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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87화 (87/407)

백일야화 그 두 번째 (2)

최기석은 화들짝 놀라서 환자 감시 장치를 응시했다.

혈압이 급속하게 떨어졌다. 그 말인 즉 심장기능이 점점 떨어진다는 뜻이다.

"승압제 썼어?"

"아직."

"도파민 좀 재 줘."

최기석의 부탁에 김건우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딱. 딱. 딱.

최기석은 환자를 내려다보며 이를 부딪쳤다.

[폭군의 강림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는 위압 효과를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근력과 민첩성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스킬을 사용하고서 다시 사이드 미러에 손을 얹었다.

강제로라도 사이드 미러를 뽑아내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손에 힘을 주고 사이드 미러를 빼내려는 순간 다시 망설여졌다.

사이드 미러가 뽑히면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고 환자의 활력징후가 꺼질 것 같은 불길함이 들었다.

새로운 삶을 얻은 후 이렇게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 김건우가 돌아와서 정맥으로 승압제를 놓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혈압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래?"

"인정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최기석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교수님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내가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사이드 미러 뽑는 건 포기냐?"

"그래."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최기석은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초조하게 콜폰을 응시했다.

장혁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금방 온다던 그는 함흥차사다.

약속한 10분은 이미 훌쩍 넘었거늘, 혹시 그에게도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싶었다.

타다다다닥.

전화를 다시 걸려던 찰나 장혁필이 사복 차림으로 응급실에 달려왔다.

"환자는?"

"이 환자입니다."

최기석은 그동안 있었던 일과 환자의 상태를 간략하게 전달했다.

"죄송합니다. 사이드 미러는 뽑지 못해서……."

"잘했어. 원래 손으로 안 되는 수준이면 수술실에서 빼는 게 맞아."

장혁필이 최기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응급수술 잡아. 나도 준비하고 올라 갈 테니까."

"네!"

최기석은 수술실에 전화해서 로젯을 잡고 당직 중인 이영호를 호출했다.

그리고 환자의 침상을 끌어 수술실로 향했다.

응급상황이라서 수술 스태프는 장혁필과 최기석, 이영호 이렇게 셋뿐이다.

수술이 쉽지 않을 듯싶었다.

"교수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최기석은 스크럽을 하던 중 장혁필을 응시했다.

"뭔데?"

"혹시 이런 환자 수술해 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 나도 처음이야. 왜? 걱정 돼?"

"……네."

최기석은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처음 접하는 케이스가 두려운 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잡히기 마련이지."

"가이드라인이라면……."

"수술실에서 직접 확인해."

장혁필이 먼저 스크럽을 끝내고 수술실로 들어갔고 최기석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에게서 송명진과는 다른 타입의 관록을 느꼈다.

이윽고 장혁필과 최기석, 이영호가 나란히 수술대 앞에 자리 잡았다.

환자의 가슴에 박힌 사이드가 미러가 천장에 무영등을 반사하며 반짝이는데 그 모습이 무척 기괴했다.

"너라면 이제 어떻게 할래?"

장혁필이 최기석을 바라보았다.

"일단 사이드 미러를 빼야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빼야지. 환자가 평생 저 상태로 살게 둘 수는 없으니까. 엑스레이 확인해 봤어?"

"네. 사이드 미러의 쇠 부분이 갈비뼈 7, 8번을 골절시키면서 횡격막을 뚫고 비장에 박혀 있습니다."

"그럼 다시 묻는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장혁필의 두 번째 질문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울렸다.

장혁필은 마치 의사로서 그의 자질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너는 사람을 살릴 준비가 되어 있냐고.

"영호는 빨리 후측방 개흉술 준비해."

"네!"

최기석이 고민하는 사이 이영호는 환자를 옆으로 돌리고 등과 허리 부분을 베타딘으로 소독했다. 절개 부위에 방포를 씌우는 것으로 수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시간 없다. 대답은?"

"제 생각에는……."

최기석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비장이 완전히 파열됐으니까 비장을 절제해 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사이드 미러의 철 부분도 빼내기 쉬울 것 같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하고 장혁필을 살폈다.

"정답이다."

장혁필의 눈이 반달을 그렸고 최기석은 그제야 간신히 한시름 덜었다.

"메스."

장혁필의 외침에 소독 간호사가 메스를 건넸다.

스으으으윽.

메스가 환자의 허리부터 옆구리까지를 반달 모양으로 갈랐다.

장혁필은 석션기와 혈관겸자를 이용해 흉강 내 출혈 부위를 잡아 주었다.

이후 환자를 다시 정면으로 눕힌 후 복부를 갈랐다.

"모스키토(혈관겸자)."

장혁필은 비장의 혈관을 잡아준 후 비장을 내려다보았다.

비장은 왼쪽 신장과 횡경막 사이에 위치한 장기로 신체의 면역 기능을 담당한다. 교통사고나 기타 외상으로 파열이 일어났을 경우 완전히 적출하곤 한다.

"메스."

장혁필은 조심스럽게 메스로 비장을 적출했다.

손을 잘못 놀렸다가는 엄한 췌장이 다칠 수 있다.

치이이이익.

비장이 떨어진 것을 확인한 최기석은 왼손으로 석션기를 쥐어 피를 흡입했다. 오른손에 쥔 포셉으로는 적출된 비장을 트레이에 올려놓았다.

양손으로 수술 보조하는 일이 이제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대단해.'

장혁필은 최기석의 보조에 혀를 내둘렀다.

그만 한 수준이 되면 스태프의 작은 행동 하나만 봐도 수준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최기석이라면 어려운 수술을 맡더라도 거뜬히 보조할 것 같았다.

