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18화 (117/407)

팀 세이버, 그 두 번째 (2)

흉부외과 과장실.

조지환과 장혁필이 가죽 소파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오늘 수술 잘 봤어요. 특히 속도가 예술이던데요?"

조지환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미소를 지었다.

"별말씀을요. 더 잘하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겸손해 할 필요 없어요. 더 겸손했다가는 참관온 부병원장이 심장마비로 쓰러졌을지 모르니까."

조지환의 농담에 장혁필은 웃는 척했다.

수술 전까지만 해도 심장이 도착하지 않는다고 닦달하며, 외부 인사가 참관하니 수술을 잘하라고 엄포를 놓았던 조지환이다.

이제 와서 태도를 바꾸는 게 가소로울 따름이다.

"창진대 부병원장이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돌아갔어요. 조만간 그쪽 병원장과 상의해서 우리와 협력 관계를 맺겠다고 했고요."

"잘 됐습니다. 중국 쪽 VIP 환자들이 우리 병원에 넘어올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세이버나 노우드 수술 케이스가 올 지도 모르죠."

조지환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하여간 내가 장 교수를 제대로 데려온 모양이에요. 장 교수가 온 후로 일이 잘 풀리고 있어요."

"저는 그저 과장님이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허허. 겸손하기는……."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장혁필이 입을 열었다.

"과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봐요."

"사실 하트 박스 이외에도 몇 가지 더 구입하고 싶은 기계들이 있습니다. 모두 흉부외과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들입니다. 과장님이 힘써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흐음……."

조지환이 턱을 쓸어내렸다.

"일단 리스트 적어서 메일로 보내 봐요. 확인해 보고 괜찮은 것들이면 구입합시다. 단, 창진대병원과 협력병원 체결이 끝난 후에요."

"알겠습니다."

장혁필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여우는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는 게 없다. 어떤 계획이든 자신의 손익을 따져서 결정하니까 말이다.

"심장 클리닉 리모델링 후가 중요하겠지만……."

"……."

"내가 권 교수보다 장 교수 쪽에 마음이 더 있다는 건 알아 둬요."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장혁필은 조지환과 대화를 나누다가 과장실을 나왔다.

오늘도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눴다.

개인적인 호출을 했으면 속내를 조금이라도 보여 주거나, 유용한 정보를 나누는 게 맞지 않는가. 그런데 조지환은 영혼 없는 칭찬과 뻔한 진행사항을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과장과 독대한다는 사실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하겠지만 장혁필은 달랐다.

상대의 의도를 읽을 줄 알았기에.

장혁필은 과장실을 나와 회의실을 찾았다.

드르르륵.

안으로 들어가자 세이버 팀원들이 피자를 먹고 있었다.

수술 시간이 점심에 걸쳐서 다들 식사를 하지 못했다.

"교수님. 오셨습니까? 식사 안 하셨죠?"

"피자 한 조각 드릴까요?"

김태식과 최기석이 나섰지만 장혁필은 손을 휘휘 저으며 자리에 앉았다.

"최 선생님. 피자 한 조각이요?"

인공심폐기사 유병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네. 무슨 문제라도?"

"한 조각…… 한조…… 각?"

"유 기사님은 유독 한 조각이라는 말에 민감하시네요. 저번에 회식할 때도 그러더니. 사실 우리는 모두 세이버 팀에 한 조라는 거 아세요?"

"아…… 모두가 한 조라니!"

유병세가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다가 후다닥 회의실 바깥으로 나갔다.

"유 기사님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아니. 많이 이상해 보이는데?"

최기석의 질문에 김태식이 맞장구를 쳤다.

"사람마다 예민한 게 있는 법이다. 너무 그러지 마."

장혁필이 콜라를 마셨다.

유병세는 괴짜지만 인공심폐기를 다루는 실력은 괴물이다. 과거 의료기기 업체에서 일했는데 웬만한 기계들은 직접 수리할 수 있었다.

인공심폐기사이자 일종의 엔지니어라고 할까.

"잠깐 주목합시다."

장혁필의 말의 스태프들의 시선이 쏠렸다.

장혁필은 조지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스태프에게 들려주었다. 과장이 수술을 칭찬했으며 세이버 팀으로 인해 창진대병원과 의진대 흉부외과가 협력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와. 대박이네요."

