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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1화 (11/407)

꿈나무 보육원(1)

"으으음."

최기석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잠을 푹 자서 몸이 개운했다.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있자 서서히 의식이 맑아졌다.

요리 중인 정설화의 모습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뭐해?"

"일어났어?"

정설화가 뒤돌아서 최기석을 응시했다.

"콩나물국. 아침은 아무래도 시원한 국이 좋을 것 같아서."

최기석이 상을 펴고 정설화가 상 위에 갖가지 음식을 내려놓았다.

콩나물국 외에도 김치, 진미채무침, 연근조림 등이 밑반찬으로 나오면서 백반집 부럽지 않은 한 상이 차려졌다.

"잘 먹을게."

최기석은 콩나물국을 먼저 떠먹었다.

시원하고 칼칼한 게 입맛 적중이다.

"이거 대박이다."

"정말?"

"당연하지."

최기석이 엄지를 치켜들자 정설화가 환하게 웃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 아침식사가 끝났다.

최기석은 오늘도 아침을 얻어먹은 대가로 설거지를 자청했다.

"설화야. 혹시 잠 못 잤어?"

"왜?"

"그냥 피곤해 보여서."

정설화의 얼굴에는 어제 없었던 다크서클이 보였으며 미미한 잡티도 일어났다.

조금 과장해서 하루 만에 삭아 버린 느낌이 들었다.

"푸······ 푹 잤는데? 우와. 시원하다."

정설화가 부자연스럽게 웃으며 기지개를 폈다.

"그러면 다행이고."

최기석은 다시 설거지에 열중했다.

지이이잉.

휴대폰이 울리고 정설화가 통화를 시작했다.

"응. 아빠. 별일은. 잘 지내지."

[······.]

"아빠는 오늘 법원에 간다면서?"

[······.]

"알았어. 저녁 때 봐."

정설화가 짧게 통화를 끊었다.

"법원? 아버님이 혹시······."

설거지를 마친 최기석이 정설화를 바라봤다.

"변호사야."

정설화가 설명이 이었다.

정설화의 아버지 정진명은 국내 3대 로펌 중 하나인 양태철 로펌에 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의료사고에 관련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이거 받아."

정설화가 서랍에서 정진명의 명함을 꺼내 건넸다.

"언제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잖아? 아빠한테 내 이야기하면 분명 도와주실 거야."

"고마워."

최기석은 명함을 지갑에 챙겼다.

설거지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병원에 인턴으로 갈 것인지.

병원별 모집 시기는 어떻게 되는지에 관한 것 등이었다.

"덕분에 잘 놀다 가."

"나도 즐거웠어."

최기석은 현관으로 나가면서 먼저 운을 뗐다.

"이건 그냥 하는 소리인데. 기분 나쁘게 안 들었으면 좋겠어."

"응. 말해."

"설화. 너는 지금도 충분히 예쁜데. 조금만 더 꾸미면 훨씬 더 예쁠 것 같아."

최기석은 무심하게 한마디 하고 떠났다.

* * *

이튿날.

최기석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도중에 내려다 본 한강의 모습이 낯설었다.

사실은 교통사고와 장기기증으로 진작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지하철을 탄 채 주변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감각이 아직도 꿈만 같았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안내멘트가 흐르고 문이 열렸다.

최기석은 지하철에서 내린 후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잠시 도착한 곳은 꿈나라 보육원.

최기석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곳이다.

어쩌면 이곳이야말로 최기석의 진짜 집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한참 보육원을 바라보고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벨 소리가 울리고 생활지도원 이나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오셨어요?"

"어제 전화드렸습니다. 최기석이라고 하는데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서요."

"아. 최기석 씨라면 혹시······."

"네. 맞습니다. 제가 정해진 선생님의 심장을 이식받았습니다."

"······."

"봉사활동 전에 원장님을 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나래가 원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리고 들어가도 좋다는 의미로 원장실을 가리켰다.

똑! 똑! 똑!

최기석은 노크를 하고 원장실로 들어갔다.

"만나서 반가워요. 손양희예요."

"안녕하세요. 최기석입니다."

"몸은 괜찮아요? 수술받은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봉사활동이라니······."

