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17화 (116/407)

팀 세이버, 그 두 번째 (1)

"기석이에게 연락 왔습니다. 30분 안에 도착할 것 같다고 합니다."

"용케 잘 왔네."

장혁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교통사고가 났다는 대로에 관한 기사를 살피는 중이다.

통제는 여전히 진행 중.

최기석이 손 놓고 대기했다면 이송에 차질이 생겼을 수 있었다.

물론 차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도록 두지도 않았겠지만, 말하지 않아도 척척 일을 하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로젯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브리핑합시다."

장혁필은 회의실에 모인 스태프들에게 수술과정을 설명했다.

이윽고 세이버 팀 인원들이 수술실을 찾은 후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시간이 초조하게 흘렀다.

다들 아닌 척하면서 시계를 훔쳐보기 바빴다.

"30분 지났는데."

김태식은 얼굴을 찌푸리며 최기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

최기석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게 아니라 전원이 아예 꺼져 버렸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교수님. 기석이가 전화를 안 받는데 어떻게 하죠?"

"기다려야지. 심장 없이 심장이식을 할 순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수술실로 전화가 왔다.

"내가 받을 게. 과장님 전화일 거야."

장혁필이 직접 전화를 받았다.

[장 교수, 수술 안 합니까?]

조지환의 목소리에서 불편한 심기가 느껴졌다.

현재 조지환은 노우드 팀을 비롯한 몇몇 스태프들과 참관실에서 대기 중이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송에 약간의 차질이 생겼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스태프만 참관하면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중국 대학병원 스태프가 참관왔는데 꼴사나운 모습 보일 겁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과장님과 해외 스태프를 기다리게 한 부분은 꼭 좋은 수술로 보답하겠습니다."

[최 선생한테 연락해서 빨리 오라고 해요!]

조지환이 제 할 말만 하고 통화를 끊었다.

"괜히 외국 스태프 끌어들여서 피곤하게 만드네."

장혁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벌컥!

"죄송합니다."

최기석이 헐레벌떡 수술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운에 피가 묻어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 다쳤어?"

"하아…… 아니요. 하아…… 역에서 자상 환자를 처치하느라……."

김태식의 질문에 최기석이 헉헉거리며 대답했다.

"다친 게 아니라 다행이다. 뒷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다들 준비!"

"네!"

장혁필의 말에 스태프들이 씩씩하게 답했다.

박. 박. 박. 박.

최기석은 스크럽을 하고 환자와 로젯으로 들어갔다.

스태프들이 일사분란하게 자리를 잡았다.

마취의 신아름은 커튼 뒤에서 마취약물을 준비했고, 인공심폐기사 유병세는 인공심폐기 세팅에 나섰다.

강하나는 수술 도구를 촤르륵 펼쳐놓으며 최적의 어시를 준비했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최기석과 김태식 뒤에도 수술 도구를 세팅해 주었다.

그 사이 써전들은 각자의 위치에 자리 잡고 환자에게 감시 장치를 달았다.

그 움직임은 마치 공연을 준비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처럼 정갈하고 질서정연했다.

"심장 상태부터 확인한다."

"네."

최기석은 아이스박스를 선반 위에 두고 뚜껑을 열었다.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과…… 과장님."

"왜?"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

최기석의 말에 로젯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본래 적출한 공여자의 심장은 이식 전까지 박동해야 한다.

박동하지 않는 심장이란 죽은 심장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다.

"빌어먹을. 진짜네."

가장 먼저 달려온 김태식이 심장 마사지를 펼쳤다. 그의 손길에 심장이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마사지를 멈추면 심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수술…… 망했죠?"

"멈춘 심장을 이식할 수도 없고."

유병세와 강하나가 서로를 응시하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공여자 심장이 멈췄다고?"

장혁필이 제일 나중에 합류했다.

모두가 근심에 빠져 있었지만 오로지 그만이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는 심장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혈관을 보면 박동이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충분히 살릴 수 있어."

"……."

"공여자의 심장이 멈췄을 때 되살릴 수 있는 방법, 아나?"

장혁필이 김태식과 최기석, 인턴을 차례대로 응시했다.

"알고는 있지만 지금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아는 것만 말해 봐."

