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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39화 (39/407)

더 높은 곳을 향해서(2) -> 유료 시작 화끝 더 높은 곳을 향해서(3)

견학용 수술실.

조지환은 그를 따르는 흉부외과 의사들과 폐이식 수술을 관람하고 있었다.

'확실히······.'

조지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송명진의 수술 솜씨는 예사롭지 않았다.

필요한 부위를 절제하고 떼어 내고 다시 매듭을 짓는 솜씨는 그가 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의사인지 알 수 있게 했다.

놀라운 점은 또 있었다.

송명진이 수술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슬쩍 시계를 응시했다.

뇌사자의 폐가 도착하기 전에 실시하는 전 처치.

그 전 처치 시간이 조지환보다도 빨랐다.

열등감을 느낄 법도 하건만 조지환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조지환은 어차피 수술 실력을 더 키울 생각이 없었다.

수술 실력은 윗자리에 올라갈 만큼만 만들어 두면 된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능력 좋은 의사들을 발밑에 거두면 된다.

무엇하러 잠까지 아껴 가며 수술 실력을 갈고 닦는단 말인가.

"과장님. 수술을 더 보실 겁니까?"

"그래야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릴 텐데요."

"상관없어.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니까."

치프의 물음에 조지환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본인이 흉부외과 과장이 된 날에 송명진이 수술에 실패해서 나락에 떨어진다고 하자.

그 얼마나 짜릿한 경험인가.

조지환은 팔짱을 낀 채로 수술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뇌사자의 폐가 도착했고 최기석과도 눈을 마주쳤다.

최기석이 서둘러 시선을 피하는 게 귀여웠다.

'넌 내 손에 들어올 수밖에 없어.'

조지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흰 종이일수록 먹에 잘 물드는 법.

지금이야 고집을 부린다지만 파릇파릇한 인턴 하나 꿰차는 것은 일도 아니다.

"과장님. 저희는 슬슬 들어가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조지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수술실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수술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도중, 소독간호사가 환자에게 엎어질 뻔한 사고가 벌어졌다.

"크크크크큭."

조지환은 소리 내어 웃었다.

오늘은 하늘마저 그를 돕는 것 같았다.

이윽고 최기석이 간호사를 데리고 수술실을 나갔다.

수술 스태프가 두 명이나 빈 상황, 송명진의 처치 속도는 눈이 띄게 줄었다.

지금 속도만 놓고 보면 조지환보다도 한참 밑이다.

"세계의 명의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시려나."

조지환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 * *

지이이잉.

문이 열리고 최기석이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독간호사는 어때?"

"빈혈로 쓰러진 것 같습니다. 바이탈에 특별한 문제가 없어서 일단 편히 쉬게 뒀습니다."

"잘했어."

제2보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에게 엎어지는 간호사를 막은 것만으로도 최기석은 이미 훈장을 받을 만했다.

"다른 소독간호사는?"

"응급수술이 계속 터져서 이쪽으로 보낼 간호사가 없다고 합니다."

최기석의 말에 수술실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수술 내내 평정심을 보였던 송명진조차 눈썹을 찡그렸다.

"이거 야단났네."

"교수님. 어떻게 하죠?"

제1보조와 제2보조가 한마디씩 했다.

제1보조는 집도의를 도와야 하기에 어시를 할 수 없다. 제2보조 역시 제1보조를 돕고 시야를 확보하느라 바빴다.

소독간호사를 대체할 사람은 전무했다.

바로 그때다.

지이이이잉.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타났다.

"기석이. 이 새끼 수술 중에 장난을 쳐? 저기 소독간호사 오잖아."

제2보조가 헐레벌떡 다가오는 남자를 가리켰다.

"안녕하세요. 대장관외과 인턴입니다. 급하게 수술 보조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아서요."

"······."

"그쪽도 인턴?"

"네. 무슨 문제라도?"

