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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81화 (81/407)

백일야화 (2)

회의에 이어 오전 회진까지 무사히 끝났다.

최기석은 필요한 처방을 내리고 곧장 수술실로 향했다. 오전부터 수술 스케줄이 있었다.

* * *

레지던트의 일과는 숨 가빴다.

인턴 때보다 힘들면 힘들었지 그 이하는 결코 아니었다.

주치의가 되었기에 환자를 꼼꼼하게 살펴야 했으며 처방도 직접 내야 했다.

정신적으로 신경 써야 할 점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최기석은 레지던트 첫날임에도 모든 업무를 신속하고 깔끔하게 처리했다. 과거 레지 3년 차까지 해 봤으며 지금은 특수한 능력들까지 가졌다.

그 어떤 일도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바쁜 일과는 저녁 회진을 끝으로 막이 내렸다.

최기석은 민주혁과 병원 근처 순대국밥 집을 찾았다.

"이모! 여기 순대국밥 두 개하고 모둠순대 중자요."

민주혁이 주문을 하고 최기석을 응시했다.

"넌 보면 볼수록 희한해."

"저요? 왜요?"

"인턴 때는 인턴 같지 않고 레지던트 때는 레지던트 같지가 않아. 뭐랄까. 높은 곳에서 다른 스태프들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든단 말이야."

"에이. 무슨 이야기세요. 제가 뭐라고."

"나쁜 뜻으로 한 소리 아니야."

민주혁이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일단 실력은 동기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데다가 가끔은 네 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일도 해내니까……. 이건 나만 느끼는 게 아니야. 장 교수님도 같은 생각이라고."

"흉부외과에 남았다고 띄워 주시는 거죠?"

최기석은 담담하게 물을 마셨다.

정치력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실력이나 잠재력을 꿰뚫어 보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지환과 장혁필, 부병원장과 진료부원장 등등.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대부분 정치력이 높았다.

"그나저나 오늘부터 100일 당직이네."

민주혁이 화제를 돌렸다.

"우리 과 100일 당직은 엄격해서 내가 못 도와주는 거 알지?"

"네. 괜찮아요."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100일 당직.

말 그대로 오프 없이 100일 동안 당직을 서는 일이다.

외과 계열에서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일종의 신고식이다.

"레지던트 데빌이라는 게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니까. 넌 조만간 좀비가 될 거야."

"전 이미 좀비예요."

최기석이 피식 웃었다.

체력회복 룬과 환자 바라기의 효과로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었다. 두려운 것은 100일 당직이 아니라 당직기간 중에 맡은 환자가 죽는 것뿐이다.

대화 도중에 음식이 나왔다.

병원을 나와서 따뜻한 밥을 먹는 것은 후송을 갔을 때 이후 처음, 순대국밥과 순대가 꿀처럼 달았다.

"그나저나 너 라인은 정했냐?"

민주혁이 볼록 나온 배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라인이요?"

"올 여름이면 심장 클리닉 리모델링 끝나잖아. 장 교수님하고 권 교수님하고 한판 붙을 텐데. 둘 중에 한쪽을 골라야지."

"저는 환자 편이에요."

"또 엄한 소리한다. 그게 내 마음대로 될 것 같아?"

"안 되면 되게 해야죠."

최기석은 남은 순대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그러는 선배는 어느 쪽에 붙으시려고요?"

"나? 나는 말이야…… 안 가르쳐 줄 거다."

"말할 것처럼 하다가 빼는 게 어디 있어요."

"네가 의뭉스럽게 구니까 그렇지."

민주혁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줘?"

"네."

"난…… 너처럼 환자 편이다."

민주혁의 장난에 최기석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치고 빠지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오죽하면 레지 3년 차면서 스태프 중 정치력이 3번째로 높을까.

그의 정치력은 조지환과 장혁필의 바로 아래다.

"그만 가자. 계산은 내가 할 테니까 당직 잘 서고."

"네. 잘 먹었습니다."

두 사람은 식당을 나와 병원으로 돌아왔다.

민주혁은 그길로 기숙사로 향했으며 최기석은 당직실에 자리를 잡았다.

응급실 콜이 오기 전까지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에 영어 공부를 했다. 이어폰으로 음악파일을 들으며 더듬더듬 영어 문장을 소리 내어 말했다.

6개월 가까이 꾸준히 하자 영어 공부에도 탄력이 붙었다.

