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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5화 (25/407)

응급남녀(1)

최기석은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커튼을 걷자 아침 햇살이 쏟아지고 아침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제는 오랜만에 집에 들어와서 꿀잠을 잤다.

기분도 상쾌하고 몸도 가벼웠다.

거실로 나가자 식탁에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부모님은 식사하고 출근한 듯했다.

"벌써 9시네."

최기석은 샤워하고 어머님이 차려 준 상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잠에서 깬 이후 그의 입가에는 계속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했다.

수술실 인턴을 할 때는 항상 응급콜에 긴장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지이이잉.

여유를 부리기 무섭게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지만 일단 받았다.

[야. 나다.]

"네, 선배."

목소리의 주인공은 민주혁.

[어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잘 알지?]

"······."

[너 징계 먹을 거야. 인턴 잘릴 수도 있어.]

민주혁이 으르렁거렸다.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건 이미 예상한 바. 그래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짜식. 알긴 뭘 알아 농담인데.]

"네?"

[환자분이 간호사한테 뭘 주워들었나 봐. 네가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듣더니 주치의 선생님한테 간곡하게 사정했다더라. 제발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해 달라고. 네가 그 사이비들을 막아 낸 것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

[천자도 뽀록으로 성공하고 처벌도 안 받고. 너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봐.]

"감사합니다."

[감사는 나 말고 그 할머님한테 해. 끊어.]

민주혁이 통화를 끊었고 최기석은 간신히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중환자실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검사 중이라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단정한 복장을 입고 어제 챙겨 놓은 짐을 챙겨서 주차장으로 갔다.

삐비비빅.

버튼을 누르자 구석에 세워진 승용차가 번쩍거렸다.

최기석은 가방을 뒷자석에 던져두고 운전을 시작했다.

과거 예과 시절에 운전면허를 따 두었다. 혹시 직접 환자를 이송할 일이 생길지도 몰랐기에.

이 육체의 주인공인 최기석도 면허가 있었기에 차를 모는 데 문제는 없었다.

휘이이이잉

창에서 흐르는 바람이 얼굴과 머리를 간질였다.

휘파람을 불며 신도림으로 향했다.

오늘부터 한 달 동안 대전에 있는 지역 병원으로 파견을 나간다.

인턴의 스케줄에는 각 과를 돌며 임상을 배우는 것도 있지만 파견도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대전의진병원.

본원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나름 종합병원이고 지역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곳이다.

최기석은 차가 신호에 걸렸을 때 의료모드로 본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제 따끈따끈하게 얻은 칭호다.

칭호: 착용 중.

[뱀파이어]

[생명의 은인]

-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으로 인해 나는 살아갑니다. 어느 노파의 쓸쓸한 독백이 가슴을 파고들기에 당신은 삶의 의지가 충만해진다.

- 처치 속도가 1.5배 상승합니다.

- 처치 시 20퍼센트의 확률로 사망에 이른 환자가 일시적으로 부활합니다.

생명의 은인.

최미순과 헤어지면서 얻은 칭호다.

처치 속도를 올려준다는 점.

최미순이 패시브로 가지고 있던 부활 효과가 환자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 매력이다.

비록 칭호를 얻기 위해 최미순을 도운 것은 아니지만 칭호를 볼 때마다 흐뭇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신도림에 도착했다.

빵! 빵! 빵!

최기석은 도로 한쪽에 차를 세우고 클락션을 울렸다.

"여기!"

그의 외침에 한 여성이 화색을 띠며 달려왔다.

정설화다.

정설화는 단정한 오피스룩을 입었는데 기업 임원의 비서처럼 기품이 있어 보였다.

후줄근한 가운을 입었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정설화가 가방을 뒷자석에 놓고 조수석에 탔다.

"아······ 안녕."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이는데?"

"고마워. 너도 멋있어."

정설화가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것도 참 인연이다. 우리 둘이 같이 파견을 갈 줄이야."

