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턴으로 산다는 것(7)
"어떻게 된 거죠?"
"지금 보호자분이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요······."
강효정이 말을 이었다.
몇 분 전 일행들은 보호자의 지인이라며 찾아왔다. 그리고 보호자가 전화를 안 받는다며 물건 하나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물건만 받으려 했는데 그 틈에 우르르 중환자실로 쳐들어왔다고 한다.
"보안 직원은요?"
"불렀는데 아직 안 올라왔어요."
강효정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최미순의 침상을 응시했다.
"최미순 환자, 지금 의식도 없고 상태도 안 좋은데 저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가 가 볼게요."
최기석은 심호흡을 하고 일행에게 다가갔다.
"환자는 안정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최미순 환자뿐 아니라 다른 환자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당신이 뭔데?"
삼각 턱을 가진 남자가 눈을 치켜떴다.
삼각 턱의 목에는 변형된 모양의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최미순의 병실에서 봤던 바로 그 십자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얼추 짐작이 갔다.
"의사입니다."
"하이고. 병도 못 고치는 의사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큰소리야, 큰소리는!"
"큰소리는 그쪽이 내고 있습니다만."
최기석의 지적에 삼각 턱이 파르르 눈을 떨었다.
"됐으니까 가 봐. 미순 씨는 우리가 치료할 테니까."
"치료는 병원에서 의사가 하는 겁니다. 더 이상 환자에게 손대지 마세요."
"당신들이 치료를 못하니까 우리가 나서는 거잖아. 알아들어? 당장 시작해."
삼각 턱의 지시에 한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단숨에 침상으로 올라가 최미순을 짓밟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여자가 발을 놀릴 때마다 최미순의 앙상한 몸이 요동쳤다.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몸이 부러질 것 같았다.
베드도 덩달아 춤을 췄다.
미친 새끼들, 저걸 치료라고 하는 건가.
"어머! 어떡해?"
"보안은 아직 안 와?"
간호사들과 환자들의 비명으로 중환자실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씨발 새끼들이. 진짜!"
최기석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삼각 턱을 옆으로 밀쳤다.
삼각 턱이 짚단처럼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런데 최미순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다른 일행들이 최기석을 막아섰다.
"치료 중이니까 방해하지 마세요."
"꺼져. 사이비 새끼들아!"
최기석은 도끼눈을 뜨고 일행들에게 달려들었다.
건장한 남자 둘이 다짜고짜 팔과 다리를 붙잡았지만 안간힘을 쓰며 저항했다.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르며 뱃속에서는 알 수 없는 힘이 요동쳤다.
여기서 물러나면 최미순은 죽는다.
퍼어어억!
최기석은 팔꿈치를 휘둘러 한 남자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더불어 다른 남자를 밀쳐 제압했다.
남자들을 쓰러트리자 침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내려와!"
최기석은 최미순의 몸 위에서 방방 뛰고 있던 중년 여성을 바닥으로 끌어냈다.
"아······."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한 순간 신음이 터졌다.
체력: 2/10
주 증상: 호흡곤란 / 흉통 / 객혈 / 객담
아픈 부위: 폐 / 갈비뼈
진단명: 폐렴 / 외상성 기흉 / 신경성 쇼크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매우 불량(near death)
과거력: 위암 / 위 부분 절제술.
[패시브 삶의 의지가 발동 중입니다.]
[질병 저항력과 생존력이 증가했습니다.]
[패시브 지속시간 2분.]
개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진단명은 외상성 기흉.
여자가 최미순을 잘근잘근 밟은 탓에 갈비뼈가 부러진 모양이다. 그리고 부러진 갈비뼈는 다시 최미순의 폐를 찔렀고 말이다.
"그으으으윽."
최미순의 입에서 기이한 소리가 흘렀다.
예전의 최기석이라면 공항에 빠졌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얼어붙은 심장의 효과로 마음은 지극하게 차분했다.
맑은 머리로 현재 상황과 최미순을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난동을 피운 사람들이 저 사람들입니까?"
보안 직원들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난동 부린 일행을 바깥으로 끌고 갔다.
소란이 마무리되면서 간호사들이 우르르 최기석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환자는 어때요?"
