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세이버 (1)
[살려야한다 스킬을 사용합니다.]
[각성 CPR 모드를 발동합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 좀 살려 주세요!"
한 박자 늦게 내린 보호자가 눈물로 호소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접수부터 해주세요. 영호야. 가자!"
"네!"
최기석은 아이를 품에 안고 응급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체력: 3/10
주 증상: 무호흡 / 심정지
아픈 부위: 심장
진단명: 호흡정지 / 청색증 / 심실세동 / 폐동맥 판막 역류 / 심실중격결손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팔로 4징증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아이를 살피고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보다 상태가 더 나빴다.
최기석이 아이를 침상에 눕히자 이영호가 번개처럼 환자 감시 장치를 연결했다.
얼어붙은 심장의 혹한 효과 덕분일까.
이영호는 지시하지 않은 사항을 척척 해냈다.
최기석은 아이에게 기관삽관을 하고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그리고 곧바로 흉부압박에 나섰다.
우선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아이의 가슴에 얹은 후 왼손 엄지로 두 손가락을 눌렀다.
소아와 성인의 흉부압박법은 차이가 있다.
푹! 푹! 푹!
압박할 때마다 아이의 몸이 파도처럼 들썩거렸다.
"선배, 호흡과 맥박이 없어요. EKG 보니까 심실세동인 것 같은데요?"
"알아."
최기석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에피네프린 0.01mg/kg하고 5 D/S 챙겨 와."
"네!"
이영호가 자리를 떠난 사이 최기석은 흉부압박을 멈추고 제세동기 앞에 섰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게 우선이다.
끼리리리릭.
제세동기 버튼을 돌리며 충천전압을 정하고 패치에 젤을 발랐다.
"선배, 챙겨 왔습니다."
"지금부터 흉부압박은 네가 해. 그동안 라인 잡고 IV 놓을 테니까."
"네? 진심이세요?"
이영호가 몸을 들썩거렸다.
"왜? 문제 있어?"
"흉부압박이야 할 수 있는데 그러면 라인 잡기 힘들잖아요. 더군다나 신생아라서 혈관도 안 보일 텐데."
"지금은 내가 아니라 아이 걱정할 때다. 시키는 대로 해."
"하지만……."
이영호는 미지근한 표정을 지으며 어딘가를 응시했다.
타다다다닥.
접수를 끝낸 보호자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영호! 정신 차리고 내 말 들어!"
"……에라, 모르겠다. 갑니다!"
푹! 푹! 푹!
흉부압박을 시작하자 다시 아이의 몸이 들썩거렸다. 하지만 최기석은 차분하게 혈관을 찾아서 소독하고 카테터를 손에 쥐었다.
처치에 대한 망설이나 두려움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환자를 살리겠다는 열망뿐.
푸우우욱!
카테터가 혈관을 꿰뚫었다.
[뱀파이어 칭호 효과가 발동하였습니다.]
[주사 처치 확률이 100퍼센트가 됩니다. 환자가 느끼는 통증이 50퍼센트 감소합니다.]
알림과 더불어 카테터 바늘침에 빨간 피가 고였다.
이영호가 흉부압박을 하고 와중에도 라인을 잡는데 성공한 것이다. 최기석은 바늘침을 빼고 5 D/S를 연결했으며 이어서 에피네프린까지 정맥으로 투여했다.
'이런!'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호흡은 조금씩 돌아오고 있지만 심실세동을 일으킨 심장이 여전히 문제다.
"지금부터 제세동기 쓴다. 내가 세팅한 대로 충전만 하면 돼. 알았지?"
"네."
최기석은 한쪽 패치를 아이의 오른쪽 가슴 위에, 다른 하나는 좌측 흉골에 붙였다.
"2J/kg!"
"Charge!"
"Clear!"
쿵!
패치에서 흐른 전류로 아이의 몸이 들썩거렸다.
"2J/kg!"
"Charge!"
"Clear!"
쿵!
