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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37화 (37/407)

더 높은 곳을 향해서(1)

황정우를 살피다가 보호자 대기실로 가서 양지민과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 정말 감사드려요. 덕분에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고 들었어요."

"수술은 집도의 선생님이 다하셨죠. 저는 아주 조금 거들었을 뿐입니다."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양지민이 감사하다며 거듭 고개를 조아렸다.

최기석도 거기에 맞추느라 머리가 땅에 닿을 듯 낮아졌다.

기분 좋은 만남을 끝내고 병동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나오는 조지환 교수와 딱 마주쳤다.

'재수도 없지.'

최기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좀 멀리서 봤으면 미리 보고 피했을 텐데 이런 식이면 빼도 박도 못한다.

문득 위험한 환자는 수술하지 않겠다던 조지환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안녕하십니까?"

"잠깐 나 좀 볼까?"

"네."

최기석은 조지환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조지환은 정작 사람을 불러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깊어질수록 불안감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톡. 톡. 톡.

조지환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태호와 친한가?"

조지환의 질문이 가슴을 찔렀다.

설마 처음부터 본론으로 치고 들어 올 줄이야.

"왜 그렇게 눈치를 봐. 사실대로 말하면 될 것을."

"예전에는 친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태호가 내 조카라는 건 알고 있나?"

"얼마 전에 직접 들었습니다."

최기석은 최대한 담담하게 답했다.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조태호가 인맥을 이용해서 압박을 시작한 것이다.

하필 조태호의 작은 아버지가 흉부외과 조 교수라니······.

운명의 장난이 얄궂다.

"태호가 내게 어떤 부탁을 했을지 궁금하지 않아?"

"이미 알고 있습니다."

"······."

"아마 저를 흉부외과에서 쫓아내 달라고 했을 겁니다."

"잘 아는 군."

조지환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팽팽한 침묵이 흘렀다. 최기석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지환이 무슨 말을 할 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말이야. 난 그 녀석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어."

"네?"

뜻밖의 대답에 최기석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건 오히려 내가 자네한테 묻고 싶어. 왜 내가 그 녀석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거야······ 조카니까······."

"조카?"

조지환이 코웃음을 쳤다.

"그 녀석은 병원장인 형만 믿고 항상 칭얼거리는 놈이야. 나한테는 하등 도움이 안 되지. 사실 형도 태호를 썩 좋아하지는 않고 말이야."

"그럼 태호와 저를 연결시키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그것만큼은 백 퍼센트 보장하지."

조지환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커피포트를 작동시켰다.

이윽고 조지환이 본인의 자리와 최기석의 자리에 블랙커피를 내려놓았다.

은은한 커피 향이 의국을 휘감았다

"잘 마시겠습니다."

최기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정신을 일깨웠다.

조지환은 조태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수가 높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위험하다.

"자네. 픽스턴을 신청했다고 들었어. 전공도 이미 흉부외과로 정했다고 하던데."

"네. 맞습니다."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평가가 아주 좋더군. 실력도 좋고 외과의다운 배포를 가졌다고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내 밑에서 일해 볼 생각 없나?"

"죄송하지만 안 되겠습니다."

"이유는?"

"제는 이미 송 교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하더니. 한 방 먹었군. 크크크큭."

조지환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히스테릭하게 웃었다.

"송 교수는 날개 잃은 독수리야. 그쪽에 붙어 봤자 영양가 없어."

"교수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송명진 교수님은 진심으로 환자를 위해 노력하는 분입니다. 저는 송 교수님 같은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고집불통이군."

조지환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제가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말해 봐."

"조 교수님은 어째서 흉부외과를 택하셨습니까? 야망을 위해서라면 다른 과를 선택하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브라보. 날카로운 질문이야."

조지환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점점 마음에 드는군. 태호 새끼였으면 이런 질문은 죽어다 깨도 못했겠지."

"······."

"내가 흉부외과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조지환이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흉부외과가 사람의 목숨을 가장 가까이서 다루기 때문이지. 흉부외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면 나는 사람의 목숨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어."