"우리가 한 건 했다."

기뻐하는 팀원들을 보니 장혁필의 기분도 좋아졌다.

"다들 오늘 수술하느라 고생 많았고. 이 기세를 몰아서 세이버 수술도 깔끔하게 끝내 봅시다."

"네!"

스태프들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이 멤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장혁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치 감각은 없지만 실력만큼은 최상인 김태식.

마취의 대가 신아름과 인공심폐기 가동과 수리마저 가능한 전천후 유병세.

흉부외과 최고의 소독간호사 강하나.

마지막으로 매 위기 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피지컬을 뽐내는 최기석까지.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자신이 대견스러울 정도다.

"다들 편히 쉬다가 해산해요. 나는 먼저 일어납니다."

장혁필이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아, 맞다."

김태식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쳤다.

"심장 이송, 왜 이렇게 늦었어?"

최기석은 약속시간보다 늦게 심장을 배달했으면서 심지어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그때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쳤거든요. 때마침 휴대폰 배터리가 나간 데다가 역에서 응급환자를 마주쳤어요."

"응급환자?"

"강도의 칼에 찔린 회사원이 있었어요. 응급처치를 하다 보니 조금 늦었습니다."

최기석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했다. 하필이면 응급 이송과 환자 처치가 겹쳤기에.

당시 고민하던 최기석은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지혈하고 환자를 엎은 채 병원까지 뛰었다. 한마디로 환자와 심장을 함께 날랐던 것이다.

다행히 둘 다 이상은 없었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세이버 팀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최기석은 회의실에 남아서 상태창을 열었다.

심장이송 임무와 첫 팀 수술 임무가 끝나면서 많은 보상이 들어왔다.

우선 1000 P.

P와 강화석 20개를 얻었다.

그뿐 아니라 신아름, 유병세와 1단계 라포가 형성했으며 레전드 아이템 포인트 스톤을 얻었다.

'이건…….'

처음 얻은 아이템, 포인트 스톤. 이를 확인하는 최기석의 눈이 커졌다. 포인트 스톤을 사용하면 스탯의 최대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다.

현재 모든 스탯의 능력치는 10이 고정이다.

하지만 포인트 스톤을 사용하면 이것을 11로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최기석은 생각했다.

만약 포인트 스톤으로 스탯의 최대치를 늘리고 최대치까지 스탯을 올릴 수 있다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게 아닐까 하고.

지금까지 만난 의사들은 전부 스탯이 10이지 않았던가.

최기석은 고민하다가 포인트 스톤을 사용했다.

휘이이이잉.

눈부신 빛이 상태창을 휘감았다.

[레전드 아이템 포인트 스톤을 사용합니다. 아이템 효과로 외과적 처치 레벨이 한계를 넘습니다.]

[외과적 처치의 최대레벨이 11로 올랐습니다.]

* * *

그날 저녁.

일과를 마친 최기석이 중환자실을 찾았다.

가장 먼저 살핀 환자는 김세찬이다. 김세찬은 환자 감시 장치를 주렁주렁 단 채 격리실에 누워 있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필 결과 상태는 불량.

수술은 잘 끝났지만 심장이식의 경우 수술 이상으로 수술 후 관리가 중요하다.

현재로써는 면역 거부 반응이나 면역억제제로 인한 부작용이 없기를 바라는 수밖에.

중환자실 환자들을 살핀 후 호흡기내과 병동에 들러 최미순을 살폈다. 페인킬러 스킬 덕에 최미순은 항암 치료를 잘 이겨 나가고 있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동기이자 주치의에 말에 따르면 치료 과정도 순탄한다고 했다.

최기석은 다시 흉부외과 병동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복도를 걷던 중 한 병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에 강상중이 있었다. 강상중은 한창 비위관 삽관에 열중하는 중이다.

최기석은 조용히 강상중의 처치를 지켜봤다.

흉관 드레싱을 했던 때처럼 처치가 허접하면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다.

"환자분. 처치 시작하겠습니다."

강상중은 환자가 침상에 앉도록 만들고 고개를 숙이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커다란 천으로 환자의 몸을 덮은 후 턱밑에 곡반을 댔다.

"숨 크게 들이마시세요."