"외국에서는 하트 박스를 쓴다고 들었습니다."

최기석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트 박스란 심장에 혈액과 영양소를 공급해 주는 장치다. 이를 이용하면 심장의 떨어진 기능을 상당 부분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트 박스를 구비한 흉부외과는 많지 않았다.

공여자의 심장이 멈추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그래서 하트 박스 구입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탓이다.

"정답이다. 기석이 넌 빨리 CSS(중앙공급실) 다녀와. 저번 주에 하트 박스 들어왔으니까. 하트 박스 전용 블러드 팩도 같이."

"혹시 교수님이 신청을……."

"그래. 이런 일이 생길지 몰라서 미리 신청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최기석이 쌩하니 수술실을 떠났고 그사이 장혁필과 김태식이 심장 살리기에 나섰다.

김태식이 심장 마사지를 했으며 중간에 장혁필이 전기패들로 심장에 자극을 주었다.

꿈틀꿈틀.

심장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져왔습니다."

최기석은 하트 박스를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하트 박스는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 있으며 요람을 줄여 놓은 듯한 모양이다.

""잘했어."

장혁필은 하트 박스 전용 블러드 팩을 기계에 연결하고 심장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하트 박스 안에 넣었다.

그리고 심장혈관에 튜브를 연결하고 박스 뚜껑을 닫았다.

위이이이잉.

기계음이 들리고 특수 혈액이 심장으로 흘러들었다.

"중국에서도 이런 케이스가 있습니까?"

조지환은 옆에 앉은 중국 대학병원 부병원장에게 물었다.

"아니요. 논문으로는 봤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건 처음입니다."

통역사가 부병원장의 말을 번역해 주었다.

"저 하트 박스라는 기계, 정말 놀랍군요.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박동이 건강해졌어요."

"그렇습니다. 있으면 언제고 쓸 수 있는 유용한 기계죠."

조지환은 마치 오래 전부터 하트 박스를 쓰고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사실 그는 장혁필이 하트 박스 구입을 추진했을 때 크게 반대했다.

비싸기만 하고 쓸 일이 없는 기계를 왜 구입하냐고 말이다.

세이버 팀을 들먹이면서 강경하게 나가길래 한 수 접어 줬는데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몰랐다.

'하늘이 돕는군.'

조지환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중국의 심장이식 기술은 아직 한국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옆에 있는 과장도 그 때문에 특별히 참관에 나섰고.

수술만 잘 끝난다면 창진 대학병원과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듯싶었다. 그렇게만 되면 중국의 VIP 환자를 유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제 수술을 시작하는 모양이군요."

창진대 부병원장이 눈을 빛내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공여자의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최기석의 외침에 장혁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 이식 수술 시작합시다."

"네!"

스태프가 일제히 대답했다.

가장 먼저 신아름이 환자를 전신마취시켰다. 이후 최기석이 환자의 가슴을 넓게 소독하고 방포를 씌웠다.

"메스."

장혁필이 강하나에게 메스를 받아서 환자의 가슴을 갈랐다.

지이이이잉.

전기톱을 사용하자 흉골이 반으로 갈라졌다.

최기석은 인턴과 견인기를 양쪽으로 당기면서 수술 부위를 응시했다.

[용의 눈 스킬을 사용합니다. 최적의 수술 시야를 제공하며 줌인 모드와 줌 아웃 모드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동영상 모드 작동, 촬영에 들어갑니다.]

[살려야 한다 스킬을 사용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얼어붙은 심장의 혹한 효과와 용맹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양손잡이 스킬, 능수능란 효과가 발휘 중입니다.]

띠링!

[특수 팀 버프, 하나된 마음을 획득하셨습니다.]

[하나 된 마음: 팀원의 처치속도가 2배 증가하며 처치 정확도가 1.5배 상승합니다.]

스킬을 사용하자 알림이 쉴 새 없이 머리를 스쳤다.

그중에는 특수 버프가 생겼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이번 수술, 반드시 성공한다.'

최기석은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드르르륵.

정맥과 동맥에 캐뉼라를 연결하자 인공심폐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심장이식 수술의 막이 올랐다.

딸칵!

김태식이 혈관겸자로 대동맥과 상대정맥, 하대정맥을 묶어 심장으로 피가 흐르지 않도록 만들었다.

