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67화 (67/407)

인턴의 끝을 잡고 (1)

"교수님이 왜요?"

"아까 환자가 있는데도 멍을 때리셨다니까. 그런 모습 처음 봤어."

민주혁의 말이 불길하게 귓가에 울렸다.

최기석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송명진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체력: 3/10

진단력: 8.5/10

외과적 처치: 6.5(-2)/10

내과적 처치: 6/10

체력이 낮은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흉부외과에 있는 의사들 중에서 늘 절반 이상의 체력을 유지하는 이는 본인밖에 없었으니까.

문제는 송명진의 외과적 처치 레벨이다.

그의 외과 레벨은 평소보다 두 단계나 떨어졌다.

방금 전 민주혁이 했던 말을 감안하면 무언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듯했다.

"선배도 피곤하시죠?"

"3일 연속 당직이라 죽을 것 같아. 차라리 네가 날 때려 눕혀 주면 안 되겠냐? 그렇게라도 하면 편히 쉴 거 아니야."

민주혁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태가 안 좋은 것은 민주혁도 마찬가지다.

그의 체력은 현재 2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대동맥 수술은 기본적으로 서너 시간이 걸리는데 수술이 끝나면 반죽음 상태가 되어 있으리라.

"혹시 스태프는 우리밖에 없나요?"

"아니. 한 명 더 있어. 저기 오네."

수술실에 도착할 때쯤 마지막 스태프가 일행에 합류했다.

마지막 스태프는 바로 의대 동기 김건우, 그를 바라보는 최기석의 눈이 경악에 물들었다.

"너도 대동맥 수술 들어가?"

"왜? 흉부외과 콜 받고 온 건데?"

김건우가 어깨를 으쓱거렸고 최기석은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꼭 닫았다.

대동맥 박리 수술은 사망률이 10-20퍼센트에 달하는 위험한 수술이다. 그런데 송명진을 비롯한 스태프가 레지던트 2년 차와 인턴뿐이라니…….

수술 환경이 너무 열약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어.'

최기석은 두 볼을 찰싹 두드렸다.

"빨리 로젯으로!"

송명진이 다급하게 외쳤다.

보통은 아주 간단하게라도 수술 브리핑을 해 주는 그였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건너뛰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다.

스태프들이 스크럽을 하고 환자와 로젯으로 들어갔다.

"마취 들어갑니다."

마취의가 전신마취를 끝내자 송명진이 베타딘으로 환자의 가슴과 복부를 넓게 소독했다.

"지금부터 상행대동맥 박리 수술을 시작합니다. 메스."

스으으윽.

메스가 환자의 목 아래부터 명치 부분을 가르자 단단한 흉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민주혁이 톱을 들고 환자의 흉골을 가르기 시작했다.

빠드드득. 빠드드득.

뼈 부서지는 소리가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뭐해요!"

송명진이 날카롭게 외쳤다.

민주혁의 손에서 톱이 미끄러졌던 것이다. 민주혁이 톱을 빨리 고쳐 쥐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환자에게 해를 가할 뻔했다.

"죄…… 죄송합니다."

민주혁이 다시 톱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흉골을 거의 다 갈라졌을 때 쯤 톱이 손에서 다시 빗나갔다.

순간 송명진의 눈썹이 난폭하게 꿈틀거렸다.

"민 선생! 수술이 장난이에요?"

"그…… 그게……."

"환자의 목숨이 우리 손에 달려 있어요. 집중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송명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입을 열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해 봐요."

"민 선생은 당직을 3일 연속으로 서서 많이 피곤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제1보조를 서고 싶습니다."

최기석은 조심스럽게 나섰다.

수술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수술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민 선생의 의견은 어때요?"

송명진이 민주혁을 쳐다보았다.

민주혁은 송명진과 최기석을 번갈아 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가 교수님을 돕는 게 맞지만 오늘은 저보다 기석이가 훨씬 더 잘할 것 같습니다."

톱질 실수의 여파인지 민주혁은 잔뜩 풀 죽은 모습으로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최 선생이 제1보조로 들어와요."

송명진의 제시에 최기석과 민주혁의 위치가 바뀌었다.