요즘에는 나름 공부하는 재미도 있었다.

지이이잉.

정신없이 공부하는데 콜폰이 울렸다.

드디어 콜이 왔다.

백일야화의 첫 번째 손님이 등장한 것이다.

"네. 흉부외과입니다."

[선생님. 응급실인데요 빨리 내려와 주시면 안 될까요? T.

A(교통사고) 환자라서요.]

"바로 갈게요."

최기석은 가운을 휘날리며 응급실로 내려갔다.

베드를 훑는데 콜을 한 것으로 보이는 인턴이 손을 흔들었다.

"흉부외과 선생님. 이 환자입니다."

최기석은 인턴 옆에 서서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환자 김태완은 왼쪽 다리에 부목을 착용했으며 몸 곳곳에 타박상이 있었다.

육안상으로는 크게 위급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하아…… 하아…… 선생님. 가슴이 너무 아파요. 숨쉬기도 힘들어요."

환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통증을 호소했다.

체력: 3/10

주 증상: 호흡곤란 / 흉통

아픈 부위: 갈비뼈

진단명: 동요 가슴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없음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

동요 가슴.

이것은 흉곽 동요라고도 불리는데 갈비뼈 여러 개가 골절되는 질환을 일컫는다. 교통사고 시 운전자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흉부 손상이다.

동요 가슴을 앓게 되면 가슴뼈가 부러진 곳의 흉벽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인다.

이로 인해 심장 질환과 호흡부전이 찾아올 수 있다.

최기석은 서둘러 자리에 앉아 엑스레이 영상을 살폈다. 골절 부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메페리딘(진통제) IV로 원 앰플 줘요."

"네!"

최기석은 지시를 내리고 환자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그리고 외부 고정기를 이용해 환자의 골절된 갈비뼈 부분을 고정시켰다.

이후 조심스럽게 환자가 옆으로 눕게 만들었다.

폐의 팽창을 돕기 위해서다.

처치가 끝나자 환자의 상태는 보통으로 돌아왔다.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던 얼굴도 많이 펴졌다.

최기석은 그제야 손등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훔쳤다.

띠링!

[레지던트 당직 근무, 최초의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상점에서 비밀의 열쇠가 개방되었습니다.]

[보상으로 강화 시스템이 개방되었습니다. 강화석 3개를 지급합니다.]

[레어 젬의 효과로 1.5배 상승된 12의 P.

P를 획득합니다.]

[환자 바라기의 활력 효과로 체력의 일부를 회복합니다.]

알람이 정신없이 뇌리를 스쳤다.

"쇼크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 바이탈 체크 잘해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요."

"네!"

최기석은 주의 사항을 전달하고 당직실로 올라갔다.

확인해야 할 게 많았기에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 상태창을 띄웠다. 상점으로 들어가자 황금으로 번쩍이는 비밀의 열쇠가 보였다.

NEW [비밀의 열쇠]

- 레전드 아이템을 개방하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입니다.

- 5만 P.

P를 소모하여 구입할 수 있습니다.

설명을 읽고 혀를 찼다.

현재 그가 보유한 P.

P는 고작 1500이다. 5만 P.

P를 얻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리라.

'그만한 가치가 있나?'

최기석은 턱을 쓸어내리며 레전드 아이템인 '시간을 넘어서'를 응시했다.

하다못해 아이템의 효과만 알았으면 좋으련만.

다음으로 상점 아래에 새롭게 생긴 강화기를 응시했다.

NEW [아이템 강화기]

- 획득한 아이템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강화한 횟수가 높을수록 아이템의 능력이 강력해집니다.

- 아이템을 강화하기 위해서 강화석이 필요합니다. 강화를 반복할수록 필요한 강화석의 숫자가 늘어납니다.

- 1단계부터 4단계까지는 100퍼센트 확률로, 5단계부터 10단계까지는 70퍼센트의 확률로, 11단계부터는 50퍼센트 확률로 강화에 성공합니다.

최기석은 시험 삼아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강화기에 넣어 보았다.

[소모성 아이템은 강화할 수 없습니다.]

[특수 제작 아이템은 강화할 수 없습니다.]

강화 불가능 메시지가 연속으로 떠올랐다.

불사신 칼라일, 시간을 넘어서, 사랑의 징표 등은 강화가 불가능했다.

이제 남은 것은 환자 바라기.

