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1)
"환자는 어떻게 다쳤죠?"
최기석은 뒤늦게 스태프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산에서 추락했다고 들었습니다. 헬기가 뜬 걸 보면 경증은 아닐 것 같은데……."
"당연히 그렇겠죠."
최기석의 시선이 다시 헬기로 향했다.
헬기가 가까워지면서 심장이 쿵쿵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세찬 바람에 머리카락과 가운이 정신없이 휘날렸다.
닥터 헬기가 뿜어내는 존재감은 남달랐다.
이윽고 헬기가 착륙하고 문이 열렸다.
타다다다닥.
최기석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헬기를 향해 달렸다.
"이 환자입니다."
헬기에서 환자를 살피던 응급구조사 손창민이 환자의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최기석은 브리핑을 들으며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살폈다.
체력: 2/10
주 증상: 호흡곤란 / 흉통 / 사지통증
아픈 부위: 심장 / 횡격막 / 폐
진단명: 심장파열 / 혈흉 / 심장압전 / 횡격막파열 / 급성 경막하출혈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near death)
과거력: 없음
'젠장.'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환자에 대한 걱정과 윤지혜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과연 환자를 살려내고 MIDCAB 수술 보조 하는 일까지 가능할까.
"혈압과 맥박이 계속 떨어집니다. 심실세동(심장이 수축하지 못해서 피를 보내지 못하는 증상)도 오고 있어요!"
응급실 스태프 이찬성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심장파열로 인한 혈흉, 거기서 혈흉으로 인해 다시 심장압전이 찾아온 것이다.
지금은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길 여유조차 없다.
최기석은 청진기를 환자의 가슴에 대고 심음과 폐음을 청취했다.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흉관삽관 세트 챙겨 왔어요?"
"가져 오기는 했는데…… 설마 헬기에서 처치하게요?"
"네."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인 검사는 해 봐야죠. 혈흉이나 기흉이라는 증거도 없는데."
"못 믿겠으면 직접 들어 봐요."
최기석이 청진기를 내밀자 이찬성이 주춤거렸다.
"아니, 내가 꼭 청취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일반적인 절차대로 하자는 건데."
"이 선생님. 환자 앞에서 몸 사리는 겁니까!"
최기석이 호통을 쳤다.
"환자를 살필 자신도 없고 환자를 책임질 자신도 없으면 제 말을 따르세요. 아셨습니까?"
"……."
"아셨냐고요!"
"……네."
최기석의 따끔한 지적에 이찬성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기죽은 모습을 보였다.
띠링!
[신규 스탯 카리스마가 개방되었습니다.]
[카리스마: 2]
[카리스마: 동료들과 환자들을 본인의 뜻대로 행동하도록 이끄는 능력치입니다. 카리스마가 높을수록 따르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며 이들의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정치력과 일부 영향이 있습니다.]
"세트 펼치세요. 빨리!"
최기석은 알림을 무시하고 처치 준비에 나섰다.
[각성 CPR 버프를 사용합니다. 30분간 지속됩니다.]
- 호흡에 관련된 처치를 할 경우 환자가 호흡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30퍼센트 증가합니다. 흉부 압박을 할 경우 혈액 순환 속도가 2배 상승하며 갈비뼈가 부러지지 않습니다.
- 제세동기를 사용할 경우 환자 심장 회복률이 1.5배 상승합니다.
[얼어붙은 심장의 혹한 효과가 스태프에게 적용됩니다.]
스킬을 사용한 후 수술용 장갑을 끼고 흉관삽관에 나섰다.
'말도 안 돼. 처치가 이렇게 빨라?'
'레지던트 1년 차 맞아?'
최기석의 당차고 재빠른 손놀림에 스태프들이 혀를 둘렀다.
최기석은 마치 식사할 때 수저를 뜨는 것처럼 흉관삽관을 하고 있었다.
푸우우욱!
콸콸콸콸!
심낭에 고였던 피가 배액병으로 세차게 쏟아졌다.
고인 피가 어찌나 많았던지 삽시간에 배액병의 사분의 일이 차올랐다.
최기석은 간신히 처치를 마치고 헬기에 비치된 환자 감시 장치를 응시했다.
'이런!'
호흡이 바닥까지 떨어졌으며 맥박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이 선생님은 기관삽관, 박 선생님은 에피네프린 원 앰플 IV(정맥주사)요."
최기석은 지시를 내리고 벽에 붙어 있는 제세동기를 두 손에 쥐었다. 그리고 제세동기의 한쪽 패들에 젤리를 바른 후 다른 한쪽의 패들에 비벼 묻혔다.
"충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네."
응급구조사 손창민이 충전양을 200J로 맞추고 충전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램프에 불이 들어오고 삐삐 하는 전자음이 울렸다.
"Charge!"
"다들 비키세요. Clear!"
쿵!
전류가 흐르면서 환자의 몸이 팔딱 뛰어올랐다.
"200J!"
"Charge!"
"Clear!"
쿵!
