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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28화 (127/407)

목표를 향해서 (6)

"갑자기 마음이 바뀌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해 봤어요. 얼마 전 남편이 병가를 내고 킬라렌 치료를 받으러 갔었는데 완전 끔찍했대요. 명상이라고 해서 가르치는 건 간단한 심호흡이고 끼니때마다 이상한 주스만 준대요."

"……."

"그래서 남편이 주스에 뭐가 들었는지 물어봤더니 대답도 안 해 준대요. 이건 완전 사기꾼들 아닌가요?"

"보호자 분께서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요새는 번지르르한 광고가 너무 많아서요."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딴 치료 받는다고 수술 기간을 놓쳤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분통이 터지네요. 어휴."

"환자분의 마음은 백번 이해합니다. 하지만 덕분에 수술을 적기에 받을 수 있게 됐으니 다행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 흉부외과로 병실을 옮기겠습니다."

"지금 당장 옮겨도 되나요?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원하신다면 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최기석은 미소를 지으며 병실을 나왔다.

얼마 전 문민경에게 미끼를 던졌다.

지인이나 가족이 그녀 대신 먼저 킬라렌 치료를 받아 보도록 하는 게 어떠냐고 말이다. 그러면 킬라렌 치료가 제대로 된 치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이에 문민경은 남편을 치료소로 보냈고 오늘의 결과가 나왔다.

띠링!

[중요 임무, '마음을 돌려라'를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20,000 P.

P를 지급합니다.]

'20,000 P.

P?'

보상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이로써 보상으로 인해 모아둔 P.

P가 35,000이 되었다. 앞으로 15,000 포인트만 더 모으면 레전드 아이템인 시간을 넘어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똑. 똑. 똑.

최기석은 노크하고 당직실로 들어갔다.

"어. 기석아!"

"오늘 당직이지?"

"응. 그런데 무슨 일이야?"

"문민경 환자, 흉부외과로 옮기려고. 세이버 수술 받기로 했거든."

"정말? 수술은 절대로 안 받겠다고 난리 쳤는데. 어떻게 된 거야?"

"환자는 의사 하기 나름 아니겠어?"

최기석은 윙크를 날리며 정설화를 끌어안았다.

당직실에는 두 사람뿐이니 가벼운 스킨십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너무 좋다."

정설화는 최기석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쌌다. 이렇게 최기석을 안고 있는 것만으로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나 뽀뽀해 줘."

"공주님이 해 달라고 하면 해 드려야지."

최기석은 정설화의 이마와 코, 볼, 입술에 차례대로 입을 맞췄다.

"꺄아아악. 너무 과해."

"역시 입이 문제네. 입을 막아야지."

최기석은 다시 정설화와 입을 맞췄다.

가운 너머로 전해지는 정설화의 체온, 보드라운 입술, 인중을 간지럽게 만드는 숨결에 금몸이 뜨거워졌다.

두 사람은 진한 키스를 마치고 서로를 응시했다.

둘의 볼에 옅은 홍조가 떠올랐다.

"이…… 이따가 아지트에서 볼까? 오늘은 기석이 너랑 같이 있고 싶어."

"좋지."

최기석은 전산으로 문민경을 흉부외과로 옮겼다. 이후 당직실을 벗어나 짐을 챙긴 문민경과 흉부외과 병동을 찾았다.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기석은 문민경과 인사하고 콜폰을 들었다.

장혁필에게 문민경의 소식을 전하자 뛸 듯이 기뻐했다. 더불어 이미 퇴근했기에 내일 환자를 보겠다고 말했다.

"아. 참!"

통화를 끊고 흉부외과 당직실로 향했다. 당직실 책상에 치킨 박스가 놓여 있었다.

김정혁에게 치킨을 사 주기로 한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최기석은 서둘러 위장관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주말이 찾아왔다.

최기석은 아침 일찍 목욕한 후 평상복을 입고 백팩을 맸다.

오늘은 한국흉부외과협회에서 진행하는 체육대회 날.

간만의 외출에 기대 반, 설렘 반이다.

