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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04화 (104/407)

다사다난 (7)

뒤이어 최기석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뒤를 따랐다.

"수술 전부터 쉽지 않네."

김태식이 미간을 찌푸렸다.

환자 감시 장치를 확인하자 혈압과 맥박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정상이던 호흡도 급강하했다.

"바이탈부터 잡고 시작하자."

"네. 이 선생은 에피네프린 IV로 놓고 김 선생은 블러드 팩 좀 짜 줘요."

최기석의 지시에 인턴들이 빠릿하게 움직였다.

그사이 최기석은 환자에게 산소마스크를 달았다.

'제법인데?'

김태식은 처치 중인 최기석에게 감탄했다.

복부 대동맥류 파열 환자는 응급환자 중의 응급환자다. 그런데 최기석은 레지던트 1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신처럼.

"바이탈은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습니다."

"좋았어. 시작해 보자."

김태식은 환자의 복부를 넓게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메스."

소독간호사에게 메스를 건네받아 복부를 갈랐다.

스으으윽.

피부와 피하지방, 복막이 갈라지면서 복부 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런!"

김태식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절개가 끝나자마자 한 줄기 피가 솟구쳐 얼굴에 튀었다. 광학안경 루뻬와 마스크, 얼굴 일부에 새빨간 피가 묻었다.

"제가 처치하고 있겠습니다."

"미안. 일단 대동맥 경부 모스키토(혈관겸자)로 잡고 석션 해."

"네."

김태식이 자리를 비운 사이 최기석은 용의 눈을 사용했다. 그리고 석션기로 피를 흡입하며 파열된 대동맥 상부를 찾아 나갔다.

'이건 너무 심하잖아.'

최기석은 입술을 깨물었다.

석션기로 피를 흡입해도 피가 금방 넘쳐 나서 복부 대동맥을 찾기 힘들었다.

"김 선생은 나랑 같이 석션 해요. 이 선생은 승압제 한 번 더 IV로 놓고 블러드 팩 갈아 줘요. 출혈이 너무 심해요."

"네!"

인턴과 함께 석션을 하자 다소 시야가 트였다.

최기석은 터져 버린 대동맥 줄기를 확인하고 피가 다시 차오르기 전에 모스키토로 붙잡았다.

딸깍!

혈관겸자로 대동맥을 붙잡자 출혈이 줄어들었다.

"휴우……."

최기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김태식이 복장과 장비를 재정비하고 복귀했다.

"잘했어. 한 고비는 넘겼네. 하지만 진짜 수술은 지금부터다."

"네!"

"잘 쫓아와. 메스."

김태식이 메스를 손에 쥐었다.

복부 대동맥이 파열됐을 경우 출혈 부위를 잡아 주는 게 급선무다. 이후에는 파열된 대동맥 주변을 정리하고 인조혈관으로 대동맥을 복구시키는 것이 순서다.

"5-0 Prolene."

김태식은 봉합사를 이용해 대동맥 주변의 손상된 작은 혈관들을 봉합해 주었다.

만렙이 된 고속집도 스킬 효과 때문일까.

봉합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속도만으로 따지면 송명진을 뛰어넘었다.

그렇다고 봉합의 견고함이 헐렁한 것도 아니라서 놀라웠다. 한마디로 응급수술에 최적화된 봉합술이다.

"보비(전기 소작기)."

"네."

치이이이익.

전기 소작기가 조직을 지지며 대동맥을 반으로 갈랐다.

'집중하자.'

최기석은 포셉으로 환자의 복부 대동맥 입구를 잡아 주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겸자를 이용해 Daklon(인공혈관)을 잡아 대동맥 입구에 위치시켰다.

파열된 대동맥을 인조혈관으로 대체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

이 작업이 실패하면 그동안의 수고는 의미가 없다.

"잘 잡아라. 흔들리면 안 돼."

"네!"

최기석이 조직을 잡고 있는 동안 김태식이 봉합에 나섰다.

봉합술은 조직을 한 땀 한 땀 꿰매는 단순 단속 봉합, 시간은 오래 걸릴지 몰라도 견고함은 뛰어나다.

'대단해.'

김태식은 힐끔 최기석을 응시했다.

봉합을 시작한지 15분이 지났지만 최기석은 손 한 번 떨지 않고 조직을 붙잡고 있었다. 덕분에 봉합이 어긋나거나 봉합침이 겉돌지 않았다.

"조금만 더 참아. 이제 곧 끝난다."

김태식은 대동맥의 남은 한 분지를 재빠르게 인공혈관으로 대체했다.

이것으로 수술은 끝.

"그럼 혈관겸자 떼겠습니다."

최기석은 대동맥 상부를 잡고 있던 모스키트를 풀었다.

찰칵!

피가 다시 통하면서 혈관이 꿈틀거렸다.

최기석과 김태식은 눈을 크게 뜨고 혈관을 응시했다.

