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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00화 (100/407)

다사다난 (3)

엘리베이터를 타고 외과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조금 과장해서 이곳 환자의 삼분의 일이 최기석의 환자다.

식도협착으로 입원한 이지애, 에크모를 달고 있는 고정옥. 막 MIDCAB 수술을 끝낸 박순재.

마지막으로 닥터 헬기를 타고 온 장태식까지.

최기석은 환자들의 간호기록지를 살핀 후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환자들의 상태는 전부 보통.

그중에서도 이지애와 고정옥은 더 이상 중환자실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최기석은 고정옥의 에크모를 제거하고 이영호를 불렀다.

이영호는 생각보다 빨리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선배. 무슨 일 있으세요?"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요. 선배가 콜 하면 왠지 큰일이 터졌을 것 같아서……."

이영호의 말에 최기석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동안의 행적을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다행히 이번은 아니야. 이 두 환자 일반 병실로 옮기자."

"네!"

두 사람은 침상을 밀며 흉부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있었던 응급수술 말이야."

"헬기 타고 온 이야기하시는 거죠?"

"그래. 그 환자 수술할 때 강하나 간호사가 보조 섰잖아. 그건 너만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괜히 소문 퍼지면 우리만 힘들어져."

"에이. 선배. 절 뭐로 보시는 거예요. 저도 그렇게까지 센스가 없지는 않아요."

이영호가 손을 입에 대고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그가 최기석을 멘토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소문이 퍼져 나갈 일은 없으리라.

"오늘 당직이야?"

"네."

"있다가 야식이나 같이 먹자."

최기석은 환자를 병실에 옮기고 당직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쁘게 오더를 내린 후 송명진이 보낸 메일을 확인했다. 메일에는 평소와 달리 동영상이 첨부되었다.

동영상의 이름은 메이죠 라이브 시술.

송명진이 메이죠 수술에서 판막 수술 한 것을 동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딸칵!

마우스를 클릭하자 동영상이 떠올랐다.

동영상은 메이죠 병원 대강당을 비추며 시작됐다.

대강당에는 정장을 차려 입은 미국 각지의 흉부외과 의사들이 빼곡했다.

"오늘은 한국에서 온 송 교수의 라이브 시술이 있는 날입니다. 송 교수가 집도하는 환자는……."

진행자가 연단에 서서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동안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던 탓일까.

진행자의 말이 예상보다 훨씬 잘 들렸다.

"그럼 지금부터 송 교수의 무봉합 대동맥판막 치환술을 시작합니다."

멘트와 더불어 대강당에 있는 스크린에 수술실이 떠올랐다.

송명진은 환자의 곁에 서서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쿵. 쿵. 쿵.

심장이 요동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곁에 있던 스승이다.

그런데 지금은 메이죠 병원에 자리 잡고 내로라하는 흉부외과의들 앞에서 라이브 시술 중이다.

송명진이 자랑스러웠다.

"송 교수, 준비됐습니까?"

"물론이에요."

송명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이크를 끼고 있었기에 그의 목소리를 대강당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수술은 특별히 신경 쓰신 건가?'

최기석은 마른침을 삼켰다.

오늘 있을 무봉합 대동맥판막 치환술.

이것은 기존 수술과 달리 심장에 인공판막을 봉합과정 없이 삽입한다. 이를 통해 인공심폐기로 인한 환자의 부담을 줄이고 수술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가진다.

하지만 최기석은 송명진이 무봉합 대동맥판막 치환술을 의진대병원에서 펼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조건에 맞는 환자를 찾지 못했던 것인지.

미완성이라서 숨겨 두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부터 수술을 시작합니다."

송명진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수술이 시작됐다.

스으으윽.

메스가 상행대동맥을 갈랐다.

상행대동맥이 갈라지자 병든 대동맥판막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판막 주변에는 힘없이 너덜거리는 조직들이 있었으며 대동맥판막은 각종 찌꺼기로 좁아졌다.

"아시다시피 수술 중인 환자는 노령입니다. 기존 대동맥 치환술을 할 경우 환자의 체력 부담이 큽니다. 그렇다고 경피적 대동맥 삽입술(카테터를 이용한 시술)을 하면 병든 주변 조직과 기존 판막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습니다."

송명진이 유창한 영어로 수술의 의의를 설명했다.

최기석은 스승의 또 다른 모습에 한 번 더 반했다.

"……지금부터 주변 조직을 제거하고 판막을 삽입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메스."

송명진이 메스로 덜렁거리는 조직들을 박리해 나갔다.

손놀림은 경쾌했으며 다른 혈관이나 조직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대단하군요."

"정교한 처치를 저만한 속도로 해내다니……."

라이브 시술을 관람 중인 교수 몇몇이 감탄을 터뜨렸다.

"스티브. 판막."

"네!"

스티브가 특별히 제작된 판막을 송명진에게 건넸다.

송명진은 판막을 대고 대동맥에 꽂아 넣었다.

이후 포셉으로 인공판막을 건드려 봤지만 판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무봉합 대동맥판막 치환술이다.

"식염수."

송명진의 지시에 스티브가 생리식염수로 환류 시험을 했다.

기존에 병든 판막이라면 생리식염수가 역류했겠지만 치환술을 펼치고 난 후에는 역류가 없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역시 교수님!"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치켜들었다.

송명진의 수술 성공이 자신의 일처럼 기뻤다.

이윽고 송명진이 수술 부위를 닫으며 쏟아지는 질문들을 받았다.

물 흐르는 듯한 영어와 해박한 지식.

강당에 있는 의사들이 탄복했다.

심지어 송명진을 헐뜯기 위해 온 이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최기석은 동영상이 끝났음에도 멍하니 모니터를 응시했다.

