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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55화 (55/407)

또 다른 길(1) 3권 시작

쎄에에에엑.

최기석은 번개처럼 윗몸 일으키기를 실시했다.

속도가 워낙 빨랐던 터라 주변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넋을 잃고 최기석을 응시했다.

어깨 운동을 하던 윤지혜도 거기에 포함됐다.

"후아······ 힘들다."

최기석은 운동을 끝내고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벙찐 얼굴의 김건우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윤 교수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친구를 깎아내리는 건 아니지.

"너······ 제법이다?"

"다른 건 몰라도 윗몸 일으키기 만큼은 자신 있거든."

"흠흠. 그럼 복근 운동은 안 가르쳐 줘도 되겠네. 등 운동 하러 가자."

김건우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옮겼다.

윗몸 일으키기에서 한 번 데였던 탓일까. 김건우는 전처럼 최기석을 깔아뭉개며 가르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등 운동, 가슴 운동, 어깨 운동을 차례대로 끝냈다.

김건우의 말에 따르면 날마다 부위별로 운동을 바꿔서 해 주는 게 좋다고 한다.

"야. 근데 운동 끝나고 교수님한테 한잔하자고 하면 안 되냐? 어차피 내일 주말이잖아."

김건우가 러닝머신으로 가는 도중 속삭였다.

"그런 말할 사이는 아닌데······."

"야. 안 될 건 뭐가 있어. 인턴이나 교수를 떠나서 우리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그리고 일단 말은 해 볼 수 있잖아.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알았어."

최기석은 일부러 윤지혜가 뛰고 있는 바로 옆 러닝머신에 자리를 잡았다.

김건우의 도움을 받아 러닝머신 위를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슬쩍 윤지혜를 훔쳐보았다.

탕! 탕! 탕! 탕!

윤지혜는 빠르게 발을 굴렀다.

숨은 거칠었으며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뛸 때마다 질끈 동여맨 머리카락이 춤을 추듯 날아다녔다.

의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

운동하는 윤지혜는 생기가 넘쳐 보였다.

"저기 교수님."

최기석은 윤지혜가 걷기 시작할 때 말을 걸었다.

"왜?"

"혹시 괜찮으시면 운동 끝나고 맥주라도 한잔하실 생각 있으세요?"

"······그래."

윤지혜가 의외로 쿨하게 허락했다.

최기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대화를 엿듣고 있던 김건우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1층 카페 앞에 있을게."

"네. 금방 나가겠습니다."

최기석은 윤지혜와 헤어져 샤워실로 향했다.

"고맙다. 짜샤. 넌 복 받을 거야."

"알면 됐어."

두 사람은 나란히 샤워실로 들어갔다.

쏴아아아아.

따뜻한 물줄기가 온 몸을 적셨다. 운동하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열심히 땀을 흘리고 나자 오히려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다.

샤워도 훨씬 상쾌했고 말이다.

"야. 그런 건 좀 하지 마."

최기석은 김건우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김건우가 헤어 드라이기로 사타구니 근처를 말리고 있었다.

"왜? 아무도 없잖아."

"나는 사람 아니냐?"

"넌 어차피 이거 안 쓸 거잖아."

김건우가 웃으며 헤어 드라이기를 내밀었으며 최기석은 진저리를 쳤다.

옷을 갈아입은 후 카페 앞에서 윤지혜와 만났다.

윤지혜는 반바지에 나시 티를 입고 있었다. 지금 모습만 놓고 보면 누구도 그녀가 의진대 흉부외과 교수라고는 믿지 않을 것 같았다.

"가자. 내가 가끔 가는데 있어."

윤지혜를 따라 근처 호프집에 자리를 잡았다.

생맥주와 마른안주를 시키고 대화가 이어졌다.

김건우는 괜히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던지 화려한 말솜씨로 대화를 이끌었다.

덕분에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다시 봤네.'

최기석은 강냉이를 먹으며 김건우를 힐끔 쳐다봤다.

사교적인 녀석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여자들한테도 이렇게 사근사근 잘하는 줄은 몰랐다.

"아. 의진대 오시면서 자취 시작하셨구나. 혹시 어디 사세요?"

"근처 오피스텔."

"저도 자취해 봐서 아는데 끼니 챙기는 게 제일 불편하지 않나요?"

"맞아."

윤지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웬만하면 시켜 먹어."

"저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그래도 여유가 있을 때는 직접 요리도 하세요. 요새 인터넷 뒤져보면 자취생 요리법도 많이 나와 있어요."