'힘내세요. 제발.'
최기석은 환자를 내려다보며 간절히 빌었다. 환자가 눈앞에서 죽는 것도, 침통한 마음으로 보호자들에게 사망선고를 하는 것도, 보호자들의 애끓는 눈물을 지켜보는 것도 싫었다.
"200J!"
"Charge!"
"Clear!"
쿵!
"심장 다시 뜁니다!"
손창민의 목소리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환자의 바이탈은 간신히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싸움은 지금부터다. 흉부외상과 머리외상을 처치하지 못하면 환자는 언제 황천으로 떠나도 이상하지 않다.
"이 선생님은 응급실 가서 흉부 CT랑 뇌 CT, 그리고 다른 검사 오더 내려 주세요. 다른 분들은 저와 같이 환자 싣고 중환자실로 이동합니다."
"네."
최기석의 지시에 스태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최기석은 온몸이 땀에 젖도록 앰부백을 짜며 중환자실을 찾았다.
이후 환자는 응급검사에 들어갔고 검사 결과도 나왔다.
진단명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확인한 것과 일치했다.
다만 뇌 쪽 출혈은 심하지 않았기에 신경외과 처치보다 흉부외과 처치가 선행될 필요가 있었다.
"교수님. 닥터 헬기타고 내원한 환자 있습니다. 응급수술이 필요할 것 같은데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바로 간다.]
콜을 하자 장혁필이 흔쾌히 대답했다.
최기석은 장혁필을 기다리는 중 수술실을 잡고 수술에 나설 수 있는 스태프들을 알아보았다.
'아…….'
통화를 하다가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왜 불행한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닥터 헬기가 뜬 사이 응급환자가 방문해서 스태프들이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현재 심장파열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인원은 셋뿐.
장혁필, 최기석, 이영호다.
문제는 심장파열 환자를 수술하게 되면 최기석은 윤지혜의 수술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 수술 보조를 하면서 그녀에게 혹한효과를 주고 싶었거늘.
"이 환자야?"
장혁필이 헐레벌떡 달려와 그의 곁에 섰다.
최기석은 환자의 상태와 그동안 했던 처치와 검사 결과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장혁필은 브리핑을 듣고 검사결과를 살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실은 잡았지?"
"네. 그런데 교수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혹시 이 환자 수술, 최대한 빨리 끝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윤 교수 MIDCAB 보조를 서기로 되어 있습니다."
"몇 시에 들어가는데?"
"그게…… 한 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가만 있어 보자. 그럼 심장파열 환자 수술을 40분 안에 마쳐야겠네?"
장혁필의 질문에 최기석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사실 본인의 제안이 무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더욱이 수술 스태프도 3명뿐이지 않은가.
"일단 해 보자."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영호가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수술 스태프가 전부 모인 상황, 세 사람은 지체 없이 수술실로 달렸다.
박박박박.
스크럽을 하고 로젯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마취의가 전신마취를 시행했고 세 사람은 각자 위치를 잡았다.
최기석의 자리는 장혁필의 맞은편.
오랜만에 제1보조로 들어가게 됐다.
스으으으윽.
최기석은 포비돈으로 환자의 복부와 가슴을 넓게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지금부터 심장파열 수술을 시작한다. 메스."
장혁필의 외침에 소독간호사가 메스를 건넸다.
장혁필이 메스로 환자의 목 아래부터 명치 부분을 가르자 흉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최기석은 전기톱을 들고 환자의 흉골을 갈랐다.
빠드드득. 빠드드득.
뼈 갈라지는 소리가 수술실에 울렸다.
흉골을 반으로 가르고서 심막을 절제하자 환자의 심장이 보였다.
'이래서는…….'
최기석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우측 심막에 7cm 정도 되는 열상(찢어진 상처)이, 우심방 쪽에 3cm 되는 열상이 존재했다. 환자의 출혈이 심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장혁필도 나지막하게 침음성을 흘렸다.
"여기 있습니다."
이영호가 재빠르게 견인기를 건넸다.
수술실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전보다 행동이 빠릿빠릿했다.
최기석은 환자의 가슴에 견인기를 걸고 이영호와 함께 적당한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그런데 정작 장혁필은 집도를 하지 않고 환자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교수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있지. 아주 큰 문제가."
장혁필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수술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이런 식이라면 네가 부탁한 시간은 못 맞춰."
"……애초에 제 부탁이 무리였습니다. 정상적으로 수술해 주세요."
최기석은 안타까움을 억눌렀다.
윤지혜를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재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그건 안 되지. 넌 누가 뭐래도 세이버 팀 첫 번째 스태프다. 이 정도 부탁도 들어주지 못하면 수장으로써 체면이 안 서."
"그렇다면……."
"지원군이 도착할 때가 됐는데?"
장혁필이 로젯 입구를 응시했다.
때마침 문이 열리며 수술복을 입은 한 인물이 최기석의 곁에 섰다.
최기석은 놀라서 새로 등장한 사람을 빤히 쳐다봤다.
