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05화 (105/407)

준비 (1)

'이건?'

최기석은 놀라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액티브 스킬

NEW [페인킬러]

- 환자의 육체적 통증을 70퍼센트 감소시킵니다. 근본적인 치료가 아닌 단순 통증 경감이기에 증상을 가릴 수 있습니다. 지속효과는 일주일입니다.

- 사용 가능 횟수 1일 1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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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스킬은 최미순을 위한 맞춤스킬이다.

지금 최미순에게 필요한 것은 항암 치료를 견딜 수 있는 강력한 진통제이기에.

휘이이잉.

스킬을 사용하자 그의 손에서 초록빛이 뿜어졌다.

단순한 착각일까.

최미순의 딱딱한 표정이 다소 풀린 듯 보였다.

최기석은 최미순을 지켜보다가 흉부외과 당직실로 돌아왔다.

민주혁이 의자에 등을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선배. 저 왔어요."

"어음…… 벌써 왔어?"

"당직도 아닌데 당직 서는 선배가 밟혀서 오래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너스레 하고는."

민주혁이 일어나서 최기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건 그렇고. 하도 바빠서 그 말 한다는 걸 깜빡했네."

"뭔데요?"

"내일 내 앞으로 어드미션(입원환자) 하나 붙는데. 네가 좀 맡아 주라."

민주혁의 설명이 이어졌다.

환자의 이름은 마이클, 미국에 살다가 한국에 온 외국인 환자다.

박용일 교수가 외래에서 진료를 봤다고 한다.

"외국인 환자네요?"

"그래서 너한테 맡아 달라고 하는 거야. 우리 마이클 씨가 한국말은 못 한다고 하더라. 의사소통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아무래도 영어 공부 중인 네가 맡는 게 더 낫겠지?"

"저야 좋죠."

최기석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혼자서 영어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외국인 환자를 맡아서 대화한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좋아할 줄 알았다. 고생하고."

"네. 들어가세요."

그가 나가면서 당직실이 휑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최기석이 바라던 고요.

최기석은 영어 교재를 펴고 공부에 들어갔다.

* * *

다음 날 아침, 아지트.

최기석은 소 심장을 두고 홀로 싸우는 중이다.

오늘의 수술은 세이버 수술.

장혁필이 보내 준 논문과 수술 동영상을 외워서 직접 집도를 하고 있었다.

세이버 수술.

이것은 좌심실 용적 축소술과 좌심실 재건술을 함께 펼치는 수술이다.

심부전증을 앓는 환자의 심근세포는 딱딱하고 두껍다.

그래서 이 변성된 부위를 잘라 낸 후 주변의 조직을 당겨서 봉합해 주는 수술이다.

스으으윽.

메스로 좌심실류(심실이 탄력 없이 늘어진 상태)를 갈랐다.

소 심장은 매끈했지만 실제 환자였다면 수많은 혈전이 있었으리라.

최기석은 혈전을 제거했다고 가정한 후 CABG를 펼쳤다.

오래전부터 연습한 관상동맥 우회술은 거침이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동맥을 박리하고 Y 그래프트로 우회로를 만들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인데…….'

망설이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최기석은 조심스럽게 두꺼워진 조직을 잘라 냈다.

제거 대상은 오직 제 활동을 못하는 심근조직, 멀쩡한 부분을 건드리면 수술 경과가 나빠진다.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였다.

이어지는 쌈지 봉합.

쌈지 봉합이란 절개한 봉합 부위를 위쪽으로 끌어당기면서 봉합해 주는 봉합법으로 충수 절제술에서 많이 쓰이곤 한다.

'젠장.'

봉합하던 중 실이 꼬였다.

찰칵!

가위로 자르고 수습에 나섰지만 그럴수록 소 심장은 엉망이 되었다.

때마침 병동으로 올라갈 시간이 되어 집도를 중단했다.

최기석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새삼 피부로 느꼈다.

또래의 동기들 수준은 초월했지만 아직 송명진이나 장혁필과 비교하기는 무리다.

띠링!

[수술 스킬 마스터리가 생성되었습니다.]

[마스터리는 수술의 숙련도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집도 연습 또는 실제 집도, 집도 보조로 수치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마스터리가 최대치를 달성하며 추가 보너스가 발생합니다.]

