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시험(3)
시험시간이 다가오면서 강당이 붐볐다.
정설화의 시험번호는 97번으로 최기석과는 일곱 칸 정도 떨어졌다.
일부러 조태호 패거리와 거리를 둔 듯한 모습이다.
보통 접수할 때는 친한 사람과 가까운 자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잠시 후 오전 8시가 되었다.
간단한 필기시험이 끝나고 응시자들이 번호 순서대로 불려나갔다.
"86번부터 90번 들어오세요."
남자 직원의 외침에 응시자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최기석은 조태호가 있는 조에 속했다.
"짜샤. 잘해라."
"기석아. 파이팅."
김건우와 정설화의 응원을 받으며 직원을 따라갔다.
이윽고 응시자 전원이 시험장에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그들 맞은편에는 의사가운을 걸친 세 명의 중년 의사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중앙에 있는 남자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남자는 양옆에 있는 의사들보다 덩치가 컸으며 머리에는 심각한 M자 탈모가 진행 중이다.
의사가운에 위장관외과 정명운이라는 글씨가 박혔다.
그가 바로 헤이야치다.
"······."
"······."
정명운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악한 포스가 게임 속 캐릭터와 꼭 닮았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간 공중으로 떠오를 것 같은 느낌이랄까.
면접이 시작되기 전.
최기석은 정명운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해 보았다.
직업 및 전공: 전임의/위장관외과
체력: 6/10
진단력: 5/10
외과적 처치: 7/10
내과적 처치: 6/10
평판: 6
액티브 스킬
[매의 눈 Lv.4]
- 수술에 들어간 경우 수술 부위 및 주변 병변을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 레벨이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지고 입체적으로 변합니다.
- 최대 5단계까지 성장합니다.
[반드시 지킨다. Lv.5]
- 수술 후 환자를 종합적으로 관리하여 상태를 호전시킵니다.
- 합병증 및 원내 감염, 기타 추가적인 위험요소가 줄어듭니다.
- 레벨에 따라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최대치까지 성장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약자무시 Lv.5]: 사용 중
- 실력 없는 의료인 및 의료기사들을 무시합니다. 무시 대상의 경우 각종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 무시 대상에게는 특별한 표식이 남습니다.
- 무시 대상이 아닌 의료인과 함께 처치 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레벨이 증가함에 따라 증가율과 감소치가 늘어합니다.
정명운은 최기석이 능력을 얻은 후 살핀 의료인들 중에서 외과 처치 능력이 가장 뛰었다.
또한 패시브인 약자무시가 독특했다.
정명운에 대한 악명이 높은 것은 아마 저 패시브 때문이리라.
'가만 보자······ 표식이라고?'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발동한 채 사람들을 훑었다.
자세히 살피니 설명대로 사람들 가슴 부근에 특이한 표식이 있었다.
표식은 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원.
정명운 오른편에 앉은 면접관을 제외하면 모두에게 표식이 새겨졌다.
즉 그가 인정하는 사람은 우측 면접관뿐이라는 이야기다.
"면접 시작합니다. 80번. 폐쇄성 골절 환자에게 부목을 대 보세요."
"네."
왼쪽 면접관의 말에 조태호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조태호는 한 손으로 실습 모형의 이곳저곳을 만졌다.
골절 환자를 파악할 때는 변형, 개방상처, 압통과 통증 여부 등을 살펴야 한다.
그 과정을 살피고 있음을 어필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짧은 팔 부목 고정.
조태호는 실습 모형의 손바닥부터 하완부에 석고를 대고 붕대를 감았다.
골절 부위의 아래위 관절을 모두 고정시켰으며 엄지 근처 부위는 석고를 동그랗게 잘라서 움직이기 편하게 만들었다.
과정이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그만 됐어요."
왼쪽 면접관이 중간에 조태호의 처치를 중단시켰다.
조태호에 이어서 다른 응시자들이 하나씩 실기 과제를 해결해 나갔다.
마지막은 최기석의 차례다.
"85번은 영아(1세 미만의 아이)의 기도폐쇄 처치법을 시현해 봐요."
"우선 영아의 의식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의 처치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최기석은 허리를 살짝 굽힌 상태에서 한 손으로 실습 인형의 머리와 목을 받쳤다.
이후 인형을 허벅지 위에 엎드려 놓았다.
팡! 팡! 팡! 팡! 팡!
