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48화 (48/407)

새로운 바람(6)

그날 저녁, 당직실.

민주혁은 모니터를 째려보고 있었다.

방금 막 응급실에서 노티를 하고 검사 결과를 보냈다.

환자 이름은 강성주.

27세로 T.

A(교통사고) 환자다.

의식은 또렷하지만 호흡곤란과 흉통을 극심하게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맥박이 분당 70회로 떨어져 있었지만 다른 바이탈은 모두 정상이다.

피 검사에서도 특별한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흉부 엑스레이 상에서 흉수가 보인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선배. 왜 그러세요?"

최기석이 말을 걸었다.

"T.

A 환자인데 좀 골치가 아파. 일단 내려가 봐야겠다."

"저도 같이 갈까요?"

"넌 그냥 있어. 도움도 안 돼."

"잡일이라도 도울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최기석의 고집에 민주혁은 그러라고 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환자를 마주했다.

약간의 타박상이 있었지만 외견상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선생님. 가슴이 너무 답답해요. 숨 쉬기도 힘들고요."

강성주가 찡그린 얼굴로 하소연했다.

"옷 좀 걷어 보실래요?"

강성주가 옷을 걷자 민주혁은 청진기로 심음을 확인했다.

좌측 흉부 하부에서 호흡음이 감소하기는 했지만 수포음이나 천명음은 들리지 않았다.

골치가 아팠다.

검사상으로 뚜렷한 이상 징후는 없는데 환자는 심한 통증을 호소하니 말이다.

"송 교수님한테 전화해 볼까요?"

최기석이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이 시간에?"

"응급환자라고 하면 와 주실 것 같은데."

"이 환자, 응급은 아니야."

"그래도 확실히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냥 돌려보냈다가 혹시 문제라도 생기면······."

"네가 전화해 봐."

민주혁은 최기석에게 연락을 짬 시키고 환자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윽고 송명진이 헐레벌떡 응급실로 달려왔다.

"이 환자예요?"

"네."

"검사 결과 좀 봅시다."

송명진이 민주혁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훑었다.

전전긍긍하는 민주혁과 여유 넘치는 최기석의 태도가 대조적이다.

"상태를 정확하기 위해 C.

T 촬영과 상부 위장관 조영술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할 수 있는 건 다 해 주세요."

송명진의 말에 강성진이 고통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검사 결과가 나오자 송명진이 민주혁과 최기석을 불러 모았다.

"이거 보여요?"

송명진의 검지가 모니터의 한쪽 면을 가리켰다.

"여기 좌측 횡격막이 단절되고 두꺼워졌죠? 그리고 이쪽 U.

G.

I(상부 위장관 조영술)에서는 위저부가 관찰되지 않고요."

"그럼 혹시······."

"환자는 외상성 횡격막 탈장입니다."

외상성 횡격막 탈장.

교통사고 또는 기타 사고로 인해 횡격막이 찢어지고 그 사이로 위나 장막 등이 들어가는 병이다.

만약 환자를 내버려 뒀다면 이탈된 장기가 폐색되거나 꼬여서 심각한 합병증이 생겼거나, 심하면 사망을 했을 수도 있었다.

"노티, 잘했어요."

송명진이 민주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모르는 게 있으면 윗사람에게 물어봐서라도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죠."

"아, 네."

"갑자기 왜 웃어요?"

"아, 네. 송 교수님께 칭찬을 받는 게 처음인 것 같아서.

민주혁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그가 웃은 이유는 송명진의 등 뒤에서 최기석이 엄지를 척 치켜세웠기 때문이었다.

사실 최기석이 노티 하라고 부추기지 않았다면, 직접 송명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면 간단한 처치만 하고 돌려보냈으리라.

그런데 최기석은 그 공을 민주혁에게 돌렸다.

귀여운 자식이다.

"환자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송명진이 환자와 대화를 나눴다.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응급수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때마침 가족이 응급실에 도착했기에 수술 동의서를 받고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집도의 송명진, 제1보조 민주혁, 제2보조 최기석, 소독간호사.

이렇게 네 명이서 수술에 들어갔다.

마취의가 마취를 하면서 본격적인 수술의 막이 올랐다.

"횡격막이 파열됐을 때는 개흉술을 할 수도 있고 개복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케이스는 개흉술을 하는 편이 더 좋아요."

"······."

"개흉술을 하면 횡격막의 시야가 좋고 복부장기 손상도 쉽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죠."

"네."

"그리고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수술을 넋 놓고 보지 말아요. 언젠가 내가 할 수술이다, 이번 기회에 꼭 배워야겠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실력이 금방 늘어요."