김건우가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최기석은 우연히 윤지혜의 휴대폰에 시선을 주었다.

휴대폰 고리에 캐릭터 인형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인형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를 웃음이 터졌다.

캐릭터가 한때 유행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만화는 집사 역할을 하는 잘생긴 남자 캐릭터로 대박이 터졌다.

과거 보육원에 놀러갔을 때 한 여자아이가 윤지혜와 똑같은 휴대폰 고리를 하고 있었다.

"교수님. 그 캐릭터 좋아하세요?"

"······."

"그거 만화 백집사에 나오는 캐릭터로 알고 있는데."

최기석의 지적에 윤지혜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착각인지 몰라도 두 뺨이 살짝 달아오르는 듯 보였다.

"몰라. 동생이 줘서 달고 있어."

"야. 생각 좀 하고 말해라. 교수님이 그런 애들이 좋아하는 만화를 보겠냐?"

김건우가 최기석에게 핀잔을 주었다.

최기석은 말을 덧붙이는 대신 마음의 눈으로 윤지혜를 살폈다.

겉으로는 손톱만큼도 동요가 없어보였지만 심장은 진한 분홍색을 띠고 있었다.

"하긴. 그것도 그러네."

최기석은 웃으며 대화를 넘겼다.

그녀의 속내를 알았으니 굳이 화제를 파고 들 이유가 없었다.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다가 윤지혜가 사는 오피스텔로 이동했다.

"됐어. 이제 가 봐."

"네. 주말 잘 보내세요."

윤지혜가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두 사람은 병원으로 향했다.

"야. 너희 교수님 진짜 예쁘다. 나 완전 반해 버렸어."

"안 그래도 내 바로 위에 선배도 교수님한테 홀딱 빠졌다."

"벌써 라이벌이라니······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김건우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나 흉부외과 픽스 할까?"

"네가 들어오면 나야 좋지. 대신 그건 알아 둬.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는 거."

최기석이 웃으며 말했다.

* * *

다음 날 아침.

순환기내과의 오전 회의가 시작되었다.

환자 브리핑이 끝난 후 최기석은 프로젝터 앞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그의 논문 발표가 있는 날이다.

수많은 시선들이 쏟아졌지만 최기석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어젯밤 수 없이 많은 자료를 살피고 분석했다.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척척 대답할 자신이 있었다.

"제가 오늘 발표할 논문은 협심증 환자에 대한 PCI(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와 CABG(관상동맥 우회술)의 비교입니다."

최기석의 논문 주제를 들은 몇몇 의사들이 눈을 빛냈다.

PCI는 내과가 협심증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이고 CABG는 흉부외과가 협심증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이다.

흉부외과 픽스턴이 내과 컨퍼런스에서 민감한 주제를 건드린 셈이다.

최기석은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개의치 않고 차분하게 설명을 이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질문이 있으시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철우가 살짝 손을 치켜들었다.

"내가 봤을 때는 CABG가 PCI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요새 약물방출 스텐트 쓰는 건 알고 있지?"

본래 스텐트 삽입술은 삽입을 하고 난 후에도 종종 혈관이 재협착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삽입한 스텐트에 약물을 발라 놓으면 재협착 확률을 상당히 낮출 수 있었다.

"약물방출 스텐트가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CABG의 역할을 전부 대신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지?"

"자료를 살펴보면 심정지를 경험한 환자나 심실성 빈맥이 계속되는 환자에게는 CABG가 훨씬 더 좋은 경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

"좌심실 기능 저하, 좌전하행지 관상동맥에 병변이 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기석은 뒷받침 논문을 인용하며 말을 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보통 PCI가 CABG보다 비용이 저렴하다고 생각을 하지만 처치 후 1년 경과를 살피면 CABG의 재수술률은 6퍼센트 미만이고 PCI는 16퍼센트 가까이 됩니다."

"그리고?"

"처치 후 5년 경과를 살피면 CABG가 심근경색이나 기타 심장 질환에 걸린 확률을 비롯해 장기 생존률까지 더 높습니다."

최기석은 스태프들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일반적인 협심증 환자, 또는 저위험군 환자에게서는 PCI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환자에게 일괄적으로 PCI를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내과와 외과가 긴밀하게 환자의 상태를 살펴서 처치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환자를 살리는 데는 내·외과가 없으니까요. 질문이 없으시면 발표를 이만 마치겠습니다."

