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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76화 (76/407)

당신이 바라는 기적 (4)

하늘이 돕는 것일까.

응급실 대기 환자는 세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최기석은 남자가 야간 원무과에서 접수하는 것을 도왔고 남자의 이름이 고용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응급실까지 잘 왔어요."

고용진이 최기석을 보며 한마디 했다.

입술을 깨물며 통증을 참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혹시 여기 병원 의사인가요?"

"네. 힘드실 테니까 말은 많이 하지 마세요. 아껴 뒀다가 진찰 보는 의사분에게 말이 쓰세요."

짧게 대화하는 사이 고용진의 차례가 왔다.

진료의는 응급의학교 레지 2년 차 이기우다. 굵은 눈썹과 날카로운 턱선이 인상적이다.

"안녕하세요, 선배."

"넌 뭐야?"

이기우가 최기석과 고용진을 번갈아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잠깐 바깥에 있었는데 도중에 환자 분을 만나서요."

"전설의 환타라고 하더니 진짜네. 이젠 환자도 주워…… 흠흠."

이기우가 실언한 것을 깨닫고 헛기침을 했다.

"됐으니까 이제 가 봐."

"죄송한데 진료 끝날 때까지 환자분과 있어도 될까요? 가슴이 아프시다고 하는 걸 보니까 흉부외과 환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럼 그렇게 해."

이기우가 흔쾌히 허락했기에 최기석은 자리에 남았다. 그리고 이기우가 진찰하는 것을 유심히 살폈다.

"어디가 제일 아프세요?"

"가슴이 너무 아파요. 누가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습니다. 숨쉬기도 힘들고요."

고용진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두 손은 통증을 참기 위해 바지 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지병은 있으세요?"

"기흉이 있어요."

고용진의 대답에 이기우가 눈썹을 찌푸렸다.

이기우는 고용진이 상의를 올리도록 한 뒤 가슴을 살폈다.

외상의 흔적은 없었기에 곧바로 청진기로 심음을 들었다. 왼쪽 폐에 기흉이 있는지 호흡음이 많이 떨어졌다.

그 외에 별다른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엑스레이 찍어 볼게요."

"네."

최기석은 고용진이 흉부 엑스레이 촬영받는 것을 도왔다.

진료를 받고 촬영을 하는 사이 증세가 악화되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환자를 지켜보는 게 가슴 아팠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나설 수도 없었다.

그야 특별한 능력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지만 다른 의사들은 그렇지 않다.

잠시 후 최기석과 고용진이 응급실로 돌아왔다.

"지금 환자분의 가슴에는 피가 고여 있습니다."

이기우가 방사선 사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누워서 찍은 엑스레이에 음영이 보일 정도면 고여 있는 피가 상당히 많습니다. 일단 응급실에서 치료 받고 흉부외과 병동에 입원하셔야겠어요."

"알겠습니다."

이기우의 대답에 고용진이 힘겹게 대답했다.

시간이 흘러 흉부외과 당직의인 민주혁이 응급실로 내려왔다.

"또 너냐?"

민주혁은 환자 곁에 있는 최기석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최기석과 오래 지냈기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아. 씨발.'

민주혁은 환자의 상태를 재차 확인하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응급으로 흉관삽관이 필요한 상황이다.

흉관삽관이란 말 그대로 가슴에 튜브를 꽂아 주는 처치다. 흉관삽관을 통해서 늑막에 고여 있는 피를 제거해 주면 환자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그가 오른 손목을 다쳤다는 점이다.

"선배. 왜 그러세요?"

"아무 것도 아니야. 가서 흉관삽관 세트나 가져와."

"네."

최기석은 간호사에게 말해서 빠릿하게 도구를 챙겨왔다.

그런데 바로 그 때다.

"크으으으읍!"

침상에 앉아 있던 고용진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뒤로 쓰러졌다.

순간 모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혈흉으로 인한 저혈량성 쇼크가 온 것이다.

모두가 놀라서 눈을 깜빡거리고 있을 때 최기석이 가장 먼저 나섰다.

그는 환자를 똑바로 눕힌 후 환자 감시 장치를 달았다.

혈압이 치솟았으며 반대로 맥박은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환자는 아직 의식이 있었지만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으며 패닉 상태에 빠졌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최기석은 추가적인 처치에 나섰다.

