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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35화 (35/407)

다시 서울로(5)

"무서운 얼굴로 뭘 그렇게 노려보세요?"

"아······ 아니에요. 밤에는 별일 없었죠?"

"별일이 있으면 안 되죠. 근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강하나가 코를 킁킁 거리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냄새요?"

"비린내요. 초 인턴 쌤은 모르겠어요?"

"······전 모르겠네요. 그만 처치하러 가 볼게요."

최기석은 차트를 들고 줄행랑을 쳤다.

소 심장으로 수술 연습을 하던 중 피비린내가 밴 모양이다. 내일부터는 냄새에도 신경을 써야 할 듯싶었다.

본격적인 병동 일이 시작됐다.

동맥혈 검사, 상처 소독, 소변줄 제거 등등.

최기석은 병동 일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웠다. 기본적인 인턴 일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소아과 병실은 여기가 마지막이구나."

최기석은 기지개를 켜고 병실로 들어갔다.

어린 환자들이 다 자고 있는 가운데 한 환자만이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었다.

바로 황정우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황정우가 손을 흔들었다.

곁에 있던 보호자도 고개를 숙여 최기석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제 엄마한테 들었어요. 선생님이 요술워치 인형 선물로 줬다고······."

"그랬지."

"고마워요."

황정우가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평소라면 좋다고 방방 뛸 녀석이지만 오늘은 생기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오늘이라서 더 그럴지도······.

최기석은 침상에 다가가 황정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방금 장례식장에 다녀와서 그런 걸까.

황정우를 보고 있자니 괜히 울컥했다.

"오늘이 수술하는 날이네. 그치?"

"네."

황정우가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선생님. 근데 나 수술받다가 죽을 수도 있어요?"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절대 그럴 일 없어."

"그치만 심장 수술은 위험한 거라고 하던데."

최기석은 탁자에 놓인 칼라일 인형을 황정우에게 건넸고, 황정우는 보물을 챙기듯 인형을 끌어안았다.

"만약 정우가 위험하면 칼라일이 도와줄 거야. 그치?"

"네!"

황정우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기석은 황정우에게 격려를 사용했다.

[격려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환자와 보호자의 면역력, 재생력, 자신감이 대폭 상승합니다.]

[효과가 일주일간 지속됩니다.]

[라포 4단계를 이룬 상대에게 무작위의 추가 효과가 부여됩니다.]

[수술 후 감염 확률이 대폭 감소합니다.]

황정우를 응원하고 병실을 나왔다.

이제부터는 성인 병동에서 처치를 해야 한다.

최기석은 성인 병동에서도 순식간에 일을 해치워 나갔다.

그의 깔끔하고 정확한 처치에 환자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각종 처치를 단번에 끝내며 또한 그 과정에서 통증이 없으니 최기석을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왔구나.'

최기석은 한 병실에 앞에 서서 걸음을 멈췄다.

의사에게는 모든 환자가 다 소중하다. 하지만 이 병실에 있는 환자는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그는 태풍의 눈 속에 있다.

"교수님. 강동호 환자 수술 동의서는 어떻게 할까요?"

"지금 갈게요."

최기석이 회의실에 들어가서 말했고 송명진이 곧 동의서를 출력해서 바깥으로 나왔다.

자잘한 처치의 경우 인턴이 동의서를 받지만 중요한 수술은 담당의 이상급 의사가 받게 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송명진과 최기석이 병실로 들어가자 강동호와 보호자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몸은 좀 어떠세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힘들면 참지 말고 말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필요한 조치를 해 드릴 수 있어요."

"정말 괜찮습니다."

강동호가 손을 내저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송명진이 수술 동의서를 내밀고 설명에 들어갔다.

평소 성격대로 차분하고 꼼꼼한 설명.

내용을 워낙 쉽게 풀어서 초등학생도 이해할 만했다.

"그리고 환자분. 이번 수술 집도는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저야 송 교수님이 해 주시면 더 좋죠."

강동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제 전문 분야가 심장 부분이라는 것은 아시죠?"

