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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12화 (111/407)

팀 세이버 (2)

"노우드 팀이라……."

조지환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평소라면 권일수 본인이 집도하겠다는 말을 했겠지만 오늘은 노우드 팀을 언급했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느껴졌다.

"내가 테이블 데스 싫어하는 거 알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수술을 하겠다?"

"심장 클리닉 리뉴얼이 끝나면 제가 이끄는 팀은 노우드 수술을 합니다. 노우드에 비하면 이 정도 환자는 약과입니다."

권일수가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저는 권 교수님의 수술에 반대합니다."

장혁필의 선언에 회의실은 다시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이 환자의 경우 수술보다 스텐트 삽입술이 어울립니다. 이미 팔로 4징증으로 수술을 받은 전적이 있지 않습니까? 굳이 흉부외과에서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습니다."

장혁필의 시선이 권일수에게 고정됐다. 더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도발이다.

"장 교수. 내과적인 처치로 완치가 가능하리라 생각해요?"

"……."

"검사 결과를 잘 봐요. 이전에 받은 팔로 4징증 수술은 엉터리라고."

권일수는 수술 후 생긴 폐동맥판막 역류, 여전히 두꺼운 우심실을 근거로 들며 내과 처치의 한계를 꼬집었다.

"이 환자의 근본적인 치료는 수술뿐입니다. 과장님만 허락하신다면 오늘 바로 수술에 들어가겠습니다."

"으음……."

조지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쓸어내렸다.

"좋아요. 그럼 일단 순환기내과에 컨설턴트를 보냅시다. 스텐트가 가능하면 스텐트 치료를 하고 아니면 노우드 팀에 맡기죠."

"과장님. 이 환자는 협진이 필요 없는……."

"권 교수, 내 말 못 들었어요? 일단 협진이라고."

조지환이 으르렁거리자 권일수가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잠시 후 회의가 끝나고 회진이 이어졌다.

"이런 식으로 훼방을 놓는 건가?"

복도를 걷던 중 권일수는 장혁필을 노려봤다.

장혁필은 고의적으로 노우드 팀의 수술을 방해했다.

협진 없이 수술할 수 있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조지환을 이용해 협진을 받게 만든 것이다.

만약 내과에서 스텐트가 가능하다고 하면?

노우드 팀의 예비 수술은 물거품이 된다.

"훼방이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뭐라고?"

"저는 단지 순환기내과의 입장까지 고려했을 뿐입니다."

장혁필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 흉부외과가 네 손 안에 놀아나는 일은 없어. 내가 반드시 막는다."

권일수가 쌩하니 장혁필을 앞서 지나갔다.

논쟁이 있었던 회의와 달리 회진은 무사히 끝났다.

모처럼 여유가 있었기에 최기석은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진짜 전쟁이다, 전쟁."

회의 때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다가오는 흉부외과 리모델링.

이로 인해 장혁필과 권일수의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오늘 같은 경우 장혁필이 권일수에게 한 방 먹였다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권일수 역시 만만치 않으니까.

권일수의 정치력은 장혁필보다 낮지만 수술 능력은 더 뛰어나다.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최기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상태창을 띄웠다.

가장 먼저 살핀 것은 4단계 강화가 된 환자 바라기다.

요즘 들어 부족한 체력을 메우기 위해서는 더욱 강화된 환자 바라기가 필요하다. 처치나 보조를 섰을 경우 체력회복량이 많아질 테니까 말이다.

'가 볼까?'

최기석은 손을 비비며 작업에 나섰다.

위이이이잉.

환자 바라기와 강화석을 강화기에 올려놓자 환한 빛이 쏟아졌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환자 바라기(+5), 아이템의 회복효과가 32퍼센트 상승합니다.]

최기석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3단계부터 10단계까지의 강화 성공확률은 70퍼센트. 실패 없이 쭉쭉 달려 보자고 마음먹었다.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연달아 울리는 성공음.

강화는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강화 바라기는 어느새 10단계가 되어 은은한 광채를 뿌렸다.

최기석은 강화를 더 할까 고민하다가 상태창을 껐다.

11단계 이상 강화부터는 강화 확률이 50퍼센트로 줄며 강화 실패 시 기존의 강화가 모두 사라진다.

더 이상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최기석은 남은 캔 커피를 비우고 정설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자기야. 웬일이야?]

"혹시 지금 바빠? 아니면 잠깐 보고 싶어서."

