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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34화 (34/407)

다시 서울로(4)

잠시 후 한 남자가 수술 도구를 들고 와서 장기를 만지기 시작했다.

째고, 봉합하고, 지지고. 흡입하고.

남자는 홀로 집도하는 것 같았다.

'대단해.'

최기석은 남자의 실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첫째로 놀란 것은 남자가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처치하는 속도가 번개처럼 빠르다는 점이다.

비밀스런 장소에서, 비밀스런 행동을 하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증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자의 수술에 빠져든 관람객이 되었다.

끼이이익!

'아······ 젠장.'

속으로 욕을 삼켰다.

수술 장면을 자세히 보려고 문을 밀다가 소리를 냈다.

덕분에 남자와 정통으로 눈이 맞았다.

순간 남자의 눈이 웃었다.

"문 닫고 잠깐 나가 있어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최기석은 남자가 시키는 대로 문을 닫고 바깥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들어오라는 목소리에 안으로 향했다.

"도둑고양이치고는 너무 큰데?"

송명진이 농담을 건넸다.

수술했던 탁자는 말끔하게 치워진 상태다.

"죄송합니다. 엿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한 번 보니까 눈을 뗄 수가 없어서······."

"괜찮아요. 대단한 일도 아니니까."

"그런데 교수님. 방금 전에는······."

"정육점에서 소의 폐를 구해서 폐이식 수술을 연습해 봤어요. 역시 만만치 않네요."

송명진의 대답에 최기석은 침묵을 지켰다.

송명진은 심장 수술의 대가이지 폐 수술의 대가는 아니다.

이번 수술에서 느낄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수술이 실패하면 첫째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면목이 없다. 둘째로 의국 내에서의 입지가 좁아지고 평판이 깎인다.

그야말로 상처투성이가 되는 셈이다.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송명진이 운을 뗐다.

"외과의의 일은 성공할 만한 수술을 하는 게 아니에요. 수술을 성공시키도록 노력하는 거죠."

"······."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환자를 살릴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네."

최기석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송명진의 말은 왠지 믿음이 갔다. 그라면 죽은 환자라도 살려 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침 이렇게 자리가 만들어졌으니까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 볼까 해요. 부담은 갖지 말고 편하게 들어요. 일단 내 속내를 말하자면······ 최 선생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

"간호사는 하나같이 최 선생을 칭찬했고 아까 보여 준 EKG 판독력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요."

"제안이라면······."

"최 선생을 내 제자로 삼고 싶어요."

송명진의 말이 메아리처럼 방에 울렸다.

최기석은 놀라서 눈만 깜빡거렸다.

"최 선생 생각은 어때요?"

"저는······."

최기석은 말끝을 흐렸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송명진과 조지환이 대립하고 있는 의국이다.

송명진의 제자가 될 경우 필연적으로 벌어진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교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대신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이번에는 송명진이 놀라서 눈을 치켜떴다.

세상에 조건부 제자라는 것도 있단 말인가.

장난을 치는 건가 싶어서 최기석을 똑바로 쳐다보았지만 그의 눈빛은 미동조차 없었다.

"제가 교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교수님이 출중한 수술 솜씨를 갖춘 점이고 두 번째는 항상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요?"

"만약 교수님이 환자를 위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조지환 교수처럼 변한다면 저는 제자를 그만두겠습니다."

"흐하하하하."

송명진이 호탕하게 웃었다.

얼마나 우스운지 배를 붙잡고 눈물까지 흘렸다.

"정말 대단해요. 최 선생.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대답을 하다니."

"전 진심입니다."

"알아요. 그래서 최 선생이 더 마음에 들었어요."

송명진이 최기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 방에 가서 편하게 이야기합시다."

송명진이 앞장서서 방을 나섰고 최기석이 그 뒤를 따랐다.

띠링!

[조건부 버프가 활성화됩니다.]

알람이 뇌리를 스쳤다.

* * *

지이이잉. 지이이잉.

요동치는 휴대폰 알림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하아······ 일어나야지."

최기석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현재 시간은 새벽 두 시.

병동 출근이 오전 5시 30분까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른 기상이다. 하지만 묵묵하게 씻고 초코바로 빈속을 채웠다.

딸칵! 딸칵!

의자에 앉아서 이메일을 확인했다.

어제 약속대로 송명진이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열자 최근 심장 수술 동향에 관한 논문이 두 개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영어로 된 외국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 논문이다.

스승 송명진이 내린 첫 번째 과제.

그것은 심장 수술에 관련된 논문을 독파하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도 당연히 변해 간다.

새로운 지식을 얻지 못하면 항상 그 자리에 머물고 만다는 게 송명진의 지론이다.

그에 따라 최기석은 매일 논문을 읽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A4 반 쪽 분량의 감상평을 보내야 했다.

논문을 허투루 볼 수 없는 셈이다.

"왜 이렇게 쉽지?"

최기석을 외국 논문을 읽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님에도 독해가 잘 됐다.

누군가가 핵심 내용을 차곡차곡 머릿속에 정리해 주는 느낌까지 들었다.

"혹시?"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본인의 상태를 살폈다.

칭호 아래로 어제 따끈따끈하게 받은 특수 버프가 걸려 있었다.

