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19화 (118/407)

팀 세이버, 그 두 번째 (3)

"비타민은 왜요?"

"심리적으로 기댈 수 있는 요소를 주는 거지. 안 그러면 또 불안해하잖아."

"역시 선배."

이영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상중이는 요새 속 안 썩여요?"

"이제 사람 됐다.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니까 말을 듣더라. 그건 그렇고 너는 어때?"

"뭘요?"

"흉부외과 픽스턴. 생각해 봤어?"

"아직 고민 중이에요."

이영호가 머뭇거렸다.

"독촉하는 거 같아서 미안하다. 흉부외과에 사람 부족한 거 너도 잘 알잖아. 이런 시기에 너 같이 든든한 얘가 픽스턴 해 주면 좋을 것 같아서."

"선배. 만약에 제가 다음 달에 픽스턴을 한다고 치면요."

"……."

"어려운 처치나 술기, 잘 가르쳐 주실 수 있으세요?"

이영호의 질문에 최기석은 침묵을 지켰다.

저번에 나눴던 대화와 오늘의 대화로 깨달았다. 이영호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의 목표도 최기석과 다르지 않았다.

실력 있는 써전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인턴의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처치나 술기를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이다. 외과 계열을 다 돌고 나서 픽스턴을 정한다는 것도 같은 선상의 발상이다.

그를 더 많이, 잘 가르쳐 줄 과를 찾는 것이기에.

"글쎄다."

최기석은 이영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을 계속했다.

"그냥 잘 가르쳐 줄 자신은 없고 엄청나게 잘 가르쳐 줄 자신은 있는데?"

"……선배?"

"내가 알고 있는 것들, 그동안 실력을 키워 온 방법들 다 네게 알려 줄게. 그러면 될까?"

"감사합니다. 저 할게요. 흉부외과 픽스턴!"

이영호가 우렁차게 외쳤다.

"나중에 힘들다고 뛰쳐나가면 알지?"

"걱정 마세요. 그럴 일은 절대 없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띠링!

[이영호와 사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영호와의 라포가 4단계로 상승하였습니다.]

[사제 관계로 맺어진 이영호에게 특수 버프, 성장의 비술이 적용됩니다.]

- 성장의 비술: 플레이어에게 가르침을 받는 경우 성장력이 1.5배 빨라집니다. 사제 관계가 사라지면 버프가 사라지며 버프 지속시간은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입니다.

[숨겨진 임무, 첫 번째 제자를 완수하셨습니다. 1,000 P.

P와 강화석 30개를 지급합니다.]

최기석은 상태창을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자신도 배움이 모자란데 제자가 생기다니…….

다만 이영호에게 버프가 걸렸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이영호가 이 버프를 받은 채 흉부외과에서 픽스턴을 한다면 실력은 수직 상승하리라. 지금의 자신처럼 동기들이 하지 못하는 처치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선배. 그럼 저 언제부터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급하기도 하셔라. 일단 흉부외과에 와야지. 이번 달이 한 일주일 남았나?"

"정확히 5일입니다."

"시간 빨리 가네. 100일 당직도 벌써 절반을 넘겼고."

최기석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요즘 시간이 남아서 그러는데 좀 일찍 가르쳐 주시면 안 되나요?"

"안 돼."

"너무 단호하신 거 아니에요?"

"다 이유가 있다. 원래 사람은 너무 의욕적으로 일에 덤벼들면 금세 지쳐. 그런 걸 번 아웃 증후군이라고 하지. 오래 일하고 싶으면 네 몸을 태우지 마."

"근데 선배는 어떻게 버텨요?"

이영호가 눈을 깜빡거리며 되물었다.

"선배는 매일 논문도 읽고 집도 연습도 하고 환자도 보고 스크럽도 서시잖아요. 제가 봤을 때 선배야말로 번 아웃 증후군에 가장 가까운 것 같은데……."

"난 보통 사람하고 달라."

"혹시 외계인? 초능력자?"

"그럴지도?"

최기석은 이영호와 농담을 주고받다가 대화를 당직실로 돌아왔다.

이영호와 사제 관계를 맺은 것, 그가 흉부외과 픽스턴을 결정했다는 것은 큰 수확이다.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자신만의 사람이 처음 생겼기에.

