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93화 (93/407)

결정 (2)

본격적인 일과에 앞서 강화부터 하기로 했다.

현재 소유한 아이템 중 강화가 가능한 것은 환자 바라기뿐이다.

3단계까지 강화를 한 후에는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강화석은 현재 20개가량 보유했기에 강화석이 부족해서 강화를 하지 못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휘이이이잉.

강화하겠다고 마음먹자 아이템이 강화기 속으로 들어가며 환한 빛을 뿌렸다.

띠링!

[강화에 실패하셨습니다. 환자 바라기가 강화 전 상태로 돌아갑니다. 환자 바라기(0).]

메시지가 뜬 순간 허탈함이 몰려왔다.

3단계 이상부터 10단계까지는 강화 성공률이 70퍼센트다.

그런데 재수 없게 남은 30퍼센트에 걸렸다.

'아…… 짜증나네.'

하는 수 없이 3단계까지 재차 강화하고 다시 4단계에 도전했다.

위이이이잉

[환자 바라기(+4)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환자 바라기의 활력 효과가 8퍼센트로 증가합니다.]

[일반 임무 강화 초보 탈출하기에 성공하셨습니다. 강화석 20개를 보상으로 드립니다.]

추가된 강화석이 악마처럼 강화를 부추겼지만, 최기석은 거기서 멈췄다.

오늘은 날이 아니다.

대신 사이드 미러 환자를 처치하고 얻은 유니크 젬 박스를 응시했다. P.

P로 구입한 젬 박스가 아니라 개봉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최기석은 곧바로 젬 박스를 열었다.

슈우우우웅.

띠링!

[축하드립니다. 유니크 젬을 획득하셨습니다.]

NEW[유니크: 외국어 학습능력 2배 상승.]

"나이스!"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간만에 제대로 된 젬을 얻었다.

이 유니크 젬과 함께라면 영어 회화공부와 리스닝 공부의 효율이 올라갈 것이다. 장기 미션인 '메이죠를 향해서'를 성공시킬 확률도 높아지고 말이다.

최기석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상태창을 살폈다.

모든 수치들이 차근차근 성장 중이다.

기존의 스킬들은 레벨이 올라가면서 전에 없던 특수 능력이 생겼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치력.

정치력은 처음 스탯을 개방한 이후 여전히 2에 머물렀다.

그런데 바로 그때다.

띠링!

[숨겨진 임무, '하얀 거탑에 오르면'이 형성되었습니다. 정치력이 5단계에 도달하면 특수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오랜만에 임무가 등장했다.

그것도 처치와는 무관한 정치력을 성장시키는 임무가 말이다.

'해보자는 건가?'

최기석이 목을 꺾자 뚜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숨겨진 임무가 자신을 도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치료를 잘하는 의사뿐 아니라, 의사들의 얽히고설킨 권력관계 속에서 살아남는 의사도 될 수 있냐고 묻는 것 같았다.

예전이라면 자신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능력이 조금씩 무르익어 갔으며 그 능력을 펼칠 만한 자리도 마련되었기에.

최기석은 상태창을 끄고 중환자실을 찾았다.

중환자실에서 흉부외과 환자들을 살피다가 마지막으로 이지애 앞에 섰다.

이지애.

나이는 20세로 어제 락스를 마시고 식도재건술을 받은 환자다. 그녀는 깨어 있었는데 침상 등받이에 기댄 채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체력: 3/10

주 증상: 연하곤란 / 식도 통증

아픈 부위: 식도

진단명: 식도협착

현재 상태: 비응급

경과: 보통

과거력: 없음

[주의! 이 환자는 자살충동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주의 사항에 미간이 일그러졌다.

"지애야. 내가 네 주치의 최기석 선생님이야."

최기석은 검지로 가슴에 있는 오버로크를 가리켰다.

이지애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저 생기가 없는 눈동자로 먼 천장을 응시할 따름이다.

"몸은 좀 어때? 불편한 데는 없어?"

"……."

"당분간 입으로 음식은 못 먹어. 상태가 좋아지면 그때부터 죽 같은 걸로 시작해 보자."

사근사근 말을 걸었지만 이지애는 전혀 듣지 않았다.

문득 앞으로는 몸의 치료가 아니라 마음의 치료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도가 호전되면 정신과에 협진을 의뢰해야 하리라.

최기석은 작별인사를 하고 중환자실을 나왔다. 그리고 대기실에 있는 이지애의 보호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애 어머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선생님. 우리 지애는 어떤가요?"

유정희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최기석 앞에 섰다.

"수술은 잘 끝나고 별 문제 없습니다. 지금은 의식도 차렸고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애가 수술을 잘 버텨 준 덕이죠. 그건 그렇고 어머님께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최기석은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지애가 락스를 마셨는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짐작 가시나요?"

"그게……."

유정희가 한참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극성을 떨어서."

"극성이요?"

"……네."

유정희가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설명이 이어졌다.

이지애의 가족은 흔히 말하는 엘리트 집안이다.

아버지 이철환은 한국대학교에서 교수를 맡고 있었으며 유정희 역시 한국대학교를 졸업해서 대기업에서 근무를 했다.

당연히 두 사람이 이지애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그로 인해 이지애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대가 아닌 다른 대학에 가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이지애는 머리가 좋았다.

중-고 시절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말이다.

불행의 씨앗은 수능이 끝나고 싹트기 시작했다.

이지애는 거의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얻었다.

그런데 영어시험에서 답안지를 밀려 쓰는 바람에 고작 10점을 얻었다.

실수로 한국대의 꿈을 날려 버린 것이다.

