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세이버 (5)
"출혈이라……."
조지환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소아 환자의 수술 중 출혈은 집도에 큰 타격을 준다.
발 빠른 대처가 아니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환자가 죽을 수 있다.
"역시 이전 병원에서 수술을 엉터리로 한 모양입니다."
"그건 상관없지."
"네?"
"환자가 죽으면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게 문제지."
조지환이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치이이이익.
제2보조가 양손으로 석션하고 제1보조는 출혈 부위를 찾기에 분주했다.
하지만 출혈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초조하게 흐르는 시간.
환자의 맥박과 혈압이 서서히 바닥을 향했다.
'대체 뭐가 문제지?'
권일수는 판막륜 봉합을 멈추고 수술 부위를 바라보았다.
그가 나서야 할 만큼 상황이 악화되었다.
딱. 딱. 딱.
이를 부딪치며 판막륜과 심장을 살폈지만 눈에 띄는 출혈점은 없었다. 그 말인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출혈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블러드 팩 힘껏 짜 봐. 에피네프린 IV로 주고."
권일수의 지시에 제2보조가 처치에 나섰다.
수술실 안팎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권일수가 메스를 잡았다.
"교수님?"
"아무래도 심장을 열어 봐야겠다. 이대로는 답이 없어."
"환자의 부담이 너무 크지 않을까요?"
"부담? 진짜 부담이 큰 게 뭔지 알아?"
권일수의 되물음에 제1보조는 대답을 못하고 멈칫거렸다.
"자…… 잘 모르겠습니다."
"출혈로 환자가 죽는 거다."
스으으으윽.
메스가 거침없이 심장을 갈랐다.
권일수는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절개 부위 근처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그가 심장에서 손을 떼자 수술 장갑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찾았다. 출혈 부위."
권일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길 봐."
권일수가 가리킨 곳은 바로 좌심실과 우심실 사이의 벽이다.
벽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터져 버린 봉합사가 나풀거렸다.
"이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팔로 4징증 수술을 받았지. 그런데 그곳에서 봉합한 자리가 터진 거야."
"수술을 얼마나 대충했길래……."
"소아외과 전문의, 그것도 흉부외과 소아 전문의는 더더욱 희소하지. 아마 성인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이 아이를 수술했을 거야. 메스."
권일수는 어설프게 묶인 매듭을 전부 풀어 버린 후 봉합사를 제거했다.
"5-0 prolene."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인 후 심실중격 봉합에 나섰다.
출혈 부위를 찾아낸 안도감 때문인지 손놀림이 전에 비해 배 이상 빨라졌다.
심실중격 봉합이 끝나자 출혈이 멎고 환자의 바이탈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수술을 계속한다."
"네!"
응급상황을 무사히 끝난 후 노우드 팀의 기합이 단단히 들어갔다. 집도의 권일수를 중심으로 각 스태프들이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판막륜 성형술은 순식간에 끝나고 이를 고정하기 위한 링이 삽입되었다.
폐동맥판막의 문틀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은 셈이다.
이어지는 판막륜 수술.
권일수는 경이로운 봉합 솜씨로 판막륜 수술의 완성을 목전에 두었다.
"역시 권 교수 실력만큼은 알아줘야겠어."
조지환이 장혁필을 응시했다.
"과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권 교수는 흉부소아외과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니까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때 노우드 팀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약점?"
"네. 노우드 팀은 아마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장혁필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고 조지환은 팔짱을 낀 채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약점이라……."
조지환이 중얼거리는 사이, 판막재건술이 종료되었다.
이어진 두꺼워진 심실을 제거하는 일도 무사히 끝났다.
수술 부위를 닫고 인공심폐기를 끄자 모두의 시선이 환자 감시 장치로 향했다.
"바이탈 정상입니다."
"거즈 카운팅, 봉합사 카운팅 이상 없습니다."
최종점검이 끝나자 스태프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노우드 팀의 첫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 * *
그날 저녁.
최기석은 수술 보조를 마치고 중환자실을 찾았다.
"다행이다."
미소를 지으며 노우드 팀이 수술한 유강한을 내려다보았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 상태는 양호.