이로 인해 최기석은 송명진을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스승과 처음으로 호흡할 수 있게 된 수술, 반드시 수술을 성공시키고 싶었다.

"흉골 절제술 이어서 하겠습니다."

뿌드드득. 뿌드드득.

최기석은 톱을 들고 깔끔하게 흉골을 가른 뒤 견인기를 가슴에 달았다. 그가 단 견인기를 민주혁과 김건우가 양옆으로 당기자 시야가 넓어졌다.

"헤파린!"

송명진의 외침에 마취의가 심정지액을 주입했다.

"캐뉼라(몸 속에 삽입하는 튜브) 연결합니다."

최기석은 동맥 캐뉼라를 환자의 넙다리 동맥과 겨드랑이 동맥에, 정맥 캐뉼라를 우심방에 삽입했다.

덜컹! 드르르륵.

인공심폐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대동맥 박리 수술의 서막이 오른 셈이다.

[용의 눈을 사용합니다.]

[자동으로 최적의 수술 시야를 확보합니다. 사용자의 의사에 따라 줌 인 모드와 줌 아웃 모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동영상 모드를 사용하여 수술 장면을 촬영합니다.]

최기석은 스킬을 쓰며 보조 준비를 마쳤다.

"클램프(지혈겸자)"

송명진의 외침에 소독간호사가 클램프를 건넸다.

송명진은 클램프로 상행대동맥의 혈류를 차단했다. 그리고 메스로 박리가 일어난 대동맥을 거침없이 갈랐다.

대동맥 내막의 파열 부위, 대동맥판막의 상태, 박리 정도를 살피기 위함이다.

'하아…….'

송명진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상행대동맥만 박리된 것이 아니라 대동맥궁에도 문제가 생겼다.

대동맥궁은 상행대동맥과 하행대동맥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활 모양의 공간으로 대동맥의 허리 라인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최기석의 걱정 섞인 목소리에 송명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이 재개되었다.

송명진이 인조혈관을 이용해 대동맥의 찢어진 내막을 봉합해 나갔다.

최기석은 송명진의 맞은편에서 그의 봉합을 도왔다.

절개 부위에 피가 날 때는 석션을 해 주었고 봉합하는 부위가 흔들리지 않게 도구로 단단하게 붙잡아 주기도 했다.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보조.

최기석의 도움으로 송명진의 수술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다.

'이 자식은 대체…….'

민주혁은 최기석을 훔쳐보며 혀를 찼다.

흔히 퍼스트라고 하는 제1보조는 아무나 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집도의만큼이나 수술 과정을 잘 이해해야 하며 집도의와 호흡을 맞춰 수술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끌어 가야 한다.

그런데 최기석은 고작인 인턴이면서 송명진과 환상적인 조화를 보여 주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상행대동맥의 문합이 끝났다. 이제 두 번째 전쟁터인 대동맥궁으로 떠나야 한다.

"괜찮아요?"

송명진이 최기석을 응시했습니다.

"끄떡없습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네!"

최기석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수술 보조를 하는 동안 환자 바라기 아이템 효과로 상당한 체력을 회복했다. 난이도가 높은 제1보조를 했던 탓인지 체력회복량이 엄청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처음 수술실에 들어왔을 때와 현재의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교수님. 가강이 터졌습니다!"

최기석은 입술을 깨물며 대동맥궁을 응시했다.

대동맥의 벽은 크게 내막, 중막, 외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서 내막이 찢어지고 혈류가 원래 막이 아닌 다른 막으로 흘러가는 공간, 즉 가짜 공간을 가강이라고 부른다.

가강이 터지면서 대동맥궁에 피의 홍수가 들이닥쳤다.

최기석은 가강에 거즈를 덧대고 젖은 거즈 위에 다시 거즈를 덧댔다.

그리고 흡입기를 이용해 피를 빨아들였다.

송명진의 지시가 없었지만 대처가 번개처럼 빨랐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에서 불길한 전자음이 들려왔다. 마취의 역시 환자 상태가 악화되고 있음을 알렸다.

"교수님!"

