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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4화 (24/407)

초턴으로 산다는 것(8)

의진대병원 옥상.

최기석은 기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맞은편에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 민주혁이 서 있었다.

"야. 대체 무슨 깡다구로 그랬냐?"

"죄송합니다. 환자가 죽을 것 같아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랬습니다."

"하아······ 씨발."

민주혁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최기석의 행동은 인턴의 선을 넘었다.

자기가 뭔데 검사도 없이 환자의 상태를 속단한단 말인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최기석이 시도한 흉강천자는 보통 흉부외과 레지 1년 차들이 선배들의 감독하에 배우고 실시하는 처치다.

간혹 인턴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때도 곁에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기석은 제멋대로 흉강천자를 시도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감히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최기석을 한 대 때리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환자는 최기석이 진단한 대로 외상성 기흉이 맞았다. 그리고 제때 처치한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결과만 놓고 보면 최기석이 옳았다는 뜻이다.

"너 솔직히 운 좋았다. 환자가 잘못됐으면 완전히 이거였어."

민주혁이 손가락으로 목 긋는 시늉을 했다.

"······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의진대에 의사는 너만 있는 게 아니다. 또 이러면 그 땐 내 손에 죽어."

퍼어어억!

민주혁이 최기석의 어깨를 치고 자리를 벗어났다.

최기석은 민주혁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병원 난간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답답했다.

그는 과거 흉부외과에서 레지던트 3년 차까지 지냈다.

개흉술을 비롯해 간단한 흉부외과 수술은 제 손으로 처리했다. 레지 1년 차 때 시행하는 흉강천자는 어려운 처치가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인턴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최미순을 살렸다는 것에 만족했다.

"선배. 고마워요."

최기석은 김태식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김태식에게 받은 얼어붙은 심장 스킬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환자에게 감정을 이입한 나머지 제대로 된 처치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기석은 가만히 난간 아래를 응시했다.

중환자실에서 난동 부렸던 인원들은 전부 지구대에 끌려갔다. 그중에서도 최미순의 몸을 짓밟았던 여성에게는 처벌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이이잉.

갑작스럽게 콜폰이 떨었다.

또 할 일이 생겼다.

* * *

사이비 종교 사람들과 맞선 일.

환자를 진단하고 흉강천자를 시도한 일.

이 두 가지로 최기석은 금방 유명인사가 되었다.

사건이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를 알아보고 속닥거리는 사람이 생겼다. 하지만 최기석은 주변 시선에 신경 쓰지 않다.

수술 스케줄이 있어 중앙 공급실에 들어가자 정명운이 그를 보며 껄껄 웃었다.

"야. 너 사고 쳤다며?"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인턴이 제멋대로 흉강천자라니. 말세다, 말세."

비꼬는 말투와 달리 정명운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너 인턴 끝나면 위장관외과로 와라. 어때?"

"죄송한데 저는 이미 가고 싶은 과를 정했습니다."

"어딘데?"

"흉부외과입니다."

그의 대답에 정명운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위장관외과를 재차 권할 줄 알았지만 가타부타 말없이 중앙 수술실을 떠났다.

최기석은 수술실에 들어가서 타임아웃을 실시하고 어시스트 하는 자리에 섰다.

이윽고 수술이 시작됐다.

스으으으윽.

집도의의 칼날이 환자의 상복부를 갈랐다.

최기석은 상황을 보며 리트랙터로 환자의 복부를 벌렸다. 그리고 부릅뜬 눈으로 수술 부위를 응시했다.

다시 매의 눈 수련 시작이다.

당분간 수술실에 올 일이 없기에 집중력을 최대한 날카롭게 유지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수술실을 채워 갔다.

수술 도구들을 사용하는 소리, 각종 기계 소리, 집도의와 보조의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한데 어울려 조화를 만들었다.

어느새 수술이 두 시간째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수술실 분위기는 여전히 팽팽했다.

'이게 뭐지?'

최기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물속에서 눈을 뜨는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동시에 측두부에서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다.

스킬을 얻기 위해 심하게 집중했더니 후유증이 찾아온 모양이다.

'이러면 안 돼.'

입술을 깨물며 버텼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리트랙터를 벌리고 있던 손에 힘이 점점 떨어졌다.

"뭐해! 정신 차려!"

"죄······ 죄송합니다."

최기석은 서둘러 시야를 확보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띠링!

[새로운 스킬 획득에 성공하셨습니다.]

[매의 눈을 익혔습니다. 첫 번째로 익힌 스킬의 추가 보너스가 스킬에 적용되어 상위 스킬을 획득합니다.]

알림과 함께 시야가 맑아졌다.

두통도 사라졌다.

최기석은 환호성를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지난 3주 간 수술실에서 매의 눈을 얻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간단한 위 수술도 보통 3시간가량은 소요된다.

그런데 그 시간 내내 수술 부위를 잡아먹을 것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잡생각 없이, 오직 매의 눈을 얻겠다는 일념 하나로 말이다.

