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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36화 (36/407)

다시 서울로(6)

"수술을 계속한다. 이 환자는······ 예정대로 재건술로 간다."

치프와 민주혁이 고개를 끄덕였으며 최기석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정한석이 인공판막술을 한다고 하면 인턴인 그가 막을 방법은 없으니까.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인데?'

최기석은 정한석을 다시 봤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는 승모판 치환술이 승모판 재건술보다 훨씬 용이하다.

그런데 정한석이 승모판 재건술을 택했다는 것은 수술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뜻도 되겠지만 그만큼 황정우를 위한다는 뜻도 됐다.

이어지는 승모판 재건술.

스태프들은 한 몸이 되어 황건우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대장정에 들어섰다.

"메스."

"네."

"보비(전기 소작기)"

"네."

정한석이 판륜성형술에 들어갔다.

정한석의 패시브와 칭호 효과가 발동하면서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우선 링을 사용하여 늘어난 판륜을 줄여 주었다.

이어서 탈출한 후첨부위 복구에 들어갔다.

치프와 민주혁의 보조 또한 휼륭해서 수술은 일사천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최기석이 찬물을 끼얹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정한석의 손이 멈췄다.

동시에 치프와 민주혁은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최기석을 응시했다.

감히 인턴 주제에 집도의에게 말을 걸어?

그들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기석은 조금도 물러남이 없었다.

황정우를 위해서라면 이 말은 꼭 해야 한다.

"뭐지?"

"방금 절제한 후첨의 높이가 너무 크고 넓은 것 같습니다. 조절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야. 너 미쳤어?"

"가만있어."

정한석은 민주혁이 으르렁거리는 것을 막았다.

최기석을 바라보는 정한석의 눈빛은 담담하기만 했다. 이윽고 정한석이 치프와 민주혁에게 시선을 옮겨졌다.

"후첨이 크고 높으면 무슨 문제가 생기지?"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치프와 민주혁이 차례대로 대답했다.

"인턴의 대답은?"

"S.

A.

M(Systolic Anterior Motion)이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 좌심실 유출로에 협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정답이다."

정한석이 말을 이었다.

"사실 건삭을 재건할 생각에 후첨 부위 시술에 집중하지 못했다. 네가 지적하지 않았다면 수술이 끝났어도 후유증이 남았을 거야."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작게 대답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용의 눈으로 수술을 살피길 잘했다.

단순히 수술 시야만 열어 주고 있었다면 황정우의 후유증을 막지 못했으리라.

더불어 용의 눈은 앞으로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너희 둘 다 분발해. 리트랙터를 쓰는 인턴보다 수술 시야가 떨어져서 되겠어?"

정한석의 호통에 치프와 민주혁이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수술이 재개되었다.

정한석이 꼼꼼하게 판막을 성형했고 다른 스태프들은 이를 열심히 보조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다.

이후 수술은 정상적인 단계를 밟아 끝났다. 남은 것은 수술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는 것뿐이다.

인공심폐기를 가동하는 중에 좌심실을 식염수로 채운 후 확장시켰다.

꿀꺽.

스태프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승모판에 집중했다.

승모판이 제 역할을 한다면 식염수는 역류하지 않을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성공입니다."

최기석은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재건된 승모판이 식염수를 튼튼하게 막아 주고 있었다.

* * *

수술방 휴게실.

최기석은 민주혁과 소파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았다.

팽팽한 침묵이 이어졌다.

"너 나한테 할 말 없냐?"

민주혁이 분위기를 잡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있습니다."

"말해 봐."

"수술이 무사히 끝나서 너무 좋습니다."

최기석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특히 승모판이 역류하려던 식염수를 막는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 선했다.

"그런 거 말고."

"그 외에는 없는데요."

"답답한 새끼. 모르는 거냐? 모르는 척하는 거냐?"

민주혁이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가 지적한 부분은 최기석이 수술 중에 함부로 입을 놀린 것이다.

그것도 감히 인턴 주제에 전문의와 레지던트 앞에서 말이다.

