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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38화 (38/407)

더 높은 곳을 향해서(2)

그 효과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명대로라면 찻길에 뛰어들거나 벼랑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건가.

"슬슬 수술할 때가 됐는데."

최기석은 병실 복도를 걸으며 기지개를 켰다.

바로 그 순간.

따박. 따박. 따박.

다급한 구두 소리가 들렸다.

송명진이 막 복도를 꺾어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강동호 환자 상태가 나빠졌어요. 수술을 앞당겨서 시작할 거니까 바로 준비해요."

송명진이 속사포처럼 말을 뱉었다.

평소의 여유로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네!"

최기석은 씩씩하게 대답하고 복도 중앙 병실로 들어갔다.

강동호는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환자분. 스케줄보다 조금 더 일찍 수술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네."

강동호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탁자에 올려놓았던 염주를 손에 쥐었다.

"선생님. 저 괜찮겠죠?"

강동호가 가라앉은 눈빛으로 최기석을 응시했다.

"네."

"선생님. 우리 남편 잘 부탁드립니다."

강동호의 부인이 머리를 조아렸고 최기석도 고개를 숙여 인사에 답했다.

최기석은 환자의 침상을 이끌고 수술실로 이동했다.

오혜정에게 미리 병동 일을 봐 달라고 했기에 수술 보조로 들어가는데 문제는 없었다.

스크럽을 한 후 환자를 수술실에 두고 바깥으로 나왔다.

송명진을 비롯해 오늘 수술에 참여할 스태프들은 공급실에 모여서 수술 브리핑을 하는 중이다.

뇌사자의 폐를 적출하는 팀.

폐를 이식하는 팀.

두 팀이 동시에 수술을 들어가기 때문에 수술 스태프의 숫자가 상당히 많았다.

'드디어 시작이다.'

최기석은 볼을 찰싹 두드리며 정신을 두들겼다.

오늘 펼칠 수술은 단일 폐이식.

뇌사자의 폐 한쪽 면을 떼어내서 수혜자의 폐에 이식하는 수술이다.

폐이식 중에서는 난이도가 낮은 편이지만 오늘은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우선 환자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

또한 집도의가 심장외과 전문의 송명진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들어갑시다."

송명진의 말에 스태프들이 흩어져서 스크럽을 시작했다. 그리고 각각의 로젯으로 흩어졌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최기석은 송명진을 따라 수술실로 들어가며 간절히 빌었다.

제발 강동호를 무사히 살려 달라고.

그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친 조지환에게 한 방 먹여 달라고.

* * *

B 로젯.

한 남자가 수술실 침상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복장을 갖춘 의료진들이 그 주변을 동그랗게 감싸고 있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의사들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오늘 수술은 의진대병원 흉부외과에서 다섯 번째로 펼쳐지는 폐이식 수술이다.

그 의미는 남달랐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수술실 한구석에 마련된 천막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좋은 구경하겠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마취과 레지던트 2년 차 이민준이다.

그의 곁에는 정설화가 서 있었다.

"폐이식 수술을 볼 수 있는 경우는 좀처럼 없잖아?"

"네."

정설화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최기석이 어젯밤 폐이식 환자 수술에 들어간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 자리에 없는 걸 보면 옆 로젯에서 대기 중이리라.

정설화는 새삼 최기석이 보통 인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폐이식 수술은 7시간에서 10시간 가까이 걸리는 대수술이다.

보통은 그런 수술에 자진해서 들어가는 짓은 거의 하지 않는다.

최기석 같은 괴짜가 아니라면 말이다.

문득 서글펐다.

그의 머리와 가슴에 의료에 관한 열정으로만 가득 찼다는 사실이.

"시작한다."

이민준의 말에 정설화가 수술대로 시선을 돌렸다.

"메스."

집도의가 메스를 들고 정중복부를 절개했다.

이어서 톱으로 흉골절제를 실시했다.

빠드드득.

뼈 부서지는 소리가 수술실에 퍼졌다.

집도의는 메스를 들고 뇌사자의 양측 하부 폐 인대를 절단하고 식도 주위를 벗겨 냈다.

이식을 위해서는 폐와 연결된 접합부를 끊어야 했다.

"헤파린."

집도의에 말에 캐뉼라를 통해 심정지액이 투입 되었다.

