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94화 (94/407)

결정 (3)

"의사 총각?"

최미순이 최기석을 발견하고 눈을 번쩍 떴다.

어지간히 놀랐는지 몸이 흔들려 보호자인 둘째 아들 양태만이 그녀를 부축했다.

"여기는 웬일이여?"

"훈련 기간이 끝나고 가슴 진료 보는 의사가 됐어요."

최기석은 손바닥으로 심장 부근을 두들겼다. 전문용어를 쓰면 최미순이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허벌나게 반갑구먼."

"저도요."

최기석은 최미순의 인사를 받고 양태만을 응시했다.

"멀리서 올라오신 걸 보면 몸이 많이 불편하신 모양이죠?"

"네. 한 달 전부터 가슴이 너무 아프시대요. 기침도 자주 하시고 숨 쉬기도 불편하다고. 근처 병원에 가 봤더니 큰 병원에 가 보는 게 좋을 거라고 해서……."

"알겠습니다. 어르신, 일단 진료부터 볼게요."

"암. 그래야징."

최기석은 최미순의 활력징후를 재차 확인하고 청진기로 호흡음을 들었다.

호흡곤란을 느낄 만큼 호흡음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심음이 정상범위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쿨럭! 쿨럭!"

최미순이 갑자기 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황급하게 입을 가린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어르신. 손 좀 보여 주실래요?"

"와? 쭈글쭈글한 손 뭐 볼 게 있다고? 막 재채기까지 했는디."

"전 괜찮아요."

"아따, 나는 안 괜찮당게?"

최기석은 최미순과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그녀의 손바닥을 응시했다.

"……."

"……."

최기석이 그녀의 손바닥을 확인한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최미순의 손바닥에 피가 묻었다.

최미순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최기석의 시선을 피했고 최기석은 가슴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드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두려웠는지 모른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는 것이.

최미순과의 재회가 불행으로 시작하는 것이.

"어르신, 저한테는 아픈 거 숨기시면 안 돼요. 아셨죠?"

최기석은 거즈에 식염수를 묻혀서 최미순의 피 묻은 손바닥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진단명을 확인한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온몸에서 힘이 쏙 빠졌다.

"의사 총각. 왜 그려?"

"죄송해요. 아침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가 봐요. 잠시만요."

최기석은 쓴웃음을 지으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가장 먼저 흉부 엑스레이를 사진을 살피고 피 검사와 다른 검사들의 결과를 살폈다.

하지만 이 정도 검사로 최미순을 진단할 수는 없다.

"어르신. 혹시 식사는 언제 드셨어요?"

"어젯밤부터 아무 것도 안 드셨습니다. 아픈 게 점점 심해지면서 식욕도 떨어지신 것 같아요."

"물 한 모금도 안 마셔 부러지잉."

양태민과 최미순이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럼 검사 하나만 할게요. 결과가 나와 봐야 정확하겠지만 입원하셔야 할 수도 있어요."

"집에 있으면 심심헌디. 잘 됐지. 뭐."

최미순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최기석은 어색하게 웃으며 조영제를 이용한 폐 CT 검사 오더를 내렸다. 그리고 병동 일을 하기 위해 다시 흉부외과 병동으로 올라갔다.

한 시간 후 차트를 확인하자 CT판독 결과가 떠올랐다.

[Conclusion: Evidence of lung cancer(Left upper lobes)

"하아……."

최기석의 고개가 떨어졌다.

* * *

숨 가쁜 일과가 끝났다.

최기석은 평소와 같이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한 채 환자들을 살폈다. 그러던 중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는 병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니께 잘생긴 의사 총각 불러."

"어르신. 최 선생님은 바빠서 못 오셔요. 제가 대신 해 드릴게요."

"의사 총각이 안 오면 난 피 안 뽑을 겨."

대화를 듣던 최기석이 병실로 들어오자 두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조 선생. 이 어르신은 내가 처치할 테니까."