혹시나 문합이 잘못됐다면 출혈이 재차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김태식이 운을 뗐다.

"휴우…… 이제 닫자."

* * *

수술실에 딸린 휴게실.

최기석은 김태식과 마주 앉아 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사망률이 높은 복부 대동맥류 파열 수술을 무사히 끝냈다.

두 사람의 얼굴은 한결 밝아졌다.

"이제 보니까 이유가 있네."

"네? 무슨 이유요?"

"장 교수님이 널 세이버 팀에 넣은 이유."

김태식이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레지던트 1년 차라고 보기에는 너무 노련해. 손재주도 탁월하고. 특히 인조혈관 잡았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야. 손이 기계니? 어떻게 이십 분이 넘게 손을 한 번도 안 떨어?"

"평소에 그런 쪽으로 연습을 하거든요."

최기석이 머쓱하게 웃었다.

손 떨림이 줄어든 이유.

그것은 양손잡이 패시브가 2단계에 오르면서 능수능란 효과가 생겼기 때문이다.

능수능란이 없었다면 오늘 같은 활약은 못했으리라.

"사실 저보다 김 선생님이 더 대단한 거 아닌가요?"

최기석은 화제를 돌렸다.

김태식은 교수가 아니라 임상 강사여서 선생님이랑 호칭을 쓴다.

"첫 출근에 복부 대동맥류 파열 환자를 치료하셨잖아요. 그것도 후유증 없이요. 치료 중 신경을 건드리면 환자한테 하지마비가 올 수도 있는데."

"뭐. 운이 좋았지."

김태식이 대답을 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지이이잉.

때마침 김태식의 콜폰이 울렸다.

"네. 교수님."

[복부 대동맥류 파열 환자 어떻게 됐어?]

"무사히 끝났습니다.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데 하루 이틀 정도 케어하다가 일반 병실로 보내면 될 것 같습니다."

[고생했다. 우리 병원에 데려온 보람이 있네.]

장혁필이 시원하게 웃었다.

"기석이가 많이 도와줬습니다. 기석이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우리 팀에 복덩이가 될 거라고. 붙어 다니면서 잘 가르쳐.]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이야기는 했어?]

"이제 할 생각입니다."

김태식은 장혁필과 대화를 마치고 최기석을 응시했다.

"오늘 저녁에 세이버 팀 회식 있다. 당직은 민 선생한테 잠깐 맡기고 나와."

* * *

그날 저녁, 병원 인근 고깃집.

세이버 팀 인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최기석은 자리에 앉아서 동료들의 얼굴을 훑었다. 대부분 구면이지만 마취의와 인공심폐기사는 오늘 처음 봤다.

마취의에 이름은 신아름.

외모는 이십 대 후반으로 보였으며 얼굴을 반쯤 덮은 뿔테 안경이 인상적이다.

본래 위장관외과 쪽 마취를 전담했는데 앞으로는 세이버 팀 마취에 집중한다고 했다.

인공심폐기의 이름은 유병세.

체구가 작고 왜소했으며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김태식처럼 외부 병원에 있다가 스카우트를 받은 케이스다.

"오늘 이 자리는 세이버 팀 식구들이 모두 모인 뜻깊은 자리입니다. 구면인 사람도 있고 초면인 사람도 있으니 일단 소개부터 합시다."

장혁필의 말에 짧은 개인 소개가 이어졌다.

"앞으로 계속 볼 사람들이니까 다들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회식 전에 마지막으로 일 이야기를 하겠어요."

"……."

"이번 주 중으로 대전 브랜치(지점병원)에서 환자 한 명이 올라옵니다. 심부전증 환자인데 조만간 우리가 팀이 그 환자의 심장이식 수술을 맡을 겁니다."

장혁필이 말을 계속했다.

"세이버 수술에 들어가기 전 호흡을 맞추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돼요.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일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신나게 마셔 봅시다."

장혁필의 건배 제안에 팀원들이 술잔을 들었다.

"세이버 팀을 위하여!"

"위하여!"

채애애앵.

잔이 부딪치고 모두가 술잔을 비웠다.

당직인 최기석이지만 첫 잔만큼은 깔끔하게 비웠다.

"우와. 달다, 달아!"

맞은편에 앉은 강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 술을 따르려 했다.

"강 쌤. 병 주세요. 자작하면 앞 사람이 재수 없다고요."

"칫. 들켰나?"

강하나가 혀를 빼꼼 내밀었다.

최기석은 강하나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술을 따라 주며 고기를 구웠다. 다른 사람들처럼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에이…… 고기 한 조각 떨어트렸네."

최기석은 불판에서 벗어난 고기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최 선생님…… 방금 뭐라고 하셨죠?"

임공심폐기사 유병세가 최기석을 빤히 쳐다봤다.

