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향해서 (1)
"못 들으셨어요? 수술 안 받을 거라고요."
문민경이 뜻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듯 한마디 덧붙였다.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세이버 수술 위험한 거 아닌가요? 수술 사망률이 높다고 들었는데……."
"혹시 성공률이 0.3퍼센트라고 알고 계신 건 아니죠?"
장혁필이 한 번 더 물었다.
모 드라마에서 세이버 수술의 성공률을 0.3퍼센트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이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실제로 믿었다.
"아니요. 실제 사망률은 10퍼센트에서 15퍼센트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더더욱 수술을 거부하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죽을 확률이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문민경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지인 중에 심장 수술 받다가 죽은 사람이 있어요. 저도 그 사람 꼴이 나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 우리 아내에게 킬라렌 치료를 받게 하고 싶습니다."
잠자코 있던 김철환이 나섰다.
그가 보고 있던 잡지를 내밀자 장혁필이 그 잡지를 건네받아 읽어 갔다.
장혁필의 미간이 점점 일그러졌다.
최기석은 호기심에 장혁필의 곁에 붙어서 같이 잡지를 읽어 나갔다.
'아…….'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장혁필이 바로 옆에 있어서 자신이 직접 나서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세이버 수술 대신 민간요법을 택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네. 이미 마음을 굳혔어요."
문민경이 설명을 이었다.
킬라렌 치료.
이것은 민간요법 중 하나로 명상과 식이요법을 통해 그 어떤 질병이라도 고칠 수 있다고 하는 치료법이다. 문민경은 말기 암이 나았다는 잡지의 사례를 들며 킬라렌 치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환자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목숨을 걸 수는 없습니다."
"전 더 이상 할 말 없어요. 다음 주에 퇴원해서 킬라렌 치료 받으러 갈 거니까요."
"하지만……."
"피곤하니까 그만 나가 주세요."
문민경의 강경한 태도에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병실을 나왔다.
"피곤하네."
장혁필은 한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흉부외과 리모델링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모처럼 얻은 케이스 환자가 말썽을 부리고 있었다. 이 환자를 수술한다면 노우드 팀을 앞서갈 수 있을 텐데…….
띠링!
[중요 임무, '마음을 돌려라'가 생성되었습니다.]
[마음을 돌려라: 세이버 수술을 거부하는 문민경이 세이버 수술을 받도록 만드세요. 제한시간 10일.]
[임무 성공 시 플레이어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로 환자에게 세이버 수술을 펼칠 때 특수 버프가 제공됩니다.]
갑작스레 알림이 울렸다.
임무가 걸렸다면 이 일을 장혁필에게 맡길 수 없는 법.
"교수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이 환자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최기석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 * *
그날 저녁.
최기석은 당직실에서 곰 인형을 봉합하고 있었다.
[망가진 봉제인형(65/150)]
"하아……."
봉합 중 한숨을 내쉬었다.
손으로는 봉합 중이지만 머릿속에는 문민경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녀를 설득해야 할까.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폭군의 강림이다.
스킬로 찍어 누르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기에.
다만 폭군의 강림을 사용했다가 실패하면 결과를 돌이킬 수 없다. 환자의 저항은 거칠어질 것이고 그 상황에서는 그 어떤 설득도 먹히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말로 하자니 꽉 막힌 귀를 뚫을 방법이 없었다.
"킬라렌 치료라니……."
최기석은 민간요법을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현대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로로 환자의 병이 낫는 경우가 있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완치를 했다고 주장하는 이가 사실은 거짓말을 했다는 게 들통나는 경우도 많고 말이다.
"아……."
봉합하던 손이 다시 멈췄다.
최기석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윤지혜에게 보낼 심포지엄 자료를 재차 살폈다.
자료에는 최근 해외 로봇 폐암 수술의 동향, 시범 실시 중인 각종 신기술들, 국내 수술의 현 주소 등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만한 자료라면 심포지엄에서 애먹을 일은 없으리라.
최기석은 자료를 보내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상태창을 띄운 후 유심히 살폈다.
그 중에서 레벨업 스톤(무작위)이 눈에 띠었다.
임무, '하얀 거탑에 오르면'을 완수하고 얻었는데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
[레벨업 스톤(무작위)]
- 보유 스탯 중 하나가 무작위로 한 단계 상승합니다.
설명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른바 공짜 레벨업이 아닌가.
휘이이이잉.
스톤을 사용하자 주변으로 하얀빛이 뿜어졌다.
최기석은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제발 외과적 처치 레벨이 오르기를 바라면서.
띠링!
카리스마 수치가 한 단계 상승하였습니다.
카리스마: 5(+1)
알림을 확인하고 아쉬움을 삼켰다.
체력이 오르지 않은 것으로도 천만다행이 아닌가.
이로써 비교적 최근에 얻은 스탯인 정치력과 카리스마가 나란히 5단계에 안착했다.
'바람이나 쐬 볼까?'
최기석은 병실을 돌며 환자들을 살폈다.
다행히 문제 환자는 없었다.
마이클은 건강을 회복해 퇴원일이 내일로 예정됐으며 최미순은 항암 치료를 잘 견디고 있었다.
중환자실의 환자들 역시 상태가 양호했다.
"선배. 퇴근 안 하셨어요?"
병동으로 복귀하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서지훈이 보였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지. 다시 배워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괜찮으면 이야기 좀 할까?"
"저야 좋죠."
두 사람은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서지훈이다.
"100일 당직 중이지? 컨디션은 좀 어때?"
"아직까지는 쌩쌩합니다. 앞으로 40일 정도만 더 버티면 끝나는데요, 뭐."
