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바라는 기적 (1)
"무슨 일이죠?"
최기석이 인공심폐기사를 보며 응시했다.
인공심폐기사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인공심폐기를 위아래로 훑을 따름이다.
"무슨 일이냐고요!"
"아…… 그게 기계가 갑자기……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인공심폐기사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답했다.
순간 수술실에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인공심폐기는 현재 멈춰 버린 이주희의 심장과 폐의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그 말인 즉 환자의 심장과 폐가 한순간에 멎어 버렸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환자 활력징후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마취의의 보고에 장혁필이 얼굴을 구겼다.
"인공심폐기사가 인공심폐기를 못 쓰면 어쩌자는 거야!"
"……."
"빨리 고치라고!"
장혁필의 호통에 인공심폐기사가 호들갑스럽게 움직였다. 그럼에도 거북한 전자음은 꺼지질 않았다. 더불어 이주희의 얼굴이 점점 파랗게 질려갔다.
"네가 가 봐."
"제가요? 제가 가면 누가 교수님을……."
지석훈이 놀란 토끼 눈을 했다.
지금부터 좁아져 버린 폐동맥을 교정해야 한다. 팔로 4징증의 수술 중 난이도 높은 구간으로 그가 빠져 버리면 장혁필의 집도에 차질이 생긴다.
"그럼 쟤를 시킬까?"
장혁필이 대각선에 서 있는 민주혁을 응시했다.
인공심폐기에 대해 배우는 것은 레지 3년 차부터다.
즉 민주혁이 인공심폐기를 본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긴장감이 팽팽해지는 가운데 최기석이 운을 뗐다.
"제가 가 보겠습니다."
"너 미쳤어?"
지석훈이 최기석을 보며 혀를 찼다.
"네가 심폐기를 봐서 어쩐다고!"
"PK로 수술 참관했을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빨리 가 봐. 주혁이는 기석이 몫까지 견인기 당기고 석훈이 너는 날 돕는다."
장혁필이 교통정리를 끝냈다.
문득 마주친 장혁필의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뿜어졌다.
회식 자리에서 말했듯이 그는 모든 것을 결과로 판단한다. 만약 최기석이 호기롭게 나섰음에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면 가만있지 않으리라.
타다다다닥.
최기석은 자리를 벗어나 인공심폐기를 살폈다.
'젠장. 눈 아프네.'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과거 레지 3년 차를 지내고 환자에게 에크모도 직접 설치해 본 적이 있다.
다만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서 인공심폐기의 구조가 빠릿빠릿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뭐. 잘못 건드린 거 있어요?"
"특별히 기억은 없는데…… 죄송합니다."
인공심폐기사가 꾸벅 고개를 숙였고 최기석은 이를 딱딱딱 부딪치며 인공심폐기를 살폈다.
일 초가 일 분 같았다.
본격적인 수술도 해 보기 전에 이주희를 잃을 수는 없다.
"찾았다!"
최기석은 환호를 지르며 인공심폐기의 좌측 하단을 응시했다.
인공 폐 장치의 튜브가 꼬이면서 일시적으로 혈류의 흐름이 막혔던 것이다.
덜컹! 드르르륵.
꼬인 부분을 풀어 주자 전자음이 멈추고 인공심폐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최기석은 그대로 자리를 벗어나 수술 장갑을 새로 착용하고 어시스트 자리에 섰다.
"제법인데? 수술 끝나고 상이라도 줘야겠어."
그를 바라보는 장혁필의 눈이 웃었다.
"상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수술을 무사히 끝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한 소리를."
장혁필이 거침없이 메스를 움직였다.
인공심폐기의 고장은 생각보다 빨리 고쳐졌으며, 우려했던 환자의 삼첨판 역류는 없었다.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땀 좀 닦아 주세요."
장혁필의 말에 소독간호사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
"……."
잠시 한숨을 돌리던 장혁필은 2층 견학용 수술실에 있는 조지환을 발견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수술 견학을 오겠다고 사전에 언급한 적이 없었거늘, 과장이 갑자기 찾아왔다.
그렇다면 꿍꿍이는 하나뿐.
그가 소아 환자를 얼마나 다룰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온 것이 분명했다.
현재 의진대 흉부외과는 소아심장 수술이 취약하다.
송명진마저 떠나면 그 공백은 더욱더 커지리라.