본원 밖으로 나와서 야외주차장을 서성거렸다.

푸른 하늘과 선선한 바람, 따뜻한 햇살이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빵! 빵!

클락션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권일수가 모는 SUV가 주차장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최기석을 살갑게 인사하며 조수석에 타자 권일수가 인사를 받아 주었다.

"일찍 나왔네?"

"네. 바깥 경치가 너무 좋아서요."

"하긴 너라면 그럴 수 있겠지."

권일수가 피식 웃었다.

매일 출퇴근하는 교수들과 달리 레지던트들은 병원 내에서 살다시피 한다.

병원 밖으로 나온 일조차 드물다.

"일단 과장님 댁에 들르고 부천 쪽으로 가자."

"네."

차량이 야외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 위를 달렸다.

최기석은 권일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우르르 쏟아지는 바람에 기분이 한층 고조되었다.

"주혁이는 몸이 안 좋다면서?"

"네. 이틀 전부터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혼자서 논문 공부하고 연습하던 게 쌓여서 독감이 온 것 같습니다."

"환자를 보려면 몸 관리를 잘해야지."

권일수가 혀를 찼다.

다행히 민주혁에 대한 이야기를 더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이런저런 거짓말을 하고 나중에 민주혁과 말을 맞춰야 했을 텐데 말이다.

"그건 그렇고 네가 보기에 서지훈이라는 친구는 어때? 들리는 소문에는 예전부터 천재 소리 듣고 처지도 잘한다고 하던데."

"실력은 뛰어난 것 같습니다. 복귀 첫날 저와 응급실에 내려가서 흉강천자를 했습니다."

"제법인걸?"

일반적으로 군대에 다녀오면 의료지식이나 처치가 퇴보하기 마련이다.

의무지대나 의무중대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소독이나 감기약 또는 복통약 처방 정도의 수준이고 이를 넘어가면 사단 의무대나 군 종합병원으로 이송을 보낸다.

그런데 녹슨 실력으로 흉강천자라니…….

"너 같은 괴물이 또 나타났구나. 의국이 점점 재미있어지는데?"

권일수가 껄껄 웃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조지환의 집에 도착했다.

그의 집은 강남에 위치한 단독주택.

형이 병원장이고 본인은 흉부외과 과장이니 화려한 집에 사는 게 당연하다.

초인종을 누르고 용건을 말하자 조지환이 바깥에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그래. 빨리 가자."

조지환이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았다.

잠시 후 세 사람을 실은 차가 체육대회 장소에 도착했다.

장소는 부천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 운동장.

입구에 체육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었다.

일행은 주차장에서 내린 후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간편한 복장이었으며 몇몇 사람들은 축구공으로 공 주고받기를 하는 중이다.

"아이고. 조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조지환의 등장에 모여 있던 의사들이 인사를 건넸다.

조지환과 권일수가 다른 의사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이야기하는 통에 최기석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다.

'뭐. 상관없지.'

최기석은 마음을 느긋하게 먹었다.

중요한 건 체육대회가 시작한 후부터다. 오늘 이 자리에는 한국흉부외과협회의 임원들부터 각 대학병원, 흉부외과 개원의 등이 모인다.

기왕 온 거 화끈하게 이름을 알릴 생각이다.

"선배. 오랜만이네요."

최기석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민우에게 말을 걸었다.

"브랜치 생활은 어떠세요?"

"……."

일부러 아는 체하고 질문을 던졌지만 한민우는 말이 없었다.

얼굴을 찌푸린 채 모른 척할 따름이다.

조만간 이예림이 고소하면 브랜치 생활마저 못 할 테니 마음이 심란하리라.

잠시 후 인원이 모두 모였다.

가뜩이나 스태프가 부족하고 응급대기를 위해 남아야 하는 흉부외과다.

총 인원은 60명 정도로 조촐했다.

개회식 등의 절차는 생략하고 바로 운동에 들어갔다.

오전 스케줄은 축구.

서울 1팀과 서울 2팀, 지방 1팀과 지방 2팀이 나뉘어 경합을 펼치게 되었다.

