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야화 그 두 번째 (6)
흉강이 드러나자 이영호와 최기석이 폐 스패튤라(견인기의 일종)로 환자의 수술 부위를 벌렸다.
[용의 눈을 사용하셨습니다. 수술에 필요한 최적의 시야를 제공합니다. 필요에 따라 줌 인 모드와 줌 아웃 모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기석은 집중해서 식도를 내려다보았다.
오늘 수술하는 식도는 크게 세 가지 부위로 나뉜다.
빗장뼈에서 끝나는 경부식도, 기관부터 횡경막까지 이어진 흉부식도, 마지막으로 위와 연결되는 복부식도가 있다.
수술 부위는 흉부식도다.
'쉽지 않겠는데?'
최기석의 미간이 구겨졌다.
환자의 흉부중부 식도와 흉부하부 식도의 상태가 특히 좋지 않았다.
락스로 인해 점막부와 근막부가 부식되었으며 일부 부위에서 미세한 출혈을 보였다.
검사 결과보다 훨씬 상태가 나빴다.
"휴우…… 시작하자."
박용일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메스."
박용일은 메스를 받아서 쭈글쭈글하게 좁아진 점막 부위를 잘라 냈다.
이에 최기석은 왼손으로 계속 견인기를 당겼다.
동시에 오른손에 쥔 포셉으로 박용일이 절제를 하도록 조직을 잡아 주었다.
취이이이이익.
출혈 시에는 재빨리 석션기로 피를 흡입했다.
레지 1년 차답지 않은 그의 보조로 수술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메젠(조직을 자르는 가위)."
박용일은 부식된 부분을 다 걷어 내고 식도를 살폈다.
식도는 크게 점막부와 근막부와 신경부로 나뉘는데, 다행히 신경부의 손상은 없었다.
"지금부터 봉합에 들어간다. 4-0 vicryl(흡수성 봉합사)."
박용일이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인 후 절제된 부위를 봉합해 나갔다. 외래진료까지 맡는 교수답게 손놀림이 경쾌하면서 꼼꼼했다.
최기석은 클램프와 포셉을 번갈아 쓰며 박용일을 도왔다.
'이 녀석 봐라?'
박용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제야 깨달았다.
봉합할 조직을 잡은 최기석의 손이 조금도 떨리지 않고 있음을 말이다.
그 때문에 시간이 멈춰 버린 느낌마저 들었다.
미세한 떨림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그의 손이다.
그동안 물 흐르듯이 이어진 보조 과정, 이를 돌이켜 보면 그것은 결코 레지 1년 차의 보조가 아니었다.
최기석이 왜 그렇게 구설수에 오르는지, 왜 많은 사람들이 그를 탐내는지 지금은 알 것 같았다.
한편 최기석은 박용일을 도우며 식도를 꼼꼼하게 살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본 진단명에는 분명히 식도 천공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천공 부위를 찾지 못했다.
만약 이대로 수술이 끝난다면 차후에 재수술에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
[얼어붙은 심장의 용맹 효과가 자동으로 발휘됩니다.]
[용맹: 병인을 분석하고 처치법을 떠올리는 능력이 2배로 증가합니다.]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줌 인 모드로 전환합니다.]
최기석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줌 인 모드로 재차 식도를 살폈다.
줌 인 모드의 성능은 광학안경인 루뻬를 초월했다.
이렇게 줌 인 모드를 사용하면 자신이 소인(小人)이 되어 수술 부위에 뛰어든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씨저."
찰칵!
박용일이 경쾌하게 봉합사를 끊어냈다.
"이걸로 식도재건술은 끝이다. 지금부터 흉부하부식도를 절제한다."
"교수님."
"왜?"
"이쪽 부위에 미세한 천공이 있습니다."
최기석은 모스키토(혈관겸자의 일종)로 중부식도의 끝부분을 가리켰다.
"선배.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요?"
견인기를 벌리고 있던 이영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그지만 최기석이 말한 천공 부위는 찾을 수 없었다.
"으음……."
박용일이 침음성을 흘리며 해당 부위를 응시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최기석이 가리킨 부위에서 핏방울이 맺혔다. 그 말인 즉 천공으로 인해 신경층이 상하고 동맥혈관에서 피가 흘러 나온다는 뜻이다.