[으음…… 20분 정도는 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산부인과 병동으로 와. 거기서 보자."

통화를 끊고서 산부인과 병동을 향했다.

산부인과 병동을 찾은 이유.

그것은 어제 출산한 산모의 상태를 살피기 위함이다. 스테이션 앞에서 서성거리는데 달려오는 정설화가 보였다.

"천천히 와. 다칠라."

"조금이라도 많이 보고 싶어서 그렇지."

정설화가 간호사들 눈치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그녀의 사랑스런 말에 최기석은 방실방실 웃었다. 주변에 사람들만 없었다면 뽀뽀를 퍼부어 주었으리라.

두 사람은 나란히 복도를 걸어 나윤정이 있는 1인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나윤정과 그녀의 남편 최민협이 두 사람의 인사를 받았다.

"몸은 좀 어떠세요?"

"약간 피곤하지만 괜찮아요."

"어제 일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두 분 덕분에 아내가 별 탈이 없었습니다."

최민협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혹시 출산하신 아이는……."

"검사해 봤는데 아무 이상 없대요. 체중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덜 나가긴 하지만 건강하대요."

나윤정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초면에 이런 이야기 꺼내는 거, 조금 불편하실지 모르겠는데…… 혹시 두 분 연인 사이 아닌가요?"

"맞습니다."

최기석은 곁에 선 정설화의 손을 꼭 잡았고 정설화는 홍시처럼 붉은 얼굴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 내 말 맞죠?"

"진짜네."

최민협이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 저희가 어제 두 분을 두고 내기를 했거든요. 저는 두 분이 그냥 친한 사이인 줄 알았는데……."

"으이구. 연애 때부터 없던 눈치가 갑자기 생기겠어요?"

나윤정이 최민협에게 핀잔을 주었다.

"딱 보면 척 알 수 있잖아요. 두 분이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거. 두 분, 정말 잘 어울려요."

"감사합니다."

"두 분은 연애 잘하다가 결혼까지 갈 것 같아요. 이래 봬도 제가 커플 보는 눈은 정확하거든요."

"두 분 다 선남선녀니까 충분히 그럴 만하지."

잠자코 있던 최민협이 한마디 보탰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띠링!

[특수 버프, 잉꼬 부부의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플레이어를 향한 정설화의 애정도가 200퍼센트 상승합니다. 이별하기 전까지 버프가 지속됩니다.]

"괜찮으시면 우리 아이 보고 가시겠어요?"

"허락해 주신다면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최민협을 따라 신생아실로 이동했다.

간단한 소독 절차를 밟은 후 안으로 들어가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널 구해 준 선생님들이 왔어. 인사해야지."

최민협이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말했다. 그러자 아이가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방긋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우와. 너무 귀엽다."

정설화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의 손을 만졌다.

"요 녀석이 엄마를 닮아서 좀 예뻐요."

최민협이 껄껄 웃었다.

두 사람은 아이와 잠시 놀아 주다가 산부인과 병동을 떠났다.

* * *

수술실.

최기석과 김태식, 한민우, 흉부외과 인턴 지현석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겠지?"

"네."

"첫 집도라고 긴장하지 말고. 개흉술하고 다른 수술은 이미 해 봤으니까."

김태식이 한민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로써 수술 전 브리핑은 끝.

박. 박. 박. 박.

스태프들은 일제히 스크럽을 끝내고 로젯으로 들어갔다.

김태식이 환자 머리맡에 자리 잡았고 한민우가 집도의 자리에, 최기석이 제1보조 자리에 섰다.

오늘의 수술은 흉막박피술.

각종 질환으로 가슴에 고름이 찬 것을 농흉이라고 하는데, 농흉이 제거되지 않고 오랫동안 체내에 남으면 농흉이 두껍고 견고한 층을 형성한다.

흉막박피술은 이 고름층을 제거하고 농을 빼 주는 수술이다.

"지금부터 흉막박피술을 시작합니다. 마취의 선생님."

한민우의 호출에 마취의가 환자를 전신마취시켰다.

스으으으윽. 스으으윽.

최기석이 환자의 가슴을 소독하고 방포를 씌우자 강하나가 한민우에게 메스를 건넸다.

한민우는 거침없이 메스를 움직였다.

목 아래부터 명치까지의 피부가 종잇장처럼 갈라졌다.

"흉골 절개합니다."

