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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47화 (47/407)

새로운 바람(5)

다음 날 아침.

최기석은 시뻘건 눈으로 병동을 향했다.

본래 오프였지만 정설화 대신 근무를 서느라 한숨도 못 잤다.

역환단으로 인해 체력회복 능력이 상승되었길래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네."

최기석의 인사에 이민지 간호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강 쌤 어디 있어요?"

최기석은 강하나를 찾았다.

근무를 서던 중 간식을 먹었지만 그래도 배가 고팠다.

식당에 갈 여유는 없었기에 강하나에게 뭐라도 얻어먹을 생각이다.

"잠깐 화장실이요."

"초 인턴 쌤. 하이요."

질문하기 무섭게 화장실에서 나온 강하나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최기석도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여심을 얻어라 미션을 얻었기에 평소보다 강하나를 유심히 살펴봤다.

"웬일로 머리띠를 했어요?"

"우와. 대박!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아는 초 인턴 쌤 맞나?"

"제가 이렇게 동료를 챙깁니다."

최기석은 말을 하고 상태창을 살폈다.

마음의 조각은 역시 얻지 못했다. 하긴 이 정도로 얄팍하게 해결할 수 있으면 미션 축에도 못 드리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지금 상황에 쓸 만한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대충 넘어가요."

강하나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머리띠 한 것도 맞췄으니까 오늘은 특별히 상을 드릴게요."

"무슨 상이요?"

"무슨 상일 것 같아요?"

강하나가 장난스럽게 웃었고 그 옆에 앉아 있던 이민지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이미 답을 아는 모양이다.

"사탕? 껌? 초콜릿?"

"아니에요. 제 상은 바로······ 오카상이에요. 오카상!"

강하나가 깔깔 거리며웃었다.

최기석은 강하나의 개그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불시에 허를 찔렸다.

"어때요? 재밌죠?"

"네. 웃겨서 배가 터질 것 같아요. 그러니까 먹을 것 좀 주세요."

"배가 터질 것 같은데 음식을 먹어도 되나?"

"강 쌤. 제발요."

"알았어요."

강하나가 빵과 우유를 챙겨 주었다.

최기석은 그 자리에서 음식을 깨끗이 해치우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먼저 온 권지석이 벌써 회의 준비를 끝내다.

"미안. 내가 도와줬어야 하는데."

"됐어. 신경 쓰지 마."

권지석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이윽고 선생들이 들어오면서 오전 회의가 시작됐다.

별다른 이슈가 없었기에 진행이 빨랐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최기석은 운을 뗐다. 그리고 어제 저녁 응급실에서 있었던 아동학대 사건을 이야기했다.

미리 보고를 해 두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잘했어요."

"또 한 건 했는데?"

송명진과 장혁필이 한마디 하고 다른 의국 식구들도 최기석을 칭찬했다.

쏟아지는 칭찬에 최기석은 머쓱하게 뒷머리만 긁었다.

* * *

그날 저녁.

최기석은 기진맥진한 몸으로 수술실을 나왔다.

드디어 일과가 끝났다.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정설화와 잠깐 얼굴을 보기로 했기에 1층 카페로 내려갔다.

"피곤하지?"

정설화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밤새는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뭐."

"오늘 또 당직이라며······."

"이 정도로 안 죽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당직 서면서 요령껏 자면 되지."

최기석은 정설화를 안심시키며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다행히 어제에 비해 상태가 양호해졌다.

대리 당직을 뛴 보람이 있다고 할까.

"몸은 좀 괜찮은 것 같은데? 어때?"

"응. 많이 좋아졌어. 커피라도 한잔하자."

최기석은 정설화와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셨다.

"아까 범균 선배한테 들었어. 너 어제 아동학대 피의자 잡았다며?"

"보호자가 옆에 있는데 낌새가 이상하더라고. 그래서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어."

"대단하다. 나였으면 너처럼 못했을 텐데."

정설화가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은 쌩쌩 머리를 굴렸다.

새로운 미션, 여심을 얻어라.