"이 미세한 천공을 어떻게 알아차렸지?"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기석이 너는 유독 운이 좋은 것 같군. 5-0 vicryl."
박용일이 피식 웃으며 봉합에 들어갔다.
이로써 흉부중부식도에 관한 처치는 모두 끝났다.
남은 것은 흉부하부식도를 절제해 주는 일뿐.
박용일이 식도절제에 나섰고 최기석은 석션기와 전기 소작기를 이용해 출혈을 잡아 주었다.
텅!
생검 곡반에 절개된 식도가 담기면서 수술은 끝났다.
"영호야. 대장관외과에 전화해. 내가 아까 연락해 놨으니까 흉부외과 수술 끝났다고 하면 알 거야."
"네? 갑자기 대장관외과는 왜……."
"흉부하부식도가 잘렸잖아. 결장의 일부를 떼어서 잘린 식도를 대체해야 돼. 그건 우리 일이 아니라 대장관외과의 일이야."
"알겠습니다."
이영호가 수술대를 벗어났고 최기석은 박용일을 도와 흉강을 닫았다.
이후 옆으로 누웠던 환자가 천장을 올려다보도록 만들었다.
흉부외과의 수술 자세에서 대장관외과의 수술자세로 바꾼 것이다.
'참 나. 레지 1년 차 맞아?'
박용일은 최기석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그의 행동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수술 전체를 꿰뚫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다른 과의 수술체위까지 알고 있다면, 본인이 맡은 과의 수술 과정은 얼마나 자세히 알겠는가.
"거즈, 봉합사. 스펀지 카운트 이상 없습니다."
소독간호사의 목소리가 유난히 상쾌했다.
때마침 연락을 받은 대장관외과 수술 스태프들이 로젯으로 들어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인사와 인수인계가 끝나고 최기석은 동료들과 로젯을 나왔다.
[수술 어시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보상으로 강화석 5개를 제공합니다. 200 P.
P를 획득하셨습니다.]
[박용일과 새로운 라포를 형성하였습니다.]
NEW [박용일(의료인): 2단계 - 믿음]
* * *
수술이 끝난 지 어언 두 시간이 지났다.
컨퍼런스 준비를 하던 최기석은 E.
M.
R(전자의무기록)로 식도협착 환자를 살폈다.
대장관외과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으며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경과 관찰 중이다.
"다행이네."
최기석은 미소를 지으며 처방을 입력했다.
대장관외과에서 수술을 도왔다고 해도 환자는 엄연히 흉부외과 환자다.
주치의는 자신이고 말이다.
"일주일 N.
P.
O(금식)에 좌위(환자를 앉은 상태로 두는 것)랑 또 뭐가 있더라?"
매뉴얼을 살펴가며 오더를 내렸다.
지이이잉.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콜폰이 울렸다.
이제야 정설화가 전화를 걸었나 싶었지만 전화를 건 것은 윤지혜다.
"네, 교수님."
[지금 바빠?]
"아니요. 괜찮습니다."
[부협회장님 상태가 어떤가 싶어서.]
"혹시 교수님 어디 계세요? 연구실에 계시면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연구실에 있기는 한데. 힘들게 찾아올 필요 없어.]
"아닙니다. 찾아뵙고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불편하신 게 아니라면 제가 연구실에 갔으면 하는데……."
[알았어.]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저기…… 기석아.]
통화를 끊기 전 윤지혜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올 때…… 야식 좀 사와.]
윤지혜의 소심한 부탁에 웃음이 터졌다.
최기석은 알겠다고 대답한 뒤 편의점에서 야식을 사서 연구실을 찾았다.
똑. 똑. 똑.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윤지혜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자료 준비 아직 안 끝나셨어요?"
"모교에서 내는 책이잖아. 철저하게 준비해야지."
"시간 오래 걸리는 거면 저나 다른 레지들 시키셔도 되는데...."
교수급이 되면 논문 정리나 자료수집 따위는 레지던트에게 맡기기 마련이다. 실제로 흉부외과 교수 대부분이 그런 관행을 따르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윤지혜만은 그렇지 않았다.
"내 일, 남한테 맡기는 거 싫어."
윤지혜가 단칼에 제안을 거절했다.