새로 온 남자 인턴이 눈을 깜빡거렸다.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기석이 소독간호사의 자리에 위치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다른 스태프들은 눈을 깜빡거리기만 했다.

"제가 소독간호사 역할을 하겠습니다. 새로운 인턴분은 수술 시야 좀 확보해 주세요."

"네."

최기석의 말에 인턴이 견인기를 들고 수술부위를 벌렸다.

"뭐야. 네가 어시를 하겠다고?"

"지금은 이 방법뿐입니다. 그렇다고 기절한 소독간호사를 깨울 수도 없잖아요."

"이대로 진행합시다."

송명진이 대화에 껴들었다.

잠시 흔들렸던 그의 눈동자가 예전처럼 또렷한 빛을 되찾았다.

"교수님.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하지만 저 녀석이 어시를 할 바엔 교수님이 혼자 수술하시는 게 빠를지 않을까 싶습니다."

"······."

"교수님. 저는 교수님이 우리 병원에 오래오래 남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1보조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는 송 교수 편에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최 선생을 믿어 봅시다. 지금은 그게 최선이에요."

"······네."

일단의 소란이 끝났다.

최기석이 소독간호사의 역할을, 새 인턴이 수술 시야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할 일은 뇌사자의 한쪽 폐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일이다.

즉 수술의 백미가 남은 셈이다.

송명진은 뇌사자의 폐를 환자의 늑막강에 위치시키고 봉합 위치를 보았다.

우선 기관지와 폐를 연결해야 한다.

그래서 작은 기관지가 내측으로 향하게 한 후 우측으로 손을 내밀었다.

"최 선생. 봉합······."

"여기 있습니다."

최기석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봉합사를 건넸다.

prolene 4-0.

기관지 단단 문합에 필요한 봉합사를 단번에 찾아서 준 것이다.

송명진은 봉합사로 기관지를 꿰매기 시작했다.

그의 손동작은 섬세하면서 빨랐다.

봉합의 신이 있다면 바로 송명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태프들은 어느새 송명진의 봉합 솜씨에 빨려 들어갔다.

단 한 사람 최기석을 제외하고서.

찰칵!

송명진이 매듭을 다 짓자 최기석이 기다렸다는 듯 나머지 실을 가위로 잘랐다.

"다음은······."

"여기 있습니다."

최기석이 다시 한 번 치고 나갔다.

이번에 건넨 것은 5-0 prolene.

송명진은 봉합사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필요한 게 정말 이거라고 생각해요?"

"네. 기관지를 문합하셨으니까 이제는 폐동맥을 문합하셔야죠. 폐동맥은 제일 작고 얇은 바늘을 써야 하지 않습니까?"

"맞아요."

송명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수술 과정을 다 외웠나요?"

"네. 우리 병원에서 실시했던 폐이식 수술기록지를 통째로 외웠습니다. 폐이식 논문도 열 개 이상 읽었고요."

최기석은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대답했다.

사실 그뿐만 아니라 심장이식에 필요한 수술 도구까지 다 외워 둔 상태다.

집도의의 일과 제1보조의 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직접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해 왔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말이다.

"미친······."

"제정신이야?"

최기석의 말에 제1보조가 제2보조에게 혀를 찼다.

최기석은 고작 인턴이다.

수술방에 들어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견인기를 당겨서 시야 확보를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오늘 최기석은 수술 과정을 완전히 다 외워서 왔다고 한다.

그 덕에 소독간호사의 역할을 대신 수행 중이고 말이다.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다.

"이젠 저를 믿어 주시겠죠?"

최기석의 말에 송명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속도를 더 내셔도 좋습니다."

"······."

"그동안 유심히 지켜봤는데 소독간호사가 어시 할 때와 제가 어시 할 때의 속도 차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굳이 저 때문에 속도를 죽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 올 수 있겠어요?"

송명진의 눈이 희미하게 웃었다.

"네!

최기석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수술이 이어졌다.

최기석과 송명진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 주었다.