"자. 다들 계속 열심히 가 보자고."
장혁필은 조지환을 못 본 척하고 스태프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스으으윽.
메스가 주 폐동맥을 수직으로 갈랐다.
"석션."
장혁필의 지시에 지석훈이 흡입기로 흘러나오는 피를 빨아들였다.
이후 지석훈이 겸자와 포셉으로 동맥을 단단하게 붙들어 주었으며 장혁필은 환자의 심낭을 이용해 좁아져 있던 폐동맥 부위를 넓혀 주었다.
수술에 필요한 핵심적인 처치가 끝난 것이다.
다들 한숨 돌리는 분위기였지만 최기석 만큼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주희의 상태는 여전히 불량했다.
설령 수술이 끝나지 않았더라도 핵심적인 처치가 성공적이라면 상태가 호전되기 마련인데 말이다.
'대체 왜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인공심폐기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우기는 했지만 그동안 지켜본 장혁필의 집도는 깔끔했거늘.
그사이 수술은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동맥과 정맥에 삽입되었던 도관을 제거하고 인공심폐기 작동을 멈췄다.
이제 자발순환을 살피고 가슴을 닫으면 수술은 끝이다.
바이탈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는 가운데, 갑자기 심전도의 그래프가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순간 스태프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씨발. VF(심실세동)이네."
장혁필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입에서 욕이 나오는 것을 최기석은 처음 들었다.
"견인기 다시 달아. 에피네프린 정맥으로!"
장혁필의 지시에 스태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최기석은 이주희에게 다시 견인기를 착용시켰고 민주혁이 에피네프린을 주사했다.
지석훈은 한 손으로 흉부 대동맥을 눌렀으며 장혁필이 개흉 심장 마사지를 펼쳤다.
장혁필은 이주희의 심장을 한 손으로 쥐고 압박해 나갔다.
말 그대로 그의 손에 이주희의 생명이 달려 있는 셈이다.
분당 60회의 개흉 심장 마사지가 이어졌지만 심실세동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리도카인도 같이 쓰자."
"네!"
약물이 하나 더 추가된 상태에서 치료가 계속됐다.
"교수님. 이제 제가 할까요?"
지석훈이 장혁필을 응시했다.
혼자서 심장 마사지를 했던 탓에 장혁필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얼굴에서는 비 오듯이 땀이 흘러내렸다.
환자의 심장을 직접 주무른다는 부담감 또한 엄청나게 그를 짓누르고 있으리라.
장혁필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석훈은 이주희의 심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다.
지석훈이 몸을 휘청거리면서 손으로 이주희의 심장이 아닌 수술대를 짚었다.
"너 왜 그래?"
"죄송합니다. 갑자기 현기증이……."
"그 상태로 심장 마사지를 하겠다고? 미쳤어?"
장혁필이 호통을 치자 지석훈이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교수님. 제가 심장 마사지를 하고 싶습니다."
최기석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교수님이 혼자서 계속 마사지를 하시면 아무래도 압박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 교수님은 몸 상태가 안 좋으시고요. 그러니 제게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너 이 새끼. 아까부터 보자 보자 하니까."
지석훈의 언성이 올라갔다.
인공 심폐기 한 번 만졌다고 인턴이 어디까지 기어오르려고 한단 말인가.
"주제를 넘는다고 생각이 드신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해 봐."
장혁필이 최기석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그 뜻을 파악한 최기석은 이주희의 심장을 주무르듯 그의 손을 주물렀다.
"좋아. 이대로만 하면 된다."
"교수님. 정말 기석이에게 시키실 겁니까?"
"애초에 네가 똑바로 했으면 이럴 일 없어."
장혁필이 못을 박자 지석훈이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민주혁, 혹시 너는 심장 마사지 해 볼 생각 있어?"
"……저는 자신 없습니다."
"그럼 기석이 네가 해."
오더를 받은 최기석은 자리를 옮겨 한 손으로 이주희의 심장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심장은 따뜻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심장이 다시 뛰어야 이주희가 살 수 있다.
최기석은 방금 전 장혁필의 손을 주물렀던 것처럼 이주희의 심장을 주물러 갔다.
분당 60에서 80회에 횟수를 지켰으며 심장을 압박하는 힘도 적당히 조절했다.