이를 성공시킬 수 있는 유력한 사람이 바로 정설화다.

정설화는 최기석에게 충분한 호감이 있었다.

또한 그를 가장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며 함께 응급실 생활도 했다.

최기석은 커피를 쭉 들이켜고 정설화를 위아래로 훑었다.

"크록스. 아직 잘하고 있네?"

"아. 이거?"

정설화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정설화뿐만 아니라 최기석도 커플 크록스에 액세서리까지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이게 없으면 허전해."

"나도 그런데."

그의 말에 정설화가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최기석은 정설화와 이십 분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다.

특수 미션이 걸렸기에 병원 이야기보다는 정설화나 본인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화제로 삼았다.

분위기는 훈훈했지만 마음의 조각을 얻을 수는 없었다.

여심을 얻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최기석은 속으로 한탄했다.

"그만 일어나자. 너 피곤하겠다."

"그래."

정설화의 제안에 최기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직 잘 서고. 조만간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그래. 너도 푹 쉬어."

최기석은 멀어지는 정설화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순간 문득 며칠 전 송명진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어떤 감정이 떠올랐다.

그 감정이라면 정설화의 마음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설화야."

"응. 왜?"

정설화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얼마 전에 송 교수님이 나한테 그런 말을 했어. 훌륭한 외과의가 되려면 빨리 결혼하래. 세상이 나를 버려도 나를 버리지 않을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

"느끼한 말이지?"

최기석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말이야. 그 말 듣고 네가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

그의 고백에 정설화의 두 볼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두 눈은 최기석을 피했고 다리를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냥 그랬다고. 너무 신경 쓰지 마."

"나······ 그······ 그만 가 볼게."

정설화가 도망치듯이 로비를 벗어났다.

띠링!

[마음의 조각(1/2)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이 머리를 스쳤다.

마음의 조각을 얻은 건 기쁘지만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몇몇 사람들이 최기석을 보며 킥킥거리며 웃었기에.

"하긴 드라마 주인공도 아니고. 무슨 헛소리를."

최기석도 서둘러 당직실로 돌아갔다.

침대에 몸을 던지자 온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그저 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이리 큰 행복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러면 안 되지."

스르르 잠이 왔지만 억지로 참고 몸을 일으켰다.

송명진이 내준 과제가 떠올랐다.

수술 연습은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논문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기석은 남은 정신력을 끌어내 논문을 읽어 갔다.

오늘의 논문은 팔로 4징 수술에 관한 것.

장기 임무로 해결해야 하는 질환이기에 더더욱 집중해서 살폈다.

벌컥!

논문에 집중하는데 당직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야. 너 저녁 뉴스에 나왔어!"

민주혁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침에 말씀드렸잖아요. 오후에 방송국에서 인터뷰 따 갈 거라고."

"그게 생각보다 효과가 컸나 봐. 지금 전화 왔는데 부병원장님이 너 보재."

"안 가면 안 되겠죠?"

최기석은 힘없이 웃었다.

간신히 당직실에 와서 간신히 논문을 보고 있었다. 부 병원장을 만나서 인사치레 같은 대화를 할 힘도 없었다.

"아니야. 안 가도 돼."

"진짜요?"

"응. 죽고 싶으면."

민주혁의 살벌한 대답에 최기석은 어깨를 늘어트린 채 부병원장실로 향했다.

이후 부병원장과 30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부병원장은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물었고 최기석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의진대병원에서 아동학대 피의자를 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말이다.

대화가 끝날 무렵 부병원장은 포상금을 약속했다.

그 순간 최기석은 무언가가 번쩍 머리를 스쳐 가는 것을 느꼈다.

강민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부병원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말해 봐요."

"학대 받은 민아 이야기인데요. 민아의 정신과 치료를 우리 병원에서 전액 무상 지원하는 건 어떨까요?"

"무상 지원?"

"네. 신고만 했다고 해서 병원의 일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환자가 무사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돕는다면 병원 이미지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기석의 당돌한 제안에 부병원장이 턱을 쓸어내렸다.