"하지만 바쁘실 텐데……."

"괜찮아."

최기석은 조은지를 내보내고 최미순의 곁에 섰다. 그제야 최미순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겨?"

"그럼요. 혈관에 놓는 주사랑 피 뽑은 건 제가 해 드리기로 했잖아요."

최기석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알렌 테스트(팔목동맥에 순환부전을 확인하는 검사)를 끝낸 후 ABGA(동맥혈 채혈)를 실시했다.

푸우우욱!

[뱀파이어 칭호 효과가 발동됩니다. 채혈 성공률이 100퍼센로 상승하며 환자의 통증이 50퍼센트 감소합니다.]

[처치로 10 P.

P를 획득하셨습니다. 환자 바라기의 활력 효과로 소량의 체력을 회복합니다.]

"바로 검사실로 보내."

"네."

주사기를 받은 조은지가 떠나면서 병실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아따 못 본 사이에 이렇게 늠름해졌는교?"

"그럼요. 이제는 제 밑에 사람도 생겼는데요."

"하여간 의사 총각은 잘할 겨. 우리나라 최고의 의사가 될 겨."

최미순이 엄지를 치켜들며 그를 추켜세웠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냥 방구석에서 TV만 봤지잉. 차라리 입원한 게 나은 것 같여. 병원에 와서 의사 총각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말이여. 그건 그렇고……."

"……."

"나 또 몹쓸 병에 걸린 거여?"

최미순의 질문에 숨이 턱 막혔다.

그녀가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 년 전에 위암을 앓고 크게 고생을 했는데 또 암에 걸렸다는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게…… 내일 검사를 더 해 봐야 알 수 있어요."

"검사는 낮에도 했잖여. 그러니께 어디가 아픈 건지 쬐간이라도 말해 봐. 아픈 데가 있으니께 입원을 시켰을 것 아니여."

"피를 토하신 걸 보면 폐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허파?"

최미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가 나왔으면 또 위가 잘못된 거 아닌가잉?"

"위에서 나오는 피를 토혈이라고 하고 폐에서 나오는 피를 객혈이라고 해요. 어르신은 여기가 아니고 여기서 피를 뱉어내신 거예요."

최기석은 검지로 복부와 가슴을 차례대로 가리켰다.

이에 최미순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게 뭣이 중허겠어. 어차피 오래 살기는 그른 몸인디."

"그런 말씀 마세요. 저랑 약속하셨잖아요. 둘째 아드님 손주 볼 때까지 건강하게 사시기로요."

"그거야 그렇지만……."

최미순이 힘없이 말을 이었다.

"근디 요즘 꿈에서 자꾸 서방이 나타나서 나보고 같이 어딜 가자고 혀. 이젠 정말 갈 때가 됐을지도 몰러."

"잘못 들으신 거예요. 하늘에 계신 남편분은 분명 오지 말라고 하셨을 거예요."

"아따 그런 거였으면 좋겄지만……."

"힘내세요. 제가 곁에 있잖아요."

최기석은 최미순의 어깨를 주무르며 격려를 사용했다.

휘이이이잉.

그의 몸에서 나온 빛이 최미순에게 스며들면서 그녀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그랴.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보지 뭐."

"암요. 그러셔야 됩니다."

최기석은 최미순과 대화를 나누다가 회의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차트에 최미순에게 필요한 검사와 처치를 넣었다.

문득 아쉬워졌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암의 스테이지(진행단계)까지 볼 수 없다는 사실이.

CT 결과상 림프 전이가 의심된다면 최소 2기 이상이라는 뜻인데…….

부디 내일 있을 조직검사가 심각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할 일을 마친 후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오늘따라 공부 효율이 좋았다.

리스닝 공부를 할 때는 교재의 영어발음이 귀에 쏙쏙 박혔다. 회화 공부를 할 때는 외워 뒀던 표현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으며 평소보다 버터 발음이 진해졌다.

'아…… 그렇구나.'

