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남녀(5)
"또 알콜 환자려나?"
엄재문이 태평하게 붕어빵을 뜯었다.
문이 열리고 구급대원들이 쏜살같이 응급실 안으로 들어왔다.
스트레쳐카 위에 있는 환자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T.
A(교통사고) 환자입니다. 지금 상태가······."
구급대원들이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환자는 한마디로 최악이다.
육안으로도,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조차도.
체력: 2/10
주 증상: 호흡정지 / 심정지 / 비장파열 / 의식소실
아픈 부위: 뇌 / 심장 / 비장
진단명: 급성경막하출혈 / 신경성 쇼크 / 비장파열
현재 상태: 매우 불량(near death)
경과: 없음
과거력: 없음
"선생님. 제발 우리 남편 좀 살려 주세요."
"우리 아빠. 살려 주세요!"
접수를 끝낸 보호자들이 스태프들을 붙잡고 하소연했다.
그들의 절절한 통곡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선생님!"
최기석이 엄재문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당황한 그에게 오더를 내려 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우······ 우선 ACLS(전문심폐소생술) 준비하세요."
"네!"
엄재문의 말에 스태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다만 그의 지시가 다소 추상적이었기에 최기석은 간호사들에게 구체적인 오더를 내렸다.
"제가 흉부압박 할게요. 조 선생님은 기도확보 하고 기관내삽관 해 주세요. 양 선생님은 IV라인 잡고 환자 감시 장치 연결해 주세요."
최기석은 번개처럼 역할 분담을 하고 스킬을 사용했다.
[살려야 한다 스킬을 사용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라포 2단계를 형성한 동료와 처치 중입니다. 특별한 버프가 추가됩니다.]
[우리는 팀: 일시적으로 처치를 함께하는 동료의 처치 정확도와 처치 속도가 2배 상승합니다.]
최기석의 몸에서 뿜어진 푸른빛이 스태프들을 휘감았다.
버프와 더불어 스탭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퍽! 퍽! 퍽!
최기석이 흉부압박을 할 때마다 환자의 몸이 요동쳤다.
그사이 조윤지는 기관내삽관 후 인공호흡기를 연결했다.
양미라는 환자 감시 장치를 연결하고 정맥라인을 잡았으며 필요한 약물들을 챙겼다.
딱딱딱.
엄재문은 환자 감시 장치를 보며 이를 부딪쳤다.
모니터 상으로 심실세동이 확인됐다. 당연히 맥박도 없었으며 혈압은 측정되지도 않았다.
"에피네프린 3분마다. 정맥으로."
"네!"
엄재문의 지시에 양미라가 에피네프린을 투여했다.
"제세동기 준비됐어요?"
"네."
"제세동기는 기석 씨가 맡아 줘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제세동기의 한쪽 패들에 젤리를 바른 후 다른 한쪽의 패들에 비벼 묻혔다.
"다들 물러나세요. 200J!"
충전량을 200J로 맞추고 충전버튼을 누르자 램프에 불이 들어오고 삐삐 하는 전자음이 울렸다.
"Charge!"
"Clear!"
쿵!
전류가 흐르면서 환자의 몸이 펄떡 뛰어올랐다.
그럼에도 모니터 상에 특별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환자는 아직 이승보다 저승에 더 가까웠다.
"200J!"
"Charge!"
"Clear!"
쿵!
제세동기를 연달아 사용했음에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제발.'
최기석은 환자를 내려다보며 간절히 빌었다.
제발 살아 돌아와 달라고.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해서 조금 더 힘을 내달라고.
퍽! 퍽! 퍽! 퍽!
패들을 손에서 놓고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머리는 젖은 미역처럼 젖었고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
땀이 눈으로 들어와 화끈한 통증을 남겼다.
"최 선생. 교대할까요?"
"하아······ 하아······ 아니요."
엄재문의 제안에 최기석은 휘휘 고개를 저었다.
ACLS은 계속되었다.
네 사람은 한 몸처럼 움직여 완벽한 호흡을 보여 주었다.
시간은 흘러 심폐 소생술을 한 지 15분이 지났다.
자발순환 회복은 여전히 없었다.
스태프들과 보호자의 얼굴이 점점 돌처럼 굳어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감시 장치 모니터 상에 맥박이 뛰기 시작했다. 더불어 다른 활력징후가 서서히 정상치로 돌아왔다.
"엄 선생님."
"돼······ 됐어요!"
네 사람은 동시에 함성을 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땀 흘린 처치는 헛되지 않았다.
자발순환이 회복되면서 본격적인 검사가 진행됐다.
검사 결과, 급성 경막하출혈과 비장파열이 확인되었기에 곧바로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부디 무사히.'
최기석은 응급실을 벗어나는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
다음 날 아침.
근무를 끝난 스태프들이 1층 카페에 모였다.