[강화석 1개를 사용해 강화를 시작합니다. 정말 강화를 하시겠습니까?]

다행히 환자 바라기는 강화를 할 수 있었다.

위이이이잉.

강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자 강화기와 환자 바라기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졌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환자 바라기(+1)]

- 활력 효과가 1퍼센트 상승합니다.

최기석은 강화석 두 개를 더 사용해서 환자 바라기를 2단계까지 상승시켰다. 앞선 설명대로 저 레벨 구간이라서 강화 실패는 없었다.

환자 바라기가 2단계로 상승하면서 활력 효과는 2퍼센트로 상승했다.

강화할 때마다 능력치를 두 배씩 올려 주는 것이다.

"악마의 유혹이네."

최기석은 강화기를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게임에서 강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

다만 강화는 강화하는 이에게 기쁨보다는 슬픔을 더 많이 선사한다는 단점이 있다.

새로운 능력을 확인한 후 정설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숙사지? 뭐해?"

[뭐하긴 자기 생각하지.]

정설화의 낯간지러운 대답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안 바쁘면 잠깐 볼래?]

"그래. 아지트에서 보자."

최기석은 콜폰을 챙겨서 아지트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정설화가 손을 흔들어 그를 반겼다.

"설화야. 너……."

그는 달라진 정설화를 보고 눈을 깜빡거렸다.

"어때? 이상해?"

정설화가 부끄러워하며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녀는 일과가 끝난 후 근처 미용실에서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잘랐다.

"아니. 엄청 예쁜데. 완전 상큼해."

최기석은 정설화에게 다가가서 호들갑을 떨었다.

연애를 하면서 생긴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단발머리가 안 어울린다고 말했다가는 큰 사고가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적응이 안 돼서 그랬지 실제로 정설화의 단발은 제법 잘 어울리기도 했다.

특히 머리가 길 때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정말?"

정설화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레지던트 시작하면서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과감하게 잘라 봤어."

"잘했어. 이제 보니까 긴 머리보다 단발이 훨씬 잘 어울리는데?"

정설화를 한 번 더 치켜세우자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대화를 이어갔다.

"순환기내과는 어때?"

"힘들어."

정설화가 망설임 없이 대답하고 입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특히 김철우 교수님은 인정사정이 없더라. 오늘 컨퍼런스 발표 때 완전히 깨졌어."

"너무 기죽지 마. 그분이 원래 깐깐해."

최기석은 정설화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도 순환기내과에서 한 달간 지내 봐서 김철우의 성격을 잘 알았다. 흉부외과의 팩트 폭격기가 권일수라면 순환기내과의 팩트 폭격기는 김철우다.

"그래도 밑에서 잘 배우면 도움이 될 거야. 실력만큼은 확실한 분이니까."

"그래야지. 너는 지금부터 100일 당직이지?"

정설화가 화제를 돌렸다.

"힘들겠다. 그동안 오프도 없는 거잖아."

"흉부외과의 정식 스태프가 되는 통과 의식이니까 어쩔 수 없지."

최기석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나 때문에 당분간은 같이 외출 못 하겠네. 미안해."

"괜찮아. 여기서 단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내 걱정 말고 환자나 잘 봐 줘."

정설화의 고운 마음씨에 가슴이 찡해졌다.

다른 여자였다면 서로 볼 시간이 없다며 투덜거리거나 불평을 늘어놓았을 텐데…….

정설화는 온전히 사정을 이해해 주고 힘을 북돋아 주었다.

"설화야. 정말 고마워."

"고맙긴 당연한 건데."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뜨거워졌다.

최기석은 정설화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그녀와 얼굴을 가까이 했다.

눈을 꼭 감은 채 키스를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이 더 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지이이이잉.

눈치 없이 콜폰이 울렸다.

"잠깐만."

전화를 받자 조은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흉통을 호소했던 1인실 고길동 환자가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는 콜이다.

마음 같아서는 정설화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환자를 살피는 게 우선이다.

"올라가야 되지?"

"……어."

"내가 문 닫을 테니까 어서 가 봐."

"가긴 가야지…… 하던 건 마저 하고."

최기석은 정설화의 이마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추고 병동으로 향했다.

병실에 도착하자 조은지과 고길동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무슨 대학병원이 이래? 수술이 끝났는데도 아프기만 하잖아. 이봐. 아가씨. 치료 제대로 하는 거야?"

고길동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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