얼어붙은 심장 패시브 덕분에 머릿속이 맑았다.

무슨 일을 어떤 순서대로 해야 하는지 착착 그려졌다. 일단 환자의 다리를 올려 주어 순환을 도왔다.

띠링!

[얼어붙은 심장 스킬이 Lv.2로 상승했습니다. 특수효과 혹한이 개방됩니다.]

[얼어붙은 심장 Lv.2]

- 감정을 개입하지 않고 냉철하게 환자와 병을 분석합니다.

- 응급상황이나 돌발 상황에서도 능력치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 최대 5단계까지 성장합니다.

- 혹한: 자신뿐 아니라 힘께 처치하는 동료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능력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스킬 레벨이 오른 것은 좋지만 기뻐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환자가 우선이다.

휘이이이이잉.

레벨 상승이 일어나자 최기석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뿜어졌다. 푸른 기운이 민주혁을 감싸는 순간 그의 눈동자가 또렷한 빛을 되찾았다.

"너는 수액 달아. 나는 도파민 잴 테니까."

"네!"

이후 최기석과 민주혁은 호흡을 맞춰 처치에 나섰다. 같이 수술실에 들어간 적은 많지만 이렇게 할 일을 나눠서 환자를 처치한 것은 처음이다.

그럼에도 합이 환상적이었다.

환자의 바이탈이 금방 정상으로 돌아왔다.

"빨리 삽관하자."

민주혁이 수술용 장갑을 착용했다.

그런데 도중에 눈살을 찌푸리며 멈칫하는 모습이 최기석의 눈에 포착되었다. 자세히 보니 민주혁의 손목에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혹시나 해서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상태를 확인하자 손목에 염좌가 있었다.

섬세한 일을 하기에는 부적절한 상태다.

잘못해서 흉강이 아니라 다른 부위를 찌른다면…….

"선배. 손목 다친 거 아니에요?"

최기석은 민주혁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어쩔 수 없잖아. 흉관삽관 같은 걸로 선배들이나 교수님들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럼 제가 할게요."

"안 돼. 저 환자는 보통 혈흉환자보다 훨씬 응급이야. 까딱 실수라도 했다간 수습도 못해."

"그건 알지만 선배 손목이 정상이 아니잖아요."

최기석은 조근조근 민주혁을 설득했다.

어차피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되면 흉관삽관을 해야 하지 않느냐, 옆에서 잘 봐주면 되지 않느냐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결국 민주혁이 백기를 들었다.

"흠흠…… 오늘이 딱 좋은 날이네."

민주혁은 주변 스태프들이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환자 상태도 좋아졌으니 기석이한테 흉관삽관이나 가르쳐야겠다."

"저런 환자를 상대로? 그리고 흉관 삽관은 보통 레지 1년 차에 배우는 거 아닌가?"

이기우가 우려를 표했다.

"기석이라면 괜찮아. 벌써 흉강천자도 성공한 놈인데 뭐. 내가 옆에 봐줄 거고."

민주혁은 너스레를 떨며 최기석을 응시했다.

흉관삽관을 시작하라는 신호다.

최기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환자의 침상 머리 부분을 조금 올렸다.

그리고 수술용 장갑을 착용했다.

피부를 옥죄는 느낌이 오늘따라 유독 강했다.

스으으윽.

포비돈 용액으로 삽관한 부위를 넓게 소독한 뒤 구멍이 뚫린 멸균포로 덮었다.

"리도카인이요."

"네."

간호사가 국소마취제를 재운 주사기를 건넸다.

최기석은 갈비뼈 상단 부위에 마취주사를 놓고 흉강천자를 준비했다.

흉관을 삽입하기에 앞서서 피가 고인 위치와 흡입물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이쯤이 좋겠다."

민주혁이 눈대중으로 흉강천자 부위를 가리켰다.

최기석도 같은 의견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푸우우욱.

바늘이 피부를 관통했다.

최기석은 바늘을 끝까지 집어넣지 않고 멈춘 후 주사기의 몸통을 당겼다.

서서히 피가 차올랐다.

흉강천자는 무난하게 성공했다.

이제부터가 본 게임인 흉관삽관이다.

