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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25화 (124/407)

목표를 향해서 (3)

"진철이는 왜 이렇게 안 와."

노기형은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던 중 결심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취 시작합시다."

"두 분이서 수술하시게요?"

커튼 뒤에 있던 마취의가 밖으로 나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쩔 수 없어요. 일단 오기 전까지 최소한의 준비라도 해 놔야지. 안 그랬다가는……."

"알겠습니다."

마취의가 마취를 준비하는 사이, 최기석은 가만히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잘린 손가락에 가장 먼저 눈이 갔다.

환자의 검지는 삼분의 이가량 잘려 나갔으며 잘린 부위가 둥그렇게 파였다.

다른 손가락에는 새까만 때 같은 것이 껴 있었다.

공장 작업 중 펀칭 기계에 당한 모양이다.

'할 수 있어.'

수지접합 환자를 실제로 보는 것도, 보조하게 된 것도 처음이다. 하지만 못 하겠다거나 자신이 없다는 소리 따위는 하지 않았다.

노기형이 생각 없이 자신을 데려오지는 않았으리라.

외과의로서 환자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최기석은 머릿속으로 수술 과정과 필요한 도구들을 생각해 보았다.

띠리리리링.

마취가 끝날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최기석은 서둘러 로젯 문 옆에 걸린 전화를 받았다.

"C 로젯입니다."

"나 강진철 교수인데."

"네, 교수님."

"응급실에 손가락이 뭉개진 환자가 있어서 진료 중이다. 이 환자도 수술을 해야 될 것 같은데. 과장님은 수술 중이니?"

"마취가 끝나면 바로 수술하실 것 같습니다. 그럼 교수님은……."

"아무래도 그쪽으로는 못 갈 것 같다. 수술을 따로 해야 될 것 같은데 과장님한테 말씀드려 볼래?"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통화를 연결한 채 노기형에게 강진철의 소식을 알렸다.

노기형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이 우리 둘이 해야겠구나."

"과장님의 발목을 붙잡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패기는 마음에 든다."

노기형이 의자에 앉았으며 최기석은 통화를 끊은 후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부터 수지접합 수술을 시작한다."

노기형이 미세 현미경을 살피며 환자의 절단된 손가락을 이리저리 만졌다.

혈관과 신경이 잘 유지되는지 살피는 작업이다.

"힘줄도 혈관도 신경도 거의 없다. 뼈는 끝자락만 남았고. 정신 단단히 차려야 해."

"네!"

"데브리망(debridement, 변연절제술)부터 간다."

변연절제술이란 괴사조직을 제거하는 처치로 이를 통해 세균의 증식과 환부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본격적인 처치에 앞서 최기석은 지혈대로 환자의 팔 하완부를 감았다.

처치 중 출혈을 막기 위함이다.

그사이 노기형이 베타딘으로 상처 주변을 소독하고 메젠(조직을 자르는 가위)을 들었다.

스으으윽.

메젠이 움직일 때마다 시꺼먼 조직들이 잘려 나갔다.

최기석은 자신의 머리쯤에 위치한 미세 현미경으로 처치를 살피며 생리식염수로 상처를 세척했다.

변연절제술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와이어."

노기형의 외침에 간호사가 철사를 건넸다.

노기형은 와이어로 환자의 손가락뼈를 고정해 주었다.

뼈를 먼저 고정하지 않으면 차후에 뼈가 흔들려 혈관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노기형이 와이어 작업을 하는 동안, 최기석은 환자의 팔을 꼭 붙들었다.

"휴우……."

노기형이 현미경에서 눈을 뗐다.

간신히 잘린 부위와 잘린 손가락의 뼈를 맞췄다.

지금부터는 힘줄, 동맥, 신경, 정맥 순서로 봉합해야 한다.

"4-0 PDS(봉합사)."

끼기기기긱.

노기형이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고 본격적인 처치에 나섰다. 이에 최기석은 현미경으로 힘줄을 살피며 포셉으로 힘줄을 단단히 잡아 주었다.

순식간에 펼쳐진 고리봉합법.

손가락의 근위부와 원위부의 봉합이 끝나고 고난이도 코스인 혈관 봉합 차례가 왔다.

"10-0 Nylon(봉합사)."