"대단하다. 주혁이한테 들으니까 세이버 팀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100일 당직에, 병동일에, 클리닉 업무까지 하는 거잖아. 그것도 심장이식을 받은 몸으로."
"아, 네."
서지훈의 칭찬에 최기석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예전부터 칭찬을 들으면 멋쩍은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선배. 저 궁금한 게 있는데 한 가지 여쭤 봐도 되요?"
"뭐든지."
"그게…… 레지 기간 중에 군의관으로 간 이유는 뭔가요?"
의사들은 레지던트를 마치고 군의관으로 가는 것을 선호한다. 대위로 군 생활을 시작하며 제대하고 병원으로 복귀하는 시기가 붕 뜨지 않았기에.
"그냥 힘들어서."
서지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흉부외과가 힘들 거라는 건 각오했지만 막상 오니까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더라. 나 같은 경우 송 교수님이 내주신 숙제까지 있었고."
"송 교수님이요?"
"그래. 너 송 교수님의 제자라고 하던데, 사실 내가 너보다 먼저 송 교수님 제자였어."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예요."
최기석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송명진이 서지훈을 제자로 삼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잠재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리라.
"3년 전 이야기니까 못 들었을 수도 있지."
"그럼 선배님이 복귀하게 된 이유는 뭐죠?"
"바로 너."
서지훈이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제대하고 쉬는 중에 주혁이가 찾아왔어. 도중에 네 이야기가 나왔는데, 주혁이가 그러더라. 네가 예전의 나보다 훨씬 일을 잘한다고."
"……."
"그게 큰 자극이 됐지. 난 남한테 지는 걸 못 참거든."
"아. 네."
"네 활약상을 들으니까 몸이 후끈 달아오르더라. 예전에 흉부외과 스타는 바로 나였는데 하고 말이야."
서지훈이 말을 마치고 침묵을 지켰다.
지이이이잉.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콜폰이 울렸다.
이영호의 콜이다.
[선배. T.
A(교통사고) 환자 왔는데요. 아무래도 외상성 기흉 같아서요.]
"바로 내려갈게."
"응급실에 환자 왔대?"
최기석이 통화를 끊자 서지훈이 호기심을 보였다.
"네. 선배는 회의실에서 쉬세요."
"같이 가자. 어차피 너 100일 당직 끝나면 다음은 나잖아. 미리미리 적응해야지."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서지훈과 응급실로 내려갔다.
T.
A 환자는 침상에 누워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다리 부목과 목 고정기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기본적인 처치는 이미 끝났다.
최기석은 흉부 엑스레이와 각종 검사 결과를 살핀 후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체력: 4/10
주 증상: 호흡곤란 / 흉통
아픈 부위: 폐 / 팔다리
진단명: 외상성 기흉 / 다발성 골절
현재 상태: 비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없음
이영호의 말대로 환자는 외상성 기흉이다.
다만 상태가 양호해서 흉강천자만으로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천자 세트 챙겼어?"
"당연하죠."
이영호가 커튼을 들추자 그 뒤에 숨었던 드레싱 카트와 천자 세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자의 발 빠른 준비성에 최기석은 피식 웃었다.
"흉강천자로 공기 빼 주고 산소치료 하자."
"잠깐만."
최기석이 장갑을 끼려는 찰나, 서지훈이 나섰다.
"선배. 무슨 문제라도……."
"별건 아니고. 천자, 내가 해 보고 싶어서."
"오늘 복귀하셨는데 곧바로 처치하시게요? 조금 더 감각을 익히는 게……."
"실전만큼 좋은 연습이 어디 있어. 그리고 난 인턴 때 이미 천자라는 천자는 다 해 봤다고."
서지훈이 자신감을 내비쳤다.
"네가 옆에서 봐주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선배에게 맡길게요."
최기석이 물러나면서 서지훈이 처치 준비를 했다.
그사이 이영호는 환자의 상의를 들춰 올리고 환자가 침상에 앉도록 만들었다.
"환자분. 처치 시작하겠습니다."
서지훈이 환자의 갈비뼈에 청진기를 대고 탁음이 들리는 곳을 찾았다.
스으으으윽.
포비돈 용액으로 환부를 소독한 후 천자할 부위만 동그랗게 문질러 표식을 남겼다.
환부에 방포를 덮고 주사기를 손에 쥐는 것으로 준비 끝.
푸우우욱.
리도카인 마취와 흉강천자가 차례대로 이어졌다.
서지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처치를 끝냈다.
그동안의 공백을 무색하게 만드는 빠르고 깔끔한 처치, 최기석은 불안함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장혁필이 말한 외과의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인 사자의 심장을 서지훈은 이미 가지고 태어난 듯했다.
"천자 끝났으니까? 산소치료 해야지?"
"아. 네."
서지훈의 지적에 이영호가 환자를 다시 눕히고 산소치료에 들어갔다.
처치가 끝난 후 두 사람은 다시 병동으로 복귀했다.
"오랜만에 천자하니까 손맛이 좋네. 군의관으로 있을 때는 처치할 일이 별로 없었거든."
서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선배, 대단하시네요."
"겨우 천자 가지고? 넌 세이버 팀에서 수술 보조하잖아."
"……."
"권 교수님에게 이야기해서 노우드 팀에나 들어가 볼까?"
대화 도중 서지훈에게 전화가 왔다.
급한 용건이라며 잠깐 나가 봐야간다고 했기에 최기석 혼자 당직실을 찾았다.
'재밌는 사람이네.'
의자에 앉아 서지훈이 천자하던 과정을 떠올렸다.
천재 라이벌의 등장이 반가웠다.
그가 성장할수록 자신에게는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