"긴장하지 말고 차분하게 하면 돼. 알았지?"

"네."

"방금 천자한 부위, 거기 한 마디 아래 부분을 절개해. 잘못하면 혈관이나 신경 다치니까 조심하고."

민주혁이 삽관 순서를 알려 주었고 최기석은 메스를 손에 쥔 채 절개에 나섰다.

스으으윽.

메스가 지나가자 환자의 피부가 종잇장처럼 갈라졌다.

"켈리."

최기석의 외침에 간호사가 지혈겸자를 건넸다.

최기석은 지혈겸자를 이용해서 늑골 사이 근육을 서서히 떼어 냈다. 그리고 켈리를 제거한 후 절개된 피부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끈적끈적한 흉막의 감촉이 손가락에 남았다.

"어때? 만져져?"

"네. 만져져요."

"그럼 튜브 꽂아."

최기석은 간호사가 내미는 튜브를 받아서 흉막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흉관삽관술에 성공하셨습니다!]

[숨겨진 미션, 두 번째 기적에 성공하여 신규 항목 P.

P와 상점이 개방됩니다.]

알림과 더불어 튜브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쿠르르르르.

배액병을 채우는 피 소리가 마치 빗소리 같았다.

"잘했다. 짜샤."

가슴 졸이며 최기석을 지켜보던 민주혁이 최기석의 어깨를 두들겼다.

"선배가 잘 알려 주셔서 그렇죠."

최기석은 웃으며 삽관 마무리에 나섰다.

우선 봉합사를 이용해 절개한 피부를 튜브에 묶어 주었고 바셀린 거즈와 Y자 모양의 거즈를 차례대로 덮었다.

마지막으로 반창고로 거즈를 고정시켰다.

"이야. 잘한다."

"주혁이랑 같이 당직 서도 되겠는데?"

처치를 지켜보던 스태프들이 칭찬을 쏟아 냈다.

최기석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본인이 과거 레지 3년 차였다는 것을 밝힐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 * *

그날 저녁 당직실.

"크어어어엉."

민주혁의 코고는 소리가 요란했다.

민주혁은 삼십 분 전에 야식을 먹고 완전히 뻗어 버렸다.

최기석은 민주혁을 힐끔 응시하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흉관삽관을 성공하고 얻은 보상이 많았다.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최기석은 먼저 얼어붙은 심장을 살폈다.

레벨이 한 단계 오르면서 얼어붙은 심장에 혹한이라는 새 효과가 생겼다.

이것은 일종의 버프로 동료들에게도 얼어붙은 심장의 효과를 줄 수 있었다.

환자가 쓰러져서 당황했던 민주혁이 침착함을 되찾은 것은 아마 이 혹한 효과 때문이리라.

'자 그럼.'

최기석은 상태창을 하단 부분을 확인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바로 P.

P다.

과거 내과 레벨을 올리고 P.

P 획득량을 늘려 주는 젬을 얻은 적이 있었다. 당시는 P.

P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그 정체를 알 수 있게 됐다.

NEW P.

P(Patient Point): 10.

[P.

P는 환자에게 처치를 하거나 수술, 또는 수술 보조를 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포인트입니다.]

[P.

P를 모아서 치료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들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게임으로 치면 돈 같은 건가?'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상점을 살폈다.

NEW 상점: P.

P를 이용해 물품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스킬, 칭호, 젬, 아이템 등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현재 1단계 오픈 상태로 추가적인 임무를 달성해야 다음 물품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설명 아래로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 놓여 있었다.

거창한 설명과 달리 실제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은 꼴랑 세 개뿐이다.

NEW [젬 박스: 노멀]

- 원래 인생은 한 방이야. 인생 역전 박스 뽑기!

- 하급 등급부터 노멀 등급의 젬을 뽑을 수 있습니다.

노멀 젬 박스 옆으로 레어 젬 박스와 유니크 젬 박스가 나란히 놓였다.

문제는 젬 박스의 구입 포인트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노멀 젬 박스에 필요한 포인트만 해도 200이 넘었다.

현재 보유한 P.

P가 10이니 노멀 젬 박스 하나 열 수 없는 신세다.

"하아……."

최기석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이건 너무 심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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