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울로(1) 2권 시작
지이이잉.
알람이 귓가를 때렸다.
최기석은 벌떡 일어나서 알람을 끄고 세면실로 향했다. 샤워를 끝내고 복장을 착용하자 오전 5시가 됐다.
"아. 참."
가죽 슬리퍼에 발을 넣었다가 다시 크록스를 신었다.
곰돌이 액세서리가 거슬렸지만 제거하지는 않았다. 어제 차 안에서 열을 올리던 정설화가 떠올라서 그럴 수 없었다.
거울을 한 번 보는 것으로 출동 준비 끝.
당직실을 나와 본관 5층으로 향했다.
쿵. 쿵. 쿵.
심장이 뛰고 손에 땀이 흘렀다.
일하게 될 병동에 들어서자 감정은 절정에 다다랐다.
흉부외과 병동.
먼 길을 돌아 다시 흉부외과로 돌아왔다.
꿈을 펼쳐야 할 장소로 말이다.
'여기는 그 분도 계시니까······.'
최기석은 존경하는 인물을 떠올리며 벅찬 걸음을 다시 시작했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흉부외과 병동 일을 맡은 인턴 최기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스테이션에 있던 강하나 간호사가 방긋 웃었다.
최기석은 인사를 마치고 탁자에 놓인 차트를 가볍게 훑었다.
폐암. 폐식도 질환. 심장 질환. 혈관 질환 등등.
익숙한 질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에는 다 정복하지 못했던 것들이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정복하고 말리라.
최기석은 처치 도구를 챙겨 병실로 들어갔다.
첫 번째 할 일은 ABGA(동맥혈 검사), 검사 대상은 열 살의 남자아이 황정우다.
황정우는 아홉 살로 며칠 뒤 승모판 재건술을 받을 예정이다.
황정우에게 다가가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체력: 6/10
주 증상: 호흡곤란 / 흉통 / 피로
아픈 부위: 승모판
진단명: 승모판 폐쇄부전증
현재 상태: 응급
경과: 악화
과거력: 없음
최기석은 속으로 안타까움을 삼켰다.
어린 나이에 판막질환을 앓다니······.
"정우야. 선생님이 잠깐 주사 좀 놓을게."
"싫어요!"
황정우가 주사기를 보더니 고개를 휙 틀었다.
황정우의 완강한 저항에 최기석은 볼을 긁적거렸다.
보호자라도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무거운 침묵 속에 최기석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이가 ABGA를 거절한다고 해서 물러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우야. 혹시 포켓 몬스터즈 좋아해?"
"포켓 몬스터즈?"
시선을 외면했던 황정우가 최기석을 응시했다.
관심을 보이는 듯했지만 사실 그 눈빛 속에는 한심하다는 기색이 담겼다.
"요새 누가 포켓 몬스터즈를 봐요?"
"그······ 그래? 요즘은 포켓 몬스터즈 안 보니?"
"네. 다 요술워치 봐요."
"요술워치?"
"제가 뭔지 알려 줄게요."
황정우가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설명을 이었다.
요술워치는 어린 남자 주인공이 요술워치를 주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다양한 요괴들이 나오며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저는 칼라일이 제일 좋아요. 칼라일은 불사신이라서 안 죽고 계속 살아나서 주인공을 도와줘요."
"또 좋아하는 요괴가 있니?"
"네! 파르파티도 좋아해요. 파르파티는······."
최기석은 이야기를 끈기 있게 들어 주었다. 검사를 하려면 황정우를 구슬리는 방법밖에 없다.
"그랬구나. 선생님도 나중에 시간 내서 한 번 봐 볼게."
"진짜요?"
"당연하지. 선생님은 거짓말 안 해. 자, 약속."
최기석은 황정우와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신나게 요술워치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탓일까.
기분이 풀린 황정우는 순순히 ABGA에 임했다.
[ABGA에 성공하셨습니다.]
[칭호 효과로 환자의 통증이 50퍼센트 감소합니다.]
"우와. 선생님이 하니까 하나도 안 아프네."
"선생님이 안 아프게 해 준다고 했잖아."
최기석은 황정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문득 이렇게 귀여운 남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황정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처치가 시작되었다.
소변줄 교체, 드레싱, 비위관 삽관 등등.
모든 처치는 정확했으며 또한 빨랐다.
과거의 경험에 처치 정확도를 1.5배 상승시켜 주는 젬과 처치 속도를 올려 주는 칭호의 효과가 더해진 덕분이다.
"처치 다 끝났습니다."
최기석은 여유만만하게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다.
"어린애들이라 힘들었을 텐데 엄청 빠르네요. 그럼 이제 성인 병동으로······ 어라?"
강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인 병동 차트가 사라졌던 탓이다.
"이거 찾으세요?"
최기석은 들고 있던 차트를 이등분해서 탁자에 올려놓았다.
강하나의 눈이 개구리처럼 커다래졌다.
"설마? 이 시간에 성인 병동까지 다 돌았어요?"
"당연하죠."
"우와. 최 선생님, 진짜 돌았네."
강하나의 언어유희에 최기석은 푸훗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예쁜 간호사가 아재개그를 펼칠 줄이야.
"칭찬이죠?"
"물론 칭찬이죠. 대박이에요, 대박."
강하나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건 그렇고 요새 흉부외과 병동 분위기는 어때요?"
"흉부외과라서 그런지 흉흉하네요."
"······농담이죠?"
"농담 아니에요. 얼마 전 과장님이 다른 병원으로 스카우트되어서 나가셨거든요. 과장님 자리가 공석이라서 우왕좌왕하는 느낌이에요."