약물이 투여되는 가운데 최기석은 혼자서 10분이 넘게 개흉 심장 마사지를 했다.
어느새 수술실에 고요함이 감돌았다.
집도의를 비롯한 장혁필마저 이주희를 포기한 듯한 모습이다.
"송 교수님께 연락해 볼까요?"
민주혁이 장혁필과 지석훈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송 교수님?"
"네. 오늘 들어간 수술이 어려운 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송 교수님이라면 벌써 끝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해 봐."
"네!"
민주혁이 빠릿하게 자리를 비웠고 그 자리를 지석훈이 채웠다.
"네. 여기 A 로젯인데요. 혹시 송 교수님 수술방에 계시나요?"
"……."
"아. 네. 그럼 혹시 언제쯤 수술이 끝날까요?"
민주혁의 통화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혹시라도 송명진이라면 환자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다들 같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뭐래?"
민주혁이 통화를 끊기 무섭게 장혁필이 물었다.
"그게…… 저쪽도 일이 터져서 수술이 늦어졌다고 합니다."
민주혁의 대답이 사형선고처럼 무거웠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장혁필마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오로지 한 사람.
최기석만이 이주희를 반드시 살리겠다는 불씨를 간직하고 있었다.
'주희야. 힘내.'
그는 이주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문득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지켜봐 왔던 이주희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최기석의 장난에 꺄르르 웃던 모습.
부모님에 품에서 아기천사처럼 세상 평화롭게 자고 있던 모습.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이제 됐다."
장혁필이 나지막하게 최기석을 불렀다.
"교수님. 조금만 더 해 보면 안 될까요?"
"늦었어."
"그래도 조금만 더 해 보겠습니다."
최기석은 심장 마사지를 멈추지 않았다. 손에 잡힌 심장에서 아직 이주희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돌아와. 제발!'
간절한 외침 속에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띠링!
['생명의 은인' 칭호 효과 발동.]
[부활: 처치 시 20퍼센트의 확률로 사망에 이른 환자가 일시적으로 부활합니다.]
휘이이잉.
칭호 효과가 발동되면서 최기석의 손에서 황금빛이 뻗어 나갔다. 이윽고 황금빛이 심장을 휘감으면서 이주희의 심장이 미약하게나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심장 움직이지 않았어?"
"저도 봤습니다."
이주희의 심장이 미약하게 박동하면서 수술실에 희망이 차올랐다.
"이제부터는 나한테 맡겨. 너 혼자 십 분 넘게 마사지 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하고 싶습니다."
최기석은 자신 있게 마사지를 이어 나갔다.
환자 바라기의 활력 효과로 그의 심장 마사지는 처음과 비교해서 조금도 약하거나 느려지지 않았다.
"민주혁 뭐해? 에피네프린하고 리도카인!"
"네!"
장혁필의 지적에 민주혁이 빠릿하게 정맥주사를 놓았다.
치료가 두 번째 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 * *
수술대기실.
딱딱딱.
김지희는 이를 부딪치며 초조하게 수술실 문을 수시로 응시했다.
혹시라도 딸이 하얀 포에 쌓여서 나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수술을 기다리는 일 분 일 초가 엿가락처럼 길게 느껴졌기에 고통시간도 길었다.
면회 와서 실컷 잔소리를 했던 부모님도 지금은 그녀와 같은 마음으로 손녀의 건강을 빌었다.
'제발. 주희야.'
김지희는 빌고 또 빌었다.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이건, 부처님이건, 알라신이건, 세상에 있을 모든 신에게 부디 딸을 무사히 돌려달라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덜컹!
덩치가 좋은 의사가 수술실 문을 밀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바로 이주희의 주치의인 장혁필이다.
"선생님! 주희는…… 주희는 어떻게 됐나요?"
김지희는 장혁필에게 다가가 두 손을 꼭 쥔 채로 물었다.
장혁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대신 한 손을 김지희의 어깨에 올렸다.
왠지 모를 무거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호자 분. 수술은……."
"……."
"무사히 끝났습니다."
장혁필의 대답을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김지희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온 몸으로 울었다.
그동안의 걱정과 수술이 무사히 끝났는 안도감이 섞인 시원한 울음이다.
뒤늦게 수술실에서 나온 최기석은 울고 있는 김지희를 발견하고 시선을 피했다.
그도 울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