최기석의 외침에 송명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블러드 팩 새로 달고. 지혈제 IV(정맥)로."

송명진의 지시에 민주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최기석이 수술 부위를 직접 지혈하고 있었기에 그가 직접 나선 것이다.

민주혁은 환자의 상태를 보며 블러드 팩을 힘껏 짜냈다.

조금이라도 빨리 환자에게 피가 보충되도록.

"교수님. 피가 안 멈춥니다!"

최기석의 다그침에 송명진은 묵묵하게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출혈이 멎어야 가강을 봉합할 수 있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명의라 불리는 그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니들홀더."

송명진은 소독간호사에게 니들홀더를 받아 봉합에 나섰다.

최기석은 그의 뜻을 읽고 터진 부위를 덧대고 있던 거즈를 벗겨 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대동맥궁은 다시금 피바다로 변했다.

피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 가강을 봉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쒸이이이익. 쒸이이이익.

최기석이 양손으로 석션을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흡입기의 호스를 떼자마자 피가 터져 나왔다.

"교수님. 산소포화도 계속 떨어집니다."

마취의가 마취방을 나와 송명진에게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알렸다.

송명진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 갔다.

'빌어먹을!'

최기석은 포기하지 않고 출혈 부위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환자가 조금만 더 일찍 병원을 찾았다면, 박리 상태가 조금만 더 좋았다면 가강이 터지지 않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참았다.

지금은 환자를 살리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블러드 팩을 계속 갈며 지혈제를 사용했지만 출혈은 잡히지 않았다.

결국 송명진은 피바다 속에서 봉합을 시도하기로 했다.

최기석은 터져 버린 가강 근처에서 석션을 하도록 하게 만들고서 말이다.

터진 부위가 워낙 컸기에 봉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지휘자를 방불케 하던 환상적인 손놀림이 이번에는 버벅거리기 일쑤였다.

출혈 부위와 고군분투를 한 지 삼십 분.

마침내 송명진이 손에서 니들홀더를 놓았다.

환자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에 진한 아픔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 그를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오후 9시 30분. 환자 유기환, 테이블 데스."

송명진의 한마디가 수술을 무겁게 짓눌렀다.

"교수님.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지 않습니까?"

"……."

"조금만 더 처치를……."

최기석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뒷말을 흐렸다.

환자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도, 송명진의 가라앉은 모습을 보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최기석의 말에 송명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저으며 수술 부위를 닫고 뒷정리를 할 따름이다.

모든 정리가 끝난 후, 송명진이 가장 먼저 수술실을 나왔다. 그리고 대기실에 있는 보호자들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우리 남편은 어떻게 됐나요?"

환자의 아내 이미란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가족들도 일어나서 초조하게 송명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환자분은……."

송명진은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환자에게 수술을 해 왔다.

수없이 많은 환자를 살렸지만 일부의 환자는 그의 손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물론 환자의 죽음이 완전히 그의 탓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보호자에게 환자의 죽음을 알리는 일.

그것이 송명진에게는 본인이 본인에게 내리는 사형선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이 순간만큼은 마치 인턴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환자분은…… 돌아가셨습니다."

"아……."

이미란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녀는 가까스로 의식을 부여잡은 후 송명진에게 다가가 그의 가운을 붙잡았다.

"당신. 명의라며? 세계적인 흉부외과 의사라면서 왜 사람을 죽여? 엉?"

"……."

"당신한테 치료받으려고 지방에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왜! 왜! 우리 남편을 죽이냐고?"

이미란이 악을 쓰며 송명진의 가운을 흔들렸다.

"죄송합니다."

송명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미란이 가운을 쥐고 흔드는 바람에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엄마. 그만하세요."

"놔라! 놔!"

가족들이 이미란을 말렸지만 이미란은 분노는 꺼지지 않았다.

"너 같은 건 의사도 아니야. 사람 죽이는 게 살인자지 의사야?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 보라고."

이미란은 속사포처럼 말을 하더니 이내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울면서 다른 가족들도 울기 시작했다.

대기실은 금방 울음바다가 되었다.

빠각.

환자를 내려다보던 송명진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부서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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