강상중이 젤을 바른 튜브를 환자의 콧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어서 나머지 처치를 하고 청진기로 심와부에 포말음을 확인했다.

'정신 차렸나?'

최기석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과정만 보면 흠잡을 때가 없었다.

"어? 서…… 선생님?"

처치를 마친 강상중이 밖으로 나오다가 최기석을 발견했다. 그리고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몸을 들썩거렸다.

"보…… 보고 계셨어요?"

"잠깐 빌린다."

최기석은 강상중의 청진기를 챙겨서 환자의 동의를 구하고 가슴에 댔다.

특별한 잡음은 들리지 않았다.

역시 강상중의 처치는 문제가 없었다.

최기석은 강상중을 휴게실로 불러내 비위관 삽관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강상중은 더듬거리면서도 제대로 된 답변을 했다.

뒤늦게라도 말을 들으며 성장하는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칭찬을 해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공포감을 줘야 정신 차리고 공부하는 타입이 있는데 아무래도 강상중은 후자였던 모양이다.

"잘했어. 남은 며칠도 지금처럼만 하자."

"가, 감사합니다."

강상중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휴게실을 떠났다.

'생각보다 훨씬 쓸모 있네.

최기석은 상태창을 띄우고 카리스마 스탯을 응시했다.

카리스마 스탯이 생긴 후 조금 더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예전의 그라면 이런 식으로 후배를 갈구고 교육시키는 일은 못 했으리라.

지이이잉.

가운에 넣어 둔 콜폰이 떨었다.

모처럼의 응급실 콜, 이영호에게 간단한 환자 상태를 듣고 응급실로 내려갔다.

"이 환자분이야?"

"네."

최기석은 이정혜 환자와 마주 앉았다.

이정혜의 나이는 42세로 흉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하고 있었다.

"선생님. 제가 갑자기 왜 이러죠? 너무 초조하고 불안해요."

이정혜가 다리를 떨었다.

"너무 염려 마시고 지금부터 진찰해 보겠습니다."

최기석은 흉부 엑스레이와 피 검사 등의 결과를 확인하고 청진기로 이정혜의 심음과 호흡음을 살폈다.

"심전도는 안 찍었어?"

"아…… 죄송합니다."

"지금 찍어 봐."

이영호가 portable EKG로 이정혜를 촬영했고 최기석은 곧 나온 심전도 결과를 살폈다.

'이상하네.'

최기석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모든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수단으로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체력: 6/10

주 증상: 불안 / 초초

아픈 부위: 없음

진단명: 없음

현재 상태: 비응급

경과: 보통

과거력: 건강 염려증

과거력을 확인한 순간 감이 왔다.

건강 염려증.

본인의 증상을 과도하게 해석하여 두려움을 가진 상태를 일컫는다.

최기석은 EMR을 통해 이정혜가 최근 응급실을 자주 들락날락거렸다는 것까지 파악했다.

"선생님. 왜 말씀이 없으세요?"

이정혜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혹시 제가 대동맥 박리나 심근경색 같은 걸 앓고 있는 건 아니죠?"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이상이 없다고요? 숨쉬기도 불편하고 가슴도 묵직하게 내려앉은 것 같은데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체중이 불어나면 일시적으로 말씀하신 증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검사 결과 심각한 질병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래도 너무 불안한데…… CT 한 번 찍어 볼 수 없을까요?"

"환자분."

최기석은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본인의 몸에 너무 무딘 것도 좋지 않지만 너무 예민한 것도 좋지 않습니다. 지금도 아픈 게 걱정돼서 잠도 못 자고 병원에 오셨잖아요."

"……네."

"검사 결과 아무 이상 없고 건강하십니다. 마음 편하게 먹고 집에 돌아가셔도 좋아요. 그리고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될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까 꼭 드세요. 한결 나을 겁니다."

최기석은 이정혜를 잘 타일러 보냈다. 그리고 이영호와 응급실 밖으로 나가서 커피를 마셨다.

"선배. 저 환자, 무슨 환자에요?"

"건강 염려증."

"아……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어. 검사 결과도 다 정상이고."

이영호가 머리를 박박 긁다가 최기석을 응시했다.

"근데 건강 염려증 환자한테 따로 처방할 약이 있나요?"

"있어."

"진짜요? 그게 뭔데요?"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비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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