상태창을 확인하자 패시브 스킬 아래로 마스터리가 생겼다.

[CABG(관상동맥 우회술) 3/5]

[MIDCAB(최소침습 관상동맥 우회술) 0/5]

[OPCAB(무인공심폐기 관상동맥 우회술) 0/5]

[대동맥판막 수술 1/5]

[팔로 4징증 수술 3/5]

.

.

.

최기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마스터리가 생기자 수술의 숙련도를 한 번에 살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최고를 향해서와 연관이 있는 팔로 4징증 수술과 CABG의 숙련도가 상대적으로 높음을 알 수 있다.

'전부 다 마스터하려면 한세월이겠네.'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뒷정리를 마쳤다.

이윽고 도착한 흉부외과 병동,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들이 먼저 인사를 해 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최기석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스테이션에는 그동안 본 적 없는 낯선 간호사 두 명이 있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간호사의 이름은 이예림, 그 옆에 있는 간호사의 이름은 박아라다.

강하나가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공백이 생겼고 때마침 기존 간호사 한 명도 그만둬서 새 간호사가 온 것이다.

"최 선생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벌써 흉부외과 스타라면서요?"

박아라가 먼저 말을 걸었다.

"다들 좋게 봐주시는 거죠. 그렇게 잘난 놈은 아닙니다."

"에이. 신경외과에 있었던 저한테 소문이 퍼질 정도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건데.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박아라 선생님."

"근데 최 선생님. 초면에 죄송한데 한 가지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제 이름을 성까지 부르는 건 자제해 주셨으면 해서요."

"왜요? 박아라. 이름 예쁘잖아요?"

"그럼 계속 불러 보실래요?"

"박아라. 박아라. 박아라……."

이름을 계속 부르던 최기석은 흠칫 몸을 떨었다.

생각해 보니 어감이 좋지 않다.

그가 낌새를 차리자 이예림이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너 기분 나쁘게 웃을래?"

"아…… 죄송합니다."

이예림이 표정을 고치자 박아라가 말을 이었다.

"최 선생님. 제가 괜한 부탁한 게 아니라는 거, 아시겠죠?"

"네. 앞으로 주의할게요. 그나저나 학교 다닐 때 고생 많으셨겠네요."

"중학교 때 남녀 공학이었는데 완전 죽을 맛이었어요. 남자애들이 놀려 대는 통에 노이로제 걸리는 줄 알았다니까요."

최기석은 박아라의 하소연을 들어 준 뒤 회의실로 들어갔다.

"선생님?"

"어. 왔어?"

먼저 와 있던 김태식이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일찍 오셨네요?"

"어제 회식 끝나고 근처 사우나에서 잤거든. 조금 자다가 바로 나왔어."

"몇 시까지 드셨는데요?"

"5차에 새벽 3시."

김태식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우리 팀에 술 못 먹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특히 강하나 간호사는 완전 주당이던데? 5차까지 멀쩡했어."

"과장님은요?"

"과장님은 3차에서 가셨지."

"오랜만에 달리셨네요."

최기석은 피식 웃었다.

김태식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할 때 술을 오래 마신다. 어제 5차까지 간 걸 보면 세이버 팀원들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김태식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스태프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이윽고 시작된 회의.

회의는 별 탈 없이 지나갔으며 회진도 무사히 끝났다.

수술 스크럽을 한 차례 서자 오전 11시가 됐다.

모처럼의 여유가 생겼기에 최미순이 있는 호흡기내과 병동을 가보기로 했다.

병동 복도를 걷던 도중 한민우와 마주쳤다.

"……."

"……."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지나쳤다.

'자업자득이지.'

최기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저번의 그 사건 이후 한민우와의 앙금을 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민우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날 이후 인사조차 받지 않았다.

인사를 해도 받지 않는 사람에게 인사를 할 필요는 없는 법.

최기석은 한민우가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있는 경우가 아니면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이 선생님. 이만식 환자 말인데요."

한민우가 스테이션에 들어가서 이예림의 등 뒤에 섰다.

수작을 부리려는 게 한 눈에 보였다.

최기석은 쯧쯧 혀를 차며 흉부외과 병동을 떠났다.

드르르륵.

"어르신. 오늘은 좀 어떠세요?"