짝! 짝! 짝! 짝!

발표가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다.

'갈수록 탐나네.'

김철우는 담담하게 자리에 앉는 최기석을 응시했다.

최기석은 그가 일부러 꼬장 핀 것을 잘 받아쳤다.

또한 흉부외과 픽스턴이라고 해서 CABG에 우월하다고 할 줄 알았건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내·외과를 떠나서 환자를 위하는 마음을 강조한 점도 인상 깊었다.

이윽고 회의와 회진이 끝났다.

최기석은 바쁘게 병동을 일을 처리하다가 이정아가 있는 병실로 갔다.

오늘은 이정아가 페이스메이커를 삽입하는 날이다.

드르르륵.

"오늘도 그림 그리고 있네?"

"아. 네."

이정아가 황급하게 노트를 숨겼다.

"이젠 뭘 그리는지 알려 줄 때도 되지 않았어?"

"안 돼요."

이정아가 휘휘 고개를 저는 모습이 귀여웠다.

"오늘이 수술하는 날인 거 알지? 선생님하고 같이 가자."

"선생님. 우리 정아 좀 잘 부탁드립니다."

곁에 있던 보호자가 최기석에게 고개를 숙였고 최기석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최기석은 이정아의 베드를 끌고 병실을 나섰다.

짝턴에게는 미리 말해서 그가 페이스메이커 삽입술에 보조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마도 PCI 때처럼 병풍 역할을 하겠지만 그래도 처치를 지켜보고 싶었다.

"긴장 안 돼?"

"네. 별로요."

최기석의 물음에 이정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전에 이정아가 조용하면서 은근히 삐딱하게 굴었다면 요즘에는 탈속한 현인 같은 모습을 종종 보였다.

최기석은 스크럽을 끝내고 스태프들과 로젯으로 들어갔다.

부분마취를 했음에도 이정아는 졸린지 금방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최기석이 나서자 강승훈 교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

주변에 있는 스태프들의 시선도 전부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인턴이 수술실에서 그것도 교수에게 말을 걸다니, 최기석이 암묵적인 룰을 깨트린 것이다.

최기석과 강승훈의 시선이 한동안 팽팽하게 충돌했다.

"뭐지?"

"이 환자 왼손잡이입니다. 페이스메이커 삽입 장소를 오른쪽 쇄골 아래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기석은 끝내 할 말을 했다.

페이스메이커가 왼쪽 쇄골 아래로 삽입된다면 왼손잡이인 이정아는 평소 움직임에 불편함을 겪게 될 것이다.

특히 그림을 때는 더욱더 말이다.

"안 그래도 그걸 물어볼 참이었는데. 잘했어."

"······."

"베타딘."

강승훈이 포셉으로 베타틴 용액이 묻은 솜으로 이정아의 앞가슴과 겨드랑이 부근을 넓게 소독했다.

펄럭!

넓게 펼쳐진 소독포가 이정아의 몸을 감쌌다.

"메스."

강승훈이 메스를 받아 이정아의 가슴 상부를 절개하였다. 이후 근처의 쇄골하정맥을 찾아 전극선에 연결시키고 전극선을 심장 안에 고정시켰다.

"마취의!"

"네."

강승훈의 외침에 마취의가 전신마취를 시작했다.

삐비비비빅.

전자음과 더불어 페이스메이커가 작동되었다. 자극의 범위와 저항값을 계산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꿀꺽.

최기석은 마른침을 삼키며 수술을 지켜보았다.

페이스메이커 삽입 중 환자에게 불상사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정아와 친하게 지냈던 터라 한시라도 마음을 놓기 힘들었다.

"봉합사."

강승훈은 전극선과 페이스메이커를 연결하고서 가슴 상부에 주머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그 주머니 안에 심박동기가 들어간다.

이정아는 앞으로 평생 주머니 속에 기계를 안고 지내야 하는 셈이다.

푸우우욱. 찰칵!

강승훈의 봉합술은 뛰어났다.

가슴 주머니를 만드는 손놀림이 정교하기 그지없었다.

내과의라고 해서 봉합 솜씨가 떨어질 줄 알았건만 버릇없는 걱정이었을 뿐이다.

"거즈, 봉합사 카운팅. 이상 없습니다."

피부 봉합이 끝나자 소독간호사가 낭랑하게 외쳤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최기석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정아의 베드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잘 참았다. 고생했어."

그는 이정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또 다른 길(1) 3권 시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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