"걱정 마세요. 아주 건강합니다."

최기석은 웃으며 손양희의 맞은편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덕분에 장기기증을 받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아니라 해진이에게 고마워해야죠."

손양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해진이는 의사 면허증을 따자마자 장기기증 서약서를 썼거든요. 저는 그저 보호자로서 그 아이의 마지막 뜻을 지켜줬을 뿐이에요."

"······."

"해진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요."

손양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특히 초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싸우고 난 후에 울었던 걸 생각하면······ 후우······."

손양희가 감정에 북받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최기석은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았다.

정해진은 부모님이 없다고 놀린 친구들과 한바탕 싸움을 했고 나중에는 그 친구들의 부모에게 불려가 일방적인 꾸지람을 들었다.

"해진이는 그때부터 독해졌어요. 세상에 기댈 사람은 없다는 걸, 반드시 자기 혼자 일어서야 한다는 걸 너무 일찍 깨달은 거죠."

"그랬군요."

"쪼그만 아이가 무슨 일이든지 혼자 해결하려는 걸 지켜보는 게 힘들었어요. 결국 해진이는 제가 원하는 걸 다 이뤄 내기는 했지만요."

손양희가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어느새 눈이 빨개졌다.

그녀의 감정에 녹아든 최기석은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손양희의 속마음는 오늘 처음 들었다.

"부모님이 있었으면 훨씬 잘됐을 아이에요. 더 성격이 밝았을 거고 세상 사는 재미가 뭔지 알았을 텐데."

"원장님. 해진 선생님에게는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최기석의 말에 놀란 손양희가 눈을 깜빡거렸다.

"낳아 준 사람도 부모지만 길러 준 사람도 부모죠. 해진 선생님은 분명 원장님을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손양희가 끝내 뒤로 돌았다.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내가 나이를 먹어서······."

"아닙니다."

최기석은 손양희에게 손수건을 내밀었고 손양희는 그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괜히 저 때문에 더 감정이 북받치신 것 같네요. 저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최기석은 원장실 바깥으로 나와서 문을 응시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모든 것들을 추스르고서 이나래의 지도를 받아 봉사활동에 들어갔다.

그의 몸 상태를 고려해서일까.

봉사활동은 보육원 안을 간단히 청소를 하는 것에 그쳤다.

최기석은 방을 청소하며 다시 옛 기억에 물들었다.

그가 생활했던 방을 보면서.

예전에 얼굴을 보며 음식을 챙겨 줬던 아이들과 마주치면서.

"이 녀석은 어딜 갔지?"

최기석은 복도 끝 방에 서서 중얼거렸다.

지금 그의 앞에는 김정혁의 방이 있었다.

김정혁은 올해로 고등학교 1학년인데, 최기석 같은 의사가 되고 싶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가끔 올 때마다 사오는 치킨을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쿵! 쿵! 쿵!

창틀 청소를 하고 있는데 커다란 발소리가 들렸다.

복도 끝에서 김정혁과 이나래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최기석은 반가움 마음에 김정혁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김정혁의 표정에 생기가 없었다. 두 눈은 완전히 풀려 버린 인형 눈깔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덩치 좋고 살집 있던 녀석이 해골처럼 깡 말라 버렸다.

이 아이가 정말 김정혁이 맞단 말인가.

체력: 5/10

주 증상: 우울장애 / 외상 후 자극장애 / 운동 불량

아픈 부위: 정신 / 복부

현재 상태: 비응급

경과: 불량

[패시브의 레벨이 낮아 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김정혁을 살폈다.

상태는 비응급이지만 상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선생님. 이 친구는 어디 아픈가요?"

"그게······ 사실은 충수돌기염으로 입원했다가 큰 후유증이 생겼어요. 그다음부터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충수돌기염이요?"

최기석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되물었다.

충수돌기염.

보통 사람들은 맹장염, 의사들은 아뻬라고 부르는 질병이다.

웃긴 것은 치료에 필요한 충수돌기 절제술의 난이도가 굉장히 낮다는 점이다. 그래서 초짜 일반외과의가 처음으로 메스를 드는 수술이기도 했다.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최기석의 눈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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