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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75화 (75/407)

당신이 바라는 기적 (3)

이른 아침.

최기석은 아지트에서 집도 연습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혼자서 CABG 수술을 완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에는 최고를 향해서의 목표 중 하나인 팔로 4징 수술을 연습하는 중이다.

새로운 수술이라서 집도 속도가 느렸다.

동영상을 보며 과정들을 하나하나 맞춰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집도하는 그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이렇게 연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기에.

딸깍.

지혈겸자로 소 심장의 상행대동맥에 혈류를 차단했다. 그리고 메스로 박리가 일어났다고 가정한 대동맥을 거침없이 갈랐다.

대동맥 내막과 판막의 상태가 한눈에 들어왔다.

최기석은 동영상을 살피며 본격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왼손으로는 포셉으로 대동맥을 고정시키고 오른손으로는 봉합을 했다.

스스스스슥.

봉합은 빠르고 깔끔했다.

실수로 혈관을 터뜨리는 일도 없었다. 필요한 부분을 절개할 때만 피가 흐를 뿐이다.

'역시'

최기석은 봉합하면서 자신의 실력에 감탄했다.

CABG 수술에 성공하고서 '난 왼손잡이야' 패시브가 '난 양손잡이야'로 바뀌었다.

그뿐만 아니라 외과 레벨도 한 단계 상승했다.

그때부터 양손이 날개를 단 것처럼 가벼워졌다.

스킬 레벨이 올라간 후 CABG 수술을 다시 했을 때는 무려 15분을 단축하기도 했다.

최기석은 더듬대면서도 침착하게 수술을 이어 나갔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한참 집도에 몰입한 가운데 탁자에 올려 둔 휴대폰이 떨었다.

병동으로 올라갈 시간이 왔다.

아쉬움을 삼키며 뒷정리를 하고 병동으로 향했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병동으로 가던 중 최기석은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환자를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제 손으로 직접 환자를 치료하고 싶었다.

최기석은 병동을 훑고서 회의실로 들어갔다.

병동 일과 회의 준비는 이미 끝났지만 남강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의 일 때문일까.

남강준이 그를 피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기석은 개의치 않고 영어 교재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드르르륵.

"좋은 아침이에요."

송명진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최기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네요?"

"교수님 따라서 메이죠에 가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죠."

최기석의 당찬 대답에 송명진의 미소가 짙어졌다.

"교수님. 저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말해 봐요."

"혹시 소아심장 수술에도 요령이 있나요?"

최기석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주희가 생사를 넘나들었던 팔로 4징 수술이 아직도 마음에 걸렸다.

송명진이 떠나기 전에 조언을 듣고 싶었다.

성인과 소아를 가리지 않는 심장 수술의 달인에게는 특별한 비법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요령이라……."

"……."

"딱히 요령이랄 건 없어요. 굳이 한 가지를 꼽자면 스스로를 기계라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요?"

송명진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보조 서면서 아이 심장 봤죠? 아이 심장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던 가요?"

"너무 작고 연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장하지 않은 아이의 심장은 계란만 한 크기며 혈관은 연필심만큼 얇고 가늘었다.

새 능력으로 자신감을 얻었음에도 소아심장을 볼 때는 두려움이 들 정도다.

"맞아요. 심장이 작기 때문에 정밀하고 꼼꼼한 집도가 필요하죠. 그래서 본인을 기계라고 생각하라고 말한 거예요."

"역시 교수님은 대단하세요."

최기석이 말을 계속했다.

"솔직히 장 교수님 수술 중에 문제가 터졌을 때 교수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송 교수님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환자를 살려 주지 않을까 하고요."

"……."

"저는 송 교수님처럼 다른 사람이 기대고 싶은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허허. 아침부터 낯부끄럽게."

송명진이 쑥스러운 듯 목덜미를 문질렀다.

"나는 논문을 읽을 거니까 최 선생은 영어 공부 열심히 해요."

"네!"

사제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공부에 열중했다.

이별의 순간이 그렇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 * *

폐암 수술이 막 끝났다.

스태프들은 후련한 표정으로 로젯을 나왔다.

"중환자실에 보내고 1층 카페로 와."

레지 3년 차 한민우가 최기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죄송한데 볼일이 있어서 못 갈 것 갔습니다."

"볼일? 화장실이야 금방 갔다 오면 되잖아."

한민우의 썰렁한 농담에 다른 스태프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막내인 최기석만이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웬만하면 좀 쉬어. 너 수술 연속으로 두 번 뛰었잖아."

"괜찮습니다."

환자 바라기의 효과로 최기석은 살인적인 일정을 무탈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어제 새벽까지 영어 공부를 했고, 일찍 일어나서 논문과 집도 연습을 했으며, 이후 3시간짜리 수술에 연달아 들어갔음에도 현재 체력은 6이다.

심지어 이 체력 6은 같이 수술을 뛰었던 스태프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넌 진짜 인간이 아닌 것 같아."

한민우가 혀를 찼다.

최기석은 그동안 경험한 인턴과 달리 수술 보조를 완벽하게 해냈다.

시야 확보는 깔끔했으며 자세가 흐트러지는 일도 없었다.

"죄송한데 먼저 가 보겠습니다."

최기석은 꾸벅 인사를 한 뒤 환자를 중환자실에 옮겼다. 그리고 곧바로 부병원장실로 달렸다.

김지희와 A.

P 엔터테인먼트와는 이미 이야기를 끝냈다.

의진대병원에서만 그 일을 허락하면 만사형통이다.