노기형의 외침에 최기석은 마른 침을 삼켰다.

봉합사는 앞자리가 클수록 실의 크기가 얇다.

흉부외과에서 보통 5-0 봉합사를 쓴다는 것을 감안하면 10-0의 봉합사는 그보다 두 배 가량 얇다는 뜻이다.

최기석은 그동안 쓰던 포셉을 버리고 더 정교한 포셉으로 보조에 나섰다.

동맥을 잡은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숨조차 내뱉기 두려웠다.

자신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환자의 혈관이 망가질 수도 있었기에.

'역시.'

노기형은 봉합하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최기석을 보조로 선택한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장혁필과 친분이 있어서 최기석이 세이버 팀 보조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장혁필이 고른 팀원이라면 수지접합 보조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다.

봉합 내내 최기석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단단하게 수술 부위를 잡아서 걱정 없이 봉합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세척이나 석션 같은 처치를 척척 해냈다.

수술 중 여유가 생기면 환자의 바이탈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이런 놈이 레지 1년 차라니 말도 안 되지.'

노기형은 내심 최기석이 펠로우급의 실력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수술에 들어간 지 어언 네 시간.

이제 남은 것은 정맥을 봉합하는 일뿐이다.

"젠장!"

노기형이 처음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과장님. 무슨 일이시신지……."

"윈위 쪽(몸의 중심에서 먼 쪽) 정맥이 안 보인다. 이걸 봉합 못 하면 재활이 힘들 텐데……."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최기석이 현미경으로 마지막 정맥 찾기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근위 측 정맥은 보이는데 이상하게 원위 측 정맥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기형이 재차 현미경을 살피는 동안, 최기석은 용의 눈의 줌 인 모드를 사용했다. 서서히 배율을 높이자 현미경과 비슷한 시야를 얻을 수 있었다.

'조금 만 더!'

현기증을 참으며 시야를 더욱 더 좁혔다.

그러자 신경 뒤로 숨어 버린 정맥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최기석은 시야를 유지한 채 포셉으로 정맥을 살살 건드렸다.

정맥이 꿈틀거렸지만 좀처럼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양손으로 포셉을 쥐고 재차 작업에 나섰다.

"뭐해!"

노기형의 호통이 로젯을 가득 메웠다.

"과장님. 남은 정맥을 찾았습니다."

최기석은 용의 눈을 풀고 재빠르게 현미경을 보는 척했다.

"찾았다고?"

"네. 신경 뒤에 숨어서 포셉으로 끄집어냈습니다."

"……말도 안 돼."

노기형이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눈이 빠지게 현미경을 쳐다보았음에도 정맥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최기석이 포셉으로 작업하자 숨었던 정맥이 빼꼼히 드러났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알았다. 계속하자."

노기형은 최기석의 보조를 받아 마지막 정맥 봉합에 나섰다.

잠시 후 수술이 끝났다.

흉물스럽게 떨어져나갔던 손가락과 잘린 부위가 정상적으로 붙었다.

최기석은 오랜 만에 벅찬 감격을 느꼈다.

"수고하셨습니다."

밝은 외침이 수술실에 퍼졌다.

* * *

일과 종료까지 한 시간이 남았다.

최기석은 병실을 돌며 환자들의 상태를 살폈다.

텅 빈 마이클의 자리를 확인한 순간 가슴이 허전했다. 성형외과의 부름을 받는 바람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그래서 곧바로 마이클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이클. 나예요. 흉부외과 선생님."

[선생님. 미워요. 퇴원할 때 인사하기로 해 놓고.]

"미안해요. 급한 환자가 생겨서 수술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농담이에요. 아이 돈 케어. 신경 쓰지 마요.]

"그렇게 말해 주니까 고맙네요. 수술 끝났다고 무리하지 말고 음식 조절하고 술도 자제해요. 알았죠?"

[선생님. 잔소리쟁이.]

마이클의 볼멘소리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이것도 조크. 선생님도 건강하고 나중에 또 연락해요.]

"그래요. 나중에 병원 밖에서 봐요."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병원 바깥으로 나갔다.

수지접합 수술 스크럽을 뛴 후 곧바로 박용일의 폐암 수술까지 들어갔다.