"아따 어서 와. 의사 총각."

최미순이 반갑게 손짓하며 그를 맞이했다.

"어젯밤에 서방 꿈을 꿔서 그런가잉? 원래 요 시간쯤 되면 팔다리가 쑤시고 결리는디. 오늘은 그런 게 하나도 없어."

"그러게요. 표정도 밝아 보이세요."

"암. 요로코롬만 아프면 내도 잘 참을 수 있지."

최미순의 미소에 마음이 놓였다. 어제 얻은 페인킬러 스킬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어제 아드님하고 이야기해 봤는데 힘들어서 항암 치료 안 받으려고 하셨다면서요?"

"입 싼 놈이 그걸 말해 부렸어?"

"제가 특별히 부탁해서 그런 거예요."

최기석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어떠세요? 오늘 정도만 아프면 충분히 치료받으실 수 있겠죠."

"물론이제."

"둘째 아드님 손주 볼 때까지 건강하시기로 했던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최기석의 말에 최미순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미순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자 상태가 보통으로 나왔다.

항암 치료를 잘 끝낸다면 양호가 되리라.

"평소보다 덜 아프다고 해서 무리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최미순과 작별하고 순환기내과를 찾았다.

마침 병실에서 나오는 정설화와 마주쳤다.

"환자 보고 있었어?"

"응. 내과에는 웬일이야?"

"왜는 왜야, 너 보고 싶어서 왔지."

최기석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고 정설화는 얼굴을 붉히며 몸을 배배 꼬았다.

"시간 있으면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좋아."

두 사람은 휴게실에 자리를 잡았다.

최기석은 캔 커피를 뽑아서 정설화에게 건네고 맞은편에 앉았다.

의료모드로 그녀를 살핀 순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성장속도는 그와 버금갈 정도다.

내과 레벨이 4단계로 이미 그를 뛰어 넘었다.

EKG(심전도) 마스터라는 칭호를 새로 가졌으며, 김철우와는 사제의 연을 맺었다.

그가 송명진과 사제의 연을 맺었듯이 말이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그냥. 오늘따라 더 예쁜 것 같아서."

최기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오늘이 PCI(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하는 날이지?"

"응. 조금 있다가 조영실로 가 봐야 돼. 어떡해. 벌써부터 떨려."

정설화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내과 레지던트가 PCI를 하는 것은 외과 레지던트가 첫 집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나한테 PCI는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이례적인 일이긴 하지. 하지만 김 교수님이 그만큼 너를 믿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잖아? 너 말고 다른 레지한테는 PCI 제안 안 했지?"

"응."

"그럴 줄 알았지."

최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설화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날 믿어.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PCI보다 더한 것도."

정설화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격려를 사용했다.

[격려를 받은 대상의 감정이 밝아집니다.]

[면역력, 질병저항력, 재생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라포 4단계의 대상에게 특수 효과 5단계 기백이 주어집니다.]

[기백: 처치 정확도와 처치 속도가 2배 증가합니다.]

"고마워."

정설화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그러는데 참관해도 되지?"

"지금 같이 가자."

두 사람은 휴게실을 떠나 심혈관 조영실로 향했다.

최기석은 참관실에 자리 잡았으며 정설화는 김철우와 환자의 곁에 섰다.

막간의 브리핑 이후 시작되는 PCI.

스으으윽. 스으으윽.

정설화가 환부를 넓게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불길한 전자음이 터지며 환자의 바이탈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혈압과 호흡이 떨어지는 바람에 PCI는 중단되었다.

딱. 딱. 딱.

최기석은 초조함을 느끼며 이를 딱딱 부딪쳤다.

시술도 하기 전에 문제가 터지다니…….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정설화의 첫 시술은 물거품이 된다.

고민 끝에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살폈다.

그러자 이유가 보였다.

환자의 바이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전화 좀 쓸게요."

"네."

스태프의 허락을 받아 로젯 안으로 전화를 걸었다.

"설화야. 그 환자 이대로 수술하면 안 돼. 그 환자는……."

"나도 알아."

"안다고?"

"안 그래도 방금 그것 때문에 교수님한테 칭찬받았어. 잘 맞췄다고."

정설화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참관실에서 잘 봐줘. 내 첫 시술."

정설화가 자신만만하게 통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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