똑. 똑. 똑.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방으로 들어가니 부병원장 임병철은 책상에 앉아서 결재 서류를 훑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왔어? 거기 앉아."

임병철의 손짓에 최기석은 소파에 앉았고 임병철도 금방 맞은편에 앉았다.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부병원장님의 시간을 뺏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임병철이 손으로 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 일은 어떻게 됐어?"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A.

P 엔터테인먼트에서 기꺼이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럼 이대로 콘서트를 진행할 수 있는 건가요?"

최기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주희 모녀를 돕기 위해 고민하던 중 자선 콘서트라는 방식을 떠올렸다.

강은하를 구해 주면서 A.

P 엔터테인먼트와 인연을 맺었으니까 이를 잘 이용하면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A.

P 엔터테인먼트는 연락한 지 하루 만에 승낙 사인을 보냈다.

이제 병원에서 공연을 허락하면 병원 앞에 자그마한 공간을 만들어 자선 콘서트가 열릴 것이다.

이주희 모녀의 경제적인 부담도 다소 줄어들리라.

"암. 당연하지."

임병철은 껄껄 웃었다.

자선 콘서트를 추진하고 무사히 끝내면 그의 입지는 급상승한다.

차기 병원장을 향한 일종의 교두보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즉 최기석이 물어다 준 씨앗을 반드시 심어야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자네는 참 대단해. 어떻게 볼 때마다 이런 이슈를 몰고 오는지 모르겠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오후에 있는 전체회의 때 콘서트 이야기를 꺼낼 거야. 다른 사람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으니까 곧 성사될 거라고 알고 있으면 돼."

"감사합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병원장 조양기다.

그의 깜짝 등장에 방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안녕하세요."

"이야기도 없이 무슨 일이십니까?"

최기석과 임병철이 조양기를 보며 한마디씩 했다.

"이사장님하고 이야기 좀 하다가 지나가는 길에 들렀지."

조양기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자 세 사람의 삼각 구도가 만들어졌다.

"……최기석 인턴이었나?"

조양이가 최기석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네. 맞습니다."

"인턴이 부병원장을 다 찾다니 별 일이군."

"병원장님, 이 친구 인턴이라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전적이 아주 무시무시합니다. 게다가 오늘은 저한테 박씨도 물어다 줬고요."

"박 씨?"

"오신 김에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임병철은 최기석이 계획한 일을 차근차근 조양기에게 전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조양기의 표정은 손톱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최기석은 혹시나 해서 조양기의 정치력을 살폈다.

그의 정치력은 7.

조지환과 똑같은 수치다.

그 형에 그 동생이라고 해야 할까, 핏줄은 못 속인다고 해야 할까.

반면 부병원장 임병철의 정치력은 5.5다.

"어떻습니까? 아이들도 돕고 병원 이미지도 살릴 수 있는 좋은 행사 아닙니까?"

임병철의 말에 조양기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저 염소처럼 난 수염을 쓰다듬을 뿐이다.

"병원장님?"

"난 반대야."

조양기가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우리 병원은 이미 자선 사업을 많이 하고 있어. 굳이 병원 앞에서 콘서트를 열 필요가 있나 싶군. 환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정신 사나워 할 것 같은데?"

"그 부분은 미리 공지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게다가 정신 사납다고 표현하셨지만 제 생각에는 축제 분위기가 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병원이 연예 기획사와 협력해서 자선 콘서트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치자는 말씀입니까?"

임병철의 말이 빨라졌다.

솔직히 조양기의 반대가 당황스러웠다.

제대로 정신이 박혀 있다면 이렇게 굴러온 돌은 쳐낼 리가 없는데…….

혹시 견제하는 건가.

"연예 기획사라고 하면 아이돌 같은 걸 말하는 거 아닌가?"

"네. 맞습니다."

"어린애들이 발가벗고 나와서 춤춰 봐야 병원 이미지만 떨어지겠지. 기왕 할 거면 제대로 된 음악회나 열자고."

"그럼 자선 콘서트는 반대하시는 겁니까?"

임병철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조양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의견 충돌로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최기석은 차마 대화에 껴들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부병원장의 역량을 믿을 수밖에.

"최 선생은 먼저 나가 봐."

"알겠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방을 나왔다.

부병원장의 속사포 같은 말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 * *

그날 저녁.

최기석은 터덜터덜 병원 밖을 걷고 있었다.

거리에 늘어선 간판들이 밝은 빛을 뿌렸지만 그의 마음은 밤하늘처럼 어두웠다.

"이번 일 무산됐어. 병원장하고 측근들이 기를 쓰고 반대하니까 나라도 어쩔 수가 없었어."

삼십 분 전 임병철이 비보를 알려왔다.

이주희 모녀를 돕기 위해 머리를 쥐어 짜낸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왜 좋은 일을 하자는데 반대를 한단 말인가.

짜증이 솟구쳐서 외진 곳에 있는 맥주캔을 힘껏 걷어찼다. 물론 속이 시원해지지는 않았다.

최기석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병원장을 미워하는 건 나중 일이다.

다음 주로 퇴원이 예정된 이주희 모녀를 돕는 것이 최우선이다.

병원으로 돌아가는데 택시 한 대가 병원 앞에 멈췄다.

"아으으으윽."

한 남자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택시에서 내렸다.

날씨가 선선함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괜찮으세요?"

최기석은 남자에게 다가가며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체력: 3/10

주 증상: 가슴통증 / 호흡곤란

아픈 부위: 심장막

진단명: 혈흉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기흉

남자의 상태를 확인한 순간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최기석은 남자를 부축해서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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