수술 스태프들이 단출하기 때문일까.

송명진이 황금 같은 조언을 해 주었다.

"메스."

송명진이 소독간호사가 건넨 메스를 쥐고 피부를 갈랐다.

이십여 분간 후측방 개흉술을 실시하자 환자의 장기가 드러났다.

좌측 늑막강에 늑막액이 있었으며 탈장된 위저부는 흉강 내에 붙었다.

송명진은 늑막액을 제거하고 메스를 들었다.

스으으으윽.

섬세한 손놀림에 흉강에 붙어 있었던 위저부가 떨어져 나갔다.

이후 위저부를 원위치로 돌린 후 횡격막을 재건했다.

'역시 스승님이야.'

최기석은 수술을 지켜보며 또 감탄했다.

송명진은 의과의가 아니라 마술사 같았다. 수술 도구를 신들린 듯이 다뤘고 처치가 끝나면 수술 부위가 말짱하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 이제 수술 끝입니다."

송명진이 가슴을 닫으면서 수술은 종료됐다.

환자는 중환자실로 보내졌으며 세 사람은 의국에 모여서 야식을 먹었다.

지이이잉.

"전 콜이 와서 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고생하고."

"네."

민주혁이 떠나면서 의국에는 송명진과 최기석만 남았다.

"아까 노티 잘했어요."

송명진이 미소를 지으며 최기석을 응시했다.

"네? 노티는 제가 한 게 아니라······."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최 선생이 민 선생한테 노티 하라고 부추겼잖아요."

"아니에요."

"어허. 내가 민 선생을 아는데, 민 선생 혼자였으면 절대 노티 안 했어요."

송명진의 지적에 최기석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설마 송명진이 거기까지 꿰뚫어 보고 있을 줄이야.

"그건 그렇고······."

송명진이 물은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만약에 말이에요. 아주 만약에."

"······."

"내가 병원을 떠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송명진의 물음은 담담했지만 그 여파는 거셌다. 최기석은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혹시 조지환 과장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그냥 뭐. 생각만 해 보자는 거예요."

"저는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최기석이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교수님이 없는 의진대 흉부외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교수님은 없어서는 안 되는 분이에요."

"최 선생이 그렇게 말해 주니까 고맙네요."

"저는 정말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해요."

송명진이 화제를 돌렸다.

최기석은 뒷정리를 하고서 병동을 떠나는 송명진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내가 병원을 떠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송명진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 * *

다음 날 오후.

최기석은 수술 스케줄을 끝내고 휴게실에서 쉬고 있었다.

"하아······."

상태창을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마음의 조각(1/2)]

모처럼 미션을 얻었지만 해결할 길이 구만리다.

윤지혜와는 친해지기 어려웠고 간호사들과는 깊은 속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웠다.

역시 이번 미션은 포기해야 하나?

요즘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소파에서 일어나는데 가운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최준기.

친동생이 모처럼 전화를 걸었다.

"어. 웬일이야?"

[엄마가 약 갖다 주래서. 병원 로비로 와.]

"알았어."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1층 로비로 향했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으면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한다.

그동안은 주로 부모님이 병원에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고 약을 줬는데 오늘은 특별히 동생이 왔다.

본래 최기석과 최준기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최기석이 부모님의 뜻을 따라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면 최준기는 자신만의 길을 가는 중이다.

이에 최기석은 부모님을 편을 들어 최준기를 탐탁지 않게 여겨왔고 최준기는 그런 최기석을 싫어해 왔다.

"왔어? 자."

로비에 도착하자 최준기가 약 봉투를 내밀었다.

"인턴 힘들지 않아?"

"그런대로 할 만해."

최기석은 약 봉투를 받으며 대답했다.

"기왕 온 김에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

"나 바쁜데."

"나도 바빠."

최기석은 최준기를 억지로 끌어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교통사고 후 새로운 삶과 더불어 새로운 가족도 얻었다. 아직 어색하고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잘 지내 보고 싶었다.

'자. 그럼.'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부터 사용했다.

부모님이 건강하다는 것은 자주 확인했지만 동생의 상태는 살핀 지 오래됐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아니. 그냥."

최기석은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한식 자격증 땄다며? 제법인데?"

"당연하지. 내가 생각 없이 셰프가 되겠다고 한 줄 알아?"

"잘해 봐. 너 예전부터 손재주는 좋았잖아."

최기석의 말에 최준기가 놀란 듯 눈을 깜빡거렸다.