최기석은 뒤늦게 깨달았다.

오늘 아침에 얻은, 외국어 학습능력을 2배로 상승시켜 주는 젬의 효과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고서야 효율이 이렇게 상승할 수 없었다.

최기석은 영어 공부에 몰두해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고 누군가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장혁필이다.

"열심히네."

"아, 네. 교수님. 안 그래도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최기석이 이어폰을 뽑고 장혁필을 응시했고 장혁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디로 갈지 결정했나 봐?"

"네."

"대답은?"

"저는…… 장 교수님이 계신 세이버 팀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최기석의 말에 장혁필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좋은 판단이야. 빨리 성장하고 싶다면 나랑 같이 있는 게 좋지."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띠링!

[세이버 팀에 합류하셨습니다. 새로운 직급, 세이버 팀 제1, 2보조를 획득하셨습니다.]

[팀 내 활동에 따라 다양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알림이 머리를 스쳤다.

세이버 팀 활동이 의사 생활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거라는 점은 의심에 여지가 없다.

최기석은 반드시 고난도 수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권 교수님하고는 이야기 했어?"

"네. 오전에 세이버 팀에 들어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일 처리가 깔끔하네. 진짜 여우가 될 수 있겠는걸?"

"그게 무슨 말씀인지……."

"대충 넘어가."

장혁필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보드 판 앞에서 최기석을 응시했다.

"이제 정식으로 팀이 됐으니까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 볼까?"

"……."

"사실 세이버 팀의 첫 번째 스태프는 너야."

"제가요?"

최기석이 놀라서 되물었다.

심장 클리닉의 리모델링은 대략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까지 팀원이 갖춰져 있지 않다니…….

장혁필답지 않은 일 처리다.

"너무 놀랄 필요 없어. 다음 주 안에 다 정리되니까."

말을 마친 장혁필이 보드 판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집도의: 장혁필

제1보조: ?

제2보조: 최기석

마취의: 배천수

소독간호사: ?

인공심폐기사: ?

"이게 바로 우리 세이버 팀의 핵심 스태프다. 마취의는 다음 주에 합류하기로 했으니까 별 문제 없고. 인공심폐기사는 후보가 두 명 있는데 내가 선택만 하면 끝이야."

"제1보조는 윤 교수님 아닌가요?"

"아니. 윤 교수는 세이버에 안 어울려. 관상동맥 수술 파트를 맡으면서 여기까지 신경 쓸 여력도 안 되고."

"의외네요. 전 두 분이 꽤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탕! 탕!

말을 마친 장혁필이 프로젝터 포인트기로 제1보조 부분과 소독간호사 부분을 가리켰다.

"하여간 제일 시급한 건 제1보조와 소독간호사다. 제1보조는 타 대학 스태프를 스카우트할 생각인데 이게 영 쉽지가 않아."

"제1보조는 내부 인원으로 보충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 돼."

장혁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꼭 그 사람이 와야 해. 그래야 팀이 더 이슈가 되거든."

"대체 누구를 생각하고 계시길래……."

"합류하게 되면 가르쳐 줄게. 알아보니까 기석이 너와도 인연이 있더라."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소독간호사인데…… 이 사람은 네가 힘 좀 써 줘야겠다."

"제가요?"

최기석이 큰 소리로 되물었다.

레지 1년 차인 그가 무슨 수로 소독간호사를 구한단 말인가.

장혁필의 제안은 얼토당토않았다.

"너 강하나 간호사랑 친하다며? 잘 구슬리면 팀에 들어오지 않을까?"

"교수님. 강 선생은 병동 간호사입니다."

"……너 그렇게 친하면서 아직도 몰랐어? 강하나 간호사, 예전에 수술실 간호사였어. 그것도 흉부외과 수술 전문이었지. 듣기로는 실력이 일당백이었다는데?"

장혁필의 말에 최기석은 입을 쩍 벌렸다.

아재개그의 화신이 최고의 수술실 간호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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