강하나가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흉부외과 전공할 거면 라인을 잘 정해 두세요."
"라인이라면······."
"줄 잘 서라는 소리에요."
강하나는 책임간호사가 오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괜히 궁금하게 만드네.'
최기석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회의실로 향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회의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짝턴이 회의 준비 중인가.
그런 생각에 휙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최기석의 몸은 돌처럼 굳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최기석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새로 온 인턴이에요?"
"네. 맞습니다."
"송명진입니다. 반가워요."
"영광입니다. 교수님."
최기석은 재차 송명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송명진.
조재호 교수와 더불어 대한민국 최고의 흉부외과의로 꼽히는 인물이다.
외국에 있는 명의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수술 솜씨를 갖췄으며 다양한 수술법까지 개발했다.
"청소하고 회의 준비 좀 해도 되겠습니까?"
"어, 그래요. 난 신경 쓰지 말고."
최기석은 걸레를 빨아서 탁자를 닦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송명진에게 다가가서 슬쩍 모니터를 훔쳐보았다.
송명진은 해외 논문을 보고 있었다.
부교수를 하고 있음에도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서 논문을 살피다니······.
송명진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다.
"최기석 인턴이라고 했죠?"
"네, 교수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나는 나이 차이가 나도 반말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송명진이 헛헛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기석 씨는 병동 일이 상당히 빠른데요? 보통 이 시간이면 소아과 병동 일을 끝내기도 벅찼을 텐데. 혹시 동기가 도와줬어요?"
"아닙니다. 저 혼자 했습니다."
"그래요?"
송명진이 눈을 치켜떴다.
송명진은 가만히 최기석을 바라보다가 다시 논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의외로 싱거운 반응이다.
'우와. 이래도 되나?'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송명진을 살폈다.
직업 및 전공: 전임의/흉부외과
체력: 3/10
진단력: 8.5/10
외과적 처치: 8.5/10
내과적 처치: 6/10
평판: 8
라포 형성
강하나(의료인): 4단계 ? 신뢰
최태정(의료인): 4단계 ? 신뢰
한영희(의료인): 4단계 ? 신뢰
박소연(의료인): 4단계 ? 신뢰
윤백형(환자): 4단계 ? 신뢰
조재헌(환자): 4단계 ? 신뢰
.
.
.
액티브 스킬
[삼위일체 Lv.3]
- 처치 정확도, 처치 속도, 수술 경과가 균형을 이룹니다.
- 레벨이 오를수록 세 가지 항목에 시너지가 상승합니다.
- 이미 최대치까지 성장했습니다.
[심장의 지휘자 Lv.3]
- 소아와 성인에 관계없이 심장 수술 성공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 레벨이 오를수록 수술 성공률이 증가합니다.
- 높은 확률로 생환의 빛 효과가 환자에게 적용됩니다.
- 이미 최대치까지 상승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선구자 Lv.2]
- 신 수술 개발의 치료도와 신 수술의 상용화 확률이 증가합니다.
- 레벨이 오를수록 수치가 상승합니다.
칭호
[살신성인]
- 대한민국에 이런 의사가 존재한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환자의, 환자에 의한, 환자를 위한 치료가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 명성효과가 발동하여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습니다.
- 환자를 치료한 경우 신뢰도가 무조건 4단계에 머무릅니다.
- 신뢰도가 4단계에 오른 환자를 처치할 경우 추가 보너스를 얻습니다.
최기석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송명진의 능력치는 가히 흉부외과의 끝판 왕이다.
송명진과 비교하면 최기석은 발가락의 때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명진과 능력을 비교하던 최기석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두 눈에서 열정이 활활 타올랐다.
송명진에게 주눅 든 것이 아니라 그를 뛰어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능력치를 확인한 순간 온몸에 불이 확 지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 아닙니다."
최기석은 황급히 청소를 끝내고 프린트물을 출력했다.
벌컥!
회의 준비가 다 끝날 때쯤 회의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나왔어!"
당당하게 들어온 인물은 조태호의 연인 오혜정이다. 오혜정이 앞으로 한 달간 지낼 흉부외과 짝턴이다.
"그쪽도 새로운 인턴인가요?"
"아······ 안녕하세요. 오혜정입니다."
오혜정이 송명진을 발견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혜정 씨는 씩씩해서 좋네요."
"아······ 네."
"회의 준비가 끝났는데 동기랑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최기석은 오혜정을 팔을 끌고 회의실을 나왔다.
"야. 너 제법 터프해졌다?"
"지금 터프가 문제냐? 교수님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교수님이 있는 줄 알았으면 안 그랬지?"
오혜정이 팔짱을 끼며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저분이 송명진 교수님 맞지?"
"알긴 아네."
"어쭈. 무시할래?"
대화를 나누는 도중 휴게실에 도착했다.
최기석은 캔 커피를 뽑아서 하나는 오혜정에게 건네고 다른 하나는 본인이 마셨다.
짝턴이 오혜정이라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대전 파견이 끝난 직후 다음 날 바로 근무를 서게 되었다. 짝턴과 흉부외과의 정보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최기석은 별다른 말없이 커피만 마셨다.
오혜정이 껄끄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침묵이 길어지는 가운데 오혜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 내가 불편해? 태호 여자친구라서?"
"당연하지."
"그런 이유면 긴장 풀어."
오혜정이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캔을 휴지통에 던졌다.
"나. 태호랑 깨졌으니까."
다시 서울로(1) 2권 시작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