나중에는 이런 사람들을 모아서 장혁필처럼 팀을 꾸리고 싶었다.

최기석은 쌈지와 곰 인형을 꺼내서 봉합에 들어갔다.

이 수련을 통해서 얻는 스킬이 고속집도라는 점.

그것은 곧 이 수련이 속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정확도보다는 속도에 치중하는 중이다.

찰칵!

가위 소리가 경쾌했다.

[망가진 봉제 인형(50/150)]

새로운 깨달음으로 임무의 3분의 1을 달성했다.

지금의 페이스라면 다음 달 중순까지는 임무를 완수하지 않을까 싶었다.

똑. 똑. 똑.

신들린 손놀림으로 수련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는 말을 하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방해하는 거 아니지?"

"당연하죠."

최기석은 자신의 맞은편에 이동식 의자를 놓았다.

"낮에 세이버 팀 수술하는 거 참관했어. 멋지게 잘 했더라. 축하해."

"제가 한 일은 별로 없는데요. 뭐."

"너무 겸손해하지 마. 너도 정말 잘했으니까."

윤지혜가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공여자 심장이 멈췄을 때를 제외하면 수술 과정이 전체적으로 매끄러웠어. 무엇보다 수술 시간이 엄청 짧았지. 기네스로 올려도 될 것 같은데?"

"칭찬은 감사하지만 그 정도는 아닌 걸요? 송 교수님은 팀을 꾸리지 않은 상태에서 1시간 50분 만에 심장이식을 끝내셨대요."

"진짜?"

"네. 얼마 전 메이죠 병원에서 기록을 세우셨대요."

최기석은 얼마 전 송명진과 통화한 것을 떠올렸다.

스승의 집도 능력은 실로 경이적이다.

스스로 제법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스승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송 교수님이 우리 병원에 계속 계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

"저도 항상 그런 생각해요. 커피 한 잔 드실래요?"

"응."

최기석은 믹스 커피를 타서 윤지혜에게 건넸다.

"제가 윤 교수님 부탁 들어드리면 뭐해 주실 거예요?"

"그럼 내가 맛있는 거 사줄……."

윤지혜는 하던 말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사실 최기석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찾아왔다. 그런데 최기석은 아직 말을 꺼내지 않았음에도 그 점을 알아차렸다.

"내가 부탁할 게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척하면 딱이죠. 부탁하실 일은 폐암 심포지엄 논문 건이죠?"

"……맞아."

윤지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해외에 발표할 논문이 있는데 그 논문 마감이 다음 달이거든. 거기에 이번 심포지엄이 겹쳐서 힘들어졌어. 미안. 너도 세이버 팀 일로 바쁠 텐데. 하지만 너 말고는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윤지혜가 변명하듯 길게 말했다.

"네가 꼭 해야 된다는 건 아니야. 너무 바쁘면 거절해도 돼."

띠링!

[일반 임무, '논문 자료 수집'이 생성되었습니다. 임무에 성공할 경우 보상이 주어집니다.]

알림이 머리를 스쳤다.

"자료 조사, 제가 할 게요. 그 정도는 여유는 있어요."

"정말?"

"네. 이번 주까지 조사해서 넘겨 드리면 될까요?"

"응. 고마워!"

윤지혜가 최기석의 손을 붙잡고 몸을 들썩거렸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듯한 그녀의 기세에 최기석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교수들은 레지던트에게 강압적으로 자료 조사를 명령하지 않는가.

그와는 정반대되는 윤지혜의 태도는 신선했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논문의 성격과 필요한 자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후아……."

윤지혜가 떠난 후 최기석은 당직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대화를 나누고 나서 온몸이 나른해졌다.

잠깐 찾아온 여유시간, 그는 용의 눈을 사용해 저장해 놓은 수술동영상을 살폈다.

인턴 때부터 지금까지 촬영한 동영상의 수는 50여 개.

중복되는 수술의 경우, 집도의의 실력이 뛰어난 동영상을 남겼다.

'직접 할 수 있는 건 열 개쯤 되려나?'

최기석은 동영상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집도의가 될 언젠가를 손꼽아 기대하면서.