"메스."

장혁필은 강하나에게 메스를 받고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원했던 18번 메스를 주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집도의가 원하는 수술 도구를 챙겨 준다는 것.

이것은 크나큰 힘이 된다.

스으으으윽.

장혁필은 심장 위로 뻗은 상대정맥을 잘라냈다.

심장이식을 위해서는 우선 환자의 심장을 완전히 적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핵심적인 혈관을 잘라야 하는데, 그 순서는 상대정맥, 대동맥, 폐동맥, 하대정맥 순서다.

상대정맥이 잘려 나가자 피가 흘렀고, 김태식이 석션기로 그 피를 빨아들였다.

수술 시작 후 로젯의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스태프 간의 대화는 거의 없었으며 비릿한 피 냄새와 수술 도구 움직이는 소리만이 고요함을 깨트렸다.

덜컹!

주요 혈관이 잘려 나가고 환자의 심장이 곡반 위로 떨어졌다.

혈액을 제대로 뿜어내지 못했던 고장 난 심장이.

이윽고 장혁필이 말없이 최기석을 응시했다. 하지만 최기석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하트 박스에 있는 공여자의 심장을 꺼내왔다.

"지금부터 봉합에 들어간다."

"제가 돕겠습니다."

장혁필의 말에 최기석이 나섰다.

그는 한 손으로는 견인기를 당기면서 다른 손으로는 심장을 들어 혈관과 자리를 맞췄다.

절묘한 위치 선정.

퍼즐 조각이 들어맞는 듯했다.

놀라운 것은 한 손으로 심장과 혈관의 위치를 맞추고 있음에도 전혀 떨림이 없다는 점이다.

"이걸로 지각은 용서하겠어."

장혁필의 눈이 반달 모양을 그렸다.

"교수님. 이런 상황이라면……."

"그래. 같이 봉합해도 되겠다."

본래 제1보조가 심장을 고정시켜 주면 집도의가 봉합을 하게 된다. 그런데 최기석이 나서서 제1보조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즉 제1보조에게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

"석션은 저한테 맡기세요."

강하나가 한마디 거들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태식아. 가자."

"네!"

장혁필과 김태식이 동시에 움직였다.

장혁필은 환자의 좌심방과 공여자의 좌심방을 봉합했고 김태식이 폐동맥 봉합에 나섰다. 이어서 하대동맥, 대동맥, 상대정맥이 차례대로 공여자의 심장과 연결되었다.

"저 정도쯤이야……."

권일수는 모니터를 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심장이식 수술의 난이도는 다른 이식 수술에 비해 낮은 편이다. 혹 소아 심장이식이면 모를까, 지금 세이버 팀이 진행 중인 이식 수술은 그가 어제 했던 수술보다 난이도가 낮았다.

"제가 보기에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게?"

곁에 앉은 민주혁의 말이 심기를 건드렸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수술 속도가 엄청납니다. 이런 페이스라면……."

민주혁이 뒷말을 흐렸고 권일수는 그제야 시계를 응시했다.

보통 심장이식 수술은 4시간에서 6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세이버 팀은 2시간 만에 수술을 끝내 가고 있었다.

실로 경이로운 속도.

난이도만 고집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저기서부터 시작인 건가?'

권일수는 입술을 깨물며 최기석을 응시했다.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심장을 붙잡고 있는 최기석의 손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심장과 혈관의 봉합이 무사히 끝났다.

딸칵!

장혁필이 혈관겸자를 풀자 혈관이 꿈틀거리며 피가 심장으로 통했다.

"교수님. 혈류는 개통됐는데 박동이 없습니다."

"패들."

장혁필은 주걱같이 생긴 패들을 들고 심장을 자극했다. 그러자 심장이 미약하게 꿈틀거리다가 곧 건강하게 뛰었다.

"바이탈 이상 없습니다."

마취의 신아름의 목소리가 경쾌했다.

이윽고 스태프들이 봉합 부위를 닫았으며 인공심폐기는 작동을 멈췄다.

수술은 대성공이다.

짝. 짝. 짝. 짝.

"대단합니다. 최고예요."

창진대 부병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고 스태프들도 같이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조지환의 미소가 짙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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