두 번의 수술로 일과가 끝나 버렸다.

그래서 기분도 전환할 겸 병원 바깥을 돌아다녔다.

외래 시간이 끝나감에도 병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환자와 보호자를 비롯해 면회자, 병원 직원, 보험회사 직원까지,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투어나 해 볼까?'

최기석은 본원으로 들어와 본관 지하 1층부터 걷기 시작했다. 의진대 병원 지하 1층은 직원식당, 병리과, 약제부, 우체국 등이 있었다.

"저기, 선생님. 뭐 좀 여쭤 봐도 될까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 말을 걸었다.

"네, 말씀하세요."

"혹시 진료협력팀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한참을 돌아다녔는데 못 찾아서……."

"잠시만요."

최기석은 그 자리에 서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진료협력팀의 위치는 기억 속에 없었다.

병원에는 수없이 많은 진료부와 진료지원부서, 편의시설이 있다. 그중에서 최기석이 정확히 아는 곳은 흉부외과 외래와 병동, 수술실뿐이었기에.

"따라오실래요?"

최기석은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 출입문 옆쪽 벽면에 층별 안내도가 붙어 있었다.

"3층으로 가 보시면 될 것 같은데요."

"3층에 가 봐도 없던데요? 거기 있는 직원한테 물어보니까 지하 1층으로 가 보라고 해서 왔는데 여기도 없으니. 원."

남성이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으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최기석은 고민하다가 지식의 요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화야. 나 기석인데. 혹시 진료협력팀 위치 알아?"

[진료협력팀? 2층에 있어. 아마 핵의학과 맞은편일걸?]

"고마워. 있다가 다시 연락할게."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미소를 지었다.

꼼꼼한 성격의 정설화는 레지던트의 업무뿐 아니라 병원 전반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

환자와 수술밖에 모르는 최기석과는 달랐다.

"2층에 있다고 하는데 저랑 같이 가시죠."

최기석은 남성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향했다.

과연 정설화의 말대로 핵의학과 맞은편에 진료협력팀이 있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덜 헤맸네요."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요. 그럼 일 잘 보세요."

남성과 헤어져 2층을 걷기 시작했다.

대학병원이 새삼 미로와 같은 곳이라 느끼면서.

2층을 크게 한 바퀴 돌자 끝자락에 의무기록 복사실이 나타났다.

의무기록 복사실은 2층에서 가장 바쁜 곳이다.

대기자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환자와 보호자뿐 아니라 정장을 입은 남성들도 눈에 띠었다.

대부분 보험회사 직원이리라.

'벌써 이렇게 됐나?'

최기석은 시간을 확인하고 흉부외과 병동으로 돌아갔다.

드르르륵.

회의실로 들어가자 곰 인형으로 봉합 연습하는 이영호가 보였다.

"선배. 오셨어요?"

"어. 연습은 잘 돼?"

"죽겠어요. 선배가 할 때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제가 하니까. 아휴……."

이영호가 한숨을 내쉬었고 최기석은 그가 작업한 인형을 살폈다.

"너무 엉성한데? 봉합사를 너무 타이트하게 조이는 것도 문제지만 너처럼 느슨하게 묶어도 문제야. 나중에 풀려 버린다고. 봉합 간의 간격도 삐뚤빼뚤하고."

"……네."

"날 따라할 생각 말고 천천히 해. 너한테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정확도니까."

최기석은 말을 마치고 이영호에게 격려를 사용했다.

스킬의 영향으로 이영호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대화를 나눈 후 최기석도 봉합 연습에 들어갔다.

조용해진 회의실.

니들홀더 조이는 소리와 봉합사를 자르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렸다.

"기석아, 잠깐 나 좀 보자."

민주혁이 회의실 문을 열고 최기석을 불렀다.

두 사람은 휴게실에 자리를 잡았다.

"너 나한테 빚진 거 있지?"

"……아. 네. 기억하고 있어요."

최기석은 이예림 사건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혁의 도움으로 서지훈을 흉부외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 빚, 이번 주에 갚았으면 좋겠다."

"이번 주에요?"

"조금 귀찮은 일이 생겨서.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하자."

민주혁이 캔 커피를 뽑았고 최기석은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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