"고기 한 조각을 떨어트렸다고 했는데요? 뭔가 문제라도……."

"한 조각…… 한조…… 각?"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아닙니다. 요새 이런 쪽으로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요."

유병세가 뜻 모를 말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최기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이윽고 술잔이 돌면서 회식 분위기가 살아났다. 강하나와 신아름은 금세 언니 동생 사이가 됐으며, 다른 사람들도 마음의 벽을 허물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세이버 팀의 원투 펀치인 장혁필과 김태식도 예외는 아니다.

장혁필은 술을 퍼먹으며 솔선수범해서 망가졌다.

그에 반해 김태식은 최기석에게 윤지혜의 신상을 물어봤다.

"윤 교수님. 남자친구 없지?"

"이상형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

최기석은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답변을 해 주었다.

솔직히 두 사람이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연애를 해서 병원 생활이 망가지는 타입이 있는 반면, 의사 생활을 더 잘하는 타입도 있다.

두 사람이 연애한다면 후자일 거라 판단했다.

그도 정설화의 연애로 득을 더 많이 보고 있었기에.

최기석은 수술 보조에 이은 회식 보조를 하던 중 화장실로 갔다.

먼저 온 장혁필이 소변을 보고 있었다.

"교수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시원하게 볼일 보고 나와."

이윽고 두 사람은 식당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할 말이 뭔데?"

"회식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꼭 아셔야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얼마 전 송 교수님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때 말씀하시기를 저를 미국으로 부르는 시기가 빨라질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미국이라……."

장혁필이 턱을 쓸어내렸다.

지금까지 보였던 취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니까 세이버 팀 활동 중에 미국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뭐. 처음부터 생각했던 부분이니까 상관없어. 하지만 말이야. 미국에 가는 거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장혁필이 최기석을 보며 말을 이었다.

"흉부외과 대접이 거지 같다는 건 너나 나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 그래도 굳이 미국에 갈 필요가 있을까? 여기서 밟았던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할지 모르는데?"

"……."

"게다가 너만 한 실력이면 국내에서 충분히 스타가 될 수 있어. 펠로우까지만 잘 끝내면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올 거고 매스컴으로 유명세도 타겠지."

"절 너무 높게 평가하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오히려 네가 너를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어."

장혁필이 휘휘 고개를 저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너를 좋게 보는 이유는 네가 실력이 있으면서 머리까지 쓰기 시작했다는 거지. 내가 세이버 팀 합류를 제안했을 때 넌 나한테 이렇게 말했어. 권 교수님이 널 제1보조 자리까지 유동적으로 쓴다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잖아. 권 교수님은 분명 널 제2보조로까지만 쓰겠다고 했을 거야."

"거기까지 꿰뚫어 보셨군요."

최기석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세이버 팀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난 그게 마음에 든다."

"진심이십니까?"

"그래. 엄밀하게 말하면 넌 그 순간부터 송 교수님과 달라진 거야. 즉 넌 송 교수님과 달리 이 거지 같은 대한민국 흉부외과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라고."

"……."

"네가 외국에 갈 필요가 없다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고민되겠지만 잘 생각해 봐."

장혁필이 어깨를 두드리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결국 한국에 남으라는 건가?"

최기석은 중얼거리며 달을 올려다보았다.

* * *

회식 분위기는 뜨거웠지만 최기석은 중간에 식당을 나왔다.

당직을 잠시 민주혁에게 맡겼을 뿐, 다시 돌아가야 한다.

흉부외과로 복귀하기 전 호흡기내과 병동을 잠시 들렀다.

"안녕하세요."

최미순의 보호자 양태민에게 인사하고 침상 옆에 섰다.

최미순은 아침과 같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선생님.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양태민과 병실을 나와서 보호자 휴게실을 찾았다.

"정말 항암 치료 말고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양태민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해서요. 이제 일주 차 치료 받았는데 벌써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셔서."

"……수술을 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어르신의 체력이 받쳐 주지 않아서 불가능합니다."

"알긴 아는데요.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하시니까."

"죄송합니다. 저희로써도 더 이상은……."

최기석은 말을 흐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역시 항암 치료로 고통스러워하는 최미순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어머니가 낮에는 그런 말씀도 하셨어요. 치료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내려가고 싶다고요. 어차피 오래 못 살 텐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항암 치료가 힘든 건 알지만 꼭 받으셔야 합니다. 암세포가 다시 전이를 일으킨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어요."

"하아…… 알겠습니다. 전 담배 피고 올게요."

양태민이 자리를 떠났고 최기석은 다시 최미순의 병실로 돌아갔다.

무언가 없을까.

최미순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최기석의 손이 최미순의 쪼글쪼글한 손을 부드럽게 덮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띠링!

[단 한 번뿐인 기적 임무를 달성하셨습니다. 유사한 내용의 임무는 다시 발생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스킬 페인킬러가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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