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53화 (53/407)

제안(5)

응급실로 내려가자 환자를 진료하는 남지황이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환자에게 니트로글리세린을 먹였는데 증상에 호전이 없다고 했다.

"천 교수님이 곧 오신다고 했······."

남지황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아으으윽!"

환자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침상 위에 몸을 축 늘어트린 것이다.

남지황은 놀란 토끼눈으로 환자를 내려다보았고 최기석은 다급하게 환자에게 붙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본 환자 상태가 심상치 않다.

"선배! CPR이요."

[살려야 한다 스킬을 사용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퍽! 퍽! 퍽! 퍽!

최기석은 흉부압박부터 시작했다.

그가 환자의 가슴을 압박할 때마다 환자의 몸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최기석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남지황은 곁에서 앰부백을 짰다.

공기 주머니가 팽창했다가 쪼그라들면서 환자의 몸속으로 산소가 공급됐다.

"여기요. 감시 장치!"

남지황의 외침에 근처에 있던 간호사가 번개처럼 달려와 환자에게 감시 장치를 달았다.

흉부압박과 앰부백을 통한 인공호흡.

발 빠른 수액 처치로 환자는 예상보다 빠르게 자발순환을 회복했다.

제세동기를 쓸 필요도 없었다.

"우와. 식겁했네."

남지황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환자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웬만한 환자는 니트로글리세린만 먹어도 흉통이 가라앉는다.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이 환자처럼 심정지를 겪지는 않았다.

처음 겪는 케이스에 충격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잘했어."

남지황이 최기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최기석이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우물쭈물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쳤을지 모른다.

"아니요. 제가 뭘."

최기석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환자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알람이 울렸다.

[살려야 한다 스킬이 Lv.3으로 상승했습니다. 특수모드 응급처치 마스터가 개방됩니다.]

[살려야 한다 Lv.3]

- 응급환자를 처치하는 경우, 난이도가 높은 처치를 하는 경우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레벨에 따라 능력치가 상승폭이 증가하고 특수모드가 생깁니다.

- 최대 5단계까지 성장합니다.

- 특수모드 응급처치 마스터가 개방되었습니다.

최기석은 특수모드를 확인해 보았다.

[각성 CPR: 특수 버프 30분간 지속]

- 호흡에 관련된 처치를 할 경우 환자가 호흡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30퍼센트 증가합니다.

- 흉부 압박을 할 경우 혈액 순환 속도가 2배 상승하며 갈비뼈가 부러지지 않습니다.

- 제세동기를 사용할 경우 환자 심장 회복률이 1.5배 상승합니다.

[각성 화상 및 외과 처치]

[각성 T.

A 환자 처치]

[각성 산과 처치]

.

.

.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버프에 놀랐다.

이 버프만 제때 사용해도 응급처치의 달인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환자는 어때?"

병원에 남아 있던 천태진이 응급실로 내려왔다.

"니트로글리세린을 먹였는데 심정지가 왔습니다. CPR을 5분 정도 하자 자발순환으로 돌아왔습니다."

"동의서 받고 올라와."

"네."

천태진이 먼저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최기석은 보호자에게 동의서를 받은 후 남지황과 침상을 끌며 심혈관 조영실로 향했다.

조영실에서는 이미 PCI 준비를 끝마쳤다.

소독간호사와 천태진이 대기 중이고 조영실 내부에 각종 수술 도구가 놓여 있었다.

말 그대로 환자만 오면 되는 상황이었다.

"가자."

"네."

최기석과 남지황은 스크럽을 하고 조영실 내부로 들어갔다.

곧바로 PCI가 시작되었다.

천태진이 환자에게 부분마취를 하고 대퇴동맥을 통해 도관을 삽입했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천태진이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도관이 혈관을 타고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꿀꺽.

최기석은 마른침을 삼키며 모니터를 이동했다.

외과 수술과 비교하면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카테터 수술도 상당한 난이도가 필요하다.

"됐다."

천태진이 간신히 한마디 내뱉었다.

차분하게 밀어 넣었던 도관이 상행대동맥에 도착했다.

"조영제 투입하세요."

"네."