제세동기를 연달아 네 번 사용하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아이는 여전히 VF(심실세동, 심실에서 혈액이 뿜어지지 않아 순환부전이 일어나는 상태)다.
"선배."
이영호가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보호자가 곁에서 처치를 보고 있기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최기석은 뒤에 숨은 말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요?
이영호의 눈빛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에피네프린 더 가져 와. 이번엔 0.2mg다."
"0.2요? 그건 너무……."
이영호는 보호자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이전에 투여했던 에피네프린의 용량이 0.01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증량이다.
무려 20배의 차이니까 말이다.
"소아 CPR에는 고용량 처치란 것도 있어. 시간 끌지 말고 빨리 가져 와."
최기석은 두 손가락으로 아이의 가슴을 압박했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아이의 얼굴을 보며 하는 흉부압박이 편할 리 없다. 하지만 본인의 가슴이 아픈 만큼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은 더욱 커졌다.
"에피네프린 가져왔습니다."
"교대!"
이영호가 흉부압박을 하는 동안 최기석이 에피네프린을 투여했다.
이어지는 제세동기 처치.
"4J/kg!"
"Charge!"
"Clear!"
쿵!
기존보다 전압을 두 배 높여서 제세동기를 사용했다.
이후 두 사람은 쳇바퀴 돌듯이 CPR을 진행했다.
흉부압박과 약물투여, 그리고 제세동기 사용까지, CPR을 20분쯤 지속되자 두 사람의 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젠장!
이쯤이면 터질 때도 됐잖아.'
최기석은 입술을 깨물며 상태창을 살폈다.
최미순에게 받은 생명의 은인 칭호에는 환자를 일시적으로 부활시키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부활 효과를 통해 이주희(레전드 아이템 '시간의 넘어서'를 주었던 소아 환자)를 살리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선배! 모니터!"
제세동기를 충전하던 이영호가 목청껏 외쳤다.
EKG 상에서 심실의 움직임이 관측되었다.
CPR를 포기하지 않은 덕분일까.
심실세동이 점차 호전되고 있었다.
팔목 동맥에 손가락을 얹어보니 미약하게나마 맥박이 느껴졌다.
최기석은 CPR를 중단하고 뚫어져라 환자 감시 장치를 살폈다.
그렇게 5분이 지났다.
아이가 마침내 자발순환을 시작했다.
저승길을 헤매던 아이가 이승으로 돌아온 것이다.
처치하면서 억눌렀던 초조함과 불안감이 사라지고 아이를 살렸다는 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흐흐흐흑."
아이 어머니가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고 아이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마음고생은 또 얼마나 심했을지…….
"두 분 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기석은 울컥하는 감정을 추스르며 한마디 했다.
* * *
다음 날 아침.
최기석은 송명진이 보낸 논문을 읽고 아지트에서 집도 연습을 했다.
병동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독 무거웠다.
'후아…… 미치겠네.'
한숨을 쉬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백일 당직을 시작한 지 어언 50일.
논문 읽기, 집도 연습, 영어공부 응급환자 처치 등등으로 그의 평균 수면시간은 3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동안은 환자 바라기의 체력회복 능력과 역환단에서 얻은 체력회복 상승효과로 잘 버텨 왔지만 이제는 한계점에 다다른 듯했다.
'빨리 어시라도 서야겠다.'
상태창으로 체력이 2임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병동에 도착해서 환자를 살피던 중 심장이식 대기자 김세찬이 깨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제 대화하지 못한 것이 떠올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최기석이 인사를 하자 김세찬과 보호자 양서희가 인사를 건넸다.
"몸은 좀 어떠세요?"
"뭐. 똑같죠. 숨쉬기 불편하고 피곤하고 기침하고……."
김세찬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근데 선생님. 저 퇴원하면 안 돼요?"
"얘는 또 그런 소리한다!"
김세찬의 말에 양서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퇴원하고 싶은 이유가 뭐죠?"
