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16화 (115/407)

팀 세이버 (6)

장혁필의 한마디가 긴 여운을 남겼다.

팀원들은 침묵을 지킨 채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김 선생. 환자 상태는 어때요?"

"호흡곤란, 기침 등 심부전증에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최근 피로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장이식을 받기에는 충분합니다."

김태식이 똑 부러지게 말했다.

심장이식 대기자의 경우 심부전증 이외에 다른 질병이 있으면 미리 치료를 해야 한다.

다행히 그런 케이스는 아니다.

"검사 결과는요?"

"혈액검사, 조직검사 결과 이상 없습니다."

"공여자 측 심장도 문제없다고 하니까 말 그대로 수술만 남았네요."

장혁필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향했다.

"최 선생."

"네. 교수님."

"공여자는 지금 진성대 병원에 뇌사 상태로 있어요. 듣기로는 내일 정오쯤에 심장을 적출한다고 하니까 후송은 최 선생에게 맡길게요."

띠링!

[긴급 임무, '심장배달'이 생성되었습니다. 임무에 성공할 경우 특별한 보상을 지급합니다.]

"알겠습니다."

최기석의 씩씩한 대답에 장혁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모인 김에 다 같이 이야기나 해 봅시다."

장혁필은 팀원들과 함께 심장이식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심장이식 수술의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어떠한 변수가 있을 수 있는지, 각자의 역할은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등등.

팀원 전부가 심장이식 경험이 있지만 꼼꼼하고 차분한 토론이 이어졌다.

세이버 팀의 첫 수술.

그것이 주는 무게감은 남달랐다.

대화는 한 시간이 지나서야 끝났고 최기석은 장혁필에게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교수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탁이라…… 평소의 너답지 않은데? 어디 말해 봐."

장혁필이 최기석을 위아래로 훑었다.

"우리 병원에는 다른 병원에 없는 특별 전형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레지던트 모집 기간이 지나도 레지던트에 지원해서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요."

"그래서?"

"흉부외과 레지 1년 차로 있다가 군의관으로 갔던 사람이 곧 제대합니다. 혹시 그 사람을 우리 흉부외과로 받아 주실 수 있을까요?"

"이유는?"

"우리 흉부외과는 스태프가 워낙 부족하지 않습니까? 다른 병원처럼 P.

A(의사전문보조인력)를 쓰는 것도 아니고요. 한 명이라도 더 충원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얼씨구. 벌써 우리 흉부외과 미래까지 걱정하고 있었어?"

장혁필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네 의도가 정말 그런 거라면 왜 진작 말하지 않았지?"

"……."

"딴 속셈 있는 거 다 안다."

장혁필이 정곡을 찔렀고 최기석은 고민하다가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맞습니다. 과장님 말씀대로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지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혹시 네 계획, 세이버 팀에 영향을 미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단 부딪쳐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최기석의 대답에 장혁필이 배를 붙잡고 웃었다.

"이러다 의사 관두고 정치하겠네. 알았다. 일단 네가 사람을 데려오면 특별 전형으로 붙여 주겠어. 단, 조건이 있다."

"조건이라면……."

"네 행동이 세이버 팀의 악영향을 끼친다면 이 일은 없었던 거다. 알았어?"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가 봐."

최기석은 장혁필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회의실을 나왔다.

할 일의 난이도가 다소 올라갔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으니까.

복도를 걷다가 심장이식 대기자의 보호자 양서희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드디어 공여자가 나타났네요. 그동안 우리 세찬이가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아휴……."

"이제 두 분 다 꽃길만 걸으셔야죠. 저희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 수술하겠습니다."

"암요. 믿습니다."

양서희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보험이요, 그 C.

I 보험 가입되어 있더라고요."

"다행입니다. 경제적인 부담은 덜하시겠네요."

"정말 감사드려요. 수술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그런데 이 보험은 특이하게 보험금을 선지급해 주네요?"

"질병이 워낙 중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최기석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이미 김 선생님에게 들어 아시겠지만 수술은 내일 정오쯤 들어갑니다. 환자분, 금식 꼭 부탁드립니다."

"네. 염려 마세요."

최기석은 양서희와 대화를 나누고 수술실로 향했다.

윤지혜의 OPCAB(무펌프 관상동맥 우회술) 수술 보조가 있었다.

'코앞이구나'

최기석은 심장이식 수술을 생각하며 스크럽을 시작했다.

* * *

다음 날.

수술 보조가 끝나고 막간의 여유가 찾아왔다.

최기석은 회의실에 앉아서 봉제인형을 꺼내들었다.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고 봉합 연습에 들어갔다.

인형으로 연습하는 일은 이제 숨 쉬는 것처럼 자유로웠다.

머릿속으로 딴생각을 해도 손이 알아서 움직이는 수준이다.

[망가진 봉제인형 (30/150)]

'아직인가?'

상태창을 확인하고 쓴 웃음을 지었다.

잠과 시간을 쪼개 가며 연습 중이만 목표는 멀기만 했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김태식이 안으로 들어왔다.

"진성대에서 연락 왔다. 지금 뇌사자 수술실에 들어갔대."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인형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쿵. 쿵. 쿵.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하며 고동을 잠재우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응급상황이 아니라서 얼어붙은 심장 효과가 발휘되지 않는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응급실에 전화해서 앰뷸런스 대기시켜 놨거든. 몸만 가면 돼."

"네."

"같이 내려가자."

최기석은 김태식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응급실로 내려갔다.

"별일 없을 거야. 긴장하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바로 전화해."

