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세이버, 그 두 번째 (6)
[살려야 한다 스킬을 사용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얼어붙은 심장의 혹한 효과와 용맹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스킬을 사용하고 수술 과정을 머릿속에 그렸다.
혈관륜 수술은 고리처럼 굽어진 혈관을 떼어내고 문합하거나 봉합하는 수술이다.
다만 혈관이 어느 부위에서 띠를 두르냐에 따라 수술 방법이 조금씩 달라진다.
가장 먼저 수술할 부위는 대동맥궁.
이곳에서 뻗어나간 두 개의 혈관이 식도 뒤로 돌아가서 식도를 압박 중이다.
"핀셉."
권일수의 외침에 소독간호사가 도구를 전달했다.
권일수는 핀셉으로 아이 달래듯 혈관을 살살 식도 뒤쪽에서 빼냈다.
심장의 진동이 손에 전해짐에도 처치가 깔끔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이형성된 두 개의 혈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혈관은 완전한 링을 이루고 있었다.
"모스키토(혈관겸자) 쓰겠습니다."
딸칵!
제1보조 민병석이 양쪽 혈관 위 부분을 모스키토로 붙잡았다.
이에 권일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메스로 혈관의 연결 부위를 잘라 냈다.
치이이이익.
최기석은 석션기로 피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한 손으로 포셉을 들어 민병석과 잘린 혈관을 붙잡았다.
권일수가 문합을 편히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
"……."
문득 민병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에 지독한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
"민 선생. 기석이는 내가 불렀다는 거 잊지 마."
"……알겠습니다."
권일수의 말에 민병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진행되는 수술.
권일수는 반으로 가른 두 혈관을 다시 잘라서 길이를 줄였다. 그리고 두 혈관의 끝을 묶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심장이 박동하고 있음에도 단단문합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제법이군.'
권일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최기석의 보조가 마음에 들었다.
우선 민병석이 붙잡고 있는 혈관과 그가 붙잡고 있는 혈관의 균형이 매우 좋았다.
양쪽 혈관의 사이즈 매칭만 잘해도 단단문합술은 반 이상 끝낸 것이라 다름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기석은 영특하게 권일수가 봉합의 균일성을 맞추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포셉으로 다음 봉합할 부위를 은근하게 찍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가 생각하는 봉합 부위와 최기석이 찍어 준 부위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 자식. 뭐지?'
민병석이 슬쩍 최기석을 응시했다.
처음에는 레지 1년 차가 건방지게 나선다고 생각했다.
세이버 팀은 어떤지 몰라도 노우드 팀은 연차에 따라 보조할 수 있는 영역이 정해져 있었다.
일단 최기석이 하는 꼴을 지켜보다가 실수하면 혼낼 생각이었는데 그럴 기회가 나지 않았다.
집도의 보조와 제1보조의 보조.
최기석은 두 가지 모두를 성실하게 해냈다.
찰칵!
최기석의 가위질로 봉합사가 끊어졌다.
첫 번째 혈관륜 수술이 종료됐다.
다음으로 폐동맥에 위치한 혈관륜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네!"
권일수의 말에 스태프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폐동맥에서 뻗어나간 혈관은 식도와 기도 사이에 위치했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간 기관지에 후유증이 남을 수 있었다.
최기석은 정신을 바짝 조이며 보조에 나섰다.
수술 과정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어떤 도구를 써야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는지를 항상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그뿐만 아니라 집도의와 제1보조의 마음속까지 파고들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더 완벽한 보조를 할 수 있기에.
딸칵!
민병석이 폐동맥 혈관륜 위쪽 부분을 모스키토로 붙잡았다.
"교수님. 혈압이 떨어집니다."
최기석의 보고에 권일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당장 판단을 내릴 수는 없기에 환자의 상태를 더 지켜봤다. 불행하게도 혈압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교수님. 이대로라면……."
"인공심폐기를 쓰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최기석과 민병석이 한 마디씩 했다.
"이 환자는 인공심폐기를 쓰면 회복이 더뎌져. 승압제 정맥으로 놓고 최대한 빨리 수술을 끝낸다."
"알겠습니다."
승압제를 투여하자 환자의 혈압이 서서히 올랐다.
그사이 권일수와 민병석, 최기석은 한마음이 되어 순식간에 집도를 펼쳤다.
대동맥궁에서 단단문합술을 했던 것은 단순한 연습이었던 것처럼.
딸칵!
민병석이 혈관겸자를 풀었다.
그러자 문합한 부위로 피가 흐르면서 혈관이 꿈틀거렸다.
추가적으로 승압제를 투여하지 않았음에도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혈관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나머지 처치도 끝내자."
권일수가 메스를 들었고 민병석과 최기석이 보조에 나섰다.
이어진 기관협착 제거와 기관 성형술, 두 가지 모두 무사히 끝났다.
지이이잉.
로젯 문이 열리고 노우드 팀 스태프가 일제히 수술실로 나왔다.
스태프 모두의 표정이 밝았다.
환자를 살렸다는, 수술을 무사히 끝냈다는 후련함 때문이다.
"교수님. 저는 외래로 가 보겠습니다."
"그래. 고생했어."
권일수는 민병석을 먼저 보내고 최기석과 휴게실에 자리를 잡았다.
"못 본 사이에 실력이 더 늘었는데?"
권일수는 피식 웃으며 최기석이 건넨 캔 커피를 마셨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착각인지 몰라도 요새 계속 제자리걸음 하는 기분입니다."