우선 송명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기석이 건네는 도구를 받아서 처치할 뿐이다.

필요한 처치 도구가 항상 적재적소에 도착했다.

마치 최기석이 그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당연히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한편 최기석은 수술 과정을 머릿속으로 훑으며 수술 도구를 건넸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술 과정에는 없더라도 송명진이 필요할 것 같은 도구를 먼저 찾아 주기도 했다.

'대박이다. 대박.'

제2보조는 두 사람의 호흡을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스태프 간의 시너지가 이런 식으로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덕분에 수술이 5시간 만에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잠시 후, 시한폭탄처럼 팽팽했던 수술실의 분위기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휴우······."

송명진이 처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초 절개 부위를 봉합하는 것으로 수술이 끝났다.

심장 수술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고난도의 폐이식 수술까지 성공시킨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스태프들이 감격에 겨워 한마디씩 했다.

최기석은 환자를 한 번 내려다보고 다시 송명진을 바라보았다.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죽음에서 돌아온 환자.

본인의 지위와 명예를 던져서 환자를 지켜 낸 의사.

그 두 사람이 주는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거즈, 봉합사를 비롯한 수술 도구 카운트가 끝났습니다. 이상 없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기석은 모든 스태프에게 꾸벅 인사했다.

* * *

그날 저녁.

최기석은 중환자실에서 한 환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 막 폐이식을 끝낸 강동호다.

강동호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다행이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살핀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폐이식 수술이 성공적이었다고 해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수술 후 각종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는 환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보고 싶네.'

최기석의 입가에 문득 미소가 걸렸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봤던 조지환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본인이 수술을 피했던 환자를 심장전문의인 송명진이 무사히 살렸으니, 지금쯤 배가 엄청나게 아플 것이다.

최기석은 환자를 살피다가 병동으로 돌아갔다.

"안녕하세요. 초 인턴 쌤."

나이트 근무인 강하나가 최기석을 반갑게 맞았다.

"오늘은 평소보다 싱글벙글이네요. 좋은 일 있어요?"

"네. 솔직히 좋아 죽을 것 같아요. 저 내일부터 이틀간 오프에요. 그래서 제주도에 여행 가려고요."

강하나가 콧노래를 불렀다.

"우와."

최기석은 진심으로 강하나를 부러워했다.

인턴인 그에게 여행이란 있을 수 없었다.

집에도 못 들어가고 당직실과 기숙사만 왔다 갔다 하는 신세다.

"자랑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미안해요."

"괜찮아요. 전 신경 쓰지 마세요."

"······."

"제 몫까지 재미있게 놀다 오세요. 좋은 경치를 볼 때마다 병원에서 채혈하고 있을 저를 생각하시고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저를 떠올리세요. 그럼 여행이 훨씬 즐거울 거예요."

"힝. 나빴어."

"제가 원래 이렇게 나쁜 놈입니다."

최기석은 강하나를 놀리고 병실로 이동해 환자의 소변줄을 제거했다.

그런데 나오던 중 의국 불이 아직 켜져 있을 것을 발견했다.

똑. 똑. 똑.

노크를 하고 안에 들어갔다.

낡은 노트북이 놓인 것을 보고 송명진이 논문을 읽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뭘 보고 계시려나?'

호기심에 노트북에 다가갔지만 그 앞에 놓인 수첩에 더 관심이 갔다.

최기석은 송명진이 오기 전에 재빨리 수첩을 훑었다.

수술이 두렵다.

파릇파릇하던 시절 처음 개흉을 하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많은 논문을 보고 수없이 연습했지만 아직 불안은 남았다.

언제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래도 수술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병원에서 쫓겨나고 삿대질을 받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내 손에서 환자가 죽는 게 무섭다.

보호자들이 피눈물 흘리는 게 겁난다.

최기석은 조용히 수첩을 덮었다.

수술 전 고뇌와 두려움과 싸웠던 송명진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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