별일이 없다면 무사히 회복해서 병원을 떠날 수 있으리라.
'역시 권 교수님.'
최기석은 아이를 보며 권일수를 떠올렸다.
만약 권일수가 아이를 받지 않았다면 아이는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다가 죽었을지 모른다. 애초에 수술하기가 워낙 부담스러웠던 환자였으니까 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었다.
수술을 참관하지 못해서 동영상을 남길 수 없었다는 점이다.
최기석은 유강한을 지켜보다가 흉부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그리고 평소처럼 라운딩하며 환자들을 살피다가 한 병실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마이클이 먼저 인사를 했다.
낮에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었기에 저녁에는 영어로 말을 걸었다.
"긴장되거나 초조하지 않아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선생님들이 잘해 주실 거라 믿어요. 여기 있는 의사 분들 다 친절하고 실력 있으니까요."
"씩씩해서 다행이네요."
최기석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다른 환자들하고 말은 해 봤어요?"
"네. 외국 사람이라고 부담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런 건 없었어요. 옆 병실에 있는 젊은 여성분하고는 꽤 많이 친해졌고요."
"요즘 들어 느낀 건데요. 사람은 마음에 담아 둔 게 있으면 말로 표현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기석이 살짝 화제를 돌렸다.
"내가 나를 표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모르니까요."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뭐.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죠. 갑자기 화제가 무겁게 변했네요. 이런 이야기를 꺼낼 생각은 아니었는데."
"저는 좋은데요?"
마이클이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본 것 같아서요. 그리고 방금 전 선생님이 한 말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해요."
"……."
"사람은 상황을 살피면서 자기 할 말은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속으로 삭히기만 하면 병나잖아요. 예전에 심리학 수업에서 들었는데 자기를 너무 감추는 건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라고 했어요."
"동감이에요."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마이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착각인지 몰라도 예전에 비해 스피킹 실력이 올라간 것 같은데요?"
"제가요?"
"네. 발음은 아직 어색하지만 대화가 자연스러워졌어요. 이만하면 영어 쓰는 사람 만나도 웬만한 의사소통은 할 것 같아요."
"이게 다 마이클 덕분이죠."
최기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스페셜 미션을 완료한 후 외국어 회화능력을 2배로 올려주는 젬을 얻었다.
갑작스런 실력 상승의 원인은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영어 공부를 게을리할 수는 없다.
만약 회화 실력이 충분하다면 메이죠를 향해서 임무의 일부 완성되었을 테니까.
지이이잉.
대화를 나누는데 콜폰이 울렸다.
최기석은 떠오른 번호를 확인한 후에 긴장을 풀었다.
"전 이만 가 봐야겠네요."
"네. 수고하세요."
병실을 나가서 전화를 받은 후 곧장 아지트로 향했다.
"왔어?"
정설화가 최기석을 보며 방긋 웃었다.
모처럼 오프를 맞은 그녀가 아지트에서 최기석을 보자고 했다.
두 사람은 가볍게 포옹을 나누고서 소파에 앉았다.
과에서 있었던 일을 서로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도둑맞은 것처럼 지나갔다.
"우리 라디오 들을래?"
"라디오?"
"저번 오프 때 들었는데 되게 좋더라. 뭔가 사람 냄새 나는 느낌이야."
"좋아."
최기석이 수락하자 정설화가 휴대폰으로 라디오를 틀었다.
DJ는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여자 개그우먼.
귀에 쏙쏙 박히는 밝은 목소리와 자연스러운 진행능력이 매력 있었다.
"라디오 진짜 오랜만에 듣는다."
"그치?"
"가장 마지막에 들었던 게 가수 윤화가 달이 빛나는 밤에 할 때였는데. 거의 4년만이네."
"여유 있을 때 들으면 좋더라. 사연 같은 거 듣고 있으면 나도 평범한 사람인 것 같고."
정설화가 최기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자. 이번 코너는 애청자들의 황당한 사연을 듣는 코너, '아이고 내 머리야' 시간입니다. 오늘은 또 얼마나 황당한 사연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는데요, 슬리핑 씨.]