조지환의 눈빛에 담긴 광기를 읽고 최기석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정상처럼 보이지만 정상에서 한없이 빗나간 인간.

말로만 듣던 존재를 처음 만났다.

"의사에게 필요한 건 의술이 아니야. 치료는 적당히 할 줄 알면 되는 거고 나머지는 정치에 달려 있지."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 자네가 스승으로 생각하는 송 교수만 봐도 알 수 있어."

조지환이 설명을 이었다.

CAPAR 수술.

이것은 송명진이 개발한 심장 수술로 해외 의학계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기존 수술보다 후유증이 남지 않으며 수술에 필요한 비용도 훨씬 저렴했다.

"송 교수가 만든 CAPAR 수술을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할 수가 없어. 왜인 줄 알아?"

"······."

"기존 인공판막으로 돈을 벌고 있는 기업들, 그들과 청탁한 의사들, 마지막으로 송 교수의 실력을 시기하는 의사들이 그 수술을 막고 있기 때문이지."

조지환의 말에 최기석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자네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어. 환자를 진심으로 살피는 의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지금처럼 소수의 편에 든다면 언젠가 땅을 치고 후회할 거야. 뛰어난 솜씨도 썩어 문드러지겠지."

조지환이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이래도 송 교수를 따를 텐가?"

"의사는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실력과 환자와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라 믿습니다."

"······."

"그래서 저는 송 교수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최기석의 마침표에 조지환이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금방 온화한 표정을 되찾았다.

"소귀에 경 읽기라고 하더니. 지금이 딱 그 꼴이군."

조지환이 헛헛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이번 주 안에 깨닫게 될 거야. 자네가 정말 누구를 따라야 할지는."

조지환이 물러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최기석은 회의실을 나온 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호랑이 굴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 * *

의진대병원 대강당.

수많은 직원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오늘은 월례회가 있는 날이다.

최소 근무자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참석하기에 각 분야의 직원들을 한곳에서 볼 수 있었다.

"지금부터 의진대병원 월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순서가 진행되었다.

최초의 순서는 친절사원 수상.

친절사원은 환자들의 칭찬 카드를 많이 받은 직원을 대상으로 뽑는다.

"정형외과 병동 김윤정 간호사, 피부과 외래 최미라 간호사, 비뇨기과 외래 김수철 선생님······ 마지막으로 흉부외과 인턴 최기석. 이상 단상으로 올라와 주세요."

진행자의 호명에 최기석은 강연대로 올라갔다.

환자들과 꾸준히 라포를 쌓은 덕분에 칭찬 카드를 많이 받았다.

덕분에 친절사원으로 뽑혔다.

병원장 조양기가 상장을 수여하는 가운데, 최기석이 상을 받을 차례가 되었다.

"인턴이 친절사원에 뽑히는 건 오랜만이네."

조양기가 최기석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조태호의 아버지임을 알기에 최기석은 마른 침을 삼켰다.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다행히 수상은 별 탈 없이 끝났다.

친절사원 상장 수여식이 끝나고 본격적인 신입사원 소개가 이어졌다.

최근 의진대병원은 공격적으로 타 병원의 고급 인재를 끌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매달 열 명 이상의 신입 아닌 신입 의사들이 식구가 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흉부외과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전태형 과장이 타 병원으로 가면서 흉부외과 과장 자리가 공석이었는데요."

"······."

"병원 내부 회의를 통해 조지환 교수를 흉부외과에 새 과장으로 선출하는데 만장일치를 보았습니다. 조지환 흉부외과 과장님을 박수로 맞아 주십시오."

진행자의 말에 일제히 박수가 쏟아졌다.

조지환은 느긋한 걸음으로 단상에 올라왔다.

본래대로라면 송명진이 과장에 올라야 했지만 조지환의 배경과 세력은 원칙을 거스를 만큼 강력했다.

"역시 조 교수가 과장이 됐네."