"기석 씨."

부병원장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고 최기석은 긴장한 나머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본인 생각이에요?"

"네."

"대단하군요.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다니."

"그럼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겁니까?"

"안 될 이유가 없잖아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최기석이 고개 숙여 인사했고 부 병원장은 그런 최기석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대화를 끝난 후 최기석은 강민아의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방금 있었던 일을 알려 주었다.

그녀의 밝은 목소리에 최기석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당직실로 돌아와서 남은 논문을 다 읽고 감상문을 보냈다.

오늘 할 일은 얼추 다 끝낸 셈이다.

최기석은 그제야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한 손에 콜폰을 꼭 쥐고서.

* * *

다음 날 아침.

최기석은 오전 세 시에 일어나 송명진이 보낸 논문을 읽고 감상문을 보낸 뒤 아지트로 향했다.

"오늘도 반갑다."

문 앞에 놓인 스티로폼 박스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지트로 들어간 후에는 수술에 필요한 도구들을 챙겼다.

한 달 넘게 해 온 일이라서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했다.

'최고를 향해서'에 필요한 수술들.

팔로 4징 수술, 양측 폐이식 수술, 대동맥 수술은 아직 동영상이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CABG 수술을 연습 중이다.

최기석은 메스를 들고 집도에 들어갔다.

동영상을 수차례 돌려 봤기에 모든 과정이 머릿속에 있었다.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실전에 적용하면 된다.

스으으으윽.

메스를 이용해 심근막에 숨어 있는 내흉동맥을 박리해 냈다. 그리고 협착이 있다고 가정한 좌전하행동맥으로 가는 새로운 우회로를 만들었다.

'안 돼. 느리고 허접해.'

최기석은 스스로를 다그쳤다.

지금 그의 집도는 동영상 속 송명진에 비하며 발톱의 때만큼도 안 된다.

어시가 없다는 점을 감안해도 말이다.

절개면 절개, 문합이면 문합,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 등등.

연습하면 할수록 송명진이라는 큰 벽을 느꼈다.

"휴우······."

한숨을 쉬며 니들홀더를 손에서 놓았다.

병동으로 올라갈 시간이 됐다.

짝턴이 병동 일로 고생하는 만큼 오늘은 직접 처치와 회의 준비까지 다 할 생각이다.

최기석은 뒷정리를 하고 병동으로 올라갔다.

익숙하게 처치를 끝내고 의국에서 회의 준비를 하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아······ 안녕하세요."

최기석은 당황한 얼굴로 인사했다.

송명진이 왔을 거라 예상했건만 뜻밖의 인물이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윤지혜다.

최기석의 인사에 윤지혜는 무표정하게 손을 들어서 대답을 대신했다.

얼음마녀다운 인사라고 할까.

"일찍 오셨네요."

"할 일이 좀 있어서."

윤지혜가 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을 만지작거렸다.

최기석은 회의 준비를 마치고 그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문득 여심을 잡아라 임무가 떠올랐다.

흉부외과 여의사는 윤지혜뿐.

남은 마음의 조각을 얻으려면 윤지혜를 공략하는 게 맞다.

하지만 냉기를 폴폴 날리는 그녀에게서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문득 할 수 없다는 데에 오백 원을 걸고 싶어졌다.

타다다다닥.

"휴우······."

윤지혜가 노트북에서 손을 뗐다.

얼굴에 여유가 돌아온 것을 보면 작업이 끝난 모양이다.

최기석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윤지혜에게 들이대기로 했다.

"식사는 하셨어요?"

"빵 먹었어."

윤지혜가 짧게 대답했다.

최기석에게 되묻는 질문이 없었기에 대화는 허무하게 끊겼다.

강적도 이런 강적이 없다.

"누구랑 연락하시나 봐요?"

최기석은 윤지혜와 그녀가 만지작거리는 휴대폰을 번갈아 응시했다.

"아니. 그냥 운세 봐."

"오늘 운세는 어떠세요?"