치프는 그 일로 단단히 화가 났다고 한다.

"선배. 제가 완전히 틀린 말은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

"중간에 제가 지적하지 않았으면 재수술을 했을지 몰라요."

"그거야······ 그렇지만."

민주혁이 난감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에이. 씨팔. 나도 모르겠다. 하여간 넌 아까 그 일로 나한테 단단히 교육받은 거다. 알았지?"

"네."

최기석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너 정 교수님 수술이 미흡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솔직히 말도 안 되잖아."

민주혁이 꾹 참았던 호기심을 드러냈다.

최기석은 고작 인턴이다.

고난도 심장판막 수술의 상태를 살핀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게······ 저 사실 송 교수님 제자로 들어갔어요."

"송 교수님?"

"네. 아침에 저한테 논문을 주셨는데. 그게 승모판 재건술에 관한 거였어요. 운이 좋았죠."

"그래도 그렇지, 견인하면서 수술 부위를 그렇게 자세히 봤다고?"

민주혁은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보통 수술방 인턴은 시야 확보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일부는 시야 확보 중에 잠을 자기도 한다.

그런데 최기석은 제1조수인 치프보다도 훨씬 예리하게 수술 부위를 살폈다.

"제가 원래 시력이 좋아요. 운도 좋았고요."

최기석은 미꾸라지처럼 민주혁의 질문을 빠져나갔다.

"으음······."

민주혁이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최기석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다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인마. 근데 왠지 불안하네."

"뭐가요?"

"씨발. 이러다가 너한테 먹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저 식인종 아닌데요?"

"됐다. 말을 말자."

두 사람이 잡답을 나누는 중 누군가가 휴게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기석아 안녕."

정설화가 민주혁과 최기석에게 인사를 건넸다.

맑은 목소리가 휴게실에 퍼졌다.

이후 민주혁이 자리를 떴고 그 자리에 정설화가 앉았다.

"기석아. 너 아까 진짜 멋있었어."

"멋있다고? 내가?"

"수술 중에 집도의 선생님한테 지적했던 거 말이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최기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마취과 인턴이잖아. 아까 그 수술 나도 봤어."

"아. 그랬구나."

"그리고 아까 집도의 선생님이 수술방 나가면서 한마디 하시더라. 이번에 흉부외과에 제대로 된 인턴이 들어왔다고."

정설화는 본인이 칭찬 받은 듯 기뻐했다.

"운이 좋았지. 뭐."

"누가 봐도 실력이었는데?"

"그건 그렇고 마취과는 할 만해?"

"그동안 돌아다닌 과 중에서 제일 할 만한 것 같아."

"혹시 픽스턴 할 생각 있어?"

"사실 픽스 할 과는 이미 정해 놨어."

정설화가 고개를 저었다. 두 뺨이 삽시간에 잘 익은 복숭아처럼 물들었다.

"어디인데?"

"······나중에 말해 줄게."

정설화가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최기석의 발밑으로 향했다.

"곰돌이는 아직 잘 지내네."

"아. 이거? 네가 떼지 말라고 했잖아. 그래서 그냥 뒀어."

"잘했어."

정설화가 흐뭇하게 웃었다.

최기석은 정설화와 막간의 대화를 나누다가 병동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담당의 오더를 수행하기 위해 성인 병동과 소아 병동을 쉴 새 없이 오갔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그래도 좋았다.

황정우의 수술이 무사하게 끝난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오늘 받을 축복은 다 받았다고 생각했다.

"초 인턴 쌤. 괜찮아요?"

스테이션으로 돌아오자 강하나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뭐가요?"

"힘들지 않냐고요. 어쩐지 초 인턴 쌤이 들어오고 나서 오더가 두 배 정도 많아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환타 소리 많이 들어요."

최기석이 피식 웃었다.

"어쩐지······. 하루 종일 뛰어 다니느라 고생 많아요. 이거라도 드세요."

강하나가 내미는 크림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안에 가득 찬 크림이 주변으로 흘러나오면서 손가락에 묻었다.

