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3)
'일단 시키는 대로 하자.'
최기석은 보호자에게 관상동맥 우회술의 동의서를 받았다. 그리고 인턴과 침상을 끌고 수술실에 도착했다.
수술 대기실에는 세이버 팀 인원 전원이 모였다.
앞으로 함께할 사람들이라서 그럴까.
모두 모여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든든했다.
"우연치 않게 본 게임 전에 다들 모였네."
장혁필이 팀원들을 훑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심장이식 전 몸 풀기라 생각하고 스크럽 합시다."
"저기. 교수님. 수술 전에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최기석이 다급하게 물었다.
"뭔데?"
"CABG는 윤 교수 파트 아닌가요? 환자를 멋대로 수술했다가는……."
"괜찮아. 미리 연락했어."
최기석의 질문에 장혁필이 문제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이윽고 스태프들이 로젯에 자리를 잡았다.
마취의 신아름은 커튼 뒤에서 마취 약물을 준비했으며 인공심폐기사 유병세는 심폐기를 세팅했다.
한편 강하나는 현란하게 수술 도구를 펼쳐 놓는 중이다.
"우리도 시작해 볼까?"
장혁필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걸렸다.
"네 자리는 이쪽이다."
"교…… 교수님. 설마?"
"그래. 오늘 집도의는 너다."
장혁필의 말에 최기석은 머리에 망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레지던트 1년 차에 CABG 집도라니…….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노…… 농담하시는 거죠?"
"내가 농담하는 걸로 보여?"
장혁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냥 올라오라고 했을 때 눈치챌 줄 알았는데. 아직 완전히 여우는 아니구나."
"그건 조금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잔소리 말고 자리 잡아. 주절거리는 시간에도 환자는 악화되고 있으니까."
"……."
"아직 부담돼? 마음의 준비가 안 됐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오늘 같은 기회는 흔치 않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최기석은 간신히 대답하고 집도의 자리에 섰다.
많이 떨리는 게 사실이다.
과거 레지던트 3년 차까지 해 봤지만 그때도 집도를 한 적은 없었다.
즉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오늘이 첫 집도인 셈이다.
[얼어붙은 심장의 효과로 냉정하게 환자를 분석합니다. 돌발 상황이나 응급상황에서 능력치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혹한 효과로 동료들에게 적용됩니다.]
얼어붙은 심장으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외과의를 택한 이상 집도는 피해 갈 수 없는 길, 피할 수 없다면 정면 돌파 하리라.
'내 실력을 보여 주는 거야.'
입술을 깨물며 각오를 다졌다.
집도의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도 어느새 사라졌다.
"마취 준비 끝났습니다."
"인공심폐기 세팅 완료예요."
"수술 도구 준비도 끝이요."
스태프들이 수술 온 콜(on call)을 보내왔다.
최기석이 집도한다는 것을 세이버 팀 전원이 사전에 알았다. 그렇기에 다들 일사분란하게 제 할 일을 마쳤다.
"이제 O.
S(operating surgeon, 집도의) 차례잖아?"
장혁필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향했다.
"아름 선생님. 환자 마취해 주세요. 마취 끝나면 바로 인공심폐기 연결할게요."
최기석의 지시에 스태프들이 차분하게 움직였다.
"메스."
"네."
강하나에게 메스를 받아 환자의 목 아래부터 명치까지를 갈랐다.
스으으윽.
피부와 피하지방이 갈라지고 흉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흉골절개는 김 선생님이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김태식이 일부러 존댓말을 쓰며 처치에 나섰다.
지이이잉.
전기톱으로 흉골을 가르자 심막이 나타났고 최기석은 메스로 심막을 갈랐다. 이어서 장혁필이 견인기로 수술할 부위를 단단하게 잡아 주었다.
드르르르륵.
인공심폐기가 돌면서 턴은 다시 최기석에게 돌아왔다.
지금부터가 진짜 써전의 시간이다.
최기석은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용의 눈을 사용했다.