엄재문이 모처럼 다 함께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자리 잡고 대화를 나누는 도중 진동벨이 울렸다.
최기석은 카운터로 가서 커피를 챙겨 스태프들 앞에 내려놓았다.
"최 선생은 진짜 대박 환타인 것 같아요."
엄재문이 웃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최 선생님이랑 근무 서면서 환자가 두 배는 늘어난 것 같은데."
"어쩌면 두 배 이상일 수도 있어요."
양미라가 거들었다.
"에이. 우연이겠죠."
"우연이 아니라 과학이에요. 확인시켜 줄까요? 윤지야, 수첩 있어?"
"네."
조윤지가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서 내밀었다.
수첩에는 최기석과 정설화의 이름과 함께 두 줄의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이건······."
"간호사들끼리 재미 삼아 해 본 거예요. 정 쌤이랑 최 쌤이랑 근무할 때 환자수를 비교한 거죠. 이래도 우연이에요?"
양미라가 도발적인 미소를 날렸다.
확실히 최기석은 주간 근무를 하든 야간 근무를 하든 정설화보다 배 이상 환자를 받았다.
데이터 앞에 장사 없는 법.
최기석은 멋쩍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었다.
띠링!
[새로운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환타, 환자를 불러 모으는 의사]
- 아무리 평화로워도 방심하지 마. 어쩌면 다음 환자는 너일지 몰라.
- 높은 확률로 주변의 환자를 끌어모읍니다.
- 동료들의 원성으로 호감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칭호를 확인한 최기석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기어이 올 것이 왔다.
환타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듣더니 결국 환타 칭호를 얻었다.
'좋게 생각하자.'
최기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의사가 환자를 많이 보면 그만큼 실력이 빨리 늘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고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뭐가요?"
"T.
A 환자 처치할 때요. 뭔가 울컥하는 게 있었어요. 우리가 진짜 팀이구나. 한 몸이구나. 이런 느낌 받은 거 진짜 오랜만이었어요."
"저도요."
"저도요."
엄재문의 말에 양미라와 조윤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최 선생."
"저요?"
"최 선생 때문에 정신을 차렸어요. 솔직히 처음 환자 봤을 때는 머리가 하얬거든요."
엄재문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최기석이 간호사들에게 역할 분담을 해 주고 열심히 흉부압박을 하는 모습에서 자극을 받았다. 만약 최기석이 없었다면 우물쭈물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쳤을지 모른다.
"윤지. 너도 그때는 좀 하더라?"
양미라가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조윤지를 응시했다.
"그때는 뭐랄까 몸에서 기운이 넘치는 것 같았어요. 또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할 수 있어. 만약 네가 못하면 내가 하면 돼."
"감사해요, 선배."
훈훈한 대화가 오고 갔다.
네 사람 사이에는 고된 처치를 함께한 사람끼리 가질 수 있는 끈끈함이 생겼다.
대화가 끝나고 최기석은 중환자실을 찾았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쉬며 T.
A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어젯밤 펼쳐진 비장절제술과 뇌감압술은 성공적이었다.
덕분에 환자는 저승의 문턱을 넘어 다시 이승으로 돌아왔다.
환자를 보는 최기석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저 기뻤다.
환자가 무사하다는 사실이.
중환자실을 나가다가 보호자와 마주쳤다. 밤을 샜는지 보호자의 얼굴이 퀭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남편이 살았어요."
보호자가 다가와 최기석의 두 손을 감쌌다.
"저 혼자 한 게 아니라 스태프분이 함께 고생했습니다."
"그래도요."
보호자가 휘휘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감사는 오히려 제가 드려야죠. 환자분이 끝까지 힘든 수술을 버텨 주셨으니까요."
최기석이 씽긋 웃었다.
"선생님. 이거 받으세요."
보호자가 지갑에서 두 장의 명함을 내밀었다.
하나는 동물 병원 명함이고 다른 하나는 식당의 명함이다.
"남편이 식당을 하고 제가 수의사를 하고 있어요.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저희가 발 벗고 도와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굳이 안 이러셔도······."
"빨리 받으세요."
보호자가 최기석의 가운에 명함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최기석의 연락처까지 얻어 냈다.
최기석은 보호자와 좀 더 대화를 나눈 후 기숙사로 향했다.
점심을 거르고 푹 쉬다가 알람에 맞춰 일어났다.
이후 간식을 바리바리 챙겨서 본관 7층 정신과로 갔다.
강용태와 면회를 하기 위해서다.
띠리리리링~
정신과 폐쇄병동 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본래 면회는 가족과 친척만 가능하지만 특별히 부탁을 해 볼 생각이다.
만약 안 된다고 하면 간식만 주고 가면 된다.
"누구세요?"
"응급실 인턴입니다.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잠시만요."
덜컹!
문이 열렸다.
"이쪽으로 오세요."
남자 병동 보조가 최기석을 스테이션으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