"그저 그렇대."

"제 운세도 봐주시면 안 돼요?"

최기석은 필사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려했다.

일단 대화를 나누며 친해져야 마음의 조각을 얻든지 말든지 할 테니까.

"귀인에게서 연락이 온대."

"귀인이라······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최기석은 중얼거리며 윤지혜를 응시했다.

윤지혜는 책상에 있던 흉부외과 서적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말을 걸지 말라는 분위기가 진하게 풍겼다.

'알다가도 모르겠네.'

최기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회식 자리에서 노래를 부를 때나 유기견을 챙겨줄 때와 지금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설마 두 얼굴의 여자인가.

최기석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윤지혜에게 마음의 조각을 얻을 수 없다면 다른 대상을 찾아야하는데······.

문제는 흉부외과 인턴 생활 중 마주치는 여자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정설화에게는 마음의 조각을 얻었으니 남은 인원은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다.

개중에서 강하나가 그나마 가능성이 높지만 특유의 가벼운 분위기 때문에 진지한 이야기가 통할지는 의문이다.

이번 미션은 그냥 넘겨 버릴까.

최기석은 머리를 쥐어뜯다가 윤지혜를 바라봤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교수님. 정말 죄송한데 한 가지만 여쭤 봐도 될까요?"

"말해."

"교수님은 왜 흉부외과를 전공으로 택하셨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 인턴 할 때 흉부외과 레지 선생님을 좋아했거든."

말하면서 윤지혜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버림받는다는 건 참 힘든 일이야. 그렇지?]

회식 자리에서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무거워진 분위기에 최기석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 가지 못했다.

지이이잉.

가운 속 휴대폰을 확인하니 반가운 사람이 전화를 걸었다.

최기석은 회의실을 나와서 전화를 받았다.

"형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암. 잘 지내다마다.]

윤문재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 들었는데 인턴 생활은 무지 빡세다면서?]

"그래도 버틸 만해요."

[하긴 너라면 그렇겠지.]

"형님은 요새 어떠세요?"

최기석의 물음에 윤문재가 침묵을 지켰다. 그러더니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찼다.

[정말 몰라서 물어?]

"······."

[너 영화 나쁜 놈이 산다 몰라?]

"나쁜 놈이 산다요? 그게 뭔데요?"

[아무리 의사라도 천만 영화 정도는 봐 줘야지.]

윤문재가 설명을 이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범죄 영화인 나쁜 놈이 산다가 상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천만을 넘어 대박 행진을 이어 가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윤문재가 꽤나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은 각종 섭외로 기쁨의 비명을 지르는 중이란다.

"형님. 축하드려요!"

최기석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가 무명 생활로 오랫동안 고생했음을 알기에.

[이거 왠지 엎드려 절 받는 느낌인데?]

"제가 병원에 있다 보니까 바깥일을 잘 몰라서 그래요."

[하여간 고맙다.]

윤문재가 껄껄 웃었다.

[그건 그렇고 약속은 안 잊었지?]

"······."

[내가 너 아이돌 소개시켜 준다고 했잖아. 얼마 전에 예능 나가서 괜찮은 친구랑 연락처를 주고받았거든. 조만간 자리 한번 만들어 볼게.]

"말씀은 감사하지만······."

최기석은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병원 밖을 나가서 누굴 만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럴 여유도 없고."

[인마. 여자 아이돌인데 안 보겠다고? 그것도 요새 빵빵 뜨는 애들인데.]

"시간이 안 맞으면 못 보는 거죠."

최기석의 대답에 윤문재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당장 만나라는 건 아니니까 언제 시간 맞춰서 같이 보자.]

"네. 형님. 대박 나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너도 병원 일 열심히 하고.]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휴대폰으로 나쁜 놈이 산다 영화를 검색해 봤다.

금방 포스터가 떴다.

윤문재는 젊은 남자 배우 뒤에서 불량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었다.

병원에서도 종종 보여 줬던 모습이라 친숙하게 느꼈다.

"아이돌이라······."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회의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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