CABG의 첫 번째 단계는 이식할 혈관을 확보하는 일.
최기석은 무난한 내흉동맥을 이식혈관으로 선정했다.
내흉동맥은 관상동맥과 크기가 비슷하며 동맥벽의 탄력성이 좋아 수술 예후가 훌륭하다.
"좌측 내흉동맥 박리합니다. 메스."
칼날이 세로로 갈비뼈 연골과 근막을 갈랐다.
그사이 김태식은 수술 도구를 이용해 흉골을 살짝 들어 주었다.
최기석이 내흉동맥을 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찾았다!'
최기석은 심근막층에 숨은 내흉동맥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박리해 나갔다.
절개는 깔끔했지만 그 과정에서 소량의 출혈이 발생했다.
이에 김태식이 타이밍 좋게 석션기로 피를 빨아들였다.
최기석은 연습과 실전은 또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
팀원이 함께라는 점이 힘을 북돋아 주었다.
"이거 받아요."
김태식이 이식혈관에 한쪽 구멍을 뚫어서 건넸다.
최기석은 받은 이식혈관을 대동맥에 연결했다. 처음 하는 봉합이지만 떨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쌓아 온 내공을 모두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이어지는 꼼꼼한 봉합과 깔끔한 매듭.
최기석의 집도를 걱정하던 스태프의 표정이 점점 풀려 갔다.
찰칵!
봉합이 끝나자 강하나가 곁에서 봉합사를 잘라 주었다.
"제법인데요?"
"저도 알아요."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대동맥에서 흐르는 피가 이식혈관으로 흐르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이식혈관의 나머지 한쪽을 협착이 된 관상동맥의 하단부에 연결시켰다.
이로써 CABG 수술 완료!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살피자 상태가 보통이다.
"거 봐.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지?"
말없이 집도를 지켜보던 장혁필이 입을 열었다.
"가능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네요. 레지던트 1년 차가 CABG라니……."
김태식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럼 수술 부위 닫겠습니다."
최기석이 나머지 처치에 들어갔다.
이윽고 인공심폐기가 꺼졌으며 모두의 시선이 환자 감시 장치로 향했다.
환자의 바이탈은 전부 정상.
마침내 외줄 타기 같았던 수술에 막이 내렸다.
"첫 집도 축하한다."
"잘했어요. 최 선생님."
스태프들이 축하인사를 건넸다.
띠링!
[관상동맥 우회술 첫 집도에 성공하셨습니다. 관상동맥 우회술 마스터리가 1단계 상승합니다.]
[보상으로 1500P.
P와 유니크 젬이 주어집니다.]
NEW [유니크: 봉합의 견고함이 2배로 증가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최기석은 팀원들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 * *
병원 옥상.
최기석은 장혁필과 난간에 서 있었다.
'우와. 미치겠네.'
수술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과 희열이 뒤늦게 밀려왔다. 얼어붙은 심장의 효과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첫 집도를 한 소감이 어때?"
"아직도 어안이 벙벙합니다. 꿈속인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
장혁필이 피식 웃었다.
"교수님. 집도할 기회를 주신 건 정말 감사하지만 너무 큰 모험을 하신 건 아니셨나요?"
최기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록상으로 보면 오늘 수술의 집도의는 장혁필이다. 즉 최기석이 집도하다 문제가 생기면 장혁필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판이었다.
"모험? 난 모험 같은 거 안 해."
"……."
"혹시 첫 회식 자리에서 내가 했던 말, 기억나?"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이 천자를 하더라도 성공만 하면 상관없다고 하신 것도 같고……."
"바로 그거야. 난 네가 CABG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러니까 이건 모험이 아닌 거지."
장혁필이 설명을 덧붙였다.
세이버 수술의 주된 처치가 좌심실에 이뤄지지만 관상동맥을 비롯한 심장판막 수술도 병행된다고.
즉 오늘의 관상동맥 집도 역시 세이버 수련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대단하세요."
최기석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장혁필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의료계에 없을 것이다.