"외상성 기흉 같아요. 흉강천자 세트 준비해 주세요."
"네?"
강효정이 눈을 치켜떴다.
"시간 없어요. 빨리요!"
"최 선생님. 미쳤어요? 우리가 흉부외과 쪽에 연락할 테니까 가만있어요."
"이대로라면 어르신은 죽어요. 설령 흉부외과 선생님이 와서 처치한다고 해도 시간이 없다고요!"
"하지만······."
"내가 책임집니다. 빨리!"
최기석의 호통에 강효정이 입술을 깨물고 스테이션으로 돌아갔다.
중환자실의 분위기가 터질 것 같이 팽팽해졌다.
환자들은 놀란 토끼눈으로 상황을 지켜보았고 간호사들은 최기석의 카리스마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 최기석은 최미순의 환자복 상의를 벗겼다.
가슴 부위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청진기를 대자 호흡이 아까보다 더 가팔랐다. 얼굴과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최기석은 처치를 위해 간호사를 불러 최미순을 앉은 자세로 만들었다.
"선생님. 마지막 기회예요."
강효정이 처치 도구를 챙겨서 최기석의 옆에 섰다.
"이미 흉부외과에 연락을 넣었어요. 그쪽 선생님이 급하게 오는 중이라고 하니까 괜히 객기 부리지 마세요. 혹시 환자가 외상성 기흉이 아니라면, 처치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
"이건 제가 드리는 마지막 기회예요."
"저기요. 강 선생님."
최기석이 눈을 치켜뜨고 강효정을 바라보았다. 두 눈에서 뜨거운 불꽃이 쏘아졌다.
시간이 없다.
최미순의 상태는 반죽음.
그마저도 삶의 의지 패시브로 버티고 있었다.
지금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그는 필시 저승사자일 것이다.
"지금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거든요?
최기석은 이죽거리며 청진기를 최미순의 등에 댔다. 그리고 손으로 등 부분을 탁탁 쳤다.
호흡음이 감소하고 탁음이 들리는 곳이 바로 천자를 시도할 부위다.
"시작합니다."
수술 장갑을 끼고 포셉을 손에 쥐었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포비돈 용액이 묻은 볼을 넓게 바르고 천자할 부위가 보이도록 방포를 씌웠다.
'이 인간이 정말 미쳤나?'
강효정은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최기석은 레지던트도 아니고 인턴이다.
그런데 시진과 청진만으로 외상성 기흉을 단정 지었으며 직접 흉강 천자를 시도하는 중이다.
세상에 이렇게 간 큰 인턴이 있을 줄이야.
게다가 만에 하나를 생각해 보자.
환자가 외상성 기흉이 아니라 심장이나 폐에 손상이 있다면 오히려 흉강천자로 환자를 잡을 수도 있다.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까 뭐라도 해 보자.
만약 그런 마음으로 처치를 하고 있다면 큰코다치리라.
환자가 죽게 되면 보호자들의 엄청난 항의를 받을 테니까.
즉 최기석은 처치는 성공하면 본전, 실패하면 쪽박을 차는 일이다.
'그래도 어쩌면······.'
강효정은 주사기를 건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최기석의 거침없는 행동은 어리바리한 인턴이 아니라 든든한 전문의 같았다.
그래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 사람이라면 한 번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어르신.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최기석은 최미순의 굽은 등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들, 수줍게 챙겨 주었던 양갱, 그 밖의 추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게 할 수는 없다.
최기석은 50cc 주사기에 18g 니들을 꽂아 천자 준비를 마쳤다.
푸우우욱.
살을 뚫는 느낌이 고스란히 손에 전해졌다. 동시에 주사위 몸통을 살짝 뒤로 당겼다.
새빨간 삼출액이 주사기로 밀려 들어왔다.
[흉강천자에 성공하셨습니다!]
[라포 4단계 환자에게 처치 보너스를 적용합니다.]
[삶의 의지 패시브 지속시간이 2배로 늘어나며 효과도 2배로 상승합니다.]
"우와. 최 선생님이 해냈어!"
"대박!"
숨죽여 지켜보던 간호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헉헉헉. 으······ 응, 응급환자 있다면서요."
한 남자가 다급하게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의사가운 상단 주머니에 흉부외과 민주혁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