아직 여운이 남았다.

더불어 자신도 송명진처럼 세계의 흉부외과의들 앞에서 멋지게 수술을 성공시키고 싶어졌다.

최기석은 물을 마시고 영어 교재를 펼쳤다.

라이브를 보고 나니 영어 공부에 대한 의욕이 한층 강해졌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윤지혜가 안으로 들어왔다.

"공부 중이야?"

"아직 시작 안 했습니다."

"그럼 잠깐 이야기하자."

윤지혜가 최기석의 맞은편에 앉았다.

MIDCAB 수술을 잘 마쳐서 그런지 전보다 얼굴이 밝았다.

"이제 홀가분하시죠?"

"응."

윤지혜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장 교수님에게 들었어. 내 수술 보조 서려고 일부러 무리했다면서?"

"교수님과 약속했으니까요.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죠."

"고마워."

윤지혜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최기석이 수술실에 들어온 순간 긴장감이 사르르 녹았다.

마치 마법을 부린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수술을 무사히 끝냈다.

"제가 뭘요. 로봇팔 세팅한 거 말고는 한 일도 없는데."

"아니야. 네가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어."

말을 꺼내는 윤지혜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최기석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이 기회에 저도 교수님께 한마디 드려도 될까요?"

"말해 봐."

"제가 보기에 교수님은 모든 일을 혼자서 다하시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남들보다 힘들고 외로운 것 같고요."

"……."

"그러니까 가끔은 주변 사람에게 기대는 게 어떨까 싶어요. 장 교수님이 좀 계산적이긴 하지만 윤 교수님이 부탁하면 나 몰라라 할 사람도 아니고. 저도 의외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요."

최기석의 말에 윤지혜가 침묵을 지켰다.

"어…… 교수님?"

최기석은 황급하게 일어나 윤지혜에게 다가갔다. 윤지혜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괘…… 괜찮아."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네가 미안할 필요 없어.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뭐."

윤지혜가 가운으로 눈가를 훔치며 말을 이었다.

"그냥 갑자기 가슴이 북받쳐서……. 네가 진심으로 날 위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이런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윤지혜의 말이 최기석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가 이런 위로조차 듣지 못할 만큼 철저하게 혼자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쩌면 그녀는 과거의 자신보다 힘겨운 싸움을 해 왔는지 모른다.

"기분 푸세요. 제가 재미있는 거 보여 드릴게요."

최기석은 탁자에 놓인 펜을 꺼내서 저글링을 시작했다. 볼펜 세 개가 그의 손 위에서 원을 그렸다.

"뭐…… 뭐야. 이게?"

"보시다시피 저글링이요. 오늘 새로 만든 개인기예요."

"너 의사 맞아?"

최기석이 저글링하는 모습에 윤지혜가 피식 웃었다.

"어! 교수님. 웃으셨다.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바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윤지혜가 주먹으로 장난스럽게 최기석의 팔을 때렸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충고 고마워. 네 말, 꼭 기억할게."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대신 너도 힘들면 나한테 기대야 돼. 알았지?"

"네!"

최기석의 씩씩한 대답에 윤지혜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띠링!

[진심에서 진심으로(2) 임무를 수행하셨습니다.]

[윤지혜의 패시브 스킬, 로봇공학을 획득하셨습니다.]

패시브 스킬

NEW [로봇공학 Lv.1]

- 로봇 수술을 할 경우 로봇을 다루는 능력과 로봇 처치 속도가 1.5배 상승합니다.

- 레벨이 증가할수록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최대 레벨은 3단계입니다.

"갑자기 왜 그래?"

최기석이 돌처럼 굳어 있자 윤지혜가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그건 그렇고 오신 김에 야식이라도 드실래요?"

"그럴까?"

"역시. 거절 안 하실 줄 알았어요?"

"너 아까부터 너무 기어오른다?"

윤지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교수님이 나무도 아닌데 어떻게 기어오르겠어요."

"……."

"죄송해요. 야식 시킬게요."

최기석은 깨갱거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최기석은 송명진이 보낸 논문을 읽고 감상문을 보냈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장문의 이메일 편지를 첨부했다.

편지에는 라이브 수술에서 받은 감명과 자신이 의진대병원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이 적혔다.

당직실을 나와 아지트에서 수술연습을 하고 다시 병동으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에크모를 제거하고 3인실에 들어온 고정옥이다.

고정옥은 눈을 뜬 채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깨셨어요?"

"아, 네. 안녕하세요."

고정옥이 최기석을 보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얘들이 그러는데 선생님이 처치를 잘해 주셔서 살았다고……."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몸은 좀 어떠세요?"

"팔다리가 쑤시기는 하는데, 다른 건 괜찮아요."

"호흡이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네. 전혀요."

고정옥이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

"우리 그 사람이 면회를 못 오게 되어 있다고 들었어요. 그것 좀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 사람이라면, 김용민 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최기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김용민은 고정옥과 교재하는 사이지만 교통사고를 사주한 인물일 수 있었다.

"네. 의식이 돌아오니까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네요."

"자제분들에게 김용민 씨에 대한 이야기는 들으셨나요?"

"들었어요."

고정옥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용민 씨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네요. 세상에 보험금을 타려고 저를 죽이려 했다니…… 소설에 나올 법한 이야기 아닌가요?"

"아시겠지만 소설보다 현실에서 더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때도 있습니다."

"불쾌하네요. 선생님도 그 사람을 살인자로 몰고 가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어쨌거나 그 사람 면회 금지는 풀어 주세요. 지금 저한테는 그 사람밖에 없어요."

고정옥이 최기석을 똑바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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