"난 말이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계속 기회를 주고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해. 장기적으로 보면 그게 윈윈하는 방법이거든. 그런데 보통은 그렇지 않지."
장혁필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가르치지 않고 시키기만 해. 그러면서 본인이 가진 얄팍한 지식이나 노하우를 조금씩 알려 주지. 참 더럽고 치사한 방법이야."
"저도 교수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세이버 팀이 성공하고 내가 자리 잡으면 흉부외과는 바뀔 거야. 우리나라 흉부외과계를 바꾸는 건 무리일지라도 최소한 의진대 흉부외과만큼은 바뀌겠지."
말을 마친 장혁필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봐."
"교수님이 흉부외과에 지원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내가 원래 청개구리 기질이 있거든? 선배나 동기들이 전부 가지 말라고 하니까 오기가 생겨서 지원했지."
"뜻밖이네요. 뭔가 큰 뜻이 있으실 것 같았는데."
"세상 무슨 일이든 거창하게 시작하면 오래 못 가. 동기는 단순해야 돼."
"그럼 흉부외과를 택하신 건 후회 안 하세요?"
"전혀."
장혁필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성적에 맞춰서 과를 맞춰갔다면 그걸 후회했겠지. 그건 그렇고 오늘 수술하면서 느낀 건 없어?"
"두 가지 정도 느꼈습니다."
최기석이 말을 이었다.
"하나는 팀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소 심장으로 혼자 연습할 때와 오늘 모두의 도움을 받아서 집도할 때는 하늘과 땅 차이였어요."
"나머지 하나는?"
"그게……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짜식. 사나이답게 말해 봐."
"또 수술하고 싶어졌습니다. 스태프들의 도움은 받았지만 제가 주도적으로 환자를 치료했다는 게 너무 뿌듯하고 좋습니다."
"이거 영락없는 외과의네."
장혁필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가능하면 오늘 같은 기회, 자주 만들어 보마."
"감사합니다."
"이제 슬슬 들어갈까?"
"네."
장혁필은 앞장서서 걷는 최기석을 바라봤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 아이는 자신을 훌쩍 넘어 버릴 것이라는 것을. 아니 그 어떤 흉부외과의도 감히 넘보지 못할 산이 될 것임을.
* * *
최기석은 아지트에서 세이버 수술 연습을 마치고 병동으로 올라갔다.
발걸음이 유독 가벼웠다.
입에서는 저절로 휘파람 소리가 나왔다.
어제 첫 집도를 끝내고서 가슴속에 무언가가 변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꼬집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병동에 도착해서 환자를 살피는데 단잠에 빠진 마이클이 보였다.
문득 그와 한국어로 대화하기로 약속했던 것이 떠올랐다.
'회진 끝나면 따로 시간 빼야겠네.'
최기석은 회의실로 들어가 재빨리 할 일을 마쳤다.
이윽고 그의 손에 곰 인형이 들렸다.
고속집도를 배우려면 앞으로 곰 인형을 149개나 더 망가트려야 했다.
딸칵!
쌈지에서 니들홀더를 꺼내 봉합침을 조였다.
이어지는 번개 같은 봉합술.
단순 연속 봉합으로 팔을 꿰매고 세이버 수술의 핵심인 쌈지 봉합으로 가슴을 꿰맸다.
드르르륵.
"기석아."
회의실에 들어온 윤지혜가 말을 걸었다. 하지만 최기석은 연습 삼매경에 빠져 듣지 못했다.
"너무하네. 정말 이럴 거야?"
윤지헤가 다가와서 두 손으로 최기석의 눈을 장난스럽게 가렸다.
"사람이 왔는데 무시해?"
"아. 죄송해요. 연습하느라 못 들었어요."
"지금도 충분히 무시 중인 것 같은데?"
윤지혜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눈을 가렸음에도 최기석은 여전히 봉합 중이다. 눈 뜨고 봉합하는 것처럼 꼼꼼하고 정확하게.
의사 한석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