"그래도 대가는 무얼 해도 잘하시는 것 아닙니까? 혹시나 해서 다른 분께 물어보니까 폐 수술도 엄청 잘하신다고 하던데요."

"언제나 그렇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송명진은 가타부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환자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설명과 서명이 끝나고 최기석과 송명진이 의국에 돌아갔다.

"최 선생. 아까 말 못했는데."

"······."

"오늘 보낸 논문 평가서 좋았어요. 앞으로도 최소한 그만한 퀄리티는 보여 줘요."

"네!"

최기석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회의 준비를 끝낸 뒤 화장실을 향했다.

아랫배가 찌릿찌릿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버릇을 들여야지."

최기석은 오른손에 쥐었던 휴지를 왼손으로 넘겼다. 그리고 왼손으로 밑을 닦았다.

일상 속에서 최대한 왼손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양손 수술이 가능한 써전이 될 것이다.

볼일을 보고 나오는 중 복도에서 오혜정을 마주쳤다.

"미안."

오혜정이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뭐가?"

"계속 너만 회의 준비하게 해서. 오늘은 좀 도와주려고 했는데 당직을 섰더니 피곤해서."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칫. 날 대체 뭐로 본 거야?"

오혜정이 토라진 척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근데 진짜 미안하면 내 부탁 좀 들어주라."

"부탁?"

"있다가 오전에······."

최기석이 말을 이었다.

* * *

최기석은 병실을 나오며 콜폰을 응시했다.

현재 시각 오전 9시 40분.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소아과 병동으로 향했다.

오혜정이 스테이션 앞에서 간호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일찍 올라왔네."

"나 원래 시간 개념은 철저한 여자야."

"그런 여자가 매번 회의 준비도 까먹고 늦장 부리냐?"

"은근히 뒤끝 있네. 그러니까 네 말대로 바꿔 준다고 했잖아."

오혜정이 팔짱을 낀 채로 툴툴거렸다.

최기석은 오혜정과 대화를 나누다가 황정우가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자. 선생님이랑 병 고치러 가자."

밝게 웃으며 황정우의 침상을 수술실로 끌고 갔다.

본래라면 수술실 인턴인 오혜정이 할 일이지만 이번은 특별히 최기석이 그 역할을 맡았다.

황정우의 수술에 들어가고 싶어서 오혜정과 잠시 역할을 바꾼 것이다.

수술실로 들어가자 스태프들이 한참 스크럽을 하고 있었다.

오늘 수술의 주요 스텝은 다음과 같았다.

전임의 정한석.

4년 차 치프 레지던트 유재현.

2년 차 레지던트 민주혁.

최기석은 그중에서 집도의인 정한석을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폈다.

직업 및 전공: 전임의/심장외과

체력: 6/10

진단력: 7/10

외과적 처치: 5.5/10

내과적 처치: 4/10

평판: 5

액티브 스킬: 없음

패시브 스킬

[날카로운 검 Lv.2]

- 연령이 낮은 환자를 수술할 경우 수술 속도가 2배 빨라지고 수술 경과가 소폭 상승합니다.

- 최대 3단계까지 성장합니다.

라포 형성

- 황정우(환자): 2단계 ? 믿음

- 양지민(보호자): 2단계 ? 믿음

.

.

.

칭호

[꼼꼼한 남자]

- 그 사람은 정말 대단했지. 먼지 한 톨도 놓치는 법이 없었거든.

- 수술 정확도가 2배 상승합니다.

집도의 실력은 만족스러웠다.

수술을 충분히 잘 끝낼 것 같았다.

수술을 돕는 유재현과 민주혁의 솜씨 또한 평균 이상이었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최기석이 인사에 유재현과 정한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혁만 탐탁지 않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수술방 인턴 혜정이 아니야?"

"이번 수술만 제가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재미없네. 재미없어."

막간의 대화를 끝내고 스크럽을 끝낸 최기석과 스태프들이 수술실로 들어갔다.

오늘의 수술은 승모판 재건술.

