨지 않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선생님. 대체 왜 이러는 거죠?"

"일단 검사상에서 뚜렷이 잡히는 건 없습니다만……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최기석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과거 진료 기록을 살펴보려고 했지만 오늘이 초진이다. 특별히 엮어 낼 질병이 없는 셈이다.

딸칵. 딸칵.

무의미한 클릭 속에 머리를 쥐어 짜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진단명을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은 환자가 아직 정식 병명이 정해지지 않은 병을 앓고 있다는 뜻일 텐데.

'폐 쪽의 희귀질환이라……. 비슷한 케이스를 봤는데?'

초조하게 시간이 흘렀다.

"콜록. 콜록."

환자가 다시 피를 토했다.

"혹시 아까 그런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최기석은 그녀의 피를 닦아 주며 물었다.

"무슨 말이요?"

"생리할 때만 이런 증상이 나타나신다고요."

"네. 맞아요. 이상한 저주라도 받았나 봐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최기석은 메일 드라이브에 접속해서 송명진이 보내 준 논문들을 재빠르게 살폈다. 평소에 자료를 분리해 놓았기에 폐와 관련된 자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찾았다!'

논문의 주석을 발견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박진경을 괴롭히는 질병의 정체를 알아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50건이 채 되지 않는 케이스였기에 히포크라테스의 눈이 잡아내지 못한 게 당연했다.

"환자분. 아무래도 자세한 검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해 주세요. 너무 힘들어요."

"알겠습니다. 일단 검사 결과를 확인해야겠지만 입원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 선생. 박진경 환자분, 체스트 CT 하고 폐 PCNB(경피적 절단침 생검)검사 있어요."

"CT에 PCNB까지요?"

인턴 윤기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기석이 내린 검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객혈이 발생하는 원인은 대부분 기관지에 있다. 그런데 검사가 전부 폐에 집중되었다.

더군다나 PCNB라면 조직검사가 아닌가.

환자를 암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는데 조직검사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소문이 잘못된 건가?'

윤기환은 환자에게 돈을 뜯기 위해서 검사한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윽고 환자가 응급실을 떠났고 최기석은 차분하게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환자가 응급실에 복귀한 후 이십 분이 지났다.

영상의학과의 응급 판독 결과가 모니터에 떠올랐다.

"선생님. 어떻게 됐나요?"

윤기환이 최기석의 곁에 바짝 붙어서 물었다.

"이거 보여?"

"아……."

최기석이 가리킨 폐 하단부에 작은 멍울이 졌다.

"이게 뭐죠?"

"조직검사에 자궁세포라고 나왔어."

"우와. 어처구니가 없네. 폐에 왜 자궁세포가 붙어 있어요?"

윤기환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처음 보는 케이스가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지만 확실한 건 말이야 자궁세포가 폐에 기생해서 생리할 때마다 객혈이 발생했다는 거야."

최기석의 시선이 객혈 중인 환자에게 고정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