* * *

다음 날 아침.

최기석은 노트북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송명진이 보내 준 논문은 이미 읽었다. 하지만 어제 윤지혜에게 받은 부탁이 있어서 따로 자료를 조사 중이다.

윤지혜의 발표 주제는 로봇을 이용한 폐암 수술.

최기석은 송명진에게 받은 논문 중 로봇 수술에 관련된 것을 따로 추린 후 필요한 자료를 모았다.

"흐음……."

작업하던 중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심장 수술이나 폐 수술에 대한 자료는 많았지만 로봇 수술에 대한 자료는 적었다.

송명진이 로봇 수술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송명진이 보내는 자료인 만큼 그의 성향이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최기석은 1차 작업을 마치고 파일을 훑었다.

정보의 질은 훌륭했으며 가독성 또한 좋았다.

[논문이 가장 쉬웠어요]

- 꾸준하게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눈을 뜨는 순간이 있죠. 그 때부터는 모든 게 쉬워져요.

- 논문 이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 논문의 주장과 근거를 파악하며 논리상의 맹점을 쉽게 파악합니다.

칭호를 얻은 후 논문을 읽고 정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으니까. 다만 윤지혜가 처음으로 부탁한 만큼 자료 조사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싶었다.

최기석은 해외 논문 사이트를 몇 군데 점찍어 놓고 당직실을 나왔다. 아지트에서 집도 연습을 하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선배. 안녕하세요."

복도에서 마주친 민주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냐. 기왕 본 김에 커피나 한잔 때리자."

"좋죠."

두 사람은 휴게실에 자리를 잡았다.

"네가 전에 부탁한 거 있잖아."

민주혁이 캔 커피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지훈 선배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안 그래도 어제 오프 때 술 한잔 걸치면서 이야기해 봤는데……."

"복귀할 의향 있으시대요?"

최기석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서지훈이 흉부외과에 들어온다고 하면 계획은 완성이다.

오늘 당장에라도 한민우에게 짜릿한 한 방을 날릴 수 있다.

"네 생각은 어떨 것 같아?"

민주혁이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온다고 하셨겠죠. 민 선배가 설득하는데 안 넘어갈 사람이 있나요?"

"정답!"

민주혁이 웃으며 총 쏘는 시늉을 했다.

"이제 지훈 선배 복귀는 기정사실이네. 특별 전형은 네가 이미 장 교수님에게 미리 말해 뒀을 거고 말이야."

"다 아시네요."

"뻔하지 뭐."

민주혁이 어깨를 으쓱거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나저나 무슨 속셈인지는 끝까지 말 안할 거냐?"

"오늘 오후에 결판날 것 같아요. 다 끝나면 선배한테 가장 먼저 말씀드릴게요."

"오케이."

민주혁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이 회의실로 향했다.

이어진 오전 회의와 회진은 무사히 끝났고 최기석은 곧바로 수술 스크럽에 들어갔다.

스크럽을 마치자 오전 11시가 되었다.

"이 선생님. 잠깐 저 좀 보실래요?"

최기석은 스테이션에 있는 이예림을 외진 곳으로 불러냈다.

"동영상은 다 챙기셨어요?"

"네."

이예림이 휴대폰을 내밀었고 최기석은 휴대폰을 받아서 CCTV 동영상을 살폈다. 동영상에는 한민우가 이예림에게 노골적으로 스킨십 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 정도면 됐어요. 저랑 같이 과장실로 가죠."

"저…… 너무 무서워요."

이예림이 몸을 움츠렸다.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선생님. 이건 부조리한 거예요. 정작 성희롱을 한 치프는 뻔뻔하게 생활하면서 이 선생님은 계속 고통 받고 계시잖아요. 이 지옥 같은 사슬, 이제 끊어야 해요."

"……."

"이 선생님에게는 절대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테니까 저만 믿으시고요."

"……네."

"그럼 가죠."

최기석은 이예림과 과장실을 찾았다. 하지만 이예림이 워낙 불안해했기에 그녀를 두고 혼자 조지환을 보기로 했다.

똑. 똑. 똑.

"들어와요."

기분 탓일까, 조지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최기석은 이예림의 파이팅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전쟁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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