천태진의 지시에 도관으로 조영제가 흘러들었다.

시간이 흘러 조영제가 혈관으로 퍼지고 촬영이 이어졌다. 검사 결과 좌전하동맥이 혈전으로 좁아진 것이 발견되었다.

"스텐트도 넣어야겠다."

"네."

남지황이 풍선과 스텐트가 달린 2번째 카테터를 천태진에게 건넸다. 천태진은 형광 투시장치와 모니터를 살피며 신중하게 카테터를 밀어 넣었다.

카테터가 이내 혈전으로 막힌 부근에 도달했다.

풍선이 부풀기 시작하면서 스탠트가 서서히 몸집을 키웠다.

스텐트는 혈관 벽에 단단히 자리를 잡았고 혈전으로 좁혀졌던 혈관은 시원스럽게 확장됐다.

'휴우······.'

최기석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경과를 살피자 환자의 상태가 양호로 변했다.

PCI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천태진이 풍선에서 공기를 빼낸 후 스텐트를 제거했다.

동맥지혈기구를 사용하는 것으로 PCI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환자, MICU(내과중환자실)로."

"네."

최기석은 심혈관 조영실을 빠져나가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그리고 남지황의 콜을 받아 병동 회의실로 향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천태진이 도관을 삽입하던 모습이 생생했다.

"나도 해 보고 싶다."

최기석은 걸으며 카테터 삽입하는 흉내를 냈다.

* * *

PCI가 끝난 후 병동 회의실에 남지황과 최기석과 양진석이 모였다.

순화기 내과 병동에서의 첫 야식시간이 찾아왔다.

오늘의 메뉴는 족발 세트와 피자.

세 사람은 걸신이 들린 것처럼 야식을 먹어 치웠다.

피곤에 찌든 두 명의 인턴과 막 레지던트를 시작한 1년 차의 식탐은 엄청났다.

제법 많은 양을 시켰음에도 음식이 금방 동났다.

"후아······ 살 것 같네."

남지황이 볼록해진 배를 쓰다듬었다.

"너희는 많이 먹었어?"

"네."

최기석과 양진석이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 과 어떤 것 같냐? 솔직히 말해 봐."

"저는 배울 게 많아서 좋아요."

최기석이 먼저 대답했다.

솔직히 약물 공부가 답답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엄연히 그가 가장 관심 있어서 하는 심장에 관련된 공부다. 충분히 이겨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병풍이기는 했지만 PCI를 보고 느낀 것도 있고요."

"오올~ 그러면 흉부외과 접고 우리 과 오는 거냐?"

"그건 아니고요."

"칫. 그럴 줄 알았다. 너는?"

남지황의 시선이 양진석에게 머물렀다.

"과를 많이 돌아봤는데 아무래도 내과 체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어디 가고 싶은데?"

"기왕이면 성형외과로······."

양진석의 목소리가 모기소리만 해졌다.

"야. 안 돼. 성형외과는 접어."

"······."

"인기가 많이 시들긴 했지만 성형외과는 작년 레지던트 지원율 탑 쓰리였어. 미안한 말이긴 한데 특출 난 뭔가가 없으면 타 대학 출신인 너는······."

남지황이 말을 흐렸지만 그 말뜻은 모두 알았다.

"괜히 떨턴 할 생각 말고 다른 과로 가. 기석이가 있는 흉부외과는 어때?"

"아휴······ 흉부외과는 절대 못 버틸 것 같아요."

양진석은 도리도리 고갯짓을 하며 부정의 뜻을 나타냈다.

'흉부외과 = 개고생'이라는 공식은 변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대학병원임에도 한 해 레지던트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겠는가.

올해 지원자도 최기석이 유일할 확률이 높았다.

"하여간 네가 알아서 잘해. 너무 우리 병원만 쳐다보지 말고 다른 병원도 좀 알아보고."

"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운을 뗐다.

"선배.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그 김 교수님이요. 외과를 엄청 싫어하시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어요?"

최기석은 하루 종일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회의 시간 김철우가 외과에 보인 날카로운 적대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 그거? 교수님 부모님이 심장 수술하다가 돌아가셨대. 그때부터 외과라면 치를 떤다고 하더라."

