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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0화 (20/407)

초턴으로 산다는 것(4)

지이이잉.

기숙사로 돌아가는데 야속하게 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 기석아. 나 범균인데. 미안한데 병동으로 좀 와 주라. 별일은 아닌데 네가 와야 될 것 같아."

"바로 갈게."

어쩐지 말투에서 별일이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풍겼지만 토 달지 않고 병동으로 향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짝턴의 부탁이다.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병동에 도착하자 진현아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최 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안 선생님이 저를 찾던데. 무슨 일이에요?"

"505호 실로 가 보세요."

진현아가 손가락으로 옆 병실을 가리켰다.

최기석이 505호실에 들어가자 안범균과 최미순이 대치하고 있었다.

"안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할머님이 최 선생한테만 주사를 맞겠다고 버티고 있어요."

안범균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반면 최미순은 최기석을 발견하고 화색을 띠었다.

"근육주사라서 혈관에 놓는 게 아니라고 설명을 드렸는데도 무작정 싫다고 하시네요.

"아따 이제 왔구먼? 어여 와서, 주사 좀 놔 줘."

최미순이 대화에 껴들었다.

이에 최기석은 최미순과 눈을 마주치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혈관을 찌르는 주사는 정맥주사, 근육을 찌르는 주사는 근육주사라고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또한 주사의 난이도가 각각 다르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런 것이었어? 그러믄 그냥 맞을게. 대신 그 정맥주사인가 뭔가는 꼭 최 선생이 혀."

"그럼요."

최미순은 최기석의 확답을 받고서야 근육주사를 맞았다.

이후 최기석과 안범균이 처치를 마치고 병실을 나왔다.

"우와. 이제 살 것 같네. 말을 해도 듣지를 않으니까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

"······."

"그리고 말이다. 설명은 똑같이 했는데 왜 네 말은 듣고 내 말은 안 들어?"

"그럴 일이 있어."

최기석은 빙긋 웃었다.

그와 최미순은 2단계의 라포가 형성되어 있었다.

똑같은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말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

"의사 총각!"

최미순이 갑자기 최기석을 불렀다.

최기석은 걸음을 돌려 병실 문 앞에 섰다.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그것이 말이여······ 여기 앉아서 잠깐 이야기 좀 허면 안디? 오늘은 자식들도 없고······."

최미순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곁에 있는 안범균이 휘휘 고개를 저었다. 오프니까 쉬라는 말도 작게 했다. 하지만 최기석은 안범균을 먼저 보내고 최미순에게 다가갔다.

"안 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역시 허벌나게 참한 총각이여. 딸년이라도 있었으면 시집을 보냈을 텐디."

최미순이 최기석을 치켜세웠다.

이후 최미순은 수술이 끝난 후 코빼기만 비추고 사라진 두 아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물론 간병인이 붙어 있기는 했지만 간병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멀쩡 혀잉. 당장 농사도 지을 수 있제."

최미순이 호미 가는 시늉을 했다.

'확실히······.'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최미순을 살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다른 환자에게 없는 특별한 것이 존재했다.

체력: 5/10

주 증상: 속 쓰림 / 구역질

아픈 부위: 위

현재 상태: 비응급

경과: 양호

[패시브의 레벨이 낮아 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패시브 스킬

[삶의 의지 Lv.4]

- 모든 질병에 대한 저항력과 생존력이 증가합니다.

- 의학적 사망에 빠지더라도 일시적으로 부활할 수 있습니다.

- 최대 5단계까지 성장합니다.

그랬다.

의료인에게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킬.

그것을 환자도 가질 수 있었다. 그 사실이 최기석에게는 꽤 충격이었다.

"갑자기 왜 그랴?"

"아······ 아니에요. 할머니 근데 이건 뭐예요?"

최기석은 탁자에 놓인 십자가로 화제를 돌렸다.

십자가는 그가 그동안 봐 왔던 십자가와는 다소 모양이 달렸다.

"교회 다니세요?"

"아녀. 교회는 아니고 그거랑 비슷한 거여. 죽은 남편이 믿는 거라서 나도 어쩔 수 없이 따라 다녔제."

최미순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원수 같은 서방 놈은 하늘에서 잘 처먹고 지내는지 모르겄어잉."

"분명 잘 지내시겠죠."

최기석은 최미순을 다독이던 중 그녀의 눈가가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발견했다.

황혼에 접어든 인생.

반려자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그녀 혼자 비루한 몸을 지키다가 몸져누웠다.

최기석이 아무리 헤아려 보려고 한들 그 아픔에 절반조차 느낄 수 없으리라.

"아따. 내가 의사 총각을 너무 붙잡았지. 이만 가 벼."

최미순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푹 쉬시고 내일 또 뵈러 올게요."

최기석은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어설픈 위로를 할 바엔 차라리 최미순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더 좋다고 판단했다.

"하아······."

복도를 걷는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몸이 아픈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사람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거기에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거웠다.

지이이잉.

가운에 넣어두었던 콜폰이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얼굴을 찌푸리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위장관외과 최기석 선생님이죠?]

"네. 그런데요."

[여기는 대장항문외과인데요. 응급환자 스크럽 좀 서주세요. 저희 쪽 인턴 쌤은 이미 수술실에 들어가 있어서요.]

"곧바로 가겠습니다."

최기석은 곧바로 수술실을 향했다.

비록 본인 병동 일이 아니더라도 호출을 받으면 일을 해야 하는 게 인턴이다.

[병원에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면 어떻게 할까.]

[정답. 인턴에게 시킨다.]

오죽하면 그런 농담이 돌겠는가.

* * *

응급수술이 끝난 후 최기석은 기숙사로 돌아왔다.

온몸이 곤죽이다.

팔다리가 쑤시고 머리는 멍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남았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

최기석은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한참 고민하던 끝에 좋은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다.

이 방법이 가능하다면······.

휴대폰을 들고 손양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늦은 시간에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딱히 하는 일도 없었는데요. 뭐.]

"병원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며칠 전에 관계자들이 와서 사과를 하고 갔어요. 합의금도 어느 정도 들어왔고요. 다 기석 씨 덕분이에요.]

손양희의 밝은 목소리에 최기석은 미소를 머금었다.

"정혁이는 어때요?"

[잘 지내고 있어요. 성형외과 치료도 생각보다 차도가 좋고 성격도 전에 비하면 많이 밝아졌어요.]

"다행이네요."

최기석은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원장님. 혹시 정혁이 자고 있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혹시 통화하고 싶으세요?]

"네."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금방 다시 전화 걸게요.]

손양희가 통화를 끊었다.

지이이이잉.

이윽고 휴대폰이 울렸다.

최기석은 잽싸게 통화를 연결했다.

[형. 안녕하세요.]

"정혁이구나. 요새는 좀 어때?"

[잘 지내요.]

"그래. 좋은 음식 많이 먹고 빨리 건강해져야지. 형이 전화 끊고 영상통화로 걸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최기석은 통화를 종료하고 영상통화를 연결했다.

화면 위로 김정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확실히 전에 비하면 얼굴에 살이 많이 붙었다.

표정에서도 과거의 어두운 기운을 찾기 힘들었다.

지금처럼 씩씩하게 재활을 이겨 나간다면 건강을 되찾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다만 거기에 필요조건이 있을 뿐.

[근데 영상통화는 왜 걸었어요?]

"왜긴 네가 보고 싶어서지."

최기석은 심호흡을 하고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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