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9화 (9/407)

일상으로(4)

"우연히 이분이 쓰러진 걸 발견했어요. 심장압전이 있어서 심낭천자를 했고 심정지가 겹쳐서 CPR하고 제세동기를 썼습니다."

최기석이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이에 곽상철이 멍한 표정으로 최기석과 환자를 번갈아 응시했다.

"진단하고 처치를 직접 다 했다고요?

"저랑 이 친구는 의사거든요."

최기석이 정설화를 가리켰다.

곽상철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환자를 살핀 후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현재로서는 특별한 이상은 없네요. 그래도 상태를 지켜봐야 하니 인근 병원으로 호송하겠습니다. 두 분 다 수고하셨습니다."

119 대원들이 남자를 구급차 후방에 실었다.

"잠깐만요."

최기석은 서둘러 심낭액이 들어 있는 주사기를 챙겼다.

심낭액을 검사하면 병원에서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

"저도 따라갈 게요."

최기석이 119 차량을 향해 달렸고 그 뒤를 정설화가 따랐다.

* * *

가현병원 응급실.

최기석과 정설화는 침상 옆에 놓인 보호자 침상에 앉아 있었다.

검사에 들어간 남자, 송대현을 기다리는 중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운을 뗐다.

"고마워."

"뭐가?"

"네가 제때에 나타나서 제세동기를 챙겨 줬잖아. 안 그랬으면 그 환자 죽었을지 몰라."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고생은 네가 했지."

정설화가 고개를 저었다.

최기석은 심장압전을 진단하고 심낭천자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십여 분간 꾸준한 속도로 CPR를 실시했다.

응급실에서 해야 할 처치를 야외에서, 그것도 혼자 다 한 셈이다.

이제 막 면허증을 딴 동기가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처치.

'내가 아는 기석이 맞나?'

정설화는 슬쩍 최기석을 훔쳐보았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 아니. 그냥."

정설화가 손을 휘저으며 시선을 피했고 최기석은 피식 웃었다.

"근데 제세동기 위치는 어떻게 알았어?"

"원래 걸으면서 제세동기 위치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거든. 이상하지?"

"아니. 멋있어."

"그럼 다행이고."

최기석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태호랑은 어떻게 할 거야?"

정설화가 화제를 바꿨다.

"······."

"태호 엄청 열 받았어. 술병 깨면서 난리 치는 거 말리느라 혼났어."

"그딴 새끼 안 보면 그만이지. 엄밀히 따지면 우리가 언제 친구 사이었나? 일방적으로 비위 맞춰 주는 사이였지."

"······."

"그리고 적어도 내 편이 한 명은 있잖아?"

최기석이 환자를 치료 할 때 바깥에 나와 준 것은 정설화뿐이다. 남강준이나 오혜정은 조태호만 신경 쓸 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 모임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얄팍한 관계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과거의 최기석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조태호에게 맞추기 급급했다.

지금의 최기석은 과감하게 그룹에서 나온 것이고 말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침상에 누운 송대현이 스태프들과 함께 응급실로 돌아왔다.

최기석과 정설화가 동시에 일어났다.

"두 분 다 고마워요."

송대현이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생사의 경계에 넘나들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건강한 모습이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검사 결과는 이상 없고 별다른 후유증도 없다고 하네요."

송대현이 응급실에 도착해서 받은 검사 결과는 다 정상이었다.

외상으로 인해 생긴 심장압전과 심정지.

거기에 대한 처치가 완벽했기 때문이다.

다만 회복을 위해서 응급실에 더 머물러야 했다.

"아닙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죠."

"처치를 그쪽분이 했다면서요?"

응급의학과 당직의가 대화에 껴들었다.

"대단하네요. 그 상황에서 심장압전을 진단하고 처치까지 깔끔하게 하다니······ 혹시 어디 병원에서 일하시죠?"

"진성대병원 흉부외과입니다."

"어쩐지 처치가 다르다고 했어. 덕분에 일이 줄었습니다."

당직의가 미소를 지었고 최기석도 미소로 답했다.

굳이 그가 이제 막 의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최기석은 실제로 진성대병원 흉부외과에서 레지던트 3년 차까지 밟았다.

완전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럼 저는 이만."

당직의가 자리를 떠났고 정설화는 놀란 표정으로 최기석을 응시했다.

그의 거짓말을 아는 것은 그녀뿐.

최기석은 입술에 손가락을 대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오늘은 너무 늦었고 언제 식사라도 하죠."

잠자코 있던 송대현이 최기석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힘나 한방병원 한방내과 과장 송대현.]

최기석은 명함을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힘나 한방병원이면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한방병원이다. 서울은 물론이요, 지방에도 꽤 많은 병원을 가지고 있었다.

설마 한의사를 살렸을 줄이야.

상태가 응급해서 환자모드만 사용했기에 송대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의료모드로 사용하자 정보가 떠올랐다.

직업 및 전공: 한의사/한방내과

체력: 6/10

진단력: 6/10

외과적 처치: 6/10

내과적 처치: 6/10

평판: 6

액티브 스킬

[절대 표식 Lv.5]

- 혈자리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 침술을 시전할 경우 환자의 통증이 감소하며 침술 효과가 증가합니다.

- 최대치까지 성장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침 마스터리 Lv.5]

- 비침, 장침, 황두침, 호침 등 각종 침을 자유자재로 다룹니다.

[탕약 강화 Lv.4]

- 약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탕약을 제조합니다.

- 탕약 제조시 약제들 각각의 효능과 시너지가 증가합니다.

- 레벨이 오를수록 시너지 폭이 늘어납니다.

최기석은 속으로 감탄했다.

송대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한의사였다. 옆집 아저씨 같은 외모와 실력은 무관했다.

송대현과 대화를 나누는데 한 여성과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헐레벌떡 응급실로 달려왔다.

송대현의 아내 안윤희와 아들 송대진이다.

"여보. 괜찮아요?"

"그럼 멀쩡하지."

"걱정했잖아요!"

안윤희가 송대현에게 안겨 흐느꼈고 송대현은 안윤희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열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그의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들을 함께 살리는 것이기에.

최기석은 과거 은사가 했던 말을 새삼 피부로 느꼈다.

'딱 그 모습이네.'

그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심낭천자를 하기 전 봤던 사진 속 모습.

그 모습과 지금 가족들이 보여 주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최기석과 정설화는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서 병원을 나왔다.

저녁 공기가 차가웠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김이 뿜어져 왔다.

"집에 데려다 줄게."

"괜찮아. 여기서 멀지도 않은데."

"요새 밤거리가 흉흉하잖아. 집 근처까지만 가 줄게."

최기석은 정설화와 택시를 타고 그녀의 집 근처까지 이동했다.

"오늘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

"아니야."

정설화는 휘휘 고개를 저었다.

가로등에 아래 서 있는 최기석의 모습이 문득 처량해 보였다. 상의에는 새빨간 포비돈 용액이 묻었고, 땀에 젖은 머리는 헝클어졌다.

심장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됐음에도 열심히 CPR을 하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괜히 가슴이 짠했다.

꾸르르르륵.

배곯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벌써 다 꺼졌나?"

최기석은 머쓱한 표정으로 배를 문질렀다.

"난 그만 가 볼게."

최기석이 인사를 하고 뒤돌았다.

정설화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최기석을 따라가 옷깃을 잡았다.

"우······ 우리 집에 갈래?"

2