"에이. 빵 터졌네."

"······크크크크크."

최기석의 말에 강하나가 입을 가리며 웃기 시작했다.

급기야 얼굴이 홍시처럼 빨개졌다.

최기석은 강하나가 아재개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강 선생님. 이게 재미있어요?"

"네. 완전 빵 터졌어요."

강하나가 표정을 추스르며 눈가를 훔쳤다.

"개그 코드가 특이하시네요. 보통 여자 분들은 아재개그 별로 안 좋아하던데."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세요."

강하나가 정색하는 바람에 최기석은 뭐라고 말도 하지 못했다.

"근데 초 인턴 쌤.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뭔데요?"

"컴퓨터가 먹통인데. 좀 봐주세요."

최기석은 스테이션 안으로 들어가서 모니터와 본체를 살폈다.

본체는 멀쩡하게 돌아가는데 모니터가 흑백이다.

"이거 골치 아프네."

"왜요?"

"아무래도 안을 봐야 될 것 같은데······."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놨죠."

강하나가 드라이버를 내밀었다.

최기석은 전원을 끄고서 본체 뚜껑을 열었다. 짧은 지식으로 안을 살피던 중 그래픽카드에 먼지가 켜켜이 쌓인 것을 확인했다.

휴지를 이용해서 먼지를 살살 털어 냈다.

본체를 원위치 시키고 다시 부팅하자 모니터가 정상으로 나왔다.

"역시 초 인턴 쌤이야. 최고!"

강하나가 환호를 지르며 방방 떴다.

"병원에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면 인턴에게 시키라는 말이 있잖아요. 근데 초 인턴 쌤은 진짜 그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치······ 칭찬이죠?"

"그럼요."

강하나의 시선이 문득 정상으로 돌아온 모니터로 향했다.

"혹시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중학교가 어디인 줄 알아요?"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중학교라······ 모르겠는데요."

"진짜 모르겠어요?"

"네."

"바로······ 로딩 중이에요."

강하나는 본인이 말하고서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초 인턴 쌤은 안 웃겨요?"

"저는 별로."

"경혜야. 넌 웃기지?"

강하나가 옆에 앉아 있던 후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후임이 배를 잡으면서 웃기 시작했다.

"후하하하. 너무 웃겨요. 세상에 로딩 중이라니."

"그치?"

강하나와 이경혜의 웃음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최기석은 이경혜를 향해

'고생 많으시네요.'

라는 의미를 담은 눈빛을 보냈고 이경혜는 알아줘서 고맙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경혜야. 그럼 왕이 궁에 가기 싫어할 때 뭐라고 하는 줄 알아?"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궁시렁 궁시렁."

"······우와. 대박 진짜. 웃겨요."

강하나의 개그에 이경혜가 다시 억지웃음을 터뜨렸다.

최기석은 참혹한 현장을 지켜볼 수 없어서 자리를 떠났다.

* * *

폭풍처럼 밀려왔던 병동 일이 끝났다.

최기석은 엘리베이터를 탈 생각도 못 하고 번개처럼 계단을 뛰어올랐다.

드르르륵.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중환자실이다.

내부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황정우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갔다.

황정우는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채 곤히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이 최기석에게는 천사처럼 보였다.

체력: 3/10

주 증상: 흉통 / 호흡곤란

아픈 부위: 심장 / 가슴

진단명: 없음

현재 상태: 양호

경과: 양호

과거력: 승모판 폐쇄부전증

수술이 끝나고 상태를 살폈지만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상태를 살폈다.

황정우의 상태는 한마디로 훌륭했다.

최기석은 마지막으로 챙겨온 청진기로 황정우의 심음을 확인했다.

쿵. 쿵. 쿵. 쿵.

건강하게 뛰는 심장 소리에 벅찬 감동이 되살아났다.

황정우의 밝은 미소는 앞으로도 계속 되리라.

"고맙다. 끝까지 잘 버텨 줘서."

최기석은 황정우의 작은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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