드드득.

혈관겸자로 대동맥을 폐쇄하자 힘차게 뛰던 심장이 서서히 둔해졌다.

"저쪽은 어때?"

"송 교수님이 막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폐를 떼어 내는 시간이면 저쪽도 준비가 끝날 것 같습니다."

제2보조의 말에 집도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송 교수님이라도 폐이식에 도전하는 건 무리 아닐까요? 폐식도 펠로우를 땄더라도 일반 폐 수술과 폐이식 수술은 난이도가 다른데······."

잠자코 있던 제1보조가 기어코 한마디 했다.

"송 교수님이라고 하고 싶어서 했겠어? 환자를 전원시킨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집도의는 쓴웃음을 지으며 심장을 떼어 내고 폐의 한쪽 엽도 떼어 냈다.

마지막으로 아이스박스에 폐를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이제 그들이 할 일은 끝났다.

환자의 생명과 죽음.

송명진과 조지환의 힘 싸움.

얼마 후에는 그 결말이 어떻게 방식으로든 나타나리라.

"막내야. 옆 로젯으로 넘겨라."

"네!"

인턴이 아이스박스를 들고 옆 로젯으로 이동했다.

* * *

송명진의 비롯한 의료진들이 차례대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최기석은 제 위치에 서서 스태프들을 살폈다.

히포크라스테의 눈으로 의료진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다.

체력: 4/10

주 증상: 두통 / 어지러움

아픈 부위: 머리

진단명: 빈혈

현재 상태: 비응급

경과: 보통

과거력: 없음

대부분 상태가 좋았지만 소독간호사의 상태가 꺼림칙했다.

체력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고 빈혈기가 있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네? 뭐가요?

"몸이 좀 불편하신 것 같아서요. 수술 시간도 제법 되는데 다른 분하고 교대하시는 게 좋겠어요."

"안 돼요. 스케줄이 꽉 차서 교대할 사람도 없어요."

소독간호사가 힘없이 웃었다.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수술실에서 일하면 이런 경우는 흔해요."

"알겠습니다. 힘내세요."

최기석은 물러나면서 소독간호사에게 격려를 걸었고 다른 스태프에게도 격려를 사용했다.

휘이이이잉.

최기석의 눈에만 보이는 환한 빛이 스태프들을 감쌌다.

"지금부터 일측 폐이식 수술을 시작합니다."

송명진의 말이 은은하게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최기석은 용의 눈을 사용했다.

[용의 눈을 사용합니다. 수술에 최적화된 시야를 제공합니다. 줌 인 모드와 줌 아웃 모드 사용 가능.]

그가 보는 완벽한 시야를 송명진에게도 보여 주리라.

스으으으윽. 스으으윽.

수술 부위에 대한 소독이 이루어졌다.

"메스."

송명진이 메스를 받아들고 5번째 갈비뼈 사이를 통해 개흉을 시도했다.

아직은 뇌사자의 폐가 도착하기 전.

그 전까지 필요한 작업을 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송명진은 개흉을 끝낸 후 폐동맥을 떼어 내서 일시적으로 묶어 두었다.

이후 곧바로 혈액가스 검사가 시작되었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pH 6.98, PaO2 223mmHg, PaCO2 127mmHg, 폐동맥압 85/26mmHg 입니다."

본격적인 수술을 시작하기 전, 마취의로부터 비보가 날아왔다.

"인공심폐기 준비하세요."

송명진의 지시에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제1보조가 대퇴동맥과 우심방에 캐뉼러를 꼽자 체외순환기사가 인공심폐기를 돌렸다.

드르르륵.

기계 소리와 더불어 체외순환이 시작되었다.

"계속하죠."

송명진은 환자의 상태를 살핀 후 폐정맥과 폐동맥을 떼어 냈다.

손놀림이 경쾌하면서 정확했다.

한 번 메스를 댄 곳에 다시 메스를 대는 일은 없었다.

양손을 이용한 매듭짓기는 요술과 같았다.

'미쳤어.'

최기석은 스승의 솜씨에 그저 감탄했다.

보통 외과의는 나이가 들수록 흔히 말하는 피지컬이 떨어진다.

그런데 송명진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타이밍이 좋네요."