그런데 그 노력의 결실을 수확할 때가 찾아왔다.

최기석은 설레는 마음으로 의료모드를 사용했다.

[용의 눈 Lv.1]

- 수술에 필요한 최적의 시야를 제공합니다.

- 시선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줌 인 모드와 줌 아웃 모드가 생성됩니다.

- 레벨이 증가하면 두 번째 특수모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최대 레벨은 3입니다.

'얼레? 용의 눈?'

최기석의 눈동자가 커졌다.

매의 눈을 얻으려고 했건만 정작 얻은 스킬은 용의 눈이다.

[매의 눈을 익혔습니다. 첫 번째로 익힌 스킬의 추가 보너스가 스킬에 적용되어 상위 스킬을 획득합니다.]

아까 그 알림은 그런 뜻이었나?

최기석은 용의 눈을 써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스킬 설명대로 수술 시야가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리트랙터를 쓰면 수술 부위를 보기 힘든데 지금은 수술 부위가 손에 잡힐 듯했다.

[줌 인 모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줌 아웃 모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최기석은 우선 줌 인 모드를 사용했다.

시야가 좁아지면서 위의 유문 부위에 집중됐다.

'말도 안 돼.'

입이 떡 벌어졌다.

줌 인 모드로 인해 위벽의 미세한 주름까지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보통 외과의는 수술할 때 루뻬라는 광학안경을 착용한다.

과거 최기석도 광학안경을 착용한 채 수술을 했고 말이다. 그런데 줌 인 모드는 광학안경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밀하게 수술 부위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줌 아웃 모드를 사용했다.

수술 장면이 극장에서 스크린을 보는 것처럼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시야가 너무 넓어지는 게 아닐까 잠깐 걱정은 했다.

하나 그것은 기우였다.

시야는 적당했으며 주변 장기나 신경 등의 연결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용의 눈을 사용하고 있자니 가슴 한구석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이 하고 싶었다.

* * *

마지막 수술과 인수인계가 끝났다.

최기석은 병동을 돌며 위장관외과 레지던트 선생들, 간호사들, 병동 환자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모두과 최기석과의 이별을 아쉬웠다.

최기석도 정든 이들과 떠나는 게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인턴은 다양한 과를 돌며 임상경험을 쌓아야 한다.

또한 그의 최종 보금자리는 위장관외과가 아니라 흉부외과니까 말이다.

인사를 끝내고 내과 중환자실로 향했다.

최기석의 발걸음이 멈춘 곳에 최미순이 있었다.

최미순은 전에 왔을 때와 달리 깨어 있었다.

외상성 기흉에 대한 처치는 흉부외과에서 끝냈기에 폐렴만 치료하면 퇴원할 것이다.

"의사 총각."

최미순이 최기석을 보고 운을 뗐다.

"아까 전에는 욕 봤어. 그 정신병자들한테 오지 말라고 당부를 했는디 끝까지 와서 행패를 부려 쌌네. 하필 큰 놈이 병원을 알려 주는 바람에 말이여."

"······."

"미안혀. 어디 다친 데는 없디?"

"네, 멀쩡해요."

최기석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말이여. 이제 총각이 다른 데로 가 버린다는 게 참 말이여?"

"네. 저는 초보 의사라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배워야 해요."

"그거 아쉬구마잉. 난 총각이 제일 좋은디."

최미순이 입술을 뾰족 내밀었다.

토라진 아이 같은 모습에 최기석은 피식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해 주고 싶은디······ 오늘 당장 간다고 하니까 선물도 못 주고 어쩐디야."

"선물이라······ 받고 싶은 선물이 있기는 한데요······."

"뭔디 말만 해 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다 해줄 겨. 오늘은 못 주더라도 아들을 시켜서 꼭 전해 줄 테니께."

"그럼 저랑 약속해요. 꼭 선물 주시겠다고."

"암. 그라제!"

"자. 약속이에요."

최기석과 최미순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이자 속 시원하게 말혀잉."

"제가 받고 싶은 선물은요······."

"······."

"할머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는 거예요. 앞으로 더 아프지 마시고 둘째 아드님 손주까지 꼭 보세요."

최기석의 말에 최미순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가 잔잔히 떨리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오매 젊은 사람이 욕심도 많네. 암에 걸린 데다가 폐도 안 좋은 노인네보고 오래 살라고 하니께."

"제가 원래 욕심이 많아요."

"내가 그 선물 꼭 줄 껴잉. 그러니까 의사 총각도 일 열심히 혀고 건강해 부려."

최미순이 작고 쪼글쪼글한 손으로 최기석의 손을 잡았다.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그 무엇보다 따뜻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빙긋 웃었다.

띠링!

[새로운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이 머릿속에 울렸다.

평소라면 칭호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당장 확인했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최미순과 교감을 나누는 이 순간이 너무 소중했다.

"할머니. 저 이게 가 볼게요."

"그랴. 바쁜데 어여 가꼬."

최기석이 중환자실을 벗어났다.

그가 떠나자마자 최미순이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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