김태식의 당부를 들으며 앰뷸런스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

"어? 안녕하세요. 선생님."

운전석에 앉은 심준하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심준하는 그의 인턴 시절 후송을 함께했던 응급구조사다.

후송 중 강은하의 교통사고가 있었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못 본 사이에 멋있어지셨네요. 확실히 인턴하고 레지던트는 느낌이 다른데요?"

"그런가요?"

최기석이 피식 웃었다.

"그럼 출발합니다."

앰뷸런스가 도로로 진입했다.

최기석은 창을 반쯤 열어놓고 바깥을 응시했다.

100일 당직 중 이렇게 멀리 병원을 벗어난 것은 처음이다.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낯선 경치로 긴장감이 다소 누그러졌다.

"오늘은 별일 없겠죠? 저번처럼 사고가 터지면 곤란하잖아요."

"암요. 그때랑은 완전히 다르죠."

과거 사고가 났을 때는 앰뷸런스가 단순 복귀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심장을 가지고 병원에 복귀해야 한다.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돌이킬 수 없다.

공여자의 심장은 4, 5시간 내에 이식해야 하니까 말이다.

한 시간이 지난 후 앰뷸런스가 진성대 병원에 도착했다.

본래 30분 만에 도착할 거리지만 차가 막혀서 도착이 배로 늦었다.

"아……."

최기석은 앰뷸런스에서 내려 병원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과거 레지던트 3년간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더불어 의진대가 아니라 진성대에서 레지던트를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신 차리자."

두 볼을 두드리고 진성대 응급실로 향했다.

"실례합니다. 의진대 흉부외과 최기석입니다. 공여자의 심장을 받으러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응급실 간호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한 사람이 아이스박스를 들고 응급실로 내려왔다.

"죄송합니다. 방금 막 적출이 끝나서요."

"아닙니다. 저희도 방금 막 왔는데요. 수고하셨습니다."

최기석은 아이스박스를 손에 쥐었다.

박스가 무겁지 않지만 심리적인 부담이 컸다.

이 심장에 환자 김세찬과 그 보호자는 물론이요, 세이버 팀의 미래가 달렸다.

최기석은 앰뷸런스 트렁크를 열어 스트레쳐카 위로 아이스 박스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리고 대기 중인 세이버 팀에 연락하고 조수석에 탔다.

"출발하죠."

"네. 올 때 길이 막혔으니까 돌아갈 때는 다른 도로를 타겠습니다."

심준하가 앰뷸런스를 몰았다.

부우우웅.

번화가를 지난 앰뷸런스가 시원스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대로에 도착하자마자 극심한 정체가 시작되었다.

대로 위에 차들은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늘어섰으며 좀처럼 나아가질 못했다.

"어? 왜 이러지?"

심준하가 당황한 얼굴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아…… 씨발."

"왜 그래요?"

"대로 끝에서 다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대요. 교통통제 중이라고 하는데……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심준하가 고개를 숙였다.

"제가 이쪽으로 오자고 하지만 않았더라도."

"점쟁이도 아니고 사고까지 피해 갈 순 없잖아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죠."

최기석은 차오르는 불안감을 간신히 억눌렀다.

대로 위에서 20분이 지났다.

그동안 엠뷸런스는 단 한 번조차 전진하지 못했다. 사고 수습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기석은 언젠가부터 다리를 떨었다.

"전 먼저 내릴게요."

"내리신다고요?"

"도로 위에서 시간을 다 잡아먹을 순 없어요."

조수석에서 내린 후 곧바로 김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기석아. 거의 다 왔지?]

"그게…… 추돌사고가 있어서 대로 위에 멈춰 있습니다."

[추돌사고?]

"네. 수습이 빨리 안 돼서 저 혼자 아이스박스 들고 빠져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시간에 맞출 수는 있지?]

"네. 가능합니다. 도착하기 30분 전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래. 전화 잊지 말고. 우리도 사전준비 해야 하니까.]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아이스박스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멈춰 선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 인도에 섰다.

[폭군의 강림 스킬을 사용합니다. 일시적으로 근력과 민첩성이 상승합니다.]

스킬을 사용한 채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미친 듯이 달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심장에 손상이 생길지 모른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이 터졌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대로 끝에 다다르자 흉물스럽게 널브러진 자동차와 경찰, 응급요원들이 보였다. 현장 수습이 빨리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최기석은 지나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어 근처 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 몸을 실자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일단 중요한 고비를 하나 넘었다.

'빨리 좀 가자. 빨리.'

시간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꺼내는데 배터리 게이지가 붉은 색을 띄었다.

남은 충전량이 10퍼센트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휴대폰이 구형이라서 예고 없이 꺼져 버리곤 했기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목적지인 의진대 병원 역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최기석은 다시 김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30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하자 김태식이 수술 준비를 하겠다고 답했다.

"이번 역은 의진대병원. 의진대병원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안내멘트가 꿀처럼 달았다.

최기석은 아이스박스를 들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런데 계단으로 지상에 올라가던 중 비명 소리가 들렸다.

"강도야!"

"여기 사람이 다쳤어요!"

"저 새끼 잡아!"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남자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남자는 의식이 없었다.

칼에 베였는지 셔츠가 반으로 갈라졌으며 피가 철철 흘렀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쩔 줄 몰랐으며 피의자로 보이는 모자 쓴 남자는 허겁지겁 자리를 피했다.

'하필 이런 타이밍에…….'

최기석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불안한 시선이 아이스박스와 환자를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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