"수술받은 병원이 혹시 우리 병원인가요?"

"그건 아니라고 들었어."

이야기를 듣고 나니 김철우가 외과에 삐딱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만 상황을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환자의 죽음을 단순히 외과 탓으로 돌릴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뒷정리는 알아서 해."

"네."

김철우가 당직실로 향했고 최기석과 양석진이 쓰레기를 치웠다.

그렇게 내과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최기석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논문을 읽었다.

외과에 있을 때는 논문 독파와 수술 실습이 주 일과였지만 내과에 들어오면서 내과 공부가 추가되었다.

세 가지를 전부 소화하려면 빨리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하아아암."

하품을 하며 송명진이 보내 준 논문을 살폈다.

해외 논문이었지만 버프 덕분에 어렵지 않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타다다다닥. 딸칵!

감상평을 보내고 파일을 전송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다.

띠링!

[새로운 칭호, '논문이 가장 쉬웠어요'를 획득하셨습니다.]

[논문이 가장 쉬웠어요]

- 꾸준하게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눈을 뜨는 순간이 있죠. 그때부터는 모든 게 쉬워져요.

- 논문 이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 논문의 주장과 근거를 파악하며 논리상의 맹점을 쉽게 파악합니다.

최기석은 칭호를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칭호 설명 그대로다.

버프를 받은 채 꼬박꼬박 논문을 읽었더니 어느 순간 논문을 읽는 게 쉬워졌다.

내용 하나하나를 파악하기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을 잡을 줄도 알게 되었고 말이다.

"한 건 했네."

시원하게 기지개를 펴고 아지트로 향했다.

싱싱한 소 심장으로 CABG 연습을 하자 오전 5시가 됐다.

최기석은 병동 일을 후딱 마치고 회의실에서 남지황이 추천한 내과 서적을 읽었다.

오늘은 특별히 노트를 챙겨와 책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오랜만에 의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김철우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벌써 왔어?"

김철우는 최기석을 위아래로 훑다가 말을 이었다.

"내과 공부?"

"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너 흉부외과 픽스턴이라며. 어차피 환자 보면 쨀 생각부터 할 텐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최기석은 주눅 들지 않고 답했다.

흉부외과와 순환기내과는 환자의 심장을 관리하는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필요한 처치를 할 뿐, 굳이 어느 쪽을 내세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대답은 잘 하네."

김철우가 빈정거리며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겼다.

조용한 분위기가 이어지는데 김철우가 먼저 운을 뗐다.

"급성 심낭염 환자가 오면 어떻게 할래?"

김철우의 질문에 최기석은 책을 덮었다.

책을 보지 않고 아는 지식으로 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정확한 케이스를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일단 가장 많은 케이스인 바이러스성 심낭염을 기준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심전도와 흉부 엑스레이로 환자를 살핍니다."

"검사 결과는?"

"심전도 상으로는 ST분절의 상승이 관찰되며 PR분절이 떨어질 경우, 흉부 엑스레이 상으로는 심비대가 관찰되면 심낭염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최기석이 똑 부러지게 대답하자 김철우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의 눈빛에 '이놈 봐라' 하는 듯한 기색이 어렸다.

"치료는?"

"우선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인 이브프로펜을 사용하고 효과가 없으면 환자의 상태를 봐서 콜히친을 씁니다."

"심근경색 후 심낭염이 왔을 때는?"

김철우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약물을 쓸 때는 갖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데, 특이상황이 주어진 것이다.

최기석은 머리를 있는 힘껏 쥐어짰다.

김철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 진심으로 내과 공부를 하고 있음을.

"거기까지는 모르겠지?"

"아······ 아닙니다."

"그럼 대답은?"

최기석은 뜸을 들이다가 간신히 한마디 뱉었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와 스테로이드는 피하고 아스피린을 줍니다."

"확실해? 자신 있어? 네 약에 환자의 목숨이 달렸어. 메스 들고 설치는 것만 위험한 게 아니란 말이지."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최기석은 솔직한 대답에 회의실에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김철우는 최기석을 빤히 쳐다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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