"해가 서쪽에서 떴나? 갑자기 왜 그래? 전에는 얌전하게 대학이나 다니라고 해 놓고서?"

"원래 생각은 바뀌는 법이야."

최기석은 웃으며 요리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처음에는 이를 어색하게 여기던 최준기지만 이내 봇물처럼 요리 이야기를 쏟아냈다.

말을 하는 내내 반짝거리는 눈.

다양한 요리 지식들.

요리를 향한 최준기의 열정은 최기석이 의료를 향한 열정 못지않았다.

왜 과거의 최기석은 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을까.

"그건 그렇고. 다음에 도시락이나 한 번 싸 와."

"도시락? 왜?"

"네 요리 좀 먹어 보자. 요리사는 요리로 승부하는 거지, 입으로 승부하는 거 아니잖아?"

"맛있어서 까무러칠 수도 있는데?"

최준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처음 보는 동생의 미소에 최기석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기대감이라는 것은 때로는 사람을 부담스럽게 만들지만 때로는 관심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지금의 경우는 후자.

부모님에게 받지 못했던 관심을 최기석에게 받자 최준기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여는 듯한 모습이다.

최기석은 대화를 하던 중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

"하긴 바쁠 텐데."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를 일어났다.

"다음에 올 때 도시락 싸 올 테니까 기대해. 완전 뒤집어지게 만들어 줄 테니까.

"제발 그래라."

최기석은 최준기에게 격려를 써 주고 병동으로 향했다.

* * *

그날 저녁.

최기석은 기숙사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작업을 왼손으로 하고 있지만 속도는 꽤 빨랐다.

만약 누군가가 최기석을 봤다면 원래 왼손잡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끝났다."

최기석은 손에서 코바늘을 놓았다.

그의 무릎 위에는 완성된 털장갑이 올려져 있었다.

흐뭇하게 털장갑을 내려다보다가 작은 박스 안에 털장갑을 집어넣었다.

뜨개질을 하면서 본의 아니게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동안 만든 것은 머플러 두 개와 장갑 세 개.

다음번에는 수제 스웨터에 도전할 예정이다.

지금처럼 연습한다면 아마 겨울에는 의국사람과 지인들에게 선물도 줄 수도 있으리라.

침대 등받이에 기대서 한숨을 돌리는데 지긋지긋한 콜폰이 울렸다.

번호를 보니 흉부외과 콜이다.

[선생님, 병동인데요. 환자 폴리 좀 꽂아 주세요.]

"지석이는요?"

[콜 했는데 안 받아서요.]

"네."

최기석은 하는 수 없이 병동으로 올라갔다.

권지석은 다 좋은데 말없이 잠수 타는 버릇이 있었다.

소변줄 세트를 들고 병실로 들어가자 오십 대 남자 환자가 최기석을 빤히 쳐다봤다.

그가 바로 소변줄을 꽂아야 할 황용학 환자다.

"소변보기 불편하시다고 해서 담당 선생님이 처치를 내렸습니다."

"또 그거 꽂으려고? 그거 좀 안 하면 안 되나? 아프기도 하고······."

황용학이 최기석의 시선을 피했다.

비록 의사라도 다른 사람 앞에서 성기를 꺼내 놓고 처치를 받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어르신 마음은 이해하지만 꼭 필요한 처치라서요."

최기석은 황용학 주변에 천막을 쳤다.

도뇨 세트를 준비하는 사이 황용학은 별말 없이 바지를 벗고 성기를 드러냈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최기석은 성기 주변을 소독하고 도포를 씌었다.

그 상태에서 한 손으로는 환자의 성기를 잡았고 다른 손으로는 겸자를 이용해 카테터를 잡았다. 이후 카테터에 윤활 젤리를 발랐다.

카테터가 서서히 성기 안쪽으로 들어갔다.

"크으으읍."

황용학이 얼굴을 찌푸렸다.

"잘하고 계세요. 힘 빼시고 조금만 참으세요."

최기석은 소변줄을 더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그러자 카테터 앞부분이 요도구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주사액을 넣어 ballooning을 시도했다.

처치는 무사히 끝.

카테터가 방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ballooning을 하면 요도파열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환자에게 인사한 후 스테이션에서 손을 씻고 도뇨관 세트를 처리했다.

볼일을 보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 중년 환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체력: 2/10

주 증상: 무호흡 / 심정지

아픈 부위: 심장

진단명: 급성 심근경색 / 고혈압 / 당뇨병 / 협심증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매우 불량(Near death)

과거력: 고혈압

"여기 환자요!"

최기석은 목청껏 외치고 환자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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