"제자리걸음도 운동이야. 하다 보면 근육이 발달하지."
권일수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실력은 꾸준히 오르는 게 아니라 한순간 수직 상승하기 마련이지. 너 같은 연습량이면 그 시기는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게 빠를 거야."
"말씀 감사합니다."
권일수의 말에 최기석의 표정이 풀렸다.
소아심장 수술 대가의 말에는 힘이 담겼다. 단순한 위로임에도 사람의 기운을 고양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네가 보기에 노우드 팀은 어때?"
"훌륭한 팀인 것 같습니다. 교수님을 중심으로 스태프들이 똘똘 뭉쳐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입바른 소리 말고. 그럴 거면 굳이 너를 우리 팀에 넣지 않았어."
"혹시…… 노우드 팀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 저를 넣으신 겁니까?"
최기석의 질문에 권일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적인 수술에 들어가기 앞서 팀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싶다. 오늘 함께 수술한 너라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제발 그래 줬으면 좋겠군."
"제가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최기석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중 하나는 집도가 지나치게 권일수에게 쏠려 있다는 점이다. 권일수의 솜씨야 두말할 필요 없지만 제1보조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구간이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제1보조는 단순한 보조 역할만 했다.
말만 제1보조이지 제2보조와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남은 한 가지 문제는 바로 소통이다.
노우드 팀은 수술 중에 소통이 거의 없었다.
권일수가 지시하면 다른 스태프들이 그대로 따르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경우 처치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스태프의 자율성과 능률이 떨어지며 권일수가 실수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결국은 다 내 문제라는 거군."
권일수는 얼굴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팀 연습을 격일로 3주가량 했다.
그동안 진전이 없어서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는데 최기석의 말을 듣고서 깨우치는 바가 있었다.
스태프들의 시시콜콜한 질문, 연습 내내 자신의 눈치를 보던 모습까지.
모든 게 아귀가 맞았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교수님의 능력은 다른 스태프들에 비해 월등히 높으십니다. 그런데 다른 스태프에게 교수님의 수준을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마음을 너그러이 쓰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최기석은 다소 무례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말마저 뱉었다.
권일수는 쓴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옹졸한 사람이 아니다.
그랬다면 오늘 같은 자리도 만들지 못했으리라.
"고맙다. 덕분에 생각이 정리가 됐어."
권일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띠링!
[권일수와의 라포가 3단계 신임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알림이 머릿속을 스쳤다.
"교수님. 궁금한 게 있는데 한 가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럼."
"소아심장 수술은 어떤 식으로 연습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새끼 양 심장을 구해서 하고 있는데 별다른 진전이 없어서……."
"개인 연습이라……."
권일수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계속했다.
"소아심장 수술은 시야가 가장 중요해. 소아의 혈관은 성인보다 작고 가늘기 때문에 혈관을 잘 보고 처치하지 않으면 애꿎은 부위를 건드리기 마련이지."
"……."
"혼자 연습한다면 광학안경의 도수를 높혀 봐."
"루뻬 도수를요?"
"그래. 처음에는 수술 부위만 보여서 겁나겠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렵게만 느꼈던 소아심장 수술 연습에 한 줄기 희망이 비쳤다.
권일수와 대화를 나누다가 3층에 있는 흉부외과 외래를 찾았다.
똑. 똑. 똑.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장혁필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소식이 있어서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기대해도 돼?"
"네. 세이버 수술 케이스 환자 찾았습니다."
최기석의 말에 장혁필이 벌떡 일어났다.
"확실해?"
"환자 이름은 문민경이고 심부전증에 좌심실류를 앓고 있습니다. 지금 순환기내과 병동에 입원 중입니다."
"환자 번호 알아?"
"11857입니다."
최기석의 대답에 장혁필이 황급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장혁필은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했고 최기석은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첫 케이스로 딱이다. 잘했어."
장혁필이 최기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두 사람은 곧바로 순환기내과 병동을 찾았다.
문민경은 침상 등받이에 기대 앉아 TV를 시청했으며 보호자인 김철환은 잡지를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흉부외과 조교수 장혁필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문민경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담당 선생님이 방금 막 그랬거든요. 조금 있으면 흉부외과 선생님이 보러 올 거라고. 귀신같이 나타나셨네요."
"하하하.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혹시 TV 나왔던 선생님 아니에요? 아침 정원에 나왔을 때 본 것 같은데."
문민경이 부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6개월 전 쯤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아휴. TV에서 뵙던 분을 실제로도 뵙네. 영광이에요."
"아닙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대답하는 장혁필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환자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이만한 반응이라면 세이버 수술을 권유할 때 금방 넘어오리라.
"몸은 좀 어떠십니까?"
"별로 안 좋아요.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기도 불편하고. 요즘 들어서 더 심해요."
"그러실 겁니다. 내과 치료를 하면 어느 정도 호전이 있겠지만 그게 근본적이 치료는 아니니까요."
장혁필은 세이버 수술로 화제를 돌렸다.
세이버 수술이 어떤 수술인지, 수술 후의 일반적인 경과는 어떤지를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에 환자와 보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괜찮으시다면 환자분을 흉부외과 병동으로 옮긴 후 수술을 진행하고 싶습니다만 어떠십니까?"
"싫어요."
문민경이 딱 잘라 말했다.
"수술은 안 받을 거예요."
문민경의 폭탄선언에 장혁필과 최기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환자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