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무 보육원(3)
강철병원이 수술을 잘못했다면 강포병원은 수술 후 관리가 개판이다.
김정혁은 치료를 받던 중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되었으며 이로 인해 패혈증을 앓았다.
더불어 S상 결장 항문루, 괴사성 근막염 등의 질환까지 추가로 얻었다.
이쯤 되면 병을 치료하러 간 게 아니라 병을 얻으러 간 셈.
거기서 끝이 아니다.
강포병원에서도 치료 지연이 있었다.
전원되어 온 시간이 오후 4시인데, 정작 응급수술은 오후 10시에 들어갔다.
"씹 새끼들. 정도껏 해야지."
최기석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각종 기록지를 살핀 결과 3, 4일 간격으로 전신마취가 무려 9번이나 행해졌다는 점, 감염관리가 형편없었으며, 할로페리돌 같은 약물이 잘못 사용됐다는 점도 밝혀졌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드러난 순간.
역시 김정혁은 병이 아니라 병원에 당했다.
최기석은 자리에 앉아서 의무기록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근거를 마련했다.
이제부터는 의사 대 의사의 싸움, 즉 지식 공방이다.
전쟁터는 그의 전공인 흉부외과가 아닌 일반외과.
더욱 날 선 대비가 필요했다.
* * *
이튿날.
최기석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다시 보육원을 찾았다. 그리고 손양희와 김정혁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충수돌기 절제술을 한 게 아니라고요?"
최기석의 말에 손양희가 놀란 토끼 눈을 했다.
"네. 집도의가 실수로 S상 결장을 절제했습니다. 강철병원과 강포병원은 일부러 그 사실을 원장님과 보육원에게 말하지 않았고요."
"······."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최기석은 양쪽 병원에 의료과실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손양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나쁜 인간들."
손양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입원 중에는 정혁이가 치료에 잘 안 따라 줘서 병이 생겼다고 했는데."
"책임을 피하려고 그랬던 겁니다. 전형적인 수법이죠."
"지금부터는 어떻게 하죠?"
"병원하고 한판 붙을 생각입니다."
최기석이 계획을 설명했다.
우선 강철병원 집도의가 수술에서 실수를 한 건 명확했다. 그래서 집도의에게 민?
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후에는 강철병원과 강포병원 쪽에게 후유증에 대한 위자료를 받아 낼 생각이다.
"그게 가능할까요?"
손양희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의료사고는 피해자 쪽에서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하던데. 그리고 만약 소송을 걸어도 긴 싸움이 되지 않을까요?"
손양희는 자신감을 잃었다.
김정혁이 의료사고로 망가졌다는 사실이 화나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보상받는 길이 너무나 험난해 보였다.
당장 보육원 재정도 넉넉한 편이 아니었기에.
사실은 그녀도 억울한 마음에 의료소송을 알아봤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걱정 마세요. 위자료도 사과도 제대로 받게 해 드릴 테니까."
"그럼 감사하지만······."
"이번 일은 전부 제게 맡겨 주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최기석은 인사하고 원장실을 나왔다.
잠시 후 최기석이 시킨 치킨들이 보육원으로 배달되었다. 보육원 아이들이 한데 모여서 사이 좋게 치킨을 먹었다.
단 한 사람.
김정혁을 제외하고 말이다.
김정혁은 아예 자리에 끼지도 않았다.
최기석은 치킨 한 마리를 들고 김정혁의 방을 찾았다.
"정혁아. 안녕. 얼마 전에 봉사하러 왔던 형인데. 혹시 기억나니?"
"네."
"뭐하고 있어?"
"그냥 있어요."
김정혁은 창가에 서서 멍하니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최기석과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시선은 여전히 딴 곳에 가 있었다.
"형이 치킨 시켰으니까 같이 먹자."
"네."
바닥에 앉아서 김정혁과 치킨을 먹었다.
치킨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던 과거 김정혁이지만 지금은 힘없이 한두 조각만 깨작거렸다.
생기 없는 모습이 최기석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이렇게 어두운 아이가 아니었는데.
늘 밝게 웃고 주변 아이들을 챙겨 주는 아이었는데.
옛 모습까지 겹쳐지면서 아픔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최기석은 치킨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해 봤다. 하지만 김정혁의 대답이 짧아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격려 스킬을 사용합니다..]
[격려를 받은 대상의 감정이 밝아집니다.]
[면역력, 저항력, 재생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스킬을 사용하자 최기석만이 볼 수 있는 빛이 김정혁을 감쌌다.
이에 김정혁이 적극적으로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밝은 감정이 돌아오면서 식욕이 생긴 모양이다.
"콜라 마셔."
최기석은 콜라를 컵에 따라서 김정혁에게 내밀었다.
김정혁은 그가 내민 컵을 물끄러미 보다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해진이 형도 그랬는데."
"······."
"예전부터 치킨을 급하게 먹었어요. 그래서 해진이 형이 콜라도 좀 마셔 가면서 먹으라고 챙겨 줬는데."
"그랬구나."
최기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말할 수는 없다.
그가 사실은 정해진이라고, 기적같이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말이다.
"그 해진이 형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제가 제일 좋아하는 형이에요.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은 못 봐요."
"······."
"형이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뭐든지 더 잘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정혁이에게 소중한 사람이었구나."
"네."
김정혁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혁아 미안한데. 형이 네 상처를 좀 봐도 될까?"
"그러세요."
김정혁이 별다른 말 없이 상의를 올렸다.
그의 복부 피부는 심각하게 쭈그러들었다.
흉측한 것이 꼭 영화 속 괴물의 피부 같았다.
하고 싶은 말도, 가슴에서 샘솟는 감정도 많았지만 입을 다물었다.
"됐어요?"
"그래."
최기석은 김정혁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금이 힘든 시간이라는 거 알아. 그래도 꿋꿋이 이겨 보자. 나도 널 도와줄 거고 하늘에 있는 해진이 형도 분명 너를 도와줄 거야."
최기석의 말에 김정혁이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최기석은 한 줄기 희망을 찾았다 싶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띠링!
신규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액티브 스킬
NEW [재생의 빛 Lv.1]
- 재활 치료를 받을 경우 환자의 재활 속도 및 경과를 1.5배 상승시킵니다.
- 재활의 범위는 물리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을 포함합니다.
- 레벨이 오를수록 재활 속도 및 경과 상승폭이 증가하며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3퍼센트 확률로 특수능력을 얻습니다.
- 지속시간 7일.
- 최대 3단계까지 성장합니다.
하늘이 최기석을, 아니 김정혁을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기석은 김정혁에게 재생의 빛을 사용했다.
호수같이 파란빛이 김정혁의 몸을 휘감았다.
체력: 5/10
주 증상: 우울장애 / 외상 후 자극장애 / 운동 불량
아픈 부위: 정신 / 복부
현재 상태: 비응급
경과: 불량
[패시브의 레벨이 낮아 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격려 버프가 활성화 중입니다.]
[재생의 빛 버프가 활성화 중입니다.]
"형은 볼일이 있어서 그만 가 볼게. 다음에 또 보자."
최기석은 김정혁과 인사를 나누고 방을 나왔다.
가장 큰 짐을 덜었다.
의료사고를 입증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김정혁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니까.
비록 재활은 힘들겠지만 스킬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겨 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자, 그럼 병원 놈들을 조지러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