"그러게. 나도 솔직히 꿈같아."

"슬슬 출발해 볼까?"

최기석이 차차 정설화에게 다가왔다.

포옹하는 것처럼 거리가 가까워지자 정설화의 두 볼이 복숭아처럼 물들었다.

치맛자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었다.

"아······ 아침부터 갑자기······."

"갑자기 왜?"

최기석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동시에 철컥하고 정설화에게 안전벨트가 채워졌다.

"아······ 아니. 그냥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너도 마실래?"

"좋지."

정설화가 근처 카페에서 후다닥 커피를 사왔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서울을 벗어났다.

나들이하는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해 창문을 적당히 열어 두고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최기석은 가슴에 쌓아 둔 체증이 확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저기 봐!"

국도로 접어들었을 때, 정설화가 창밖을 가리켰다. 길옆으로 연분홍빛 벚꽃나무가 서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아름답게 핀 벚꽃이 춤을 추듯 흔들렸다.

"진짜 예쁘다! 그치?"

"그래. 봄이다."

최기석은 벚꽃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주변 경치를 즐기고 휴게실에서 간단하게 요기도 하며 톨게이트에 들어섰다.

잠시 후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시가 다 되었다.

최기석은 차를 주차하고 병원 앞에 섰다.

회색빛을 띤 커다란 7층 건물이 앞으로 한 달을 보내야 할 전쟁터다.

"가자."

최기석이 당당하게 앞장섰고 그 뒤를 정설화가 따랐다.

응급실에 들어서자 양미라 간호사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서울에서 파견 온 인턴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홍 선생님. 서울에서 파견 온 인턴분들인데 한 번 보실래요?"

"뭐. 인턴이 V.

I.

P라도 되나?"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테이블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응급의학의 레지 1년 차 홍성훈이다.

최기석과 정설화를 살피는 홍성훈의 눈빛은 어딘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뿐.

홍성훈은 엉성한 손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응급실 인턴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기분 나쁜 새끼.'

최기석은 하마터면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뻔했다.

정설화는 못 봤지만 최기석은 똑똑히 봤다. 홍성훈이 변태같이 정설화의 몸을 쭉 훑었던 것을.

"홍 선생님이 바쁘셔서 그런가 봐요. 레지 선생님들하고는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당직실로 가시죠."

양미라가 밝게 웃으며 앞장서서 걸었다.

우선 여자 당직실을 들렀다가 남자 당직실로 이동했다.

똑. 똑. 똑.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온 인턴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누워서 과자를 먹고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얼굴이 낯선 것이 의진대 출신 인턴은 아니다.

"저는 가 볼 테니까 이야기 나누세요."

양미라가 자리를 떠나고 세 사람이 당직실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커피 믹스를 마시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방에 쉬던 인턴의 이름은 박상철, 최기석의 예상대로 우선대 출신이었다.

동갑인데다 대화가 잘 통해서 금방 말을 놓았다.

"근무는 간단해. 응급실 주간, 병동 근무, 응급실 야간, 마지막으로 오프. 너희 둘이 같이 근무하는 건 아니고 응급의학과 레지 1년 차가 붙을 거야."

"그렇구나."

정설화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응급실 환자가 많은 편은 아니야. 적으면 하루에 40명, 많으면 70명 정도? 응급환자도 많지 않고. 원래 걸어서 응급실에 오는 사람은 응급환자가 아니라잖아."

"레지들은 어때?"

잠자코 있던 최기석이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다 좋은데, 그것들이 문제야."

박상철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 * *

그날 오후.

응급실 인턴 인계가 끝났다.

기존 인턴들은 응급실을 떠나 본원으로 올라갔고 그 자리를 최기석과 정설화가 채웠다. 정설화가 응급실 주간이었기에 최기석보다 먼저 응급실에 투입되었다.

최기석은 잠깐 쉬다가 가운을 입고 응급실로 향했다.