최기석은 서울 1팀에 속했다.

"이야.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 나 기억해?"

한 남자가 최기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남자의 이름은 이정협, 진성대 흉부외과 치프로 과거 정해진의 동기다.

"안녕하세요."

최기석은 이정협에게 인사하며 속으로 웃었다.

동기에게 존댓말을 하게 될 줄이야.

"심장이식까지 받은 녀석이 축구해도 괜찮겠어?"

"뛰는 건 무리가 있지만 골키퍼를 시켜 주시면 거미손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거미손? 네가 이문재라도 되냐?"

이정협이 유쾌하게 웃었다.

이윽고 서울 1팀 선수들이 팀 조끼를 입고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최기석은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기에 골키퍼를 맡았다.

'해보자고!'

골대 앞에 서서 두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멋진 선방으로 흉부외과의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리라.

삐이이익!

휘슬소리가 울렸다.

서울 1팀과 지방 2팀의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최기석은 차분하게 흐름을 살폈다.

서울 1팀과 지방 2팀의 경기는 창과 방패의 대결이다. 서울 1팀에는 돌파에 능한 선수들이, 지방 2팀에는 끈질긴 수비수들이 많았다.

경기가 시작하고 5분이 지났다.

공은 지방 2팀 근처에만 머물렀다.

서울 1팀이 일방적으로 지방 2팀을 몰아붙이는 형세다.

툭!

지방 2팀의 선수가 패스를 차단했다.

"인성아 달려!"

슈우우우웅. 탁!

지방 2팀의 공격수 김인성이 폭풍처럼 달렸다.

서울 1팀의 수비가 따라붙었지만 빠른 속도로 제쳐 버렸다.

파바바박!

김인성이 패널티 라인을 넘어 돌진하는 사이 최기석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달려가서 막을까?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

고민하는 사이 뒤에 있던 수비가 김인성과 거리를 좁혔다.

'이건 슛이다.'

폭군의 강림을 사용하자 온몸에 힘이 샘솟았다.

최기석은 김인성의 행동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이윽고 김인성이 좌측으로 방향전환하며 슈팅을 때렸다.

파아아앙!

오른발에서 뻗어 나간 공이 골대 우측을 노렸다.

최기석은 몸을 날려서 오른손으로 공을 쳐냈다. 하지만 펀칭으로 튀어 나간 공을 김인성이 다시 받았다.

'가라.'

수비를 따돌린 김인성의 두 번째 슈팅!

최기석은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타아아앙.

공이 골대에 빗겨 맞으며 장외로 나갔다.

최기석을 의식한 나머지 발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갔던 탓이다.

"나이스!"

"잘했다. 기석아."

동료들의 칭찬이 쏟아졌고 최기석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어지는 경기.

서울 1팀은 기세를 타고 3득점을 따냈다.

지방 2팀이 간간히 반격에 나섰지만 최기석의 선방을 뚫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전반이 끝나갔다.

지방 2팀이 모처럼 코너킥 찬스를 맞았다.

파아아앙!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서울 1팀과 지방 2팀 선수들의 몸싸움이 치열해졌다.

최기석은 공과 선수들을 살피며 포지션을 잡았다.

그런데 문득 마주친 한민우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공이 아니라 자신만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퍼어어억!

서울 1팀 선수의 머리에 맞고 공이 다시 허공에 떴다.

최기석은 공을 바라보며 살짝 뛰는 척했다. 그러자 거기에 낚인 한민우가 온몸을 날려 점프했고 최기석은 그런 한민우를 슬쩍 피했다.

쿵!

한민우가 공 대신 그물에 몸을 던졌다.

최기석에게 부상을 입히려 했다가 본인만 우스운 꼴을 본 것이다.

정작 공은 수비가 걷어 내서 멀리 날아갔다.

"선배, 괜찮으세요?"

최기석은 한민우에게 다가가 위로하는 척했다.

"아이 씨…… 아파……."

"축구에 너무 몰입하셨네요. 아무리 그래도 본인이 공이라고 착각하면 못 쓰죠."

최기석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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