송명진이 수술방 입구를 바라보았다.

수술 준비를 막 끝마쳤을 때 뇌사자의 폐가 도착했다.

"여기 있습니다."

옆 로젯 인턴이 폐가 담긴 아이스박스를 내밀었고 최기석이 박스를 받았다.

순간 수술실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자리에 있는 스태프 중 이번 수술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폐이식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네!"

송명진의 말에 스태프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관객들이 있다고 긴장할 필요 없어요.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되는 겁니다. 알겠죠?"

"네!"

다시 한 번 대답이 이어졌다.

최기석은 관객이라는 말이 이상해서 살짝 고개를 들었다.

2층에 설치된 견학용 수술실에 몇몇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개중 제일 앞에 선 사람이 바로 조지환이다.

흉부외과 과장 조지환.

최기석은 용의 눈의 줌 인 모드로 그의 가운에 박힌 오버로크를 확인했다.

기막힌 노릇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병원이 인정한 사람을 한낱 인턴인 그가 부정해 봤자 의미가 있겠는가.

최기석은 조지환을 무시하고 수술에 집중했다.

수술을 성공시켜서 조지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자.

지금은 그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메스."

송명진이 폐동맥, 폐정맥, 기관지 순으로 절단하여 한쪽 폐를 떼어 냈다.

수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만 보면 누구도 그가 심장외과 전문의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수술 도구를 관리하던 소독간호사의 몸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소독간호사가 사과하고 제 자리를 지켰지만 다시 몸이 휘청거렸다.

"괜찮아요?"

"김 간호사. 정신 차려요."

송명진과 제1보조의 외침에도 소독간호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다시 엎어졌다.

그것도 뒤가 아니라 환자 쪽으로 말이다.

돌발 상황에 모두가 경악했다.

바로 그때 최기석은 재빨리 한쪽 팔을 뻗어 간호사가 넘어지지 못하도록 막았다.

다행히 간호사가 환자와 충돌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스태프들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간호사가 환자에게 정통으로 엎어졌다면 수술은 그대로 망했으리라.

"선배님. 제 대신 수술 부위 좀 벌려 주세요."

"어? 어."

최기석은 간호사를 부축하며 수술실 바깥으로 나갔다.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체력 부족과 빈혈기로 소독간호사가 쓰러져 버렸으니······.

"무······ 무슨 일이에요?"

수술실 수간호가 최기석과 소독간호사를 번갈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김 간호사님이 수술 중에 쓰러졌어요."

"아······."

"일단 소파에 눕힐게요."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며 수술실 구석에 놓인 소파에 소독간호사를 눕혔다.

그리고 재빠르게 그녀의 바이탈을 체크했다.

"바이탈은 정상입니다.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에 빈혈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잠깐 쓰러진 것 같아요."

"휴우······."

최기석의 말에 수간호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수술실에 들어갈 인턴 한 명만 보내 주세요."

"인턴은 왜요? 최 선생님이 있잖아요."

"전 소독간호사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최기석의 선언에 수간호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 선생님이 소독간호사를 하겠다고요? 수술실 일이 얼마나 전문적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죠?"

소독간호사는 자신이 들어가는 수술을 빠삭하게 꿰고 있어야 한다.

수술에 사용되는 물품 및 기구도 잘 다룰 수 있어야 하며 항상 멸균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병동 간호사가 보통 1년 안에 수련을 끝마친다면 수술실 간호사는 훨씬 더 긴 수련을 한다.

그만큼 일이 전문적이라는 뜻이다.

병원에 막 들어온 뽀송뽀송한 인턴이 대체할 수 있는 자리는 결코 아니다.

"그럼 대체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게······ 응급수술이 계속 터져서 없기는 한데······."

"그렇다고 수간호사님이 들어갈 수도 없잖아요. 그러면 수술실이 완전히 비어 버리니까."

"······네."

"인턴이라도 최대한 빨리 붙여 주세요. 나머지는 안에 스태프분들하고 제가 처리할 테니까."

최기석은 번개처럼 수술실로 복귀했다.

다른 사람들은 황당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환자를 위한, 그리고 송명진을 위한.

머지않아 최기석을 대신할 인턴이 수술실로 들어갔다.

폐이식 수술이 두 번째 전개를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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