최기석은 윤지혜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야식을 풀어 놓았다.
"간식 사는데 얼마 들었어?"
"돈 안 주셔도 돼요. 대신 나중에 맛있고 비싼 거 사 주세요."
너스레를 떨며 윤지혜와 야식을 먹었다.
배가 고팠는지 그녀는 야무지게 음식을 해치워 나갔다.
먹는 모습은 얌전했지만 먹는 양은 먹신 들린 인턴에 가까웠다.
저렇게 잘 먹으면서 살이 찌지 않다니 사기다.
간식 타임이 끝나고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최기석은 박순재의 경과를 꼼꼼하게 전달했고 윤지혜는 이를 가만히 들었다.
"수술 전에 트러블은 없겠네."
"네. 적어도 지금까지는요. 그런데 교수님, 부협회장님 수술 정말 하실 건가요?"
최기석이 화제를 돌렸다.
만약 그가 윤지혜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박순재가 제안을 하기도 전에 스스로 수술하겠다고 나섰을 것이다. 지인이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본인의 손으로 고쳐 주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
다른 의사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환자가 지인일 경우, 수술 실패에 대한 부담이 상상을 초월하기에.
"해야지."
윤지혜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수술 건으로 조 과장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내가 하는 게 맞다고 하셨어. 병원은 환자의 편이를 들어줘야 한다고……."
"조 과장님이 그런 말씀을요?"
최기석은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진심이 손톱만큼도 안 느껴지네요. 제 생각에는 그저 부협회장님께 잘 보이고 싶은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 함부로 하지 마."
"……."
"나니까 그냥 넘어가지. 다른 사람들 앞이었으면 큰일 날 말이야."
"저도 알아요."
"안다고?"
"교수님을 믿으니까 이런 이야기 하는 거죠."
그의 말에 윤지혜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괘…… 괜히 이…… 이상한 소리를."
"전 진심인 걸요. 그건 그렇고 수술 날짜 잡히면 꼭 저를 보조로 넣어 주세요."
"왜?"
"분명 윤 교수님 집도에 도움이 될 거예요."
최기석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윤지혜는 실력이 없는 게 아니라 지인을 수술한다는 사실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바꿔 말해서 그녀가 평정심을 유지한다면 수술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가 보조로 들어가서 얼어붙은 심장의 혹한 효과가 발휘된다면 윤지혜는 편하게 수술을 할 수 있으리라.
"내가 정 원한다면."
"감사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운을 뗐다.
"저 궁금한 게 한 가지 더 있는데요."
"뭔데?"
"윤 교수님이 보기에 장 교수님은 어떤 분이에요?"
"장 교수님이 세이버 팀에 합류하라고 했구나?"
"네."
최기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 사건 이후 윤지혜는 믿음의 사슬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관계에 따르면 윤지혜는 결코 그를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즉 그녀의 입을 통해 듣는 장혁필에 대한 정보는 정확한 셈이다.
"장 교수님은…… 실력 좋고 야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지."
"믿을만하다는 뜻인가요?"
"적어도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은 아니야. 단."
윤지혜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계속했다.
"본인이 판단했을 때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버려져. 예를 들어 내가 부협회장님 수술에 실패해서 의국 내 입지가 좁아진다고 가정할 게. 그러면 장 교수님은 내 편을 들지 않을 거야."
"윤 교수님을 의진대에 데려온 건 장 교수님이잖아요. 그런데도요?"
"그것도 본인을 위한 포석이야. 송 교수님의 수술 파트를 줄이려면 나를 데려가는 게 제일 좋았거든. 지금은 송 교수님이 없어졌으니까 굳이 나를 감싸고돌 필요가 없지."
"무서운 사람이네요."
"그런 면에서는 조 과장님을 꼭 닮았지."
윤지혜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장 교수님을 나쁘게 볼 필요만은 없어. 이용가치가 충분하다면 예쁨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것도 그러네요."
최기석은 윤지혜의 말에 동의했다.
과거 장혁필과 함께한 수술에서 그는 인턴임에도 개흉마사지까지 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 생각은 정리됐어?"
"네. 사실은 세이버 팀에 들어가야 할지, 노우드 팀에 들어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교수님 이야기 듣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럼 어느 쪽이 더 끌리는데?"
윤지혜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