근무교대 시간이다.

최기석이 내려와서 가장 먼저 살핀 것은 침상에 누워 있는 환자의 수다.

그동안 별일이 없었던 걸까.

베드에서 수액을 맞고 있는 환자는 둘뿐이다.

"정 쌤. 남자친구 있어요?"

"아······ 아니요. 없어요."

"말도 안 돼. 남자들이 정 쌤을 가만 내버려 뒀다고요?"

홍성훈은 정설화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추파를 던졌다.

그럼에도 정설화는 싫은 티를 내지 못하고 이야기를 받아 주었다.

홍성훈과 틀어지면 한 달이 괴로울 테니까.

"정 선생님. 인수인계 좀 해 주세요."

최기석은 정설화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소리 내지 않고 입을 뻥긋거렸다.

[최대한 천천히!]

이윽고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시시콜콜한 인수인계가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홍성훈은 정설화와 노닥거릴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나중에는 인수인계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지쳐서 멍한 표정으로 모니터만 바라봤다.

[고마워.]

인수인계가 끝난 후 정설화가 쌩긋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벌써 인턴 교대인가?"

배가 볼록하게 나온 남자가 응급실로 들어왔다.

남자의 이름은 엄재준, 최기석과 응급실 야간 근무를 서는 응급의학과 레지 1년 차다.

"반가워요. 엄재준이에요."

"안녕하세요."

최기석과 정설화가 엄재준에게 인사를 건넸다.

기존 스태프들이 빠지면서 악몽은 시작됐다.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환자들이 우르르 응급실로 몰렸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응급실에 환자를 풀어놓은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최기석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저혈당으로 어지러움을 호소한 환자, 기존 외래환자로 천식이 심해져서 온 환자, 생선가시가 목에 박혀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 등등.

환자의 종류도 다양했다.

몰려드는 환자를 처치하다 보니 금방 자정이 됐다.

최기석은 탁자에 놓인 물을 마시며 양미라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직업 및 전공: 간호사/일반

체력: 5/10

진단력: 3/10

외과적 처치: 3/10

내과적 처치: 2/10

평판: 6

액티브 스킬

[알아서 척척 Lv.3]

- 의사 및 다른 간호사들을 서포트 하는 능력이 빨라집니다.

- 레벨이 높을수록 서포트 범위와 속도가 증가합니다.

- 최대 5단계까지 성장합니다.

패시브 스킬

[백의의 천사 Lv.2]

- 환자와 보호자를 상대할 경우 높은 호감을 삽니다.

- 병원을 향한 환자와 보호자의 반감이 줄어듭니다.

- 레벨이 높을수록 호감도 수치는 증가하고 반감치는 떨어집니다.

- 최대 3단계까지 성장합니다.

'역시.'

최기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치를 하면서 지켜본 결과 양미라는 다른 간호사들보다 유능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을 먼저 준비했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도 계속 부드러웠다.

그 배경에는 과연 스킬이 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양미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봤을 때는 최 선생님은 환타인 것 같아요."

"제가요?"

최기석이 피식 웃었다.

환타는 속어다.

환자를 탄다는 말에 줄임말로 바꿔 말하면 환자를 몰고 다니는 사람을 가리킨다.

"저도 최 선생님이 환타 인턴 같아요."

조윤지 간호사도 대화에 껴들었다.

"E.

M.

R을 보니까 정 선생님이 있을 때는 환자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최 선생님이 근무 서자마자 환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고요."

"맞아. 맞아. 엄 선생님하고 홍 선생님도 딱히 환타는 아니니까."

"에이. 우연이겠죠."

최기석은 휘휘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반박을 하기 무섭게 응급실 문이 열렸다.

한 젊은 부부가 빠른 걸음으로 응급실에 들어왔다.

부인의 품에 어린아이가 들려 있었다.

'소아 환자라······.'

최기석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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