[흠흠. 제가 얼마 전에 경품에 당첨 됐어요. 그것도 무려 제주도 여행권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여행권을 받았는데도 도무지 신나지가 않아요.]
게스트 슬리핑이 사연자 입장에서 사연을 읽었다.
[제주도 여행권이 당첨됐는데 신나지 않다고요? 이거 다른 분들이 돌 던지실 것 같은데요?]
[사연 끝까지 들어보면 돌 못 던지실 걸요?]
슬리핑이 다시 목소리를 바꿨다.
[다른 사람들은 제 기분 이해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전 제주도에 살거든요. 제주도 왕복항공권, 이거 어디다 쓰니?]
[푸하하. 제주도 분한테 제주도 여행권이 간 건가요?]
여자 DJ가 깔깔 거리며 웃었고 최기석과 정설화도 따라 웃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댄 채 계속 라디오를 들었다.
병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랜만에 맛본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감동에 흠뻑 빠졌다.
그렇게 방송이 30분쯤 지나가 광고가 나왔다.
"100일 당직 끝나면 영화 보러 가자."
"영화?"
"방금 광고 나온 거, 나쁜 인간들.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
정설화가 호들갑을 떨었다.
"천만 배우들이 네 명이나 있어.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윤문재도 나오고."
"설화야, 문재 형님 좋아해?"
"연기 잘하잖아. 근데 문제 형님이라니? 혹시 아는 사이?"
"그럼 당연하지."
최기석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과거 심장이식을 받은 후 병실생활을 할 때 윤문재와 친해졌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중이고 말이다.
"대박. 진짜?"
"지금 연락해 볼게."
최기석은 당당하게 윤문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윤문재는 의외로 금방 전화를 받았다.
"형님. 저 기석이에요. 잘 지내시죠?"
[잘 지내다마다. 얼마 전에 촬영 끝내고 예능 한 바퀴 도는 중이다.]
"대배우라서 바쁘시네요."
[대배우씩이나…… 그나저나 웬 일이냐?]
"잘 몰랐는데 제 여자친구가 형님 팬이라고 해서요. 통화 한번 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래. 바꿔 봐.]
최기석이 휴대폰을 내밀자 정설화가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기석이 여자친구 설화라고 해요."
[반가워요. 설화 씨. 기석이가 잘해 줘요?]
"아. 네. 엄청 잘해 줘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환자밖에 모르는 바보가 여자친구를 챙긴다고요?]
"네."
[같은 병원에 있으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뭐. 얘는 원래 착하고 성실하니까요.]
"근데 요즘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어떤 때는 능구렁이처럼 군다니까요."
"저기…… 설화야. 내 험담하는 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
최기석이 대화에 껴들자 정설화와 윤문재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설화와 윤문재는 대략 오 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최기석이라는 연결고리와 영화라는 연결고리가 있어서 첫 통화임에도 이야기가 잘 통했다.
"고마워. 기석아. 나 큰 선물 받았어."
통화를 끊은 정설화가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 * *
다음 날 오후.
최기석은 로젯을 나와서 수술복과 마스크를 벗었다.
마이클의 식도절제술이 방금 막 무사히 끝났다. 건강한 청년이니 며칠만 쉬면 금방 퇴원하리라.
휴게실에서 잠깐 쉬고 흉부외과 병동으로 올라갔다.
스테이션을 지나가는데 이예림에게 수작을 부리고 있는 한민우가 보였다.
"……."
"……."
한민우와 눈이 마주쳤지만 최기석은 그를 못 본 척하고 지나갔다.
한민우가 조만간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을 알기에.
회의실로 들어가자 세이버 팀 인원이 전부 모였다.
"오늘 여러분들을 호출한 이유,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죠?"
"……."
"낮에 이식센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김세찬 환자의 공여자가 확보되었다더군요."
"그럼 혹시……."
"네. 지금 머릿속에 있는 생각 그대로에요."
인공심폐기사 유병세의 질문에 장혁필이 미소를 지었다.
"세이버 팀의 첫 수술, 심장이식이 바로 내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