병변이 있는 황정우의 승모판이 다시 제 역할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술이다.

"선생님. 저 무서워요."

수술실에 들어가자 황정우가 여린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격려 버프를 받았음에도 두려움을 이기기 어려운 모양이다.

"괜찮아. 선생님이 계속 곁에 있을 거니까."

"정말요?"

"그래. 빨리 수술 끝내고 선생님이랑 요술워치 보자."

"네."

황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마취가 시작되고 스태프들이 제 자리에 잡았다.

"지금부터 승모판 폐쇄부전증에 대한 승모판 재건술을 시작한다."

정한석의 목소리가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본격적인 수술의 막이 올랐다.

수술실에 있는 스태프들은 앞으로 네 시간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수술에 집중하게 된다.

"메스."

정한석이 피부 소독을 끝내고 소독간호사가 건네는 메스를 쥐었다.

스으으으윽.

황정우의 여린 살결이 사정없이 반으로 갈라졌다.

절제 부위는 흉골 직상부인 목 아래부터 명치 부위까지.

빠드드드득. 빠드드득.

치프 레지던트이자 제1보조인 유재현이 톱을 들고 황정우의 흉골을 절단했다.

둔탁한 뼈 소리가 수술실을 가득 메웠다.

흉골을 가르고 폐를 옆으로 밀어내자 힘차게 박동하는 선홍빛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기석은 수술 시야를 확보하면서 용의 눈을 사용했다. 그리고 줌 인 모드로 황정우의 심장을 지켜봤다.

황정우의 약동하는 심장을 보는 순간 최기석의 심장도 심하게 요동쳤다.

'반드시 무사히 끝내 줄게.'

최기석은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흉골을 절제한 후 인공심폐기 연결이 시작됐다.

인공심폐기는 심장 수술을 할 때 심장과 폐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기계다.

통칭 바이패스라 불린다.

펌프에서는 혈액순환을 대신해 주며 산화기는 폐를 대신해서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꿔 준다.

열 교환기는 피의 온도를 낮추고 필터는 공기방울과 각종 이물질을 감지해 준다.

"대동맥 차단. 심정지액 주입하세요."

유재현의 지시에 인공심폐기사가 심정지액을 주입하고 본격적으로 인공심폐기를 작동시켰다.

위이이잉. 덜컹덜컹.

인공심폐기가 돌면서 진짜 수술이 시작됐다.

최기석은 리트랙터를 들고 수술 부위를 벌렸다.

집도의에게 수술 시야를 열어 줘야 한다.

보통의 인턴이라면 거기서 할 일이 끝났겠지만 최기석은 달랐다.

용의 눈을 이용해 수술 장면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비록 인턴이지만 뭔가 도울 일이 생길지 모른다.

"메스."

정한석이 메스를 들고 좌심방을 절개하였다.

심장의 분홍빛 속살이 벗겨지면서 내부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수술 부위인 승모판과 좌심방, 그 밑의 좌심실, 심장 근육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혈전(피 딱지)은 별로 없는데······."

'승모판 손상이 생각보다 커.'

정한석이 얼굴을 찌푸리며 삼킨 말을 최기석이 속으로 덧붙였다.

오늘의 수술 부위인 승모판.

승모판은 좌심방에서 좌심실로 흐르는 혈액이 역류를 막는 역할을 한다. 두 개의 첨판으로 이루어져서 이첨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황정우의 승모판은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승모판륜이 확장되었으며 후첨부가 일부 탈출했다.

그뿐만 아니라 후첨 건삭까지 파열되었다.

"······."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황정우의 상태를 보면 판막 재건술이 아니라 판막 치환술을 해야 할 판이다.

다만 판막 치환술을 펼치면 인공판막을 삽입하게 되어 재수술 위험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평생 항응고제를 먹어야 한다.

열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너무나 가혹하다.

"선생님?"

오랜 침묵 속에 치프가 정한석을 응시했다. 이제 그만 결정을 내려달라는 뜻이다.

"수술을 계속한다. 이 환자는······."

정한석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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