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2화 (12/407)

꿈나무 보육원(2)

"꼭 아셔야 하나요?"

"저도 의사입니다.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몰라요."

"······알겠습니다. 정혁이는 방에서 쉬고 있을래?"

"네."

김정혁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방에 들어갔다.

최기석은 이나래와 복도 중앙에 마련된 휴게실에 자리를 잡았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김정혁은 두 달 전 복통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충수돌기염 진단을 받고 충수돌기 절제술을 받았는데 거기서 문제가 터졌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몸 상태가 계속 나빠졌던 것이다.

김정혁은 인근 종합병원으로 전원된 뒤 응급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악재가 계속 몰려들었다.

인공복벽 설치술을 비롯한 몇 가지 수술이 7회에 걸쳐 진행됐으며 각종 약물치료가 뒤따랐다.

병만큼이나 고됐던 병원 생활.

김정혁은 퇴원할 무렵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퇴원 후 정신과 치료와 성형외과 진료를 받고 있어요."

"······."

"근데 갈수록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해요. 멍하게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요. 이런 말까지 하기는 뭐한데······."

이나래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정혁이 치료비가 장난이 아니에요. 여기저기서 지원받고 원장님이 사비까지 털었지만 그래도 빡빡해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대화를 끝내고 원장실로 향했다.

"원장님. 정혁이의 의무기록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을······."

"미심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어쩌면······."

최기석은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정혁이는 병이 아니라 병원의 희생양인지도 몰라요."

* * *

다음 날.

최기석은 손양희에게 필요한 서류들을 받아서 강철병원을 찾았다. 강철병원은 김정혁이 충수돌기염 진단과 절제술을 받은 곳이다.

"의무기록 다 주시고 검사 결과는 CD로 구워 주세요."

"네."

최기석의 말에 의무기록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와 CD를 받은 후 일반외과 진료실 앞에서 대기했다.

진단서를 떼기 위해서는 의사를 직접 봐야 했다.

최기석은 차례를 기다리는 중 기록들을 찬찬히 훑었다.

진단명은 알고 있던 대로 급성 충수돌기염이며 절제술 후 수술 부위에 배액관을 연결했다.

그런데 다음 날 오후 5시경 김정혁이 극심한 하복증 통증을 호소했다.

바이탈을 확인한 결과 열이 38.7도까지 올랐다.

그날 오전 배액관에서는 전날에 볼 수 없었던 이물질이 흘러나왔고 말이다.

이에 주치의가 김정혁의 전원을 결정하게 된다.

"으음······."

최기석은 신음을 흘리며 턱을 쓸어내렸다.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전원 결정이 오후 6시에 났음에도, 실제 전원은 8시에 이루어졌다.

환자가 응급상황에서 두 시간 가까이 방치된 것이다.

"김정혁 씨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부름에 생각이 끊겼다.

최기석은 진료실로 들어가 의사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탁자에 놓인 명패에 일반외과 전문의 엄재웅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환자분과 무슨 관계시죠?"

엄재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육원 대리인입니다. 진단서가 필요해서요."

"아. 네."

"선생님. 근데 혹시 정혁이 수술을 선생님이 집도하셨나요?"

"맞아요."

엄재웅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기석을 옳다구나 하고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직업 및 전공: 전문의/일반외과

체력: 7/10

진단력: 4/10

외과적 처치: 3/10

내과적 처치: 2/10

평판: 2

액티브 스킬: 없음

패시브 스킬: 없음

능력치를 확인한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다.

엄재웅은 레지던트도 아니고 전문의다.

그런데 외과적 처치의 단계가 너무 낮았다.

과거 레지던트 3년 차였던 최기석의 외과적 처치가 4단계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건······.

"진단서 떼러 오셨죠?"

"네. 근데 선생님."

최기석은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정혁이 수술은 어땠나요?"

"제가 그쪽에게 그걸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엄재웅의 눈빛이 매섭게 째려봤다.

"죄송합니다. 그냥 궁금해서."

"알았으면 그만 가세요."

최기석은 엄재웅이 내민 진단서를 받고 병원을 빠져나갔다.

실력은 없지만 눈치까지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다음 목적지는 강포병원.

김정혁이 전원 후 치료를 받은 병원이다.

거리가 가까웠기에 바람 쐬는 마음으로 걸어갔다.

병원에 막 도착하자 병원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응급실 앞에 섰다.

그런데 병원 구급차는 강포병원 구급차가 아니라 강철병원 구급차다.

최기석이 막 의무기록을 발급받은, 김정혁이 최초 치료를 받은 병원인 것이다.

두 병원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최기석은 병원 안에 들어가 창구에 있는 원무과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뭐 좀 물으려고 하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강철병원하고 강포병원이 무슨 관계인가요?"

"아. 두 병원은 협력병원이에요. 병원장님 두 분이 의대 동기라서 무척 친해요."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강철병원에서도 의무기록과 검사 결과를 전부 얻었다.

퍼즐 조각은 어느 정도 모인 셈.

지금부터는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서 진실에 도달해야 한다.

최기석은 집에 돌아가서 강포병원의 의무기록을 훑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살핀 것은 진단서.

강포병원의 진단명은 범발성 복막염, S상 결장의 천공, 패혈증, 복벽결손 등.

진단명이 많기도 했다.

'정혁아······.'

최기석은 입술을 깨물었다.

김정혁이 병원에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덩치 좋고 살집 많은 녀석이 왜 그렇게 깡말랐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진단서를 간단하게 훑고 가장 궁금해하던 수술기록지를 살폈다.

눈썹이 점점 일그러지고 기록지를 쥔 손에 힘이 들었다.

"씨발 새끼들이 진짜!"

쾅!

최기석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강포병원 수술기록지에 따르면 김정혁의 충수돌기는 제거되지 않았다.

강철병원에서 충수돌기 대신 S상 결장(대장의 일부로 구불결장이라 불림)을 잘라 버린 것이다.

이후 수술 부위의 봉합이 터지면서 천공과 감염이 생겼고 김정혁은 전원하게 되었다.

"휴우······."

최기석은 심호흡하며 감정을 가다듬었다.

가슴은 뜨겁지만 머리는 차갑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타다다다닥.

키보드를 두드리며 자료를 찾았다.

비록 일반외과의는 아니지만 집도의가 충수돌기와 S상 결장을 착각했다는 것은 믿기 힘들었다.

최기석은 뒤늦게 착각의 원인을 발견했다.

보통 충수돌기의 위치는 우하복부 복강 내에 있으며 S상 결장은 이와 반대편인 대장의 좌측에서 직장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있다.

그런데 S상 결장은 위치가 고정되지 않고 이동성이 있다.

즉 김정혁의 경우 S상 결장이 충수돌기 쪽으로 움직였고 집도의가 이를 충수돌기로 오인해서 수술한 것이다.

최기석은 곧바로 손양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기석입니다. 통화 괜찮으세요?"

[네. 말씀하세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정혁이가 강철병원에서 충수돌기 절제술을 받고 강포병원에서 다시 응급수술을 받았잖아요."

[그렇죠.]

"수술 끝나고 강포병원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나요?"

[충수돌기 절제술은 잘 끝났는데 근처 부위에 감염이 생겼다고 들었어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강포병원이 강철병원을 감쌌다.

수술 부위가 잘못됐다는 것을 일부러 보육원 쪽에 알리지 않은 것이다.

두 병원의 관계를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머릿속을 정리한 최기석은 다시 자리에 앉아 강포병원의 간호기록지를 살폈다.

"이것들 봐라?"

최기석의 미간이 다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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