누굴까.
흉부외과의 수술 스태프는 전무한 상황인데.
"뭘 그렇게 놀라요?"
익숙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강 선생님?"
"딩동댕. 맞혔어요."
강하나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근무가 끝났는데도 병원에 있길래 내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네가 어제 강 선생님을 설득해서 세이버 팀에 합류시켰다며?"
장혁필이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그렇지만……."
"멍 때릴 시간 없어요. 빨리 교수님 도와드려요."
강하나는 최기석 대신 견인기를 잡아당기며 다른 손으로는 석션기로 피를 빨아들였다.
"자. 그럼 속도를 내 볼까? 3-0 prolene."
끼기기긱.
니들홀더 조이는 소리가 경쾌했다.
* * *
똑. 똑. 똑.
윤지혜는 노크를 하고 VIP실로 들어갔다.
"왔어?"
박순재가 읽던 책을 내려놓고 윤지혜를 응시했다.
"네. 몸은 좀 어떠신가요?"
"수술할 때가 되기는 했나봐. 요 며칠 사이에 뻐근한 게 심해졌어."
"꼭 건강을 되찾으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야 윤 교수를 믿지."
박순재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계속했다.
"괜한 부담을 지우게 해서 미안해. 사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이 먹고 몸이 아프니까 나도 별수 없더라고."
"아닙니다. 교수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윤지혜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박순재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여전히 힘들었다.
잠시 후면 그를 수술대 위에 눕히고 몸을 갈라야 하니까.
"한국흉부외과 회원들 일부가 수술 참관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아니. 그건 걱정하지 마."
"……."
"내가 아까 전화해서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어. 윤 교수에게 더 이상 부담을 줄 수 없지."
"감사합니다."
윤지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박순재가 들어오라고 말하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조지환이다.
"안녕하십니까? 부협회장님. 마침 윤 교수도 같이 있네요?"
조지환이 능글맞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조 과장님. 반갑습니다."
조지환이 두 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침상 옆에 섰다.
"흉부외과협회 회원들의 수술 참관을 막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늙은이 수술하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아랫사람을 부르겠습니까?"
"그런가요? 저는 윤 교수 실력을 협회분들한테 자랑할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저와 윤 교수의 관계를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윤 교수가 보통 강심장이어야 말이죠. 수술도 MIDCAB으로 바꿀 만큼 배짱 있고요."
조지환이 친근하게 윤지혜의 어깨를 두들겼다.
"협회분들을 모시지 못해 아쉽지만 저라도 수술 참관을 하려고 합니다."
"……좋을 대로 하세요."
박순재가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나야 조 과장님이 참관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테니까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역시 부협회장님은 뭐가 달라도 다르십니다."
조지환이 능수능란하게 화제를 빗겨 냈다.
윤지혜는 두 사람의 대화가 길어질 것을 예감하고 실례를 구한 뒤 VIP실을 나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심호흡을 하고 수술실로 향했다.
도착해서 스태프들을 살피는데 최기석만 보이지 않았다.
"최 선생은 어떻게 됐지?"
"응급환자가 생겨서 장 교수님과 수술 중입니다. 아마 오늘 보조는 못 설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윤지혜는 무표정한 얼굴로 답하며 스크럽을 시작했다.
[수술 날짜 잡히면 꼭 저를 보조로 넣어주세요. 분명 윤 교수님 집도에 도움이 될 거예요.]
최기석이 했던 말이 떠오르자 그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물론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가슴은 머리를 따라주지 않았다.
"바보. 멍청이."
"네?"
곁에서 스크럽 하던 제1보조 유재현이 놀라서 되물었다.
"신경 쓰지 마."
윤지혜는 차갑게 말하고 로젯으로 들어갔다.
집도의 자리에 서서 박순재를 내려 보는 순간 억눌러왔던 부담감이 되살아났다.
팔이 희미하게 떨리고 머릿속이 텅 비었다.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요동쳤다.
문득 참관용 수술실을 응시하자 조지환이 그녀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저 행동은 응원일까? 아니면 협박일까?
잠시 후 마취의가 전신마취를 하면서 집도의 순간이 다가왔다.
최기석이 빠졌지만 그를 대신할 스태프는 없었기에 수술은 그대로 진행됐다.
'제발. 진정하자.'
윤지혜는 떨리는 손을 잠재우기 위해 애썼다.
수술을 호기롭게 MIDCAB으로 바꾸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물러설 곳은 없다.
"지금부터 MIDCAB 수술을 시작……."
지이이이잉.
윤지혜가 말을 마치기 전, 로젯 문이 열리고 최기석이 나타났다.
"하아…… 죄송합니다. 하아…… 응급수술이 있어서 조금 늦었습니다."
최기석이 등장하면서 얼어붙은 심장의 혹한 효과가 스태프를 휘감았다.
"아니까 빨리 자리 잡아."
윤지혜는 미소를 지으며 메스를 잡았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손 떨림은 멈췄다.
MIDCAB 따위 단숨에 해치워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