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9화 (19/407)

초턴으로 산다는 것(3)

선생님이 오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안범균.

최기석과 함께 위장관 외과에 들어온 인턴으로 속칭 짝턴(짝궁 인턴)이다.

최기석이 수술실 쪽을 맡았다면 안범균은 병동의 전반적인 일처리를 맡았다.

"형 왔어?"

"어. 근데 너 대박이다. 벌써 병동 처치까지 끝냈더라?"

"먼저 온 김에 그냥 했어."

최기석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범균이 최기석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그가 일반의 자격증을 따고 공중보건의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설마 회의 준비까지 끝?"

최기석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회의 준비까지 끝났기에 두 사람은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인턴에게 병원이란 선배 의사와 간호사, 환자와 보호자들이 우글거리는 밀림이다.

이곳에서 기댈 수 있는 이는 같은 인턴뿐이다.

이윽고 시간에 맞춰 선생님들이 하나둘 회의실에 왔다.

최기석과 안범균은 일일이 인사하느라 바빴다.

"우리 과에서 초턴이네?"

정명운이 최기석을 보고 한마디 했다.

먼저 말을 거는 것을 보면 인턴시험 때 확실히 눈에 든 모양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해 봐."

정명운이 최기석의 어깨를 두드리고 자리에 앉았다.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합니다."

레지던트 4년 차인 김재호가 회의를 이끌었다.

그가 명단을 보고 환자를 호명하면 주치의들이 환자의 상태를 간략하게 요약했다. 그러면 최기석은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가 검사 영상들을 프로젝터에 띄웠다.

회의는 30분 만에 끝났고 곧바로 오전 회진이 이어졌다.

"형. 수고해."

"너도 힘내라."

최기석은 안범균과 헤어진 후 수술실로 향했다.

* * *

중앙 수술준비실.

최기석은 수술대기 하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막 B 로젯으로 50대 남자 환자가 들어갔다.

환자의 이름은 양경일.

위 내시경 조직검사를 통해 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TNM 병기로는 T2 N1 M0.

여기서 T는 종양의 장벽침범 정도, N은 림프절의 전이 정도, M은 원격장기의 전이 여부를 뜻한다.

양경일은 3기 중에서도 비교적 5년 생존율이 높은 A형이다.

오늘 수술은 위아전 절제술과 위 십이지장 문합술.

암 조직이 있는 위의 날문 부분을 제거 후 십이지장과 이어 주는 수술이다.

"표정이 왜 그래? 누가 보면 네가 수술하는 줄 알겠다."

집도의인 정명운과 다른 보조 선생들이 준비실로 들어왔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보니까······ 쫄았구먼. 만약 수술 중에 졸도할 거면 꼭 뒤로 넘어져라. 환자 다칠라."

정명운이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이윽고 최기석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차례대로 스크럽(수술 전 소독하는 행위)을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환자분 성함이 양경일 님 맞으시죠?"

"네."

"나이는 올해로 쉰둘이시고요."

최기석의 말에 양경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수술 전 환자를 확인하는 타임아웃 절차다.

환자 확인이 끝나자 마취과 선생이 마취를 시작했다.

그 곁에는 마취과 인턴이 찰싹 달라붙어 마취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동질감이 확 느껴졌다.

이윽고 말단 보조인 최기석이 환자의 왼쪽 겨드랑이 앞에, 제3보조가 오른쪽 겨드랑이에 자리 잡았다. 집도의인 정명운과 제2보조는 각각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수술실 소독간호사는 정명운 근처에서 수술 도구를 건넬 준비를 했다.

"지금부터 위아전 절제술과 위 십이지장 문합술을 시작한다."

정명운이 환자의 복부를 넓게 소독한 후 메스를 손에 쥐었다.

칼날이 수술 등을 반사하며 날카롭게 빛났다.

부우우욱.

메스가 환자의 복부를 갈랐다.

피부와 피하지방이 차례로 갈라지고 복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얇고 투명한 복막마저 가르자 오늘의 수술 부위인 위가 나타났다.

꿀꺽.

최기석은 마른침을 삼켰다.

과거 흉부외과 레지던트 3년 차에는 개흉술을 비롯해 간단한 외과 수술을 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흉부에 국한되었다.

소화기 수술을 지켜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장기를 지켜볼수록 야릇한 흥분감이 치솟았다. 직접 메스를 들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도 들었다.

최기석은 본인이 외과 체질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본격적인 수술의 막이 올랐다.

최기석은 리트랙터(절개부위를 벌리는 도구)로 절개 부위를 벌리고 있었다.