집도의가 편하게 수술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센스와 손놀림이 발군이다.

보조하는 모습만 보면 누구도 그를 레지 1년 차라고 생각하지 못하리라.

"교수님. 이제 뗄까요?"

"그래."

"교수님이 허락하신다면 사이드 미러는 제가 떼고 싶습니다."

"해 봐."

장혁필의 지시에 최기석은 사이드 미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천천히 사이드 미러를 들어올렸다. 응급실에 있을 때와 달리 사이드 미러가 가뿐하게 들렸다.

'됐다!'

최기석은 속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아직 수술은 끝나지 않았지만 사이드 미러를 뗀 것만으로 그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사이드 미러를 떼어 낸 후 수술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5-0 prolene."

딸깍!

장혁필은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쥐고서 파손된 횡격막을 복원했다.

꼼꼼하고 빠른 봉합실력에 최기석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상처를 닫으면서 수술은 무사히 종료되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피자 환자의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용의 눈을 이용한 동영상 촬영도 무사히 끝났다.

띠링!

[고난도 흉부외상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유니크 젬 박스와 500 P.

P를 지급합니다.]

[장혁필과의 라포가 1단계 친밀에서 2단계 신뢰로 상승합니다.]

쏟아지는 알림에 긴장이 탁 풀렸다.

* * *

병원 옥상.

최기석은 장혁필과 난간에 서서 바깥 경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생사가 급박하게 오고 가는 병원과 달리 바깥은 평화로웠다.

거리는 네온사인으로 반짝거렸고 사람들은 느긋하게 거리를 걸었다.

병원을 경계로 양쪽의 세계가 전혀 다른 것 같았다.

"교수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최기석이 운을 뗐다.

"솔직히 처음 환자를 봤을 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만약 교수님이 와 주시지 않았다면 환자는 아마……."

그는 말끝을 흐렸다.

아직도 응급실에서 환자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잊혀지지 않았다.

가슴에 사이드 미러가 박힌 환자라니…….

이런 특이한 케이스를 다시 접할 일이 있기는 할까.

그런데 장혁필은 자신처럼 첫 케이스를 접하면서도 침착하게 환자를 집도했다.

"너랑 나랑 수준이 같으면 너무 슬프지 않니?"

장혁필이 건넨 농담에 최기석은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요 교수님. 수술 들어가기 전에 가이드라인이라는 표현을 쓰셨잖아요."

"……."

"그게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야. 쉽게 말하면 마음가짐이지."

장혁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외과의에게 필요한 자질, 세 가지가 뭔지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느끼하고 비유적인 표현인데 보통 매의 눈, 사자의 심장, 여자의 손이라고들 하지. 그런데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자의 심장이야."

"사자의 심장이요?"

"그래. 한마디로 의사가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는 용기다. 환자의 가슴에 사이드 미러가 박힌 걸 보고 네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꼈는지 돌이켜 보면 무슨 말인지 알 걸?"

장혁필은 최기석이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침묵을 지켰다.

"외과의는 환자의 죽음과 맞서는 최전선의 병사야. 외과의가 겁먹고 물러서면 그 누구도 환자를 살릴 수 없어. 그러니까 누구보다 담대해져야 돼."

"……교수님 말씀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최기석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히 건네 들은 말이었다면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방금 막 실제 케이스를 경험했다.

장혁필의 조언이 고스란히 가슴에 스며들었다.

바로 그 순간!

띠링!

[얼어붙은 심장 패시브의 특수효과 용맹을 획득하셨습니다.]

[얼어붙은 심장 Lv.2]

- 감정을 개입하지 않고 냉철하게 환자와 병을 분석합니다.

- 응급상황이나 돌발 상황에서도 능력치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 혹한: 주변 스태프가 침착해지며 응급상황에도 능력치가 하락하지 않습니다.

- 용맹: 병인을 분석하고 처치법을 떠올리는 능력이 2배로 증가합니다.

- 최대 5단계까지 성장합니다.

알람을 확인한 최기석은 그저 웃고 말았다.

사이드 미러 환자 하나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알았다면 다행이다. 사람이라는 게 꼭 경험이 쌓여야 성장하는 건 아니거든."

"……."

"같은 경험을 해도 누구는 제자리에 있고 심지어 누군가는 퇴보까지 하지."

장혁필은 말을 마치고 최기석을 응시했다.

"노우드 팀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어?"

"네? 그걸 교수님이 어떻게……."

최기석은 놀라서 눈을 깜빡거렸다.

권일수에게 팀 합류 제안 받은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권일수가 라이벌인 장혁필에게 말했을 리도 없고 말이다.

한편 장혁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외래가 없는 날, 권일수의 수술 참관을 했다.

수술은 대동맥 축착술이었고 송정율과 최기석이 보조에 나섰다. 당시 최기석은 컨디션이 나쁜 송정율을 완벽하게 커버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한 손으로는 견인기를 다룬 채로 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권일수라면 충분히 최기석을 팀에 끌어들일 수 있다고 말이다.

방금 전 최기석의 대답으로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누가 송 교수님 제자 아니랄까 봐. 그냥 찔러 봤는데 바로 대답이 나오네."

장혁필의 지적에 최기석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뒤늦게 낚였음을 깨달았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인지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지 마. 안 그러면 이용당한다."

"그럼 교수님이 제게 이런 말을 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뻔하잖아. 널 내 편으로 만들고 싶으니까."

장혁필이 돌직구를 던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권 교수님 제안, 수락했어?"

"아직 안 했습니다."

"잘됐네. 그럼 우리 팀으로 들어와."

"우리 팀이라면?"

"노우드가 아니라 세이버 팀의 일원이 되는 거다."

장혁필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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