[대가의 제자]

- 송명진과 사제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 송명진의 가르침을 받는 경우 습득력이 3배 빨라집니다.

- 사제 관계가 끊기면 버프가 사라집니다.

아무래도 버프 덕분에 논문 읽기가 수월해진 듯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최기석은 버프를 확인하며 활짝 웃었다.

이 버프를 잘 활용하면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습득력이 3배 빠르게 증가한다니.

이건 사기다.

"승모판 폐쇄부전증 논문이네?"

해외 눈문을 독파한 최기석이 눈을 빛냈다.

승모판 폐쇄부전증은 황정우가 앓고 있는 질병이다.

다른 질병보다 호기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마침 논문도 짧아서 빠르게 독파하고 송명진에게 감상평을 보냈다.

"으라차차."

최기석은 기지개를 켜고 2층으로 내려갔다.

어제 송명진을 마주쳤던 방에 도착하니 스티로폼 박스가 놓여 있었다.

박스를 열자 선홍빛 소 심장이 나타났다.

"와. 대박."

최기석은 피식 웃었다.

송명진이 내려준 두 번째 숙제, 그것은 동물의 장기로 외과 수술을 연습하는 것이다.

과거 송명진은 정육점을 운영하는 환자를 성공적으로 수술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소나 돼지의 장기를 무상으로 받게 되었다고 한다.

최기석은 탁자에 시트를 깔고 준비된 수술 도구를 준비했다.

[용의 눈 스킬을 사용합니다.]

[수술에 필요한 최적의 시야를 제공합니다.]

[필요에 따라 줌 인 모드와 줌 아웃 모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을 사용하자 시야가 확 변했다.

루뻬(수술 안경)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쾌적한 시야가 확보되었다. 수술 연습도 하고 스킬 숙련도도 올릴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자, 시작해 볼까?"

최기석은 본격적인 집도에 들어갔다.

오늘은 레지 3년 차에 배웠던 간단한 수술을 복습할 예정이다.

쿵쿵쿵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메스를 사용할 때는 짜릿한 희열마저 느꼈다.

비록 소의 심장이라고는 하지만 이게 얼마 만의 수술이란 말인가.

소의 심장을 해부하는 손놀림이 갈수록 빨라졌다.

수술 연습에도 송명진의 버프가 적용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초반의 현란한 손동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최기석의 집도는 초등학생이 소꿉놀이하는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하아······."

미간에 주름이 졌다.

즐거웠던 수술 연습은 어느새 짜증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중간부터 왼손으로 수술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외과의라면 무릇 양손을 다 써야 합니다."

송명진의 지시에 따라 연습의 절반은 오른손, 나머지 절반은 왼손으로 진행했다.

우여곡절 끝에 왼손 수술 연습까지 끝났다.

최기석은 뒷정리를 하고 병동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운 안에 넣어 두었던 콜폰이 떨었다.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네. 교수님."

[좋은 아침이에요. 혹시 병동으로 가는 중이에요?]

"족집게시네요."

[아직 도착한 게 아니면 장례식장으로 와요.]

"장례식장이요?"

최기석은 놀라서 되물었다.

아침부터 장례식장이라니,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그런 건 아니니까 편하게 와요.]

송명진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최기석은 본관을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이곳저곳을 살피는데 복도 끝 빈소 입구에 서 있는 송명진이 보였다.

"교수님. 장례식장에는 왜?"

"난 가끔 장례식장에 와요. 이것까지 최 선생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 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송명진이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혹시 이 빈소의 주인 누구인지 알아요?"

"이분은······."

최기석은 집중해서 빈소 사진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왠지 낯익으면서도 낯설었다.

최기석의 이마 주름은 갈수록 깊어졌고 얼굴도 점점 일그러졌다.

"이제 알겠습니다. 이분은 저희 병동 청소를 해 주시는 미화 직원분입니다."

"맞아요. 어제 저녁에 교통사고로 실려 오셨고 새벽에 세상을 떠나셨죠."

"아······."

최기석은 단발마를 내뱉었다.

죽음 앞에서는 느끼는 무력감으로 팔다리에 힘이 빠졌다.

"흑흑흑. 엄마. 엄마!"

빈소를 지키던 이십대 여성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은 통곡이 되었고 통곡은 최기석의 가슴을 송곳처럼 찔렀다.

뒤늦게 돌아가신 분과 인사를 나눴던 모습.

그분이 자신에게 힘내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최 선생. 의사들은 의외로 환자들의 아픔과 죽음에 무뎌요. 환자들에게 감정을 이입하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

"환자들과 같이 아파하고 같이 그 아픔까지 극복하는 게 의사의 일이죠. 만약 치료를 하다 마음이 무뎌질 때는 이곳을 찾아요. 최 선생이 어떤 녀석하고 싸우는지, 그 녀석에게 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느껴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렸다.

더 높은 곳을 향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해졌다.

최기석은 송명진과 빈소를 둘러보고 병동으로 돌아왔다.

송명진은 회의실로 들어갔지만 최기석은 병동 일을 해야 했다.

"초 인턴 쌤."

스테이션에 있는 강하나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최기석은 강하나에게 인사하며 스테이션 벽에 걸린 달력을 응시했다.

오늘 날짜에 그려진 빨간 동그라미.

그것을 확인한 순간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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