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85화 (85/407)

백일야화 (6)

특히 외래진료를 보는 교수들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송명진이 떠난 후 조지환은 매달 한 번씩 통계자료로 교수들을 압박했다. 외래환자를 얼마나 봤는지, 검사는 얼마나 찍게 했는지 등으로 실적을 평가했다.

"역시 장 교수네요."

조지환이 미소를 지으며 장혁필을 응시했다.

"통계치를 다 합쳐도 장 교수가 압도적인 1위예요."

"과찬이십니다."

장혁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제가 특별하다기보다는 작년에 아침 정원에 출연했던 효과가 큰 것 같습니다."

"실력이 있으니까 환자들이 계속 찾는 거 아닙니까?"

조지환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가만 보자. 권 교수도 잘하고 있고, 윤 교수도 잘하고 있고, 민 교수도 잘하고 있는데…… 박 교수가 문제네."

"저…… 저 말씀이십니까?"

박용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박용일은 폐식도 클리닉의 외래진료를 맡았다.

"진료한 환자 수도 많지 않고 검사도 별로 없잖아요. 이번이 벌써 세 달째인데 내 말이 우습게 들려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환자들의 특성상……."

"특성이요?"

조지환이 반문했다.

"네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환자가 오면 일단 검사부터 받게 하라고. 정상이면 돌려보내고 만약 편하게 수술할 사람만 받으라고요."

조지환의 추궁에 박용일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러고 보니까 박 교수는 올 5월이 재계약 기간 아닌가?"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아주 열심히 해야 될 겁니다."

조지환은 미소를 유지한 채 박용일을 응시했다.

웃으며 다른 사람을 협박하는 그 모습에 최기석은 치를 떨었다.

조지환은 보면 볼수록 무서운 인간이다.

본인의 야욕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교묘하게 통제했다.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는 걸까.

"그건 그렇고 장 교수와 권 교수는 어떻습니까? 리모델링 후에 시작할 수술은 결정했어요?"

"저는 노우드 수술을 할 생각입니다."

"노우드라……."

권일수의 대답에 조지환이 턱을 쓸어내렸다.

"너무 어려운 수술 같은데…… 손댔다가 괜히 피만 보는 거 아닙니까?"

"저는 제 실력을 믿습니다. 그리고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노우드는 세간의 관심을 끌기 충분한 수술입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조지환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좋아요. 권 교수를 믿겠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 알죠? 아무리 권 교수라도 심장 클리닉을 망쳐 놓으면 재미없을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고 모두의 시선이 장혁필에게 고정되었다. 굴러들어 온 돌의 대답이 끝났으니 이제 박힌 돌이 화답할 차례다.

"장 교수는요?"

"제가 계획하는 수술은 세이버 수술입니다."

"세이버요?"

"우와. 세이버를?"

조지환의 대답에 다른 교수들이 부산을 떨었다.

세이버 수술은 좌심실 용적 축소술과 좌심실 재건술을 함께 펼치는 수술이다. 심장이식의 대체제로 사용할 수 있으며, 수술 케이스가 드물고 수술 난이도 또한 무척 높다.

비슷한 부류의 수술로는 바티스타 수술이 있다.

"장 교수, 너무 무리수를 던지는 것 아닙니까?"

권일수가 장혁필을 응시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과장님께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게 딱해 보이는 군요."

"권 교수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장혁필이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권 교수님이 노우드 수술을 할 수 있다면 저라고 왜 세이버 수술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게다가 연세를 생각하면 팀을 오래 꾸리기도 힘들 것 같은데……."

"뭐라고요?"

"잠깐!"

조지환이 힘이 있는 목소리로 두 사람의 대화에 껴들었다.

"둘 다 내 앞이라는 걸 잊은 모양인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장혁필과 권일수가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팽팽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조지환이 운을 뗐다.

"솔직히 난 두 사람이 무슨 수술을 하든지 상관없어요. 내가 관심 있는 건 우리 의진대 흉부외과가 어떤 방식으로 타 대학 흉부외과를 앞서 나갈 것이냐니까요."

"……."

"두 사람 다 결과로 보여 주세요."

조지환의 결론으로 두 사람의 다툼이 정리되었다.

이윽고 회의가 끝나고 스태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전 스케줄의 마지막인 오전 회진이 남았다.

"아. 그 이야기를 깜빡했네?"

복도를 걷던 조지환이 뒤로 돌아 최기석을 응시했다.

"최 선생.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V.

I.

P 환자가 입원할 거예요. 말 그대로 아주아주 중요한 환자니까 최 선생이 맡아 줘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숨기며 대답했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 * *

환자 관리와 수술 어시스트 등의 업무로 최기석은 숨 가쁜 시간을 보냈다.

오후 3시가 넘어가서야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선생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병동 복도를 걷는데 한 여인이 말을 걸었다. 어제 비위관 삽관으로 CPR을 펼쳤던 환자의 보호자다.

현재 환자는 병동으로 다시 돌아왔다.

"네. 말씀하세요."

"혹시 어제 혼났던 인턴 선생님은 어디 있나요? 회진 때 잠깐 보이고 안 보이던데."

"이 선생의 일은 수술을 돕는 겁니다. 당직 때가 아니면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럼 이거라도 전해 주시면 안 될까요?"

보호자가 머뭇거리다가 작은 박스를 내밀었다.

병문안 갈 때 많이 사가는 과일 주스 박스다.

"이건……."

"힘드실 테니까 인턴 선생님하고 같이 드세요."

"괜찮습니다."

"저희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보호자가 환자에 대한 말을 전했다.