최기석은 전기톱을 이용해 흉골을 반으로 갈라냈다. 그러자 지현석이 신속하게 견인기를 건넸다.

확실히 지현석이 강상중보다는 상태가 좋았다.

최기석과 지현석이 견인기를 당기면서 본격적인 수술의 막이 올랐다.

한민우는 메스로 농흉이 존재하는 폐 하단부를 갈랐다.

누렇고 진득한 고름이 절개 부위로 흘러나왔고 최기석은 석션기로 고름을 빨아들였다.

"고름은 다 빠졌습니다."

"알았어."

한민우가 다시 메스를 움직였다.

한민우는 한 손으로는 포셉을, 한 손으로는 메스를 들고 조심스럽게 흉막층을 덮고 있는 고름층을 제거했다.

'생각보다 잘하네.'

최기석은 처치를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실력이 딸려도 치프는 치프인 듯했다. 그동안의 경험까지 무시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탕. 탕. 탕.

박리해 낸 고름층이 곡반으로 떨어져나갔다.

집도가 무사히 진행되는 가운데, 한민우의 메스가 전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한민우!"

김태식이 언성을 높였다.

고름층을 잘라 내야 할 메스가 횡격막으로 향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엉뚱한 횡격막이 파열되고 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최기석은 석션기를 이용해 메스의 진로를 막았다.

의료사고를 간신히 피한 셈이다.

"아…… 죄송합니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무슨 생각을 하길래 농흉층이랑 횡격막을 헷갈리는 거야!"

"죄송합니다."

한민우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답했다.

다시 이어진 흉막박피술.

흉막을 덮고 있던 두꺼운 고름층이 모두 사라졌다. 고름층 안에 있던 고름까지 전부 빼냈다.

"닫는 건 기석이 네가 해라. 한민우, 넌 나 좀 보자."

김태식이 찬바람을 날리며 먼저 로젯을 떠났고 한민우는 도끼눈을 뜨고 최기석을 응시했다.

"씨발. 보조 똑바로 못해?"

"집도 똑바로 못하십니까?"

최기석은 지지 않고 받아쳤다.

방귄 뀐 놈이 성낸다고 지금이 딱 그 꼴이다.

"한 선생님. 뭘 잘했다고 최 쌤한테 화풀이예요? 최 쌤이 안 나섰으면 횡격막이 찢어졌다고요."

"하아…… 이젠 간호사까지 지랄이네."

"그럼 지랄 맞게 행동하지 말던가요."

"……너희 둘, 언제까지 설치는지 보자."

한민우가 반 협박조로 말하고 로젯을 떠났다.

"웃겨. 뭐 저런 게 다 있지?"

강하나가 한민우의 등 뒤로 중지를 치켜들자 최기석은 피식 웃고 말았다.

"원래 저런 인간이니까 우리가 참아요."

"그건 그렇지만 저러다 사고 치면 다 같이 책임져야 되잖아요."

강하나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이윽고 최기석이 집도의 자리에 서서 봉합에 나섰다.

손놀림은 경쾌했으며 봉합한 부위는 균일하게 꿰매졌다. 고난도 혈관 봉합이 가능한 그에게 피부 봉합은 일도 아니었다.

"역시 초 레지 쌤이라니까."

봉합이 끝나자 강하나가 엄지를 척 내밀었다.

* * *

수술이 끝난 후 최기석은 곧바로 병동으로 올라갔다.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10단계 강화를 한 환자 바라기로 보조를 선 덕분에 체력이 엄청나게 회복됐다.

일과를 시작하면서 느낀 피로감은 온데간데없었다.

"최 선생님.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찾아온 분이 있는데요. 1층 카페에서 기다겠다고 했어요."

"고마워요."

최기석은 이예림에게 감사를 표하고 말을 이었다.

"혹시 치프가 요즘도 집적거려요?"

"요…… 요즘은 거의 안 그래요."

이예림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더 추궁하지 않고 1층 카페로 내려갔다.

본인이 말하기 꺼려하는 것을 억지로 끄집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오리라.

"오랜만입니다."

카페에 도착하자 뜻밖의 인물이 그를 맞이했다.

KTB 방송국의 기자 박광수다.

박광수는 아동학대 사건을 비롯해 의진대의 여러 가지 사건들을 기사로 실어 주었다.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살도 많이 쪘는걸요?"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그건 최 선생님이 더 잘 알 텐데요? 일단 앉으시죠."

박광수가 웃으며 의자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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