오른 손바닥으로 등의 중앙 부위를 다섯 번가량 두드렸다. 그리고 인형이 하늘을 보고 눕도록 만든 뒤 검지와 중지로 인형의 흉부를 압박했다.
"영아가 의식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할 거죠?"
"CPR를 하겠습니다."
"입에 이물질이 있는 경우에는?"
"이물질의 위치를 확인하고 손으로 제거해 줍니다."
최기석이 막힘없이 대답하자 면접관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테스트가 끝나고 마침내 정명운이 나섰다.
"자. 지금부터 공통 과제입니다. 81번부터 수평 매트리스 봉합 실시."
"네? 저부터요?"
지적을 받은 장혜연이 쉴 새 없이 눈을 깜빡거렸다.
"80번부터 하는 거 아닌가요?"
"빨리 해 봐요."
정명운의 다그침에 장혜연이 봉합을 준비했다.
우선 봉합사의 포장을 벗기고 니들홀더로 봉합사의 바늘 부분을 잡았다.
끼기기기긱.
니들홀더 조이는 소리가 시험장에 울려 퍼졌다.
"아······."
장혜연이 시작과 동시에 탄식을 내뱉었다.
긴장을 많이 했던 탓인지.
정명운의 기세에 말린 탓인지 엉뚱한 부위에 운침을 하고 말았다.
"지금 장난합니까?"
"······."
"환자가 방금 장면을 봤다고 생각해봐요.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죄······ 죄송합니다."
장혜연이 고개를 숙였다.
"정신 똑바로 차려요. 우리 병원에 얼뜨기 인턴은 필요 없으니까."
"······네."
장혜연은 정명운에게 욕을 먹어 가며 간신히 봉합을 끝냈다.
약자무시의 효과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다음 차례는 조태호.
조태호는 당당하게 실습 모형 앞에 섰다.
장혜연이 당하는 꼴을 봤음에도 여유가 넘쳤다.
조태호의 봉합이 시작되었다.
그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첫 운침부터 정확하고 빨랐다.
매듭을 지을 때 다소 버벅거리기는 했지만 그 이외에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성격은 개판이지만 실력까지 개판은 아니었다.
"다음은 85번."
시험관의 외침에 실습 모형 앞에 자리 잡았다.
최기석은 봉합사 포장을 뜯고 니들홀더로 바늘 부분을 잡았다.
끼기기긱.
니들홀더 조이는 소리가 유난히 경쾌했다.
푸우우욱.
바늘이 모형을 꿰뚫는 순간 야릇한 쾌감이 느껴졌다.
비록 모형이지만 이 손맛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최기석은 봉합사를 피부조직에 남기고 적당한 압력으로 결찰했다.
이어지는 한손 매듭.
한 번의 버벅거림도 없이 매듭이 완성되었다.
찰칵!
가위로 봉합사의 남은 부분을 잘라 냈다.
평가에 필요한 처치는 끝냈지만 최기석은 곧바로 다음 봉합을 이어 나갔다.
들뜬 기분 속에 손이 먼저 움직였다.
최기석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시험장을 휘감았다.
면접관은 물론이요 응시자들까지 요술 같은 봉합 솜씨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른 응시자들이 봉합 부위를 한 군데 완성했을 때 최기석은 벌써 세 번째 봉합을 진행 중이었다.
'이놈 봐라?'
정명운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최기석의 솜씨는 여간내기가 아니다.
우선 봉합을 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혹시 봉합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 봉합술은 완벽해.
어떻게 하든 제대로 될 거야.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봉합하는 듯했다.
봉합 결과도 흠잡을 데가 없다.
벌써 다섯 바늘을 꿰매고 있음에도 봉합 간격이 균일했다. 봉합 속도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만!"
정명운이 외침에 최기석이 봉합을 멈추었다. 하지만 최기석의 눈에는 기이한 열망이 남았다.
조금 더 손맛을 보고 싶은데······.
"수평 매트리스 봉합은 주로 언제 쓰죠?"
"지혈봉합 효과가 있어서 혈관이 많은 조직에 사용하면 좋고 피부가 두꺼운 손바닥이나 발바닥을 봉합하는데 많이 쓰입니다."
"단점은?
"상처 아래쪽 조직을 지지할 수 없어서 깊은 상처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최기석의 대답에 정명운이 됐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최기석은 자리로 돌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드리웠던 표식이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