환자가 어제 중환자실에서 밤새 자신을 지켰던 이영호에게 안쓰러움을 느꼈다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음료수 박스를 들고 휴게실을 찾았다. 그의 예상대로 스크럽(수술 보조)을 끝낸 이영호가 소파에 기대서 쉬고 있었다.

"오셨어요?"

이영호가 최기석을 발견하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됐어. 편하게 있어."

"아닙니다."

"이제 와서 군기 잡힌 척하기냐?"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이영호의 맞은편에 앉았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 그의 체력은 2, 조금 과장해서 빈사 상태에 가까웠다.

"너 방금 스크럽 서다가 욕먹었지?"

"그걸 선배가 어떻게 아세요?"

"어제 밤새 환자 킵했잖아. 피곤해서 견인기 당기다가 졸았을 거고 그거 때문에 욕먹었겠지."

최기석의 말에 이영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말이라 대꾸할 수 없었다.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이영호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뭐가?"

"비위관 삽입 때도 그렇고 CPR 때 기도확보도 안 한 것도 그렇고,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하마터면 저 때문에 환자가 죽을 뻔했……."

이영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고 최기석은 그의 옆자리로 가서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이영호의 모습에서 과거 진성대에서 인턴을 보냈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졌다.

"괜찮아. 앞으로 잘하면 돼.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나는 물론이고 교수님들까지도 때로는 실수를 해."

"……."

"중요한 건 실수를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거야."

최기석은 이영호를 다독이며 격려를 사용했다.

[격려를 받은 대상의 감정이 밝아집니다.]

[면역력, 저항력, 재생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스킬을 받자 이영호의 얼굴이 다소 환해졌다.

"환자 킵 하면서 느낀 점 있어?"

"네. 두 가지 정도요."

"말해 봐."

"하나는 처치할 때 항상 환자를 살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엘 튜브가 안 들어간다고 짜증만 부렸어요. 그래서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

"그리고 어떤 위급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침착해야 될 것 같아요. CPR을 하는데 ABC(기도확보, 인공호흡, 흉부압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니……."

이영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래. 오늘 느낀 것들 잊지 마."

최기석은 이영호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어제 하지 못했던 말을 전했다. 보호자 앞에서 이영호를 꾸짖은 것은 사실 그를 위해서였다는 것을 말이다.

"선배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계셨어요?"

이야기를 들은 이영호는 입을 쩍 벌렸다.

그저 최기석이 자신을 엄격하게 혼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환자의 클레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일 줄이야.

"넌 아직 병원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지 몰라. 특히 이번처럼 문제가 전적으로 의료진에게 있는 경우에는 어떤 처벌을 당해도 이상할 게 없어."

"선배 진짜 존경해요."

"알면 됐어."

최기석은 피식 웃고 말았다.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간다. 음료수는 환자랑 보호자가 준 거니까 네가 알아서 처리해."

"네!"

이영호의 씩씩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이영호가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 게 눈에 보이자 그의 마음도 편해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띠링!

[숨겨진 임무, '내가 걸었던 길을 가는 이에게'에 성공하셨습니다.]

[이영호의 멘토가 되셨습니다. 이영호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행동과 말은 이영호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보상으로 강화석 3개를 지급합니다.]

최기석은 알림을 확인하고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멘토라고?'

* * *

그날 저녁.

최기석은 어김없이 당직을 서고 있었다.

보통의 레지던트라면 피곤에 찌들었겠지만 그는 환자 바라기와 역환단의 효과 덕분에 쌩쌩한 컨디션을 유지했다.

그래서 오늘도 회화 공부와 리스닝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지이이잉.

잠깐 쉬려던 찰나에 응급실 콜이 왔다.

"네. 흉부외과입니다."

[나다, 나.]

의진대 동기 김건우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김건우는 인턴을 끝내고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됐다.

"뭐야. 심심해서 전화했어?"

[그건 아니고 부탁할 게 있어서. 내려와서 환자 봉합 좀 해주라.]

"봉합이면 성형외과 콜이잖아?"

[설마 내가 이 짬밥 먹고 그걸 모르겠냐? 근데 성형외과 당직의가 곯아떨어졌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전화를 안 받네. 게다가 환자도 보통이 아니야. 이 사람…… 조폭 같아.]

"알았어. 내려갈게."

[땡큐.]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응급실로 내려갔다.

봉합이 필요한 환자의 이름은 한승우.

나이는 30대 중반으로 곰처럼 커다란 덩치와 팔에 새겨진 문신이 인상적이다. 그의 등 뒤로는 인상이 험악한 사내 두 명이 서 있었다.

"저 환자야."

"말 안 해도 알겠다. 어떻게 하다가 다쳤대?"

"물어보니까 인상을 팍 쓰던데?"

김건우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드레싱 할 때 유리 조각이 나온 걸 보면 유리병에 베인 것 모양이야."

"기왕 환자 넘길 거면 얌전한 환자를 넘길 것이지."

"짜식. 동기 좋다는 게 뭐냐? 이번만 고생해 주라."

김건우가 팔꿈치로 최기석의 옆구리를 장난스럽게 쳤다.

이에 최기석은 봉합 세트를 챙겨서 환자를 마주 봤다.

환자가 다친 부위는 오른팔이다. 출혈은 멎었지만 팔 아래 부위가 찢어졌다.

찢어진 길이는 대략 10cm, 정교한 봉합이 필요하다.

그는 혹시 몰라서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해 보았다.

자상은 보기와 달리 내부 손상으로 신경까지 손상을 입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신경 손상은 없었다.

"선생이 꿰맬 거요?"

한승우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최기석을 바라봤다.

"네. 맞습니다."

"그럼 예쁘게 잘 꿰매 봐. 우리 응룡이 안 다치게."

한승우가 검지로 문신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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