"당연하지. 형이 병원장인데다가 각 과 과장들이랑 얼마나 친한데. 벌써 병원 실세라는 말까지 돈다고."

"쯧쯧. 송 교수만 불쌍하지."

몇몇 의사들이 조지환을 쳐다보며 한마디씩 했다.

"과분한 자리가 주어진 것 같아서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최상의 치료, 환자 중심의 치료, 세계를 향한 치료라는 병원의 비전에 걸맞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지환이 간단하게 연설을 마쳤다.

짝. 짝. 짝. 짝.

박수 소리가 시원하게 강당에 퍼졌다.

조지환은 여유롭게 한 손을 흔들고 자리에 돌아갔다. 그리고 옆에 앉은 송명진을 보며 씨익 웃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송. 교. 수."

* * *

오전 11시.

최기석은 한바탕 쏟아진 오더를 처리하고 휴게실에서 쉬고 있었다.

기분이 복잡했다.

월례회에서 친절사원으로 뽑힌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조지환이 흉부외과 과장이 됐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기분이랄까.

송명진과 조지환의 위치가 역전된 만큼 조지환의 발언권이 강해지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번 주면 깨닫게 될 거야. 자네가 정말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는."

최기석은 뒤늦게 떠올렸다.

며칠 전 조지환이 했던 말의 의미를. 그리고 그 경고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만약 송명진이 폐이식 수술에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최기석은 고개를 내저으며 불길한 상상을 떨쳤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인 캔 커피를 단번에 털어 넣으며 흉부외과 소아병동 이동했다.

드르르륵.

병실로 들어가자 짐 정리 중인 황정우와 보호자가 보였다.

승모판 재건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특별한 부작용도 드러나지 않았다.

오늘은 황정우가 무사 퇴원하는 날이다.

"선생님!"

황정우가 밝게 웃으며 최기석에게 달려왔다.

최기석은 그런 황정우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체력: 7/10

주 증상: 흉통

아픈 부위: 가슴

진단명: 없음

현재 상태: 비응급

경과: 양호

과거력: 승모판 재건술

[주의! 이 환자는 와파린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황정우의 상태는 여전히 좋았다.

마음 편히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은 좀 어때?"

"날아갈 것 같아요."

황정우가 침상에 올려놓은 불사의 칼 장난감을 붕붕 휘둘렀다.

"그래도 무리하면 안 돼. 선생님이 뭐라고 했지?"

"다치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 약 먹는 동안에는 피가 안 멈춘다고."

"선생님 말 항상 명심해."

"네!"

황정우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기석은 황정우에게 재생의 빛을 걸어 주고 보호자와도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병실을 막 나가려는 찰나 황정우가 큰 목소리로 최기석을 불렀다.

"선생님. 잠깐만요!"

황정우는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다가 책상 서랍에서 뭔가를 꺼냈다.

"내 보물 줄게요."

"보물?"

"네. 좀 아깝기는 한데 선생님한테는 줄 수 있어요."

황정우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손에 쥔 물건을 내밀었다.

보물의 정체는 바로 6성의 칼라일 카드다.

카드 속 칼라일이 불사의 검을 멋들어지게 휘두르고 있었다.

"고맙다. 건강해야 돼."

최기석은 황정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카드를 의사 가운에 넣고 병실을 떠났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유니크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아이템을 착용합니다. 유니크 아이템은 양도할 수 없으며 일회성으로 자동 사용됩니다.]

유니크 아이템?

아이템을 얻은 것은 처음이라서 서둘러 상태창을 살폈다.

대가의 제자 버프 아래로 한 장의 카드가 보였다.

[불사신 칼라일]

- 죽는다고? 내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설령 세계가 무너지더라도 이 몸은 항상 그 자리, 그곳에 있다.

- 이모탈 효과: 아이템을 장착하면 죽음의 위기를 한 차례 피할 수 있습니다. 재해나 외부적인 사건, 사고에 적용되며 질병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최기석은 아이템을 확인하고 헛웃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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