이에 부모님이 재수를 권했고 이지애는 이를 받아들여 재수공부에 나섰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대한 자책감 때문일까.

자신보다 성적이 낮았던 친구들이 한국대에 입학했기 때문일까.

이지애는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고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까 그동안 딸아이를 너무 괴롭혔어요. 한국대에 못 가면 사람도 아니라는 말을 달고 살았으니까요. 그 말이 얼마나 아이를 힘들게 했을지……."

유정희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착잡한 마음에 최기석은 유정희를 위로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수능이 끝나면 항상 빠지지 않고 일어나는 비극.

그것을 직접 경험하게 될 줄이야.

"식도 치료가 안정되면 정신과 치료를 병행할 예정입니다. 제 생각에는 지애와 부모님이 함께 진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다음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최기석은 중환자실을 벗어나 흉부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병동에 도착한 후 그가 맡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회의실에서 일과를 시작했다.

복잡하게 엉킨 수술 스케줄을 풀고 회진 준비를 끝내자 회의 시간이 다가왔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윤지혜가 들어왔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안녕."

윤지혜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얼굴이 조금 부으신 것 같아서요. 어제 저랑 야식을 먹어서 그런가?"

"그렇게 티나?"

윤지혜가 벽에 걸린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살폈다.

그 모습에 최기석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윤지혜의 이런 친근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금방 친해질 수 있을 텐데, 아쉽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뭐."

윤지혜가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교수님."

"또 왜?"

"환자 한 명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어제 순환기내과에서 협진 요청한 환자인데요. 아무래도 CABG(관상동맥 우회술)를 해야 될 것 같아서요."

"좋아."

최기석은 노트북이 있는 자리로 이동해서 모니터에 환자의 차트를 띄웠다. 그러자 곁에 있던 윤지혜가 고개를 숙여 모니터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잘 봤어. 수술 해야겠네."

윤지혜가 고개를 돌려 최기석을 응시했고 최기석 또한 고개를 돌려 그녀를 응시했다.

"……."

"……."

서로 바짝 붙은 상황이라서 하마터면 입술이 맞닿을 뻔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붉게 달아올랐다.

"이…… 이번 주는 스케줄이 꽉 찼으니까 다음 주 중으로 날짜 잡아."

윤지혜가 속사포처럼 말하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최기석은 냉수로 속 차리고 휴게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정설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화야. 협진 보낸 협심증 환자 말이야. 교수님한테 이야기해서 수술하기로 했어."

[응. 회진 끝나면 바로 전원 보낼게.]

정설화가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음에 또 이러면 안 돼. 내가 보낸 환자는 항상 최우선으로 봐줘야 된다?]

"실수는 딱 한 번뿐이야. 걱정 마."

[사랑해.]

"나도."

정설화가 입술로 쪽 소리를 내며 전화를 끊었고 최기석은 회의실로 돌아갔다.

아침 회의와 회진은 별 탈 없이 넘어갔다.

한 가지 이슈라면 윤지혜가 결국 부협회장의 대동맥판막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뿐이다.

수술 날짜는 이틀 뒤로 잡혔다.

"교수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회진이 끝난 후 최기석은 권일수를 찾았고 그와 텅 빈 회의실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노우드 팀에 합류하라는 제안.

그것에 대한 답을 알려 줘야 할 순간이 왔다.

지금의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결정을 돌이킬 마음도 없다.

"마음을 정했나 보지?"

권일수가 손으로 깍지를 끼며 말했다.

"네. 저는……."

"……."

"장 교수가 있는 세이버 팀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최기석의 대답에 회의실 분위기가 한순간 무거워졌다.

권일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최기석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이유는?"

"저는 아직 소아심장 수술을 보조할 역량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우연치 않게 새끼 양 심장을 얻어서 연습을 해 봤는데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

"그래서 이런 실력으로 노우드 팀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심장 클리닉이 오픈하는 즉시 쓸 수 있는 스태프를 원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지."

권일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 제2보조까지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어."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장 교수는 저에게 제1보조까지 약속했습니다. 물론 환자 상태와 수술의 중요를 살핀 후 설 수 있는 것이지만요."

"하…… 정도껏 해야지."

권일수가 혀를 찼다.

"내가 너를 탐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너를 제1보조로 세울 생각은 없다. 아무리 가능성이 많다고 해도 수술의 위계질서까지 무너트릴 수는 없는 법이지."

"그 말씀은……."

"어쩔 수 없지. 놔주마."

권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침없이 회의실 문 앞까지 걸어갔다.

"난 뒤끝 있는 인간은 아니다. 편 가르는 걸 좋아하는 인간도 아니고."

"……."

"장 교수를 싫어하지만 그 밑에 있는 사람까지 싸잡아서 미워하는 소인배도 아니지. 그러니까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라."

권일수는 말을 마치고 회의실을 떠났다.

띠링!

[팀 노우드의 합류가 무제한으로 연장됩니다. 현재 소속은 없습니다.]

[정치력이 1단계 상승합니다.]

알람이 귓가에 울렸다.

특이한 점은 노우드 팀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정치력이 한 단계 상승했다는 점이다.

그럼 세이버 팀에 들어가는 것이 정답이란 말인가.

지이이이잉.

자리에 서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콜폰이 울렸다.

아침부터 응급실 콜이다.

최기석은 통화를 하고 재빠르게 응급실로 내려갔다.

응급실 침상에 익숙한 얼굴이 앉아 있었다.

최미순.

사이비 종교로 응급상황을 맞았던, 초턴 시절 직접 흉강천자를 시도했던 할머니 말이다.

"어르신!"

반가운 마음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복잡하게 엉킨 가운데 최기석이 최미순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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