집도의가 장기를 넓게 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그 와중에도 정명운의 동작에는 조금도 눈을 떼지 않았다.

정명운은 그가 봤던 의사 중에서 외과 처치 레벨이 가장 높았다.

수술을 끝까지 지켜보면 반드시 얻을 게 있으리라.

그래서 히포크라테스의 눈까지 발동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절제술.

비릿한 피 냄새가 수술실에 퍼졌고 수술 도구들이 내는 소리가 적막을 깨웠다.

'저거구나.'

최기석의 눈이 위의 날문부에 고정 되었다.

그곳에 미세한 암 조직이 존재하고 있었다.

치지지지직.

정명운은 전기 소작기를 이용해 암 조직을 절제하고 동시에 지혈까지 해냈다.

꼼꼼한 처치 속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유문부에 있는 암 조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검사에서 드러난 림프절 전이 부위까지 암 조직이 제거됐다.

이제 위와 십이지장을 연결시켜 주면 수술은 끝.

대부분의 스탭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단 두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 정명운과 최기석이다.

정명운은 쉽사리 문합술을 펼치지 않고 위의 다른 부위를 추가적으로 살폈다.

'이게 의사의 감인가?'

최기석은 속으로 감탄했다.

체력: 4/10

주 증상: 토혈 / 속 쓰림 / 심와부 통증

아픈 부위: 위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

[패시브의 레벨이 낮아 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수술이 거의 성공했음에도 환자의 상태는 여전히 불량했다.

아직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최기석이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문제를 파악했다면 정명운은 경험으로 문제점을 알아챘다는 점뿐.

최기석의 시선이 정명운에게 옮겨졌다.

이제 그의 판단에 따라 환자의 운명이 결정된다.

날카로운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정명운의 눈에서 최기석만 볼 수 있는 빛이 뿜어졌다.

액티브 스킬인 매의 눈을 사용한 것이다.

"여길 봐."

이윽고 정명운이 검지로 위의 몸통 부위를 가리켰다.

그곳에 아주 작은 크기의 천공이 있었다.

위암으로 인한 위 천공.

검사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급성 천공으로, 만약 천공을 해결하지 않고 복부를 닫았다면 금방 재수술을 했으리라.

"······."

"······."

천공을 확인한 보조의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정신 똑바로 차려! 수술은 집도의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정명운이 따끔하게 호통을 치고 추가 처치에 들어갔다.

잠시 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의료모드를 사용한 결과 환자 상태가 양호로 변했다.

최기석은 뒷정리하던 중 수술실을 떠나는 정명운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가 처음으로 멋있어 보였다.

* * *

수술실 인턴으로 보낸 첫날.

최기석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스크럽을 서는 일뿐 아니라 수술이 끝난 환자를 병동이나 중환자실로 옮기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으라차차."

기지개를 켜며 중앙 수술준비실을 나왔다.

방금 막 긴 시간의 수술 보조를 마쳤다.

시계를 보니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수술실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소독간호사가 최기석을 붙잡았다.

"인턴 쌤. 오늘 근무가 뭐예요?"

"퐁이요."

퐁이라는 것은 쉬는 날을 뜻하는 은어다. 반대로 당직을 설 때는 당이라는 표현을 쓴다. 인턴의 근무는 보통 퐁당, 퐁퐁당, 퐁당당등이 반복된다.

"수술실은 퐁이라도 응급 대기하는 거 알죠? 콜 받으면 30분 내로 오세요."

"네."

최기석은 기숙사로 향하던 중 카페에 들려 커피를 샀다. 그리고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갖고 싶다."

속으로 생각했던 것이 입 밖으로 나왔다.

최기석은 정명운과 함께했던 수술을 떠올렸다.

그때 정명운은 다른 보조들이 찾지 못했던 급성 위 천공의 흔적을 찾았다.

수술 시 루뻬라는 수술 안경을 쓰지만 안경을 쓰더라도 시야를 파악하는 능력은 의사마다 다른 법.

정명운이 바로 그에 대한 좋은 본보기였다.

[매의 눈 Lv.4]

- 수술 시 수술 부위 및 주변 병변을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 레벨이 올라가면 시야가 넓어지고 입체적으로 변합니다.

- 최대 5단계까지 성장합니다.

정명운의 스킬이 탐났다.

이 기술은 단순히 일반외과에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외과계통 전부에 사용할 수 있었다.

특히 세밀한 관찰이 필요한 흉부외과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알림이 머리를 스쳤다.

띠링!

[특별 임무, '매의 눈을 익혀라'가 생성되었습니다.]

[임무 완수 시, 얻은 스킬에 특수 보상이 주어집니다.]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남은 커피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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