"솔직히 심장이식 언제 받을지 모르잖아요. 대기자 명단에 오른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는데. 병원에서 피를 말리느니 차라리 밖에서 편하게 지내다 죽고 싶어요."
"힘드신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포기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최기석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심장이식 대기기간은 환자의 응급한 정도와 그동안의 대기기간을 토대로 정해진다.
김세찬의 경우 최근 심장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응급도가 상승했으며 대기기간도 길었다.
조만간 심장이식을 받을 확률이 높았다.
"심장이식을 받으면 평범하게 살 수 있나요?"
김세찬이 생기 없는 눈빛으로 최기석을 응시했다.
"보통 사람들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하고 항상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하죠. 하지만 이식을 받기 전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
"혹시 김 선생님께 제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최 선생님 이야기요?"
김세찬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못 들으셨나보네요. 사실 저도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최기석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말을 이었다.
"저는 수술을 받은 후 의사 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세찬씨도 쉽게 절망하지 마세요. 지금은 힘들지만 분명 기회가 찾아올 거예요."
그의 말에 김세찬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그건 그렇지만…… 수술비가……."
"괜찮아. 네가 건강해지는데 돈이 무슨 문제니?"
"그래도 수술비가 한두 푼이 아니잖아. 삼사천만 원 정도 한다고 들었는데……."
"걱정 마. 엄마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
양서희가 김세찬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어머님. 혹시 세찬 씨 보험 들어 놓은 게 있나요?"
"네. 20살 쯤에 실손보험하고 뭐 이상한 보험 하나 추가해서 들어 놓은 게 있어요."
"아직 유지 중이신거죠?"
"네."
"오늘 중으로 설계사한테 전화해서 보장 내용을 알아보세요. 어쩌면 C.
I(Critical Illness insurance) 보험에 가입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C.
I 보험이 뭐죠?"
"암이나 뇌졸중 이외에 5대 장기이식 수술에 수술비를 보장해 주는 보험입니다. 만약 C.
I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면 경제적인 부담이 덜할 겁니다."
"네. 알아볼게요."
최기석은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눈 후 회의실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먼저 와 있던 강상중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네가 이 시간에 웬 일이야?"
"CTD 공부하려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처치는?"
"십 분 전에 끝냈습니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최기석은 농담하며 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어제 갈군 게 효과가 있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처치를 끝내고 공부하는 걸 보면 말이다.
최기석은 수술 스케줄을 정리하고 처방을 넣은 후 봉제인형을 손에 쥐었다.
휘리리리릭.
본격적인 봉합 연습에 나섰다.
몸은 피곤했지만 손은 그와 별개로 현란하게 움직였다.
습관의 무서움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스태프들이 하나둘 회의실로 들어오며 회의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입원환자 브리핑이 시작됐다.
"어젯밤 생후 4개월 된 환자가 VF로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30분의 CPR 끝에 자발순환으로 돌아왔고 이어진 검사에서 중증의 폐동맥 판막 역류 소견이 나왔습니다. 과거 세원대병원에서 팔로 4징증 수술을 받은 후유증이 남은 듯 보입니다."
최기석은 설명을 끝내고 검사결과를 프로젝터에 띄웠다.
"흐으으음. 너무 심각한데?"
"저 정도면 재수술 못 하지 않아요?"
몇몇 스태프들이 의견을 피력했다.
톡! 톡! 톡!
조지환이 탁자를 두드리면서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재수술이야 할 수 있겠지만 저런 상태면 수술 중에 사망할 것 같은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환자가 너무 어린 데다가 기존에 팔로 4징증 수술까지 받았으니까요. 설령 수술이 성공해도 경과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조지환의 말에 장혁필이 동의를 표했다.
"최 선생."
"네, 과장님."
"한 이틀 정도 상태 보다가 보호자에게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해요."
"하지만……."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어제 간신히 살려 놓은 환자를 내치라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회의실, 잠자코 